〈 220화 〉 리아나 루멘하르크 (10)
* * *
“...내가 너를 조교 해주마.”
“....응?”
언제나 여유를 잃지 않던 리아나조차 이건 흘려넘길 수 없었다.
리아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의문에 찬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유...진아?...지금 뭐라고...”
“내가 너를 조교 해주겠다고 말했다!”
“...으...으음...그게 무슨 소리...지금 조교라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리아나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오른 것 같았다.
분명 같은 언어로 대화를 하는데 유진의 말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유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래, 조교다. 쓸데없이 음란한 그 몸뚱이에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쾌락을 새겨주겠다고 말하는 거다.”
“....자...잠깐만 유진아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거 같은데 조금 진정하고 다시 말하는 게...”
리아나가 폭주하는 유진을 진정시키려고 할 때.
“그 대신 네가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충동을 내가 같이 짊어지겠다.”
“...!”
순간 리아나의 숨이 멈췄다.
앞서 말한 대사가 너무 황당해 방심한 탓일까.
갑작스럽게 찔러 들어온 유진의 말은 리아나의 마음속 가장 깊숙한 곳까지 틀어박혔다.
“....그걸 어떻게...알았어?”
“알아낸 방법이 중요한가? 중요한 건 내가 너의 충동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진의 말에 리아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 대로였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충동을 이해하는 사람을 만났다.
방법이 어떠하던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제대로 넘어가지 않는 침을 억지로 삼키며 리아나가 물었다.
“...그래서 유진아 너는 나를 어떻게 하고 싶은 거야? 내 충동을 안다면 내가 멈출 수 없다는 것도 알 텐데?”
“말하지 않았나? 너를 조교 하겠다고. 그깟 충동에 지지 않도록 내가 길들여주겠다.”
“...미친 건가?”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일그러진 욕망’ 조차 유진의 망언에 참지 못하고 욕설을 뱉었다.
과연 저 인간들이 제정신으로 말하고 있는 걸까.
그때, 유진이 다시 한번 리아나를 향해 외쳤다.
“너 스스로가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없다면 내가 너의 주인이 되어주마!! 오직 나만을 위해 살고 나만을 위해 죽게 조교 해주겠다! 네가 상상할 수 있는! 아니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종류의 쾌락을 알려주마! 스패킹, 야외노출, 브레스컨트롤, 피어싱, 연속 절정, 방뇨플레이, 애널, 왁싱, 수치, 낙서...”
지금까지 유진이 경험했던 모든 성교의 종류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이 모든 걸 네게 새겨주겠다. 네 머릿속에 있는 목소리 따위에 넘어가지 않도록! 네 모든 삶의 가치는 나로부터 비롯되게 만들어 주겠다!”
그렇게 한참이나 말을 쏟아내던 유진은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했다는 듯 리아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니 내게 와라! 리아나 루멘하르크!!”
유진의 어설프지만, 필사적인 고백.
그것을 들은 리아나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미친 듯이 웃었다.
“...흐아...아하하...!!유...유진아....후아하하...아하...하아..흐아하...하하하하하....!!”
이렇게 웃다가 죽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웃어대던 리아나는 고인 눈물을 닦았다.
“...유진아...최...최악이야....내가 들어 본...최악의 고백이라고....아하하...히...흐아...하...하하하!”
분명 유진의 말은 여자를 유혹하는 대사로는 최악이었다.
부와 권력을 주겠다고 하는 것도 아니다.
평생 자신만을 사랑해주겠다고 맹세하는 것도 아니다.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쾌락뿐.
오직 쾌락을 몸에 새겨 길들여주겠다니....
유진이는 여자를 도대체 뭐로 보는 걸까.
온 세상을 뒤져보더라도 저런 말에 넘어가는 여자는 단 한 명뿐일 거다.
‘하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리아나 루멘하르크가 그 한 명인 걸 꿰뚫어 보고 외친 고백이라면....
리아나의 입꼬리가 제멋대로 씰룩거리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정말...유진이한테는 못당하겠다니까.”
그렇게 속삭이는 순간.
리아나를 감싸던 공기의 결이 달라졌다.
동시에 ‘일그러진 욕망’은 무엇인가 잘못된 걸 눈치채고 소리쳤다.
“미친 거냐 황녀! 겨우 저딴 헛소리에 배신하겠다고! 정신 차려라! 네 목에 걸린 목줄을 잊지 마라!”
“배신이요?”
‘일그러진 욕망’의 일갈에 리아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배신이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죠?”
“마지막 기회다! 지금이라도 이쪽으로 돌아와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모든 걸 잃게 될 거....”
“이건 배신이 아니에요.”
거기까지 말한 리아나는 방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야, 처음부터 저는 당신들을 끌어낼 생각만 한 걸요.”
리아나의 미소를 본 ‘일그러진 욕망’이 빛의 창살을 깨부수며 소리쳤다.
“...이 빌어먹을 년이...!! 이제 됐다! 전부 찢어 죽여버리겠어...”
지금까지 ‘일그러진 욕망’이 얌전히 입을 다물고 기다리던 건 리아나의 힘을 두려워해서도 있지만, 무엇보다 리아나에게 걸린 맹약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리아나 루멘하르크는 배신하지 않는다.」
리아나 정도의 실력을 갖춘 인물이라면 타인과 맺은 약속쯤이야 간단히 파기할 수 있지만.
자기 자신과 맺은 맹약만큼은 다르다.
맹약을 어기는 순간 리아나가 지닌 막대한 힘은 그녀 자신을 파괴할 테니까.
그렇기에 ‘일그러진 욕망’은 모욕을 참고 견딘 것이다.
배신할 수 없다는 조건이 있는 한 리아나는 언젠가 굴복할 테니까.
그러나 리아나가 맹약을 깨기로 한 이 순간 더는 참을 이유가 없어졌다.
‘일그러진 욕망’의 몸을 감싸고 있던 붕대가 풀어헤쳐 진다.
붕대의 역할은 일종의 배터리처럼 힘을 저축하는 마도구다.
그렇기에 능력 자체가 전투보다는 유틸에 치중된 ‘일그러진 욕망’이지만 붕대를 풀고 나서 5분간은 ‘되살아난 타락’과도 승부를 겨룰 수 있을 만큼 강대한 힘을 얻게 된다.
...하지만
상대가 나빠도 너무 나빴다.
“설마 변신할 때까지 기다려 줄 거로 생각한 건 아니죠?”
루멘하르크의 혈족 마법이 추구하는 건 ‘가장 순수한 파괴’.
그리고 리아나는 그걸 누구보다 완벽히 수행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깨지고─무너지고─부셔져라」콰직─
‘일그러진 욕망’이 미처 붕대를 전부 풀기도 전에 리아나의 손가락 끝에서 쏘아진 혈족 마법이 그를 관통했다.
“...빌어...먹을....네년이...어디까지 떨어질지 지옥에서 지켜봐주마...”
반쯤 풀린 붕대 사이로 ‘일그러진 욕망’은 재가 되어 사라져가는 자신의 몸을 보며 저주를 내뱉었다.
높게 날면 날수록 떨어질 때의 충격은 강해진다.
하물며 리아나는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 곳에서 날고 있었다.
그런 리아나가 맹약을 깼을 때는 과연 얼마만큼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인가.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추락하는 리아나를 떠올리니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넌...반드시...후회할 거다.”
일그러진 욕망이라는 이름답게 최후까지 뒤틀린 욕망을 토해내며 ‘일그러진 욕망’은 완전히 재가 되어 사라졌다.
“아뇨...”
재의 무덤 위에서 리아나가 몸을 돌려 유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작게 속삭였다.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
나는 사라져가는 ‘일그러진 욕망’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끝났다.’
리아나 루멘하르크를 막아냈다.
솔직히 말해서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말을 뱉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니까.
한 가지 확실한 건 다시 떠올리면 쪽팔림에 죽을지도 모른다.
‘처음이다.’
셀 수 없이 ‘아카조교사’를 플레이하면서도 나는 단 한 번도 리아나를 막지 못했다.
즉, 지금부터 이 세계는 내가 전혀 모르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하.’
그러자 문득 웃음이 입가를 비집고 나왔다.
마침내 내가 온전히 이 세계의 일원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아직 해야 할 것이 산더미처럼 쌓였기에 웃고 있을 틈은 없다.
우선 카르네아의 폭동을 정리해야 했고, 소문이 더 퍼지기 전에 다른 대가문과 협력해서 리아나에 대한 정보를 조작해야 한다.
더욱이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는 제국의 어둠도 처리해야 했고, 반란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으니 토벌군으로 최종 보스에 대항하는 정사와는 달리 군대 역시 따로 조직해야 했다.
‘이렇게 보니 또 고생 시작이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승리를 만끽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내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자 태양에 비할만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리아나가 다가왔다.
“유진 칼리오페...”
“황...”
나도 모르게 황녀 전하라 부를뻔하자 리아나의 뺨이 호빵처럼 부풀어 오른다.
목을 가다듬은 나는 고개를 흔들고는 다시 한번 리아나를 불렀다.
“리아나.”
“응, 유진아♪ 아...! 이게 아닌가?”
내게 한 걸음 다가온 리아나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자.
마치 봄날의 숲 한가운데 들어 온 것처럼 싱그러운 바람이 불었다.
“주인님...”
이윽고 뇌가 녹아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정도로 야릇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고.
“...부디 저를 길들여주세요.”
나는 리아나 루멘하르크의 손을 붙잡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