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8화 〉 리아나 루멘하르크 (8)
* * *
쉬지 않고 달린 끝에 저 멀리 기숙사 입구 쪽에서 트리스탄의 얼굴이 보였다.
“하아...하아... 트리스탄 교수님....결계...해독은...하아...”
숨이 벅차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러자 트리스탄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꼴이 말이 아니군, 일단 숨부터 고르게.”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호흡을 다스리는 사이 트리스탄이 말했다.
“...결계의 해석은 조금 전에 끝냈네.”
“정말입니까?”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트리스탄이 결계 마법의 대가인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벌써 풀어냈을 줄은 몰랐다.
그러자 트리스탄이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직 기뻐하기는 이르네. 끝낸 건 결계의 해석뿐. 결계를 해제하는데 필요한 마법을 만드는데 아직 시간이 한참 더 필요하네.”
“아...”
예를 들자면 바이러스는 찾아냈지만, 아직 치료제는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는 건가.
“해제까지는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릴까요?”
“지금 당장 확답은 줄 수 없지만 결계의 구조를 봤을 때 아무리 빨라도 12시간은 필요하네.”
“12시간...”
내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12시간조차 엄청나게 빠른 속도인 건 알고 있다.
처음 보는 바이러스의 치료제를 12시간 만에 만든다면 그건 천재라는 단어로도 부족 할 테니까.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좀 더 빠른 해결책이 필요했다.
“다른 방법은 없겠습니까?”
무리한 요구라는 걸 알면서도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트리스탄이 깊은 한숨과 함께 말을 뱉었다.
“...하나 있기는 하네. 다만 이 방식을 사용하면 결계가 해제되기 전까지는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네. 안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이상 별로 권하고 싶지 않아.”
“상관없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저런 경고에 물러나기에는 지금까지 몇 번이고 위험한 다리를 건너왔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야... 이 방법은 지극히 고통스러울 걸세.”
“견디겠습니다.”
견뎌야만 했다.
지금 리아나를 막지 못하면 이 세계가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 모르니까.
“그렇게 간단히 말할 수 있는 수준의 고통이 아니다. 잘못하면 정신이 망가질 수도 있어!”
언젠가의 기억을 떠올리는 듯 트리스탄이 괴로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래도 견디겠습니다.”
하지만 내 대답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자 주먹을 떨던 트리스탄은 이내 포기한 듯 말했다.
“...알겠네. 그럼 웃통을 벗고 여기에 앉게나.”
“네. 교수님.”
시킨 대로 옷을 벗고 자리에 앉자 트리스탄이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자네의 등에 기숙사에 있는 것과 똑같은 결계를 새겨 넣겠네. 이 방법대로라면 결계를 해제하지 않고도 안에 들어갈 수 있을걸세.”
결계를 부수는 것이 아닌 육체를 결계의 일부분으로 만들어 통과한다는 걸까.
나름대로 이 세계에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 나였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살아있는 인간의 몸에 결계를 새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일세. 자네가 몸을 움직이거나 비명을 지르면 술식이 일그러지지. 그렇게 되면 술식을 처음부터 다시 새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거기까지 말한 트리스탄은 잠시 말을 멈추고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허나, 내 마력으로 이 결계를 새길 수 있는 건 한 번뿐일세. 내 말뜻을 이해하겠나.”
미쳐버릴지도 모르는 고통 속에서도 나는 움직이지도 소리를 질러서도 안 된다는 건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기회는 한 번뿐이라는 거죠.”
“그래. 한 번뿐일세.”
“그거면 충분합니다. 그럼 시작해주세요.”
“...알겠네.”
다음 순간, 트리스탄이 손이 내 등에 닿았고.
“───!!”
소리 없는 지옥이 시작되었다.
**
조금 전까지 마법이 쏟아지던 곳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기숙사의 옥상은 고요했다.
“...”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황녀를 노려보는 루시아.
반면 리아나는 여전히 처음과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아니, 자세히 확인해보면 조금이지만 달라졌다.
황녀의 옷자락 끝이 잘려서 나풀거렸으니까.
‘놀랐네.’
옷자락을 바라보며 리아나가 웃었다.
[하위 마법은 상위 마법을 넘을 수 없다.]
마법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는 법칙.
하지만 실전에서는 거의 적용되지 않는 법칙이기도 했다.
같은 마법이라 할 지라도 사람마다 마법에 대한 이해도와 지배력이 다르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론상 마법을 다루는 솜씨가 동등하다면, 마력이 많은 쪽이 승리하는 건 당연했다.
루시아와 리아나가 그러했다.
둘의 마법사로서의 역량은 거의 동일하다.
하지만 마력량의 차이가 너무 거대했다.
물론, 루시아의 마력량도 카르네아에서 손꼽힐 정도로 뛰어나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의 범위다.
반면 리아나의 마력량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범위를 한참 초월했다.
이처럼 마력량의 차이만큼 시전 할 수 있는 마법의 등급에도 차이가 존재했고 그 결과는 루시아의 압도적인 패배였다.
‘감각 동기화라...’
하지만 최후에 루시아가 사용한 감각 동기화.
의식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그 기술에 리아나는 잠시나마 육체의 주도권을 빼앗겼다.
물론, 당황하지 않고 재빨리 동기화를 끊었기에 옷자락이 잘린 것으로 끝났지만...
어쨌거나 루시아가 한 방 먹인 것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야.’
감각 동기화는 분명 대단한 기술이다.
하지만 의식하고 있는 이상 두 번은 통하지 않을 기술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걸로 끝?”
리아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루시아는 얌전히 턱을 끄덕였다.
“왜? 남은 마력을 봐서는 아직 한 번 정도는 더 공격할 수 있을 텐데?”
“어차피 통하지 않을 테니까요.”
감각 동기화라는 비장의 수조차 파훼 됐지만, 루시아는 언제나처럼 냉정한 모습이었다.
“에이, 통하지 않을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면서.”
“....”
루시아의 능력이라면 처음부터 승패가 정해져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포기할 거면 왜 덤빈 거지?’
사소한 의문과 함께 리아나의 손끝이 루시아를 겨눴고..
“그럼 그만 내려가 봐. 루시아 우르엘라. 나름대로 즐거웠어.”
이내 겨눈 손을 휘휘 저으며 축객령을 내렸다.
“...그냥 보내 준다는 말인가요?”
“왜? 그냥 보내 주는 게 섭섭하면 팔이라도 하나 자를까?”
“...”
“에이, 그렇게 노려보지 마. 농담이니까. 제국의 달을 그렇게 만들 바에는 죽이는 게 낫지. 그리고 처음부터 말했잖아. 지금은 죽일 생각이 없다고.”
진심이었다.
지금 리아나의 머릿속에서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니까.
만일 목소리가 들렸다면 살해 충동을 제어하기 어려웠겠지.
“그럼 가, 내 마음이 변하기 전에.”
“....”
쩍─
리아나의 말에 루시아가 등을 돌린 그 순간.
쩌저적─!
허공이 찢겨나가며 온몸에서 불길함을 풍기는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일그러진... 욕망.”
루시아의 입에서 자신을 부르는 말이 튀어나오자 ‘일그러진 욕망’의 시선이 루시아를 향했다.
“...흐음.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계집인데.”
못으로 금속을 긁는 목소리.
잠시 고민하던 ‘일그러진 욕망’은 이내 무언가를 깨달은 듯 손가락을 튕겼다.
“네년 우르엘라의 차기 가주군! 하하하! 운이 좋군! 여기서 만나다니 말이야! 처리하고 가야겠어!”
그 순간 ‘일그러진 욕망’이 루시아를 향해 저주를 날렸고.
콰앙─
루시아와 ‘일그러진 욕망’ 사이에 끼어든 리아나가 저주를 튕겨냈다.
“황녀... 어째서 막는 거지? 배신이라도 할 셈인가?”
“...루시아는 내버려 둬요. 죽이지 않고 보내 주기로 약속했거든요.”
‘일그러진 욕망’과 리아나가 서로를 노려보았다.
“...장난치지 마라. 마나의 맹세도 아닌, 단순한 약속 따위로 우르엘라의 차기가주를 살려 보낸다고? 앞으로 저년이 우리 계획에 얼마만큼의 방해가 되는지 알고 있는 거냐!”
“지금 장난치는 것처럼 보여요? 그리고 루시아를 보내주는 데는 당신 책임도 존재해요.”
“내 책임?”
“네, 당신이 조금만 빨리 왔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테니. 아쉽네요. 좀 빨리 오지 그랬어요.”
“웃기지 마라! 그건 네년이 멋대로 계획을...”
“네년...? 분명 황녀 전하라고 부르라고 했을 텐데. 당신은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는 걸까요?”
리아나가 마력을 끌어올리는 걸 보는 순간 일그러진 욕망 역시 전투태세를 취했지만...
‘...괴물인가?’
‘일그러진 욕망’이 몸을 흠칫 떨었다.
옥상의 상태를 살펴보면 조금 전까지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만큼의 마력을 사용해놓고도 리아나의 마력은 아직도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막대했다.
이해하고 싶지 않아도 ‘그분’께서 리아나를 편애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먼저 전투태세를 푼 ‘일그러진 욕망’은 루시아를 노려보며 말을 뱉었다.
“...어서 꺼져라. 계집.”
그 말에 루시아는 리아나를 스쳐 지나가며 작게 물었다.
“왜... 살려주는거죠?”
리아나가 보내 준다고 했지만, ‘일그러진 욕망’의 말대로 그건 구속력 없는 약속에 불과했다.
하지만 리아나는 ‘일그러진 욕망’과 대립하면서까지 루시아를 보내 주었다.
그러자 리아나는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 미움받고 싶지 않나 봐.”
“....”
미움받고 싶지 않다.
과연 그건 누구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다는 말일까.
리아나의 누군가의 얼굴이 잠시 머리에 스쳤지만 이내 고개를 흔드는 것으로 털어냈다.
또각─ 또각─
루시아가 계단을 내려간 걸 확인한 ‘일그러진 욕망’이 으르렁거렸다.
“황녀... 네 목에 걸린 목줄을 잊지 마라. 제멋대로 구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다...”
“....”
평소와 달리 리아나가 별다른 대꾸하지 않자 ‘일그러진 욕망’ 역시 입을 다문 채 균열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후.
쩌저적─
‘일그러진 욕망’이 나타났을 때와 같이 허공이 찢어지며 균열이 모습을 드러냈다.
“들어가지.”
균열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리아나는 잠시 멈춰 서서 카르네아의 전경을 둘러보았다.
‘이걸로 마지막이네.’
이상한 일이었다.
아쉬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인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뭐 하고 있지? 이 정도 수준의 균열은 오래 유지할 수 없다. 서둘러라.”
‘일그러진 욕망’이 짜증 서린 목소리로 재촉하자 리아나가 다시 발을 옮겼다.
‘...알고 있잖아요.’
올 수 있을 리가 없다.
리아나 자신이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결계를 쳐놨으니까.
설령 기적처럼 그가 나타난다고 한들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스스로를 납득 시키듯 다시 한번 상황을 되새긴 리아나의 발끝이 균열에 닿으려는 그때.
“...황녀...전하!”
들려서는 안 되는.
들릴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황녀전하!”
환청인가 싶었지만 또다시 들린 그의 목소리.
리아나는 자신도 모르게 뒤돌아보려던 몸을 붙잡고 억눌렀다.
‘잘...견뎠어요.’
돌아봐서는 안 된다.
뒤돌아보면 멈춰 서고 말 것이다.
입술을 꽉 깨문 리아나가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으려고 하자.
그보다 먼저 한 발자국 더 다가간 유진은 있는 힘껏 소리쳤다.
“리아나 루멘하르크!”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