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회차 히로인이 조교를 기억함-217화 (217/354)

〈 217화 〉 리아나 루멘하르크 (7)

* * *

리아나 루멘하르크가 옥상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리아나 정도의 실력이라면 기숙사 내부를 직접 보지 않아도 마력의 흐름으로 상황을 파악 할 수 있다.

‘흐음, 생각보다 훨씬 빠르네.’

루시아의 대응을 확인한 리아나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기숙사의 출입이 봉인되었다는 걸 파악하는데 1분.

당황하는 학생들을 진정시키는데 3분.

학생들을 설득해 방안으로 돌려보내는데 5분.

그리고 옥상까지 올라오는데 3분.

총 12분.

루시아 우르엘라가 사태를 정리하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대응까지 30분은 걸릴 거로 생각했는데 과소평가였나보다.

‘그에 반해서 이쪽은 참...’

작전 시간을 조금 앞당겼다고 어쩔 줄 모르고 허둥대는 ‘일그러진 욕망’을 떠올리니 한숨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끼이익─

그때 옥상 문이 열리며 문틈 사이로 순은을 녹여 만든듯한 머리카락이 달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왔어?”

리아나는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손을 흔들었지만, 루시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침묵했다.

“음음, 역시 우르엘라의 차기가주야. 완벽한 대응이었어. 거의 만점이랄까?”

“....”

“왜 만점이 아니냐면 묻는다면... 나를 찾아 왔기 때문입니다~! 사실 루시아 정도면 결계만 봐도 수준 차이를 알 수 있잖아?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지만 만에 하나 내가 루시아를 죽이려고 한다면 순식간에...”

리아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루시아의 손끝에서 불꽃의 창이 쏘아졌다.

콰아앙─

허공에서 열두 쌍으로 분열된 불꽃의 창은 리아나에게 닿는 순간 폭발을 일으켰고, 희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조금 전까지 리아나가 서 있던 자리에 거대한 균열이 생겼다.

하지만...

“우와, 영창도 없이 이런 마법을 사용하네. 깜짝 놀랐어.”

무시무시한 폭발한 가운데에서도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리아나는 평소처럼 웃고 있었다.

“하지만 이정도로는 부족한 걸~ 좀 더 강한 게 필요해.”

“...황녀전하.”

“아하하, 아직도 나를 황녀전하라고 불러주는 거야? 하지만 이번 사건도 슬슬 황가의 귀에 들어갈 거고 황가에서는 곧바로 나를 제명할 테니 더 이상 황녀전하가 아니게 되는데.”

계속해서 친근하게 말을 거는 리아나의 모습에도 루시아는 긴장을 풀지 않은 채 리아나를 노려보았다.

“...결계를 해제하세요.”

“흐음...싫다면?”

“억지로라도 풀게 하겠습니다.”

“억지로? 누가? 루시아가? 나를? 아하하! 재미있는 농담이야! 그런데...”

잠시 루시아의 얼굴을 관찰하던 리아나가 갑작스럽게 웃음기를 지우고 팔짱을 끼었다.

“뭔가 이상하단 말이야.”

“무엇이 말입니까?”

“나는 별로 루시아에게 미움받을 만한 짓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루시아는 나를 지나치게 미워한다는 말이지.”

리아나의 말에 루시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진심입니까? 평민파를 선동해 카르네아에 폭동을 일으켜놓고 제 원망을 사지 않을 거로 생각했습니까?”

“하하핫! 아 맞아 그게 있었네. 그건 미안해~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 어쩔 수 없었어.”

양손을 모은 리아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말이지 루시아가 나한테 가진 원한은 그런 정치적인 이유나, 물리적 손해 때문에 생긴 게 아닌 거 같단 말이지... 뭐랄까 좀 더 질척하고 어두운...”

거기까지 말한 리아나는 입술을 핥으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사랑하는 남자를 빼앗긴 그런 패배자의 질투 같은 느낌의...”

콰르릉─

리아나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루시아의 번개가 옥상 전체를 뒤덮었기 때문이다.

“위험해~ 위험. 이런 무시무시한 마법을 다른 사람한테 쓰면 죽어버린다고?”

“안 죽지 않았습니까.”

처음으로 얼굴에 분노를 드러낸 루시아를 보며 리아나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어쩜, 정곡이었나 봐? 패배자.”

리아나의 도발과 동시에 루시아의 마법이 빗줄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

최대한 마력을 보존하며 대치상태를 유지했지만 더는 무리였다.

‘이거 좆된거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상대방은 카르네아의 상위권인데 너무 얕본 것일까.

내 마력량이 실력에 비해 그리 높지 않다는 걸 눈치챘는지 롱기스트 그룹은 견제와 도주를 번갈아서 시도하고 있었다.

‘남은 수는 네 명.’

물론, 그때마다 처음에 선언했던 대로 한 명씩 쓰러트리기는 했지만, 기습 공격으로 쓰러트렸을 때만큼 마력의 효율이 나오지 않는다.

‘이대로 가다가는 두 명 정도는 놓친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싹 다 정리해버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남은 마력을 죄다 쏟아부어 마법을 난사한다면 페드로 그룹을 정리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전력을 다해도 부족 할 망정에 바닥난 마력으로 리아나를 상대할 수 있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불가능했다.

“이쯤에서 우릴 놓아주는 건 어때? 어차피 우릴 죽일 생각은 아닌 거 같은데.”

페드로 롱기스트가 반걸음 앞으로 나서며 제안했다.

그의 온몸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내가 죽이지 않는다는 걸 눈치챘는지 처음만큼 겁을 먹지는 않았다.

“....얌전히 있으라고 말했을 텐데.”

촤악─

나는 페드로의 발 앞에 염동력의 칼날을 휘둘러 선을 그었다.

“...윽...하! 이..이것봐! 또 빗맞혔지! 그래! 네가 강하다는 걸 알겠다! 하지만 어차피 죽이지 못할 거면서 허세는 그만...”

열변을 토하는 페드로의 뺨이 잘려나가며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나는 페드로를 노려보며 경고했다.

“...네 말대로 죽이진 않겠지만 팔다리 하나 정도는 잘라낼 수 있다. 병신이 되고 싶으면 움직여.”

“...미...미친새끼...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 있는지 보자고!”

식겁한 페드로가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지만, 그의 말대로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저들의 인내심이 떨어지기 전까지 결정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풀어낼 수 있을지 생각을 거듭하고 있을 때.

“...오랜만에 돌아왔것만 아카데미가 소란스럽군.”

페드로의 뒤쪽에서 낮고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에 내가 두 눈을 크게 뜨자, 목소리의 주인은 페드로 일행을 밀어제치며 내게 다가왔다.

마법사라기보다는 기사쪽에 가까운 장신과 근육질의 몸.

페드로의 앞에 선 남자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내가 놀라 이름을 불렀다.

“...로레오스...교수님.”

“그래, 잘 지냈나. 유진 칼리오페.”

격의 차이를 느낀 것일까.

로레오스 교수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처럼 보였지만 페드로는 기습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굳어있었다.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군. 한데 뭘 하던 중이지? 이 시간이면 기숙사에 있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내가 없는 동안 카르네아의 교칙이 바뀌기라도 했나?”

마치 집무실에 앉아 차라도 마시면서 이야기하는 듯 편하게 농담을 던지는 로레오스.

“...카르네아에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로레오스에게 현 상황을 요약해 설명했다.

담담히 이야기를 들은 로레오스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 때는 말이야. 차별당하는 것쯤이야 당연한 일이었는데 말이지... 쯧, 요즘 것들은 근성이 썩어있군.”

안 본 사이에 꼰대 기질이 조금 늘어난 것 같은 로레오스가 영창했다.

「찢어발겨라 ─ 바람 ─ 늑대 ─ 송곳니」

내가 염동력으로 흉내 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위력.

저만한 수준의 마법을 로레오스는 완벽히 제어하고 있었다.

“가라, 유진. 여기는 내가 맡으마.”

***

“하아...하아...하아...”

루시아는 가쁜 숨을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기숙사 옥상은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이곳저곳이 망가져 있었지만, 그 한 가운데 있는 리아나는 여전히 건재했다.

“어때, 루시아 이제 진정 좀 했어?”

“....”

“그렇게 노려보지 마. 어차피 이제 마력도 바닥났잖아? 마력을 채울 동안이라도 이야기나 해보자.”

“...할 이야기는 없습니다.”

루시아의 날카로운 대응에 리아나가 양팔을 활짝 펴며 답했다.

“난 있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말이지 유진이가 그렇게 대단한...”

“주인님을 그 입에 담지 마!”

순간적으로 루시아가 소리쳤지만 이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리아나의 유도 신문이었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

평소의 루시아라면 절대 걸리지 않았을 함정.

하지만 말을 꺼낸 상대가 리아나였고, 그 내용이 유진과 관련이 있다보니 냉정함을 잃었다.

“후후훗. 역시 유진이가 맞았네. 근데 주인님이라... 유진이 특별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제국의 달이 주인님으로 모실 정도야?”

지금와서 시치미를 떼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한 건지 루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 세계를 다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을만큼요. 하지만 당신은 절대로 주인님의 가치를 모를 거예요.”

“헤에... 그렇게 말하니까 더 탐나네. 점점 더 가지고 싶네.”

“아뇨. 당신은 주인님을 모실 자격이 없어요. 당신 때문에 주인님이....”

거기까지 말한 루시아는 이를 까득 갈며 말을 삼켰다.

“흐음? 계속해 나 때문에 유진이가? 어떻게 됐는데?”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 하죠. 지금 중요한 건 제가 당신을 쓰러트린다. 그것 하나 뿐입니다.”

루시아의 손끝이 리아나의 이마를 겨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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