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8화 〉 음란 기사는 NTL을 꿈꾼다 (2)
* * *
사각─사각─
고요한 방안에 펜 움직이는 소리만이 작게 울렸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서류들이 유진의 확인을 걸쳐 하나씩 처리되어 갔다.
“마르잔. 홍차 한 잔 부탁해.”
고개를 돌릴 시간도 아깝다는 듯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하는 유진.
오늘 유진이 서류를 처리하는 동안 마르잔이 한 것이라곤 지금처럼 홍차를 가져오는 것 같은 사소한 잡일뿐.
“하아...”
홍차를 준비하며 유진의 뒷모습을 모습을 바라보던 마르잔은 미묘한 기분에 한숨을 내쉬었다.
쉬지 않고 일을 하는 유진을 보니 약을 먹여서라도 쉬게 하겠다는 게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인지 깨달았다.
유진을 잠들게 함으로써 생기는 시간의 공백.
만일 그 공백 때문에 유진의 계획이 일그러지게 된다면 마르잔은 도저히 책임질 자신이 없었다.
‘열심히 하시는 건 알겠지만... 그래도 매일 같이 저렇게 일하는 건 너무 한 거 아닙니까.’
분명 어제도 저 정도의 서류가 있던 거 같은데 조금도 줄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양이 더욱 늘어난 것만 같았다.
“...후우...”
그래도 오늘은 일이 조금 빨리 끝났는지, 일이 끝나기 전까지는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던 유진이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자, 유진님 홍차에요. 드시면서 좀 쉬세요.”
“고마워. 근데 아직 일이 안 끝나서 쉴 수는 없을 거 같네.”
그렇게 말한 유진은 검토가 끝난 서류 뭉치를 처음 위치로 옮기고 다시 한장 한장 훑기 시작했다.
유진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마르잔이 눈을 깜빡거리며 물었다.
“유진님.... 그건 조금 전에 확인하신 자료들 아닙니까?”
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응, 맞아. 검토 중이야. 이걸로 다섯 번째인가.”
“...다섯 번이요? 다섯 번이나 확인하셨단 말이에요? 그렇게나 확인하셨는데 뭘 더 하시려고요!”
“혹시 모르잖아. 만에 하나라도 미흡한 곳이 나오면 큰일이니까. 한 번만 더 확인해보려고.”
당연하다는 듯 옅게 웃으며 대답하는 유진의 모습에 마르잔은 자신이 느낀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이러니까 일을 아무리 해도 안 줄어들죠...!’
일을 빨리 끝내도 소용없다.
지금 유진처럼 몇 번이고 반복해서 검토한다면 자료가 쌓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물론, 검토하는 만큼 철저하게 준비할 수 있을 테니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정도가 있다.
저렇게까지 몸을 혹사해가면서 하는 검토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
생명력이 빠져나가 퀭해진 유진의 눈을 본 마르잔은 결심을 굳혔다.
‘...해야겠어요.’
억지로라도 재워야 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가 아닌 유진님을 몸을 위해서라도 무조건 재워야 했다.
‘...이 바보 같으니. 유진님의 상태가 이상한 것도 모르고...’
단둘이 있으면서도 유진의 불안정한 상태를 눈치채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워졌다.
지금 유진은 자신에겐 휴식이 허락되지 않았다는 것처럼 꼼꼼히 검토한 자료를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하고 있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건가요...’
마르잔이 아랫입술을 씹었다.
그녀로서는 어째서 유진이 스스로를 몰아붙이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유진님을 위해서...!’
결심까지는 오래 걸렸지만, 실행은 빨랐다.
퐁─!
마르잔은 품속에 약병을 꺼냄과 동시에 엄지로 코르크 마개를 따고 내용물을 유진의 입안에 털어 넣었다.
“....!”
갑작스러운 마르잔의 행동에 유진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은 것도 잠시.
곰도 잠들게 한다는 릴리스의 말이 과장은 아닌지, 약을 한 모금 삼키는 순간 유진은 즉시 잠에 빠져들었다.
책상 위에 엎어진 유진을 보며 마르잔이 머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유진님...”
분명 주제를 넘었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평소의 유진 같았으면 아무리 갑작스러운 기습이라 해도 최소한의 대응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유진은 약을 삼키기 직전까지 자신이 뭘 당했는지까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만큼 유진님의 몸이 한계였다는 거겠죠.”
마르잔은 씁쓸한 한숨을 내쉬며 유진의 눈을 가리는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지금이라면 무슨 짓을 해도 모르지 않을까?’
깊이 잠든 유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르잔의 머릿속에 괜한 생각이 스멀스멀 솟아난다.
“으음...! 이럴 때가 아니에요.”
불경한 생각을 떨치기 위해 고개를 저은 마르잔이 유진을 등에 업었다.
유진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쉴 수 있게 침대로 옮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잘못된 판단이었다.
‘...다...단단해.’
피부에서 느껴지는 남자의 신체, 그와 더불어 코끝을 스치는 유진의 냄새.
꼴깍—
마르잔은 간신히 억누른 불경한 생각이 거대하게 부풀어 오르는 걸 느꼈다.
***
‘...꿈이군.’
몇 번 자각몽을 경험해서 그런지 꿈에 빠졌다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마르잔...”
나는 꿈속에서 마르잔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마르잔이 입속에 뭘 넣는 순간 잠든 걸 보니 수면제 같은 걸 먹인 모양이다.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대충 이해는 간다.
‘...차마 더 지켜볼 수 없었겠지.’
화는 나지 않았다.
오히려 마르잔에게 미안한 감정이 앞섰다.
충성심이 강한 마르잔의 성격상 내게 손을 대었다는 것에 지금쯤 상당히 괴로워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짓을 저질렀다는 건 마르잔이 보기에 내 상태가 상당히 심각했다는 뜻.
“...상당히 오랫동안 안 잤으니까.”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잠이 들었다는 걸 인식하니, 그동안 내가 잠드는 것을 꺼렸다는 게 느껴졌다.
검토가 끝난 서류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확인하는 쓸데없는 짓을 해서라도 말이다.
...그 이유는.
“이것 때문인가.”
나는 팔짱을 낀 채 눈앞에 떠 있는 한 자루의 검을 바라보았다.
무의식적으로 잠에 빠지면 이쪽에 끌려 온다는 걸 알고 있던 모양이다.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지.”
황녀를 떠올릴 때마다 검이 나를 부르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검에 가까워질 때마다 내 것이 아닌 감정이 나를 삼키려는 것 같았기에 최대한 접촉을 피하고 있었다.
우웅─
내가 한참이나 가만히 서 있자 검은 자신을 잡으라고 재촉하는 듯 떨려왔다.
‘깨어나는 방법도 모르겠고, 피할 수도 없어 보이네....’
검을 무시하고 이동할 수 있을까 싶어 조금 걸어가 봤지만, 이 빌어먹을 공간은 내 꿈인데도 검에서 떨어질 수 없게 하려는 듯 꽉 막혀있었다.
“...어쩔 수 없나.”
나는 눈을 감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부른 걸 보면 검이 내게 바라는 것이 있는 게 분명했다.
감정에 삼켜지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은 나는 검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
‘...하아...이..이러면...안되는데...’
침대 위에서 편안한 얼굴로 잠든 유진을 보며 마르잔이 침을 꼴깍 삼켰다.
손등에 튀어나온 혈관, 잉크가 묻어 있는 손끝, 살짝 벌려진 입술.
무엇하나 마르잔의 심장을 떨리지 않게 하는 것이 없었다.
“...유진님....”
마르잔은 작은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유진의 손을 쓰다듬었다.
잠들어있는 사람에게...
그것도 주군의 연인에게 이런 짓을 해서는 안 되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알고 있다 한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주군의 연인을 훔친다는 배덕감에 지금까지 잔뜩 억눌러온 마르잔의 성욕이 단숨에 한계에 도달했다.
마르잔은 유진의 손을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들어 입을 맞췄다.
쪼옥─
“하아...♥”
마르잔의 입술에서 야릇한 숨결을 흘러나왔다.
유진의 손에선 자위에 쓰던 장갑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손등에 입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마르잔은 속옷이 지금까지 없었을 정도로 젖어가는 걸 알아챘다.
“흐읍...쪼옵...읍...♥...루..루시아님......죄송...죄송합니다..♥..이런....음란한...기사라...죄송합니다...”
루시아에게 사죄하며 유진의 검지를 입안에 넣고 천천히 혀로 핥아간다.
“흐으읍...♥흐하아...읍...♥”
유진의 맛을 입안에 새기듯 손가락을 음미하는 마르잔.
“..흐아...하아..♥유..유진님...죄송...죄송해요...♥”
이번에는 유진에게 사과한 마르잔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입안에서 손가락을 빼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치마 아래로 팬티를 내리며 유진의 손가락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허리를 가져다 댔다.
찔꺽─
손가락이 보지 입구에 닿는 순간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마르잔의 다리가 오므라들더니.
“...흐아아아앗!♥”
신음이 제멋대로 튀어나왔다.
찔꺽─찔꺽─
“끄읏...!흐끄윽♥...흐읏...!...다...닿고..이써...!♥..유..유진님의...♥손...가락이..♥...제...보지엣..!!♥”
유진의 손가락이 보지에 닿을 때마다 몸 전체가 옅게 경련하며 뜨거운 신음이 토해진다.
움찔─!
수컷의 본능이 암컷의 신음에 반응한 것일까.
분명 잠들어 있을 유진의 다리 사이에 있는 무언가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아...아아...♥ ”
마르잔은 허리를 움직이는 것 조차 멈추고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직접 경험한 적은 없어도 수백 권에 달하는 음란 서적을 탐독한 마르잔에겐 유진의 다리 사이에 있는 저게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흐아아..이...이건...지...진짜...아..안돼는데...♥”
말과는 전혀 반대로 마르잔의 손이 서서히 뻗어 나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