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화 〉 누가 더 허접 보지인지 승부하시죠 (1)
* * *
“...개새끼.”
오늘따라 유독 머리를 한 대 더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비앙카.
“...유진님.”
겉으로는 착해 보이지만 속에서는 수백 마리의 뱀이 똬리를 틀고 있을 것 같은 비비안.
“...주인님.”
악당 영애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롤빵 머리가 미친 듯이 잘 어울리는 루시아.
쿠소가키, 하라구로, 오만영애까지...
나는 생각보다 다양한 악당 영애의 종류에 감탄을 삼켰다.
‘...하긴 생각해보면 셋 다 악당 영애라 불릴 만하지.’
수틀리면 아무한테나 싸움을 걸고 다니던 비앙카는 말할 필요도 없었고.
비비안은 ‘마녀’ 루트가 따로 존재할 정도로 마음에 증오를 품고 살았다.
그리고 루시아는 누구에게나 공평했지만, 자신만큼은 언제나 재판관의 위치에 서 있는 오만함이 있었다.
그렇게 내가 머릿속으로 헛소리를 하며 잠시 현실도피를 하고 있을 때.
가르시아는 루시아를 날카롭게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루시아 우르엘라님... 오랜만입니다.”
“네, 가르시아님. 새해 축하 연회 이후로 처음 뵙는군요.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하지만 아무리 상대를 매섭게 노려본다 한들 알몸으로 보지에서 애액이 뚝뚝 떨어지는 가르시아의 모습은 어떤 위압감도 주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격식을 더 차려봤자 우습게 느껴지겠죠.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제 아들의 방에는 어쩐 일 때문에 오셨습니까? 아니, 그보다 주인님이라뇨?”
“모르는 척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한참 전부터 눈치채지 않으셨습니까.”
루시아의 말에 가르시아가 아랫입술을 잘근 씹었다.
에르덴이 칼리오페의 가주로 임명된 그 날.
가르시아는 분명 루시아의 견제를 느꼈다.
사교계에서의 견제가 아닌...
한 명의 암컷으로서 순수하게 자신의 수컷을 넘보지 말라는 그런 견제 말이다.
하지만 설마 유진이 우르엘라가의 차기 가주에 손 대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가볍게 넘겨버렸다.
잠시 루시아를 바라보던 가르시아는 시선을 돌려 비비안과 비앙카에게 말을 걸었다.
“...그쪽은 뭐지? 하인은 아닌 것 같은데.”
우르엘라의 차기 가주 같이 어려운 상대와 맞서기보다는 좀 더 만만한 인물로 상대를 바꾼 것이다.
“제 친구이자, 주인님의 연인입니다.”
하지만, 루시아는 도망치는 것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다시 가르시아의 대화를 낚아챘다.
“...루시아님.”
루시아의 당당한 친구 선언에 비비안은 감동하고, 비앙카가 살짝 당황하고 있자.
“...아, 이쪽은 그냥 아는 사이라고 말해둘게요.”
루시아는 한 마디를 덧붙이며 비앙카의 어깨를 툭 두드렸다.
‘...그럼, 그렇지.’
비앙카는 혀를 쯧 차고는 한 발 앞으로 내디뎠다.
루시아의 도움 따위는 처음부터 바라지 않았다.
사랑은 자신의 손으로 쟁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비앙카였으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가르시아님. 유진 칼리오페와 교제 중인 비앙카 베아트리스라고 합니다.”
평소의 말괄량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우아한 몸짓으로 인사를 하는 비앙카.
“...베아트리스?”
가문을 들은 가르시아가 팔짱을 끼며 비앙카를 위아래로 흝었다.
베아트리스 가문이라면 역사책에서 읽어본 적이 있었다.
지금은 이름만 남았지만, 한때는 명가라 불렸던 가문.
‘...최근 우르엘라 가문의 지원으로 다시금 떠오르고 있다고 하던데.’
루시아가 가주 자리에 오르기 전에 잡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자신만의 세력을 구축하려던 계획인 줄 알았는데...
지금 이 상황을 보니 그런 게 아니었다.
우르엘라 가문이 베아트리스 가문을 지원한 건.
단순히 유진에게 다가오는 여자를 쳐내기 위한 저 셋의 동맹을 위한 것이었다.
가르시아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특정 가문이 대가문의 지원을 받는 다는 건 제국의 세력도가 바뀔 수 있는 일이다.
그런 어마어마한 일의 시작이 유진을 두고 벌어진 치정 싸움 때문이라는데 어떻게 웃음을 참을 수 있겠는가.
한편, 루시아와 가르시아가 열심히 싸우고 있는 사이.
나는 잠꼬대를 하는 레이카를 깨우기 위해서 노력 중이었다.
“흐에..♥.흐에헷...오라버니이이!...끄으읏..!!.♥.흐읏..♥..보..보지..망가져..”
“...레이카...레이카. 헛소리 그만하고 일어나세요.”
“...오극..!!끄읏...♥..그..그러케...거칠게..하면....♥흐헤헤..조아여...더...더해주세여....”
혹시나 해서 말해두지만, 루시아 일행이 등장한 순간부터 레이카의 감도는 정상적으로 돌려놓았다.
그런데도 레이카가 이렇게 행동하는 건 레이카 자신이 미약에 취해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레이카. 정신 좀 차려요. 지금 이럴 때가 아니에요.”
“...헤헤...♥...몰랴...!레이카는...바..바보야...!..아무거또 몰!라...오라버니...뽀뽀해줘....”
나는 한숨을 내쉬며 레이카의 입을 막은 채 엄지와 검지로 클리토리스를 비틀었다.
“...으끄으으으으으읍!!♥”
조금 거친 방법이었지만, 계속 레이카가 헛소리를 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흐에?...오...오라버니..♥레이카...보지..허전해여...”
강제로 정신을 차린 레이카는 나를 보자마자 안겨들었다.
나는 그런 레이카의 어깨를 붙잡고는 말했다.
“...레이카. 잘 들어요. 제가 레이카에게 먹인 건 미약이 아닙니다.”
“...무슨...소리에여?”
아직은 잠이 덜 깼는지 커다란 눈을 껌뻑거리는 레이카.
“...그러니까 레이카가 먹은 건 미약이 아니라, 피임약과 단순한 영양제에 불과해요. 그러니까 레이카 바보 연기는 그만두고 정신 차려요.”
설명을 끝낸 내가 손가락을 두 번 정도 눈앞에 튕기자 흐릿했던 레이카의 눈동자에 서서히 빛이 돌아온다.
“그...그럴리가...부...분명...몸이...미...민감..해졌는데....봐..봤잖아요,..오라버니가 젖꼭지 한 번 만졌다고...오...오줌을..지리면서...갔다고요?”
“그건 단순히 누님이 개변태라서 그런 겁니다.”
“..에?...그...그럴리가...어...없는데...레..레이카는 진짜...미약...먹었는데..?”
레이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가슴을 움켜쥐고는 젖꼭지를 만져보지만, 아까처럼 뇌가 타들어 가는 쾌락 따위는 없었다.
“...저...정말로?...아...아무리...오라버니가 만졌다지만...약도 없이...오줌을 지릴정도로...갔다고요?....읏?!...우...우르엘라의 차기가주?”
그때야 주위를 파악할 정도로 레이카의 정신이 돌아온 듯 했다.
일단 급한 불을 끈 나는 다시 루시아쪽의 상황을 살폈다.
마침 저쪽의 대화도 막바지에 이르렀는지 루시아가 손가락을 하나 펴며 말했다.
“그러니 여기서 제안을 하나 드리고자 합니다.”
“...제안?”
“네. 아주 좋은 제안입니다. 부디 고려해주시면 감사하겠어요.”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르시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루시아가 방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엉덩이를 걷어차여 쫓겨나기 싫으면, 늙어빠진 암고양이들은 당장 짐 싸서 제발로 꺼지는 게 어떨까요?”
티 하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무지막지한 말을 던지는 루시아.
가르시아도 설마 루시아의 입에서 저런 저급한 말이 튀어나올지는 예상하지 못한 듯 말문이 막혔다.
그때, 완전히 제정신을 차린 레이카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루시아님. 괜찮으시다면 그 제안에는 제가 한 마디 올려도 될까요?”
“...정신을 차리셨군요. 좋아요. 말해보세요.”
흠, 흠 하며 목을 가다듬은 레이카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오라버니는 내꺼니까. 헛소리 집어치우고 너나 꺼져. 어디서 집안일에 외간여자가 끼어들고 지랄이야.”
“....”
방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스치기만 해도 치명타인 난투전.
과연 이게 대가문 간의 말싸움이 맞는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순순히 물러나는 게 좋았을 텐데 말이죠. 빌어먹을 암코양이가.”
“오랜만에 가족끼리 우애를 쌓는데 눈치 없이 끼어들지 말지. 발정난 암캐년이.”
그렇게 어디 빈민가 뒷골목에서 벌어졌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말싸움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잠시 후 긴 한숨을 내쉰 루시아가 말했다.
“...그럼 결투로 정하죠. 패자는 두 말 없이 승자의 말에 복종하는 겁니다.”
루시아의 말에 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단언컨대 레이카와 가르시아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루시아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아니, 루시아가 아니라 비앙카조차 모녀가 한꺼번에 덤벼도 가지고 놀 수 있을 것이다.
“루시아 그건...”
결국 나는 처음으로 캣파이트에 끼어들었다.
이유야 어찌됐든 지금 가르시아 모녀는 내가 품기로 한 여자들이다.
아무리 여자들의 서열 정리에 관한 문제라고 해도 일방적으로 폭력에 휩쓸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주인님의 ‘가족’분들에게 그렇게 거칠게 생각은 없으니까요.”
굳이 가족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루시아는 가르시아와 레이카를 바라보았다.
“...주인님의 정력이 얼마나 대단하신지는 직접 경험하고 있었으니 말하지 않으셔도 아시겠죠?”
루시아의 시선을 따라가자, 레이카의 보지에선 내 정액이 조금씩 새어 나오는게 보였다.
“...그래서 근친상간이라 비난이라도 하겠다고? 미안한데 그런 건 전혀...”
“아뇨. 그런 이유가 아니에요.”
그 순간 루시아가 손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던졌다.
푸욱─!
루시아의 손에서 날아간 딜도가 마치 왕을 기다리는 엑스칼리버처럼 침대 위에 꽂혔다.
“주인님이 만족하기도 전에 멋대로 쓰러져버리는 허접보지는 주인님도 바라지 않을테니..."
루시아가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누가 더 허접 보지인지 승부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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