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회차 히로인이 조교를 기억함-173화 (173/354)

〈 173화 〉 불치병은 불치병인데... (2)

* * *

“히약!!...흐엣..!♥..유진...아..!..흐헥...♥”

울컥—울컥—

다섯 번째 사정을 받아낸 비앙카가 가쁜 숨을 내쉬며 안겨 왔다.

수고했다는 의미로 비앙카의 머리를 쓰다듬자.

“흐에..♥...아...아찍..!아찌기야.♥....뎌...더..해야..햇..♥”

완전히 맛이 가버린 얼굴을 한 비앙카가 다시 허리를 움직이려고 한다.

“....”

비앙카가 진심으로 원한다면 밤새도록이라도 관계를 맺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비앙카는 관계를 즐기는 게 아니라, 마치 그렇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것 같았다.

“비앙카. 충분하잖아요. 오늘은 그만 해요.”

“...아냐...!뎌..할...쓔이써...!.”

“에이, 발음도 제대로 안 되면서. 지쳤잖아요. 허접보지라고 안 놀린 테니...”

“...아니라고!!...안..!지쳤다고!!”

비앙카가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루시아가 손목을 붙잡았다.

“...비앙카. 지금 주인님 말이 안 들리는 건가요? 그만하라고 하잖아요.”

“야... 이거 안 놔?”

“제가 못 놓겠다면 어쩔 건가요?”

루시아와 비앙카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사나워지자, 내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만, 루시아. 놔줘.”

“네... 주인님.”

루시아가 손목을 놓자 비앙카가 다시 내게 안겨 왔다.

“그럼... 계속하는 거지?”

“아뇨. 비앙카도 진정해요. 너무 흥분했어요.”

나는 비앙카의 어깨를 붙잡고 거리를 벌렸다.

“유, 유진아. 나 흥분 안 했다니까? 지금 완전히 정상이야! 아무렇지도 않아!”

“봐요. 또 흥분하잖아요. 비앙카... 오늘은 여기까지 해요. 나중에 또 하면 되잖아요.”

그 순간 비앙카가 내 손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안된다고!”

“비...앙카?”

“...그건...안된다고....나한테는!...지금....밖에....시간이..!!”

절규하듯 말을 토해내던 비앙카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입술을 꽉 깨물며 억지로 말을 집어삼켰다.

“...아무것도..아니야...유진아 소리쳐서 미안...내가....흥분했어.”

“...비앙카.”

내가 붙잡으려고 하자 비앙카가 고개를 저었다.

“...진짜 아무것도 아니니까.... 네 말대로 너무 흥분해서 그런 거 같아... 나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저도 따라갈...”

“오지 마!”

소리를 지른 자신도 놀란 듯 비앙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혼자... 갔다 올 테니...아니, 오늘은 그냥 내 방에서 잘게. 잘자 유진아.”

대충 옷을 걸쳐 입은 비앙카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쿵─

“비앙카의 상태가 이상하네요.”

“...언니의 상태가 좀 이상해요.”

문이 닫힘과 동시에 동시에 입을 여는 루시아와 비비안.

“...”

비앙카의 이상은 나만 느낀 게 아니었다.

오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들어 비앙카에게 여유가 사라졌다.

‘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모든 게 잘 해결되지 않았던가.

갑자기 비앙카의 태도가 변한 게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하아...비앙카...도대체...왜...”

한숨과 함께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눌렀다.

***

“.....”

방으로 돌아온 비앙카가 다리를 팔로 감싼 채 고개를 숙였다.

‘...바보.’

마지막으로 좋은 추억 쌓기를 하자고 해놓곤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좋은 추억은커녕 오히려 미움만 받게 생겼다.

“이런 모습 보여주기 싫었는데...”

떨리는 손을 본 비앙카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견딜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유진을 지키기 위해서 몸을 날렸을 때는 정말 죽음을 각오했으니까.

그러나 순간적으로 죽음을 각오하는 것과 죽음을 준비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다.

‘무서워...’

그날 화장실에서 보았던 피의 양은 어떻게 생각해도 정상이 아니다.

‘분명... 그때의 상처가 내장을 썩게 한 거겠지...’

아무리 성녀라고 해도 그 정도로 심각하게 마기에 오염된 부상을 아무런 후유증 없이 치유하는 게 말이 안 됐다.

...절대 후회하는 건 아니다.

내가 아니었으면 유진 그 자식은 꼼짝없이 죽었을 테니까.

사랑하는 남자는 직접 구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삶은 의미 없지 않았다.

‘여신께서 주신 유예기간인가...’

비앙카가 창가에 비치는 밤하늘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유진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그 바보는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 거다.

...하지만 의미 없다는 걸 알고 있지 않은가.

성녀의 치유가 통하지 않은 이상 그 누구도 이 내상을 치유할 수 없다.

그러니 마지막 남은 시간이라도 후회 없게 보내야 했다.

비앙카는 고개를 돌려 책상 위에 올려놓은 두 장의 편지지를 보았다.

보라색 배경에 꽃무늬가 새겨진 건 비비안의 것.

분홍색 배경에 하트 무늬가 잔뜩 들어있는 건 유진의 것.

너무 노골적이라 창피하긴 했지만....

‘마지막이니까...’

어차피 오늘 잠자기는 글렀다.

책상에 앉은 비앙카가 펜을 들었다.

[음... 안녕. 비비안. 언니야.]

처음에는 뭐라고 적을까 한참을 망설였지만 일단 적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써 내려 갈 수 있었다.

[너에게는 언제나 못난 언니였지. 미안해. 잘해주고 싶었는데. 내가 용기가 부족했어.]

비비안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아 적어 내린 편지.

추신으로는 언젠가 유진과 아이를 낳게 되면 자신의 무덤에 데리고 와달라고 적었다.

‘...유진이한테는...’

솔직히 유진에게는 편지를 남길지 말지 정말 많은 고민 했다.

펜을 든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다.

자신을 잊고 비비안과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평생토록 잊지 않았으면 하는 모순된 감정이 동시에 존재했다.

...그 사이에서 비앙카가 택한 건 후자였다.

이기적이란 건 안다.

하지만 그때는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지 못했으니까.

‘지금은...’

전하고 싶었다.

[넌 내 첫사랑이었어...]

너와 연인이 되었다.

너와 가족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동화 속 이야기처럼 오래오래 행복한 삶을 살고 싶었다.

[마지막 사랑이었고.]

마지막 문장을 적는 순간 비앙카의 시야가 흐릿해진다.

“...아...”

입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안울기로 했는데...끄윽...흐윽....끅...”

한 번 터져 나온 눈물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흐윽..끄윽...흐아...유...유진아...흐윽....끄으윽”

손 틈 사이로 흘러내린 눈물이 편지지에 떨어져 내린다.

그렇게 한참이나 울음을 토해내고 나서야 간신히 감정이 진정 되었다.

“...번졌잖아.”

내용을 몰라볼 정도는 아니지만, 유진이라면 이게 눈물 자국이라는 걸 바로 알아보겠지.

‘...유진이도 울겠지.’

분명 유진이 평생 기억해주길 바랐는데...

자신처럼 눈물을 쏟아 낼 유진을 생각하자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 같다.

[...너무 오래 슬퍼하진 말고... 딱 일 년만 슬퍼해.]

결국, 편지의 마지막으로 덧붙인 한마디.

이 정도 욕심을 부려도 벌 받지 않을 것이다.

‘한번 읽어 볼 까...’

천천히 편지를 읽어가던 비앙카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으...으...으으...으아아아!”

눈물로 감정을 배출해낸 상태에서 처음부터 읽어보니 편지를 찢어버리고 싶은 욕구를 견디기 힘들었다.

죽음을 앞둔 지금에서야 쓸 수 있는 거지,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무슨 짓을 해도 이런 편지는 적을 수 없었을 것이다.

“...병이 아니었어도 편지 때문에 부끄러워서 죽었겠네.”

쓸데없는 농담을 해보지만, 정말 죽음을 앞둔 탓이라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짜악!

동시에 양 뺨을 때린 비앙카의 눈이 날카롭게 변한다.

‘비앙카. 우울해하는 건 이걸로 끝이야!’

모든 감정을 이 두 편지에 담았으니 이제부터는 원래의 비앙카로 돌아가는 거다.

‘마지막까지 행복할 수 있게.’

주먹을 굳게 움켜쥐며 다짐한 비앙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

“...흐읏...♥끄읏...”

“...흐이...♥흐아...♥”

평소처럼 관계를 맺고 난 뒤.

나와 비비안이 은밀한 시선을 교환했다.

오늘 루시아는 방에 없었다.

‘...아무래도 제가 옆에 있으면... 비앙카가 속마음을 못 털어놓을 테니까요.’

최근 비앙카의 이상행동의 원인을 알아보라고 스스로 자리를 비워주었다.

“비앙카...”

“...흐아...응...유진아♥”

이름을 부르자 비앙카가 내 가슴에 코를 비비더니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루시아가 없어서 그런지 평상시보다 애교를 더 부리는 비앙카.

나는 말을 돌리는 대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한테 뭘 감추고 있나요.”

“응? 무슨 소리야 감추고 있다니?”

비앙카도 이런 질문이 올 걸 알고 있었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넘긴다.

“...언니. 솔직하게 말해줘요.”

비비안이 비앙카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너까지 무슨 소리야 비비안. 정말 아무렇지 않다니까?”

“...비앙카. 제발...”

“언니. 부탁이에요.”

“정말 괜찮다니까... 다...다들 왜 그래.”

비앙카가 숨을 삼켰다.

이 둘 에게는 거짓말을 하긴 싫었지만, 지금은 최선을 다해서 견뎌야 한다.

“비앙카. 비앙카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저는 항상 비앙카의 편에 서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왜...왜...유진아, 그런 말을...하는거야..아무일도 없다니까...”

“언니.”

그때 비비안의 따듯한 손이 뺨에 닿았다.

“더는 묻지 않을게요. 대신 저를 똑바로 바라봐주세요.”

꿰뚫어 보는 듯한 비비안의 눈동자를 보고 있자 더는 시선을 마주칠 수 없었다.

“...간신히 마음 정리를 했는데...왜...”

비앙카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게 열심히 다짐했는데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결국, 고개를 푹 숙인 비앙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죽어.”

“비앙카...그게 무슨...소리에요.”

“...나...죽는다고...!”

“비앙카! 이럴 때 농담하지 말아요!”

“끄흑..나...나도....노..농담이었으면 좋겠어!”

비앙카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흑...으윽...나도....죽기..싫다고!!...그런데 몸이 망가진 걸 어떻게 하라고!!”

“...설마 비앙카. 그날 입었던 상처가...”

유진의 얼굴이 경악에 물든다.

“..흐윽...끄윽...미...미안해..유진아...그런 의도로...말한건...아..아니였어..”

심장이 망가질 것 같다.

유진의 저런 얼굴은 정말로 보고 싶지 않았는데.

“...알았어요.”

그때, 유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기 시작한다.

“...유..유진아...어...어딜가려고...”

“이대로 있을 순 없지 않습니까. 제가 방법을 찾겠습니다.”

“가...가지마...유진아..그냥...내 옆에 있어..”

“비앙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어떻게든 방법을...”

“너도 소용없다는 거 알잖아!!”

비앙카의 곪아 썩은 마음은 절규가 되어 뱉어졌다.

“성녀가 치료했단 말이야! 그런데도 병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성녀조차 치료하지 못하는 걸 도대체 누가 치료할 수 있다는 건데!!”

그리고 절규는 흐느낌이 되었다.

“...흐윽...흑...그...러니까...흐윽....유진아...제..제발...아무 것도 모른 척해줘....내가 이렇게 부탁할께...”

눈물을 쏟으며 비앙카는 벗어놓은 옷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흐윽.... 너랑 비비안을 위해 쓴 편지야. 나...나중에 내가 죽고 나면 읽어줘.”

비앙카의 떨리는 손.

“...편지는 받았지만 제가 이 편지를 읽을 일은 없을 겁니다.”

편지를 품 안에 넣은 나는 비앙카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과거, 내가 이졸데를 살려낸 것처럼.

비앙카 역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낼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그렇게 나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순간.

철컥─

“서...선생님...저....릴리스...보지가...안타까워서...♥”

분위기 파악 못 하는 성녀님이 나타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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