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회차 히로인이 조교를 기억함-151화 (151/354)

〈 151화 〉 성녀(??)님 말고 성녀(??)님 (9)

* * *

“...으음...”

품 안에서 잠든 비앙카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히고는 옆을 바라보았다.

“..후아...주인...님...”

“...헤...헤헤....멍..”

고작 두어 번 가버렸을 뿐인데 루시아와 비비안도 뻗어있었다.

평상시라면 두 번의 절정 정도는 준비운동에 불과했을 텐데...

실력이 늘었다고 한들 타인의 감각을 받아들이는 건 여전히 무리가 오는 모양이다.

나는 세 명의 여인들에게 이불을 덮어주고는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차려입었다.

‘...그럼 이제...’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었지만, 더는 물러날 핑계가 없었다.

내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반쯤 이성을 놓은 릴리스가 어떻게든 정조대를 풀기 위해 자물쇠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흐앙...으하...하아....아..안풀려요..으하앙...!”

...당연하지만 저런다고 정조대가 풀릴 리 없다.

더욱이 저 정조대는 트리스티아가 루시아에게 씌울 생각으로 만든 특제품이니 웬만한 충격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을 거다.

“...으하앙..!..이익..!!..저..적당히..풀리라고요...!”

이제는 화까지 내면서 정조대를 손바닥으로 찰싹 찰싹 때리는 성녀님.

‘...채우길 잘했네.’

정조대를 채운 지금도 어떻게든 자위하려고 하는데 만일 안 채워놨으면 분명 자위에 빠져서 보지 사용법은 배우지도 않았을 거다.

“...성녀님.”

열심히 집중하고 있는 릴리스의 뒤에 다가간 내가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흐앗...서..선생님...”

화들짝 놀라서 정조대에서 손을 떼는 릴리스.

대놓고 오줌을 싸는 건 괜찮으면서 정조대를 때리던 건 창피한 모양이다.

“...보지 사용법은 잘 배웠어요?”

“네에...자..잘봤어요...굉장했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릴리스가 기대하는 표정으로 다리를 벌리기 시작한다.

한눈에 보기에도 엄청난 양의 애액을 흘러나오는 릴리스의 허벅지.

“...그러니까...저 릴리스...주...준비 됐어요.”

“잘됐네요.”

“...네에...”

“그럼 머리카락 색부터 되돌리세요.”

말을 들은 릴리스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거린다.

“...머리색은...왜..요?”

“이제 돌아가야죠. 곧 날이 밝아옵니다. 굳이 사람들의 눈이 많을 때 이동 할 필요는 없죠.”

“....?”

고개를 갸웃거린 릴리스가 루시아가 누워있는 침대를 곁눈질하곤 말했다.

“...저...저는 여기서...안자나요?”

“성녀님이 여기서 왜 자나요?”

“다..다른분들은...여기서 자고 있잖아요...저 릴리스도...여기서...잘래요...”

...이 성녀님은 나랑 만난 지 이제 하루가 됐다는 사실은 기억하기는 하는 걸까?

같은 분홍 머리인 양호 마망조차 배를 만져주겠다고 한 건 두 번째 만남에서였다.

“...됐으니까 일어나세요. 저는 성녀님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이젠 성녀님이 지킬 차례입니다.”

“너...너무해요...선생님... 저런 걸 보여주고 어떻게 그냥 가요...저 릴리스 안 일어날래요....”

“성녀님.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정조대 일주일 추가합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섭게 벌떡 일어나는 릴리스.

“...아...알았어요. 갈게요....가면 되잖아요...”

한껏 침울해진 릴리스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현관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간다.

그런 릴리스에게 내가 말을 걸었다.

“성녀님 잠시만요.”

“네! 선생님! 저 릴리스 여기 있어요!”

내가 생각을 바꿨다고 생각하는지 릴리스가 방긋 웃으며 호다닥 달려왔다.

한마디에 울다가 웃다가 참 바쁘게도 사는 성녀님이다.

“릴리스가 직접 벗을까요..?...아니면 벗기실래요..?”

“그러려고 부른 거 아닙니다.”

“...에? 그럼...왜?”

“갈 때 가시더라도 일은 받아가셔야죠.”

“...아...그렇...죠...”

어깨를 축 늘어트린 성녀님에게 나는 ‘촉수’가 담겨 있는 상자를 건넸다.

“상자 안에 든 물건을 정화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열어봐도 될까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성녀님이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꿈틀 ─꿈틀

상자를 여는 순간 ‘촉수’에서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지독한 마기가 올라온다.

“선생님....”

내용물을 확인한 성녀는 의심이나 악의가 아닌 순수한 걱정이 담긴 눈빛으로 물었다.

“이걸 어디서 얻으셨나요?”

성녀(??)가 아닌 성녀(??)의 얼굴을 한 릴리스.

저 모습을 보니 1회차보다 조금 음란해지긴 했지만, 본질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느껴졌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어째서죠?”

“아비를 잃은 아이가 생겨날 테니까요.”

촉수를 손에 넣은 경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결국 트리스탄의 이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딸을 구하기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카르네아에 침입자를 불러들인 트리스탄의 행동은 한참 선을 넘었다.

심지어 이번 경우에는 속사정이야 어떻든 겉보기엔 침입자가 황녀까지 위협한 상황.

일이 잘못된다면 황족 살해시도 혐의로 트리스탄의 사형까지 집행될 수 있다.

‘누구도 죽지 않고 끝났으니까...’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묻고 가는 게 최선이었다.

“...그렇다면 더는 묻지 않을게요. 하지만... 이것만큼은 제가 소멸시킬게요.”

“허락할 수 없습니다.”

대답을 들은 릴리스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죄송하지만 선생님. 이건 허락을 구하는 게 아니라 통보에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이 안에 담긴 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 줄 아세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바로 그 촉수 때문에 몇 번이나 베드엔딩을 본 나니까.

“그러면 어째서...”

“...하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이 있어야만 누군가의 희생 없이 구할 수 있습니다.”

몇 번이고 계산해봐도 나 혼자 ‘되살아난 타락’을 상대하기 위해선 촉수의 힘까지 빌려야만 했다.

성녀의 말대로 위험성은 있겠지만 약간의 위험성을 감수하는 게 모두의 파멸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이다.

“...선생님. 무슨 짓을 하려는 건가요?”

“당장은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촉수의 정화가 끝나면 반드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분홍빛 눈동자에 나를 새기듯 바라보던 성녀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이것도 약속인가요?”

“네. 약속입니다.”

“알겠어요... 그럼 저 릴리스... 선생님을 믿고 기다릴게요.”

“믿어줘서 감사합니다. 혹시 정화까지는 얼마나 걸릴까요?”

‘되살아난 타락’이 나타나기까지는 시간의 여유가 있다지만, 그래도 ‘숙주’정도는 최대한 빨리 찾아놓는 게 좋았다.

“음... 소멸시키는 것이라면 지금도 가능하겠지만.... 최대한 힘을 유지한 상태에서 정화해야 하니.. 아무리 빨라도 일주일 정도는 걸릴 거에요.”

“그럼 일주일 후에 뵙겠습니다.”

“최, 최대한 빨리해야 일주일라고요! 조금만 시간을 더 주세요..”

릴리스가 앓는 소리를 내자 내가 방긋 웃으며 되물었다.

“정화 시간이 늦어질수록 정조대가 풀리는 시간이 늦어지는데 괜찮겠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일주일 안으로 끝낼게요.”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성녀님.”

대화를 모두 끝냈음에도 릴리스가 제자리에서 우물쭈물거린다.

“뭔가 할 말이 남았나요?”

“...네...선생님. 저...릴리스...진짜로...돌아가요? 여기서 안자고...?”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린 릴리스를 보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네, 어서 가시죠. 제가 기숙사 앞까지 바래다 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괜찮....흐읏♥!”

나는 릴리스 허리에 손을 감고 은근슬쩍 밑가슴에 손을 가져다 대며 물었다.

“정말 바래다주지 않아도 괜찮습니까?”

“...다..다시..생각해보니...선생님이 바래다주시면... 좋을거 같아요...”

...역시 성녀(??)가 맞는 것 같았다.

***

릴리스를 기숙사에게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

밤하늘에 떠 있을 달도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간 뒤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새벽녘의 감성에 취한 것일까.

홀로 걷고 있자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다시 생각해봐도 지금까지 나는 혼자 힘으로 해낸 것이 없었다.

전부 헤아리기도 벅찰 만큼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하지만 ‘되살아난 타락’만큼은 다르다.

릴리스를 데려가기는 하겠지만 그녀는 어디까지나 회복과 정화의 담당.

모든 전투는 오롯이 나 혼자 맡아서 해야 한다.

‘...만일 내가 실패한다면...’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허세 따위는 부릴 생각도 없다.

죽음이 두려운 건 당연한 거 아닌가.

하지만 그 이상으로 두려운 건 내가 실패하는 순간 ‘타락’이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는 것이다.

...그 말인 즉, 루시아와 아이리스가, 비앙카와 비비안이 서로를 죽이려 들게 된다는 것.

끊임없이 이어지는 끔찍한 생각에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좀 쉬다 가지..’

결국, 기숙사에 돌아가지 못한 채 벤치에 앉아 마음을 다스리고 있자 청량한 목소리가 들렸다.

“주인님.”

“...루시아?”

고개를 돌리자 평소의 단정한 모습이 아닌 잠옷 차림에 내 겉옷을 살짝 걸치고 있는 루시아의 모습이 보였다.

“네, 주인님. 주인님의 루시아예요.”

가련한 미소를 지은 루시아가 자연스럽게 내 옆에 다가와 앉는다.

“...피곤할 텐데 왜 잠을 자지 않고?”

“주인님이 없으니 잠이 안 와서요.”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었다.

루시아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넘실거리던 불안이 어디론가 사라진 듯했다.

그때, 구름에 가려졌던 달이 잠시 드러나며 루시아에게 달빛을 내리자 희미하지만, 살짝 붉어진 뺨이 보였다.

“...미안하다.”

“...네?”

루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내가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많이 아팠겠구나.”

“...아... 아니에요. 정말 괜찮아요. 제가 심한 말을 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전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는데...”

“어떻게 그러겠냐. 네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한 줄 아는데...”

루시아가 내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정말 괜찮아요. 저는 주인님이 마음을 알아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리고 주인님의 손이 더 아프셨잖아요.”

“...”

이런 상황에서도 나를 배려해주는 루시아를 보니 죄책감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주인님. 아직도 겨울인가 봐요..”

그때, 침묵을 깨는 갑작스러운 루시아의 말.

“....?”

봄이 들어선 지 제법 지났는데 겨울이라니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내가 더 설명해달라는 듯 루시아에게 눈빛을 보내자, 루시아는 내 옷깃을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

“...겨울이요.”

살짝 상기된 숨을 내쉬는 루시아를 보고 나서야 그 말뜻을 이해했다.

“그래, 겨울인 듯하구나.”

살며시 웃은 나는 루시아의 어깨에 손을 얹고 끌어당겼다.

“그러니, 어쩔 수 없구나.”

“네, 겨울은 추우니까요... 하지만 주인님...”

가슴에 머리를 기댄 루시아가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그래도 전 계속 겨울이면 좋겠어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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