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 후장말고 보지도 따먹어달라고 개새끼야 (3)
* * *
“...내...내가 널 마음대로 할 거야.”
필사적으로 쥐어 짜낸 비앙카의 용기를 증명하듯, 넥타이를 잡은 손끝이 가냘프게 떨렸다.
‘무서워...’
미친 듯이 뛰어대는 심장 소리가 이 자식한테 들릴까 무섭고, 혹여나 거절당할까 너무 무섭다.
‘...왜! 왜 이렇게 대답이 없어...!’
고작 몇 초에 불과한 침묵에도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이 짧은 시간조차 견디기 힘들 정도로 떨려오는 게 소녀의 마음이었다.
“...그.”
마침내 유진의 입이 벌어졌다.
순간적으로 비앙카의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휘몰아쳤지만, 결국 어떤 결론도 내지 못하고 유진의 입만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그래요. 그럼 그렇게 해요.”
“어..? ...저...정말? 정말로 할 거야?”
유진의 대답에 긴장의 끈이 탁 풀리면서 비앙카가 환하게 웃는다.
“네, 내기해요.”
“히...히힛! 너 약속한 거야!”
“...선배, 조교를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예요?”
“벼, 변태도 아니고 누가 조.. 조교를 좋아하긴 누가 좋아해! 그냥 당당하게 너를 이길 생각 때문에 그런 거거든!! 내가 이기면 넌 큰일 났어!”
비앙카의 말을 들은 유진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까 역시 취소해야...”
“아..! 안 돼!! 취소 금지야! 한번 말했으면 끝이야! 끝!”
취소하려는 유진의 입을 다급하게 막으려고 달려드는 비앙카.
“알았어요. 알았어. 취소 안 하면 되잖아요.”
“당연한 거 아니야! 절대로 취소 금지야!”
“...알았다니까요. 그런데 선배,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예요?”
“내가 뭘 어쨌다고....흐앗!”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치 유진의 품 안에 안겨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당황한 비앙카가 호다닥 떨어지자 유진이 얄밉게 웃었다.
“무...뭘 웃어!”
“그냥. 귀여워서요.”
“귀...귀엽다고...?”
예상치 못한 칭찬을 들은 비앙카가 정신을 차리지 못 하는 사이 유진이 가볍게 손을 흔들며 계단을 내려간다.
“그럼 선배. 내일 방과 후, ‘거기’서 봐요.”
“그래! 늦으면 죽을 줄 알아!”
애써 허세를 부려보지만 이미 비앙카의 얼굴을 붉게 변한지 오래였다.
“...가...갔지?”
유진이 떠난 걸 확인하자 다리에 힘이 쭉 풀린다.
벽에 등을 붙인 채 그대로 주저앉은 비앙카가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흐아...”
내가 이기면 널 마음대로 할 거라니...
‘이건 거의 고백이잖아...!’
분명 창피하고 쪽팔린 데도 입꼬리가 내려올 생각하지 않는다.
“...히힛...”
귀까지 새빨개진 비앙카가 한참이나 히죽거렸다.
***
카르네아 아카데미 구 교사 3층에 구석에 있는 교실 앞.
문손잡이를 잡았던 비앙카가 다시 손을 떼고는 겨드랑이 사이에 코를 가져다 대고 냄새를 맡는다.
‘...이상한 냄새는 안 나겠지?’
목욕은 당연히 했지만, 그래도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항문은 오기 전에 슬라임으로 세 번이나 정리했고, 향료도 잔뜩 뿌렸으니까...’
꼴깍─
긴장돼서 침조차 제대로 넘어가지 않는다.
‘...드...드디어...유진이랑..’
눈을 질끈 감은 비앙카가 문을 열었다.
“왔어요?”
이렇게 긴장하는데 평소랑 다름없어 보이는...
아니, 오히려 더 냉정해 보이는 모습으로 기다리는 유진이 왠지 얄미웠다.
“그럼, 그때처럼 구속하는 것부터 시작할까요.”
인사도 없이 수갑을 건네주는 유진.
비비안과의 놀이에서도 썼던 그 수갑이었다.
“제가 채우고 싶지만, 선배가 직접 차야지 효과가 있어서요.”
“나... 나도 알 거든?”
그러자 유진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피식 웃는다.
“아... 많이 사용하셨나보다.”
“그...그런 게 아니라 우리 마을에도 이걸 팔아서 그런 거라고!”
“정말요? 제가 장인에게 특별히 의뢰한 수갑이 선배의 마을에도 판다고요.”
“시끄러! 조, 조교를 하러 왔으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조교를 하라고!”
분명 들어오기 전에 생각했던 건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뭔가 야릇하면서도, 애달픈 그런 조교를 바라던 것 아닌가.
찰칵─
수갑을 차는 순간 온몸의 마력이 차단되며 무력한 기분이 느껴진다.
“...아.”
긴장한 탓일까.
수갑을 차고 나서야 아직 옷을 벗지 않았다는 걸 눈치챘다.
“옷을 먼저 벗어야 했는데...야...이것 좀 풀어..”
촤악─
비앙카가 손을 내미는 순간, 유진은 수갑을 푸는 대신 옷을 잡고 뜯어내 버렸다.
유진에게 잘 보이려고 입은 특별한 옷을 말이다.
“야! 이 새끼야!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야!!”
“선배가 조교 해 달라고 했잖아요. 불만이예요?”
뭐라 한 마디 내뱉고 싶지만, 능력이 제한된 탓일까.
유진의 싸늘한 눈초리를 보자 몸이 굳고 만다.
“그럼, 계속할게요.”
촤악─
대답하기도 전에 속옷마저 전부 뜯어 버리는 유진.
비앙카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속옷도 비싼 돈을 주고 산 건데 유진한테 제대로 보여 주지도 못한 채 뜯겨나갔다.
“뭐 해요? 벗었으면 빨리 의자에 앉아요”
“읏...”
생각했던 것과 너무나 다른 유진의 반응.
‘...무...뭐야...조금은 상냥하게 해 줘도 괜찮잖아.’
내가 어제 얼마나 용기를 쥐어 짜내서 말한 건데.
파도처럼 밀려오는 서운함에 비앙카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안 앉을거예요? 그냥 여기서 끝내요?”
"아..알았다고...앉으면 되잖아.."
그래도 먼저 조교를 받겠다고 한 이상 여기서 물러날 수도 없다.
의자에 앉자 유진이 밧줄로 몸을 단단히 의자에 고정한다.
‘흐읏...’
이런 상황에서도 달아오르는 몸이 갑자기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선배, 제가 오늘 선배를 위해 선물을 준비했어요.”
“...선물?”
선물이란 말에 서운함의 파도가 조금 가라앉는다.
“네, 특별한 선물이요.”
그렇게 말한 유진이 꺼낸 것은 안대였다.
“지금부터 이걸로 선배의 눈을 가릴 겁니다.”
“뭐? 자...잠깐 기다려 봐! 눈을 왜 가리는데!”
시야가 가려진다는 본능적인 두려움에 비앙카가 발버둥 쳐보지만, 온몸이 구속된 이상 쓸데없는 저항에 불과하다.
─스윽
안대가 쓰이는 순간 세상이 어두워지며 유진의 목소리만이 들린다.
“아...안 보여...”
“그러려고 한 거니까요.”
“야...어디 있어?...여..옆에는 있는 거지? 어디 가는 거 아니지?”
비앙카가 불안한 목소리로 유진을 찾았다.
손이라도 잡아 준다면 이 불안함이 사라질...
“...선배...오늘 쓸데없이 눈치는 빠르네요.”
“...뭐?"
“제가 정말 선배랑 이따위 놀이를 해 줄 거로 생각했어요?”
유진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에 납덩이가 내려앉은 듯했다.
“...노..놀이라니..그...그게 무슨 소리야....”
“쉽게 말해드려요? 선배 몸에 질려서 조교를 그만둔 건데 왜 자꾸 엉겨요? 귀찮게.”
“....야...자...장난이지?...말이 너무 심하잖아!!”
현실을 부정하며 비앙카가 크게 소리 질러보지만 들려오는 건 싸늘한 유진의 답변이었다.
“...멍청하긴...아직도 이게 장난처럼 보여요? 뭐, 일단 주말 동안 거기서 정신 좀 차려요.”
또각, 또각, 또각.
그 말을 끝으로 유진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야! 어디가!! 씨발..! 그만해! 이거 풀어! 재미없으니까 그만하라고!”
드르륵─
이어서 문이 열리고 유진이 떠나는 소리가 들린다.
“...야...!!...”
“유진 이 개새끼야..!!”
“씨발!! 장난 그만하라고!!”
비앙카가 계속 소리쳐보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게 한참을 소리치던 비앙카의 고개가 갑자기 푹 떨어진다.
“...정말 간 거야? 이렇게 버려 두고?”
비앙카의 눈가가 뜨겁게 달아오른다.
“...개새끼...”
내가 첫 경험이니 상냥하게 해 달라고 말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자존심 때문에 아예 저항하지 않는 건 무리였지만, 그래도 조금만 저항하다가 굴복할 생각이었다.
...그러고 나서는 유진이 원하는 건 다 해 줄 생각이었는데 그것조차 싫단 말인가.
“...유진...이...씨발 새끼야...흐아앙..이..개..새끼....흐윽..”
유진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서러움을 참지 못한 비앙카가 울음을 터트리자...
갑자기 시야가 환해졌다.
“...선배, 울어요?”
그곳에는 신발을 들고 있는 유진이 있었다.
***
‘이렇게 마음이 약해졌다고?’
의자에 묶여서 눈물을 펑펑 쏟는 비앙카를 보자 너무나 당황스럽다.
조교의 기본인 마음을 꺾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려고 했는데, 이건 뭐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꺾여 버렸다.
“흐아앙..끄윽...개..개쌔기야...”
“미안 해요. 울 줄은 몰랐어요.”
“흐윽...죽어....진짜...쓰레기 새끼...흐끅...못대 처먹었어...”
나는 얌전히 비앙카를 껴안고 쓰다듬어 주었다.
“...흐윽...꺼져...흑...꺼...꺼지라고...흐윽...”
마구 도리질하는 비앙카를 더욱더 강하게 안아주자, 그때야 비앙카는 저항을 멈추고 품에 얼굴을 기대온다.
“흐윽...씨발놈...”
“선배가 조교를 해 달라고 해서...”
“....흐아...흐으앙...!..개..개새끼야!...내...내가..너한테 조교를 해 달라고 했지..어..언제 내버려 두라고 했냐고...흐앙....”
“미안 해요...”
“돼...됐어..씨발..!..지..진심인 줄 알고...어...얼마나 무서웠는데...흐윽...너..너는..진짜..나쁜 놈이야...”
안 그래도 몸이 작아 보호 욕구가 드는 비앙카가 눈물까지 흘리니 이건 알면서도 당해 줄 수밖에 없다.
“선배.”
“..흐윽...다...닥쳐.”
“제가 졌어요.”
“...닥치라고...응?”
내가 비앙카의 눈물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그때처럼 조교 해 보려고 했는데... 이제는 못할 거 같아요.”
비비안의 공략을 위해서 반드시 비앙카를 공략해야 했을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이미 비비안의 조교도를 100%로 채운 이상, 비앙카를 조교 하는 건 이 세계의 해피엔딩을 보는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단 말이다.
“...흐윽...그럼 내가 이긴 거지?”
“...네, 선배가 이겼어요.”
“...흑...그럼 이거 풀어.”
고개를 끄덕인 나는 비앙카를 구속하던 밧줄을 전부 풀고 마지막으로 수갑마저 풀어냈다.
자리에서 일어난 비앙카가 시선을 피한 채 손목을 푼다.
“...후우...”
이미 몇 대 정도는 맞아줄 각오를 했다.
‘...성녀가 있으니까 죽지는 않겠지...’
쿠웅─
내가 마음의 준비를 마치는 순간 다리를 걸어 나를 쓰러트린 비앙카가 배 위에 올라탄다.
...그리고 예상과는 달리, 주먹을 휘두르는 대신 내 옷을 마구 잡아 뜯고는 거칠게 키스했다.
“하아...쪼옵...흣...하아...쪽...”
한참이나 키스하던 비앙카가 갑작스럽게 내 아랫입술을 꽉 깨물어 피를 냈다.
“...윽!...선...배?”
“...야이...개..새끼야...”
비앙카는 내 입술에 배어 나온 피를 핥으며 약간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너...같은...개새끼는....개처럼 따먹힐 줄 알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