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빡대가리 성녀님은 발정기 (5)
* * *
‘...후우...’
방 안에서 홀로 명상하던 마르잔이 눈을 떴다.
성녀님이 유진님을 사랑하다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아무래도... 루시아님께 알려야겠어요.’
릴리스의 친구이기 이전에 루시아님에게 거둬진 몸.
성녀님께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정보다는 충성을 택한 마르잔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유진의 방앞에 도착한 마르잔이 명패를 살폈다.
‘...흐음.’
카르네아에 입학 한 날, 마르잔과 루시아는 한가지 약속을 맺었다.
혹여나 정사를 방해하지 않도록 유진님과 함께 있을 때는 명패를 왼쪽으로.
외출 시에는 명패를 오른쪽으로 기울여 놓기로 말이다.
‘가운데네요.’
마르잔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타이밍도 좋았다.
지금은 명패가 딱 가운데에 있으니 루시아님 혼자 있다는 뜻 아닌가.
─똑똑
마르잔이 노크하고 기다려 보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반응이 없다.
“...”
─똑똑
“...마르잔입니다.”
좀 더 소리를 키워서 두드려보지만, 여전히 문이 열리지 않는다.
...바꾸는 걸 까먹었나?
‘그럴 리가 없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루시아님은 이런 실수를 하지 않는다.
‘...긴급상황?’
그 순간 마르잔의 눈에 살기가 깃든다.
머리핀을 뽑은 마르잔이 빈민가에서 가게를 털었을 때처럼 순식간에 문고리를 따고 안에 들어갔다.
“루시아님! 괜찮으십니까...!”
루시아님의 모습 대신 진한 보랏빛 머리카락의 여인이 대신 침대를 차지하고 있는게 보였다.
샤앙─
검이 뽑혀 나오는 청아한 소리와 함께 마르잔은 한걸음에 달려가 목을 스칠 듯이 검을 내지른다.
“...넌 누구냐? 루시아님은 어디 있지?”
“히이이익!”
“...대답하지 않겠다면.”
칼 손잡이에 마르잔이 좀 더 힘을 넣으려고 하자.
“마르잔. 그만둬요.”
욕실에서 나온 루시아님이 물기를 머금은 은발 뒤로 쓸어 올리며 말했다.
“루...루시아님...?”
“하아... 보아하니 또 문을 따고 들어온 거죠? 제가 분명 그 버릇을 고치라고 했는데.”
루시아가 날카롭게 노려보자 마르잔이 검을 집어넣었다.
“...죄송합니다... 명패가 가운데에 있는데... 대답이 없으셔서...”
“...음? 그럴 리가요. 제가 비비안에게 분명히 명패에 대해 설명했을 텐데요?”
루시아님의 추궁에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는 비비안.
“죄, 죄송해요... 까...깜빡했어요...”
“...비비안, 다음에 또 까먹으면 벌을 줄 거에요.”
“네에..죄송해요.”
고개를 푹 숙이는 비비안을 보고 가볍게 한숨을 쉰 루시아가 말했다.
“마르잔, 인사해요. 비비안이에요. 그러니까... 음, 주인님의 두 번째 부인 정도 되겠네요.”
“제..제..제가 유...유진님의? 두, 두 번째요?”
루시아의 말을 들은 비비안은 엄청나게 감격한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 모른다.
“뭐, 주인님께 ‘반지’도 받았으니까요. 그 정도는 해야죠.”
“히익...죄...죄송해요...”
“죄송할 게 뭐 있어요, 저도 못 받은 ‘반지’를 받았는데.”
“죄...죄송..합니다...”
루시아가 한 마디를 툭툭 던질 때마다 흠칫거리는 비비안.
‘두, 두 번째... 부인?’
그리고 예상치 못한 단어에 굳어버린 마르잔이 있었다.
“...마르잔?”
“핫...!..네...루시아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요?”
“아..아닙니다.”
마르잔이 고개를 젓자 루시아가 가볍게 웃었다.
“그럼, 기왕 온 거 오랜만에 머리를 말려주시겠어요?”
“아, 넷! 알겠습니다.”
루시아가 의자에 앉자 마르잔이 허리까지 길게 내려오는 은발을 빗으로 쓸었다.
“그런데 마르잔 이렇게 급하게 찾아온 이유가 뭔가요?”
“...아...그게...”
루시아의 질문에 마르잔이 힐끔 비비안을 바라보았다.
과연 성녀님 같은 민감한 문제를 앞에서 다른 사람의 앞에서 꺼내도 되는지가 걱정이었다.
“괜찮아요. 비비안은 신뢰할 수 있으니까. 그렇죠. 비비안?”
“네..넷! 믿으셔도 돼요!”
루시아님께서 보장했는데 자신이 의심하는 것도 불충하다.
“...그러니까...릴리.. 아니 성녀님이..”
마르잔은 자신이 파악한 내용을 루시아에게 전했다.
그러자 질투를 하거나 화를 낼 거라는 마르잔의 예상과 달리 루시아가 부드럽게 웃었다.
“과연 주인님이시네요. 카르네아에 오신 지 얼마나 됐다고 성녀를 함락시키다니... 벌써 관계도 맺을 걸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일방적으로 성녀님께서 유진님께 반해있는 것 같습니다.”
“흐음... 알았어요. 수고했어요. 마르잔. 앞으로도 이런 정보가 생기면 바로바로 알려주세요.”
“네. 루시아님. 비비안님에게도 정말 실례가 많았습니다.”
때마침 루시아님의 머리 손질도 끝난 터라 마르잔은 비비안에게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아...아니에요. 다, 다친 곳도 없으니까.”
비비안이 목덜미를 쓰다듬자, 몸을 가리고 있던 이불이 살짝 내려갔다.
“...!”
비비안의 가슴을 본 마르잔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저게...가슴?...지금까지 내가 알던 건..?’
루시아님의 가슴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과연 저게 나와 같은 가슴이 맞는지 의심했지만...
비비안님의 가슴 크기에는 놀라움 정도 수준이 아니라, 경외감 마저 들 지경이다.
‘...외모도 몸매도... 역시 유진님이 빠지신 이유가 있군요. 그런데 설마 루시아님께서 둘째 부인으로 부족해 성녀님까지 허락해주시다니...’
루시아님은 절대로 첩 같은 건 허용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두 사람이나 허락해주셨다.
‘그..그러면..저도..가능성이..?’
또 머리를 파고드는 생각에 마르잔이 고개를 흔들었다.
다른 곳도 아닌 루시아님의 앞에서 이런 불경한 생각을 할 수는 없었다.
‘왜 이래요 마르잔! 요즘 이상하잖아요!’
크림파이 여관에서 방안에 가득한 수컷 냄새를 맡은 이후로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그러고 보니 지금도...’
흠뻑 젖어있는 침대, 루시아님과 비비안님의 몸에 가득한 푸른 멍, 구석에 던져져 있는 유진님의 속옷까지.
지금까지는 성녀님의 일로 머릿속에 가득해서 눈치채지 못했지만, 방안에 정사의 흔적이 가득했다.
“그...그럼 실례했습니다!”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마르잔이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
무덤 조사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
누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그대로 쓰러질 것 같았다.
종일 삽질을 하고 돌아다닌 터라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지만 지금은 육체보다 정신적으로 더 괴로운 상황이다.
나는 얼굴을 쓸며 한숨을 뱉었다.
‘좆됐다.’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 없으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
‘...무덤에 마기가 없다면 성녀가 올 필요도 없잖아?’
1회차 때, 릴리스가 카르네아에 전학 온 이유는 마기로 인한 발생한 괴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애초부터 마기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카르네아 측에서 파르테논에 파견 요청을 할 필요도 없어지는 것이다.
‘그럼... 릴리스는 뭐 때문에 카르네아에 온 거지?’
성녀라는 지위가 카드게임으로 따먹을 수 있는 자리도 아니고 카르네아의 요청이 없는 한 쉽게 움직일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적인 상황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결국, 성녀를 만나봐야겠어.’
본래라면 길을 잃은 성녀에게 학교를 안내해주면서 호감도를 쌓는 게 정석 루트지만..
정석 루트를 따지기에는 어딘가에 있을 마기를 찾는 게 훨씬 시급했다.
‘하아... 그래도 일단 좀 쉬고 내일하자..’
이제 몇 발자국 남지 않은 방까지의 거리.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며 간신히 여기까지 걸어왔다.
“그...그럼 실례했습니다!”
그때, 앞도 보지 않고 마르잔이 앞도 바라보지 않고 달려 나왔다.
‘피해야...하는데...’
평상시라면 보고 피할 수 있을 정도로 속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다리가 풀린 상태였다.
쿵─!
마르잔과 부딪친 유진이 나자빠졌다.
***
릴리스의 대딸력을 확인한 아이리스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안돼요... 이대로 가다간...져버려요..’
만일 지금 쥐고 있는 게 딜도가 아니라 유진군의 자지였다면 분명 저 아이가 유진군을 먼저 사정시켰을 것이다.
‘아니요...그럴 순 없어요! 제가 더 잘 할 수 있다고요!’
유진군의 자지를 만져본 적도 없는 여자에게 지긴 싫다.
...아니, 질 수 없었다.
눈을 부릅뜬 아이리스가 딜도에 온 정신을 집중하자 한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치고 간다.
‘...보였어요...승기가!’
방법을 찾아낸 아이리스는 한 손이 아닌...
양손으로 딜도를 잡았다.
‘다섯 개로 부족하면... 열 개로 승부에요!’
이제 와 갑자기 대딸의 방식을 바꾼다고 해서 악마의 재능을 가진 릴리스를 이길 순 없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강점을 좀 더 극대화하자는 판단이었다.
다섯 개에서 열 개로 늘어난 손가락.
늘어난 개수는 고작 두 배지만, 섬세함을 강점으로 삼는 양호 마망의 대딸과 더해지니 몇 배 이상의 쾌락 상승효과를 끌어냈다.
‘...유진 군이라면 분명 여기를 좋아할 거에요!!’
유진 군의 반응을 상상하며 아이리스가 손가락 하나하나의 감각을 집중한다.
—...아이리스 갈게요!
‘네! 싸주세요. 유진군!’
푸슉─! 퓨슉─!
상상이었지만 알 수 있었다.
분명 릴리보다 자신이 먼저 유진군을 절정 시켰다는 걸.
‘....이...이겼어요! 이겼다고!’
자리에서 일어난 아이리스가 활짝 웃으며 양호실 안을 폴짝 뛰어다녔다.
“...선생님.”
“흐앗...!”
아무래 그래도 학생 앞에서 너무 좋아하고 있었다.
‘차...창피하네요.’
제정신을 차린 아이리스가 헛기침하고는 자리에 앉자, 릴리스가 무언가 결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릴리 화이트 플랑...다음에 또 배우러 와도 될까요?”
릴리스 꽉 쥔 주먹을 보며 아이리스가 침을 꼴깍 삼켰다.
‘... 이 아이... 진심이에요!’
대딸이 처음이니 패배를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릴리스는 진심으로 분해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진심... 받아주겠어요!’
선생과 학생이라기보다는 마치 라이벌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아이리스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언제든지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