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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차 히로인이 조교를 기억함-122화 (122/354)

〈 122화 〉 베아트리스가의 일상 (2)

* * *

비비안을 지키기로 맹세한 그 날.

내겐 작은 꿈이 생겼다.

누군가에게 말하기는 창피하지만 소중한 꿈...

비비안을 위해서, 그리고 언젠가 이룰 꿈을 위해서는 나는 베아트리스 가문을 부흥시켜야만 했다.

콰앙—!

주먹에 얻어맞은 상대가 저 멀리 튕겨 나간다.

“...승자! 비앙카 베아트리스!”

심판의 선언을 들으며 주먹을 감싼 너덜너덜한 붕대를 보았다.

이제는 붕대 없이는 꺼내 보이기 창피할 정도로 추해진 손.

“한때 조금 부진해서 걱정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습니다!”

“그렇고 말고요. 뭐 누구나 슬럼프는 겪는 거 아니겠습니까.”

“역시 재능이 어딜 가진 않죠.”

제멋대로 떠들어대는 어른들의 말에 속이 뒤틀린다.

‘...등신들.’

도대체 뭐가 슬럼프고, 몸 상태가 나빴다는 거냐.

내가 얼마만큼의 노력을 하는지는 알기나 하는 건가.

단 하루의 휴식도 없이 거의 모든 시간을 수련에 쏟아부었다.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말 그대로 피를 토하는 노력 끝에 범재에 불과했던 내가 간신히 천재들의 영역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그런데 그걸 고작 재능 따위로 폄하하다니.

역겹기 짝이 없었다.

“...한 가지 키가 조금 작은 게 흠이군요. 지금이야 어리니까 괜찮지만...”

“그러게 말입니다. 작년과 비교해도 거의 비슷한 것 같습니다.”

“어허, 들리겠습니다. 어련히 자라겠지요.”

더 헛소리를 듣고 있다가는 나도 모르게 주먹을 휘두를 것 같아서 인사조차 하지 않고 자리를 떠냈다.

“하아...”

샤워를 마치고 방에 돌아온 나는 베개를 꽉 껴안으며 눈을 감았다.

언젠가 비비안과 꼭 닮은 착하고 귀여운 딸을 낳고 싶다.

...그리고 그 아이는 나와는 다르게 흉터나 굳은살이 없는 손을 가지길 바랐다.

이게 바로 나의 작고 소중한 꿈이었다.

‘내가 직접 머리도 땋아주고... 아! 비비안 머리도 똑같이 땋아줘야지!...음...그러면 내가 아니라 비비안이 엄마 같아 보이려나?’

망상할 때마다 입꼬리가 제멋대로 올라가 히죽거리게 된다.

‘아아... 비비안이랑 딸이 누가 더 좋냐고 물어보면 어떻게하지...? 그래도 엄마니까 딸을 골라야 하나? 아니...그러면 비비안이 서운해할 텐데... 아아! 너무 어려워!!’

그렇게 잠이 들 때까지 망상하며 침대를 뒹구는 게 나의 행복이었다.

***

다음 날 눈을 떠보니 시야가 흐릿하고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훈련을 빠질 순 없다는 생각에 훈련장에 갔지만, 제대로 주먹 한 번을 내지르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치료사를 찾아갔다.

“어머, 비앙카 아가씨가 여긴 무슨 일이에요?”

“몸이...좀...안...좋아...서...”

“...아, 아가씨!”

정신을 잃은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치료사가 눈앞에서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하아...지나치게 피로가 쌓였네요. 일단은 제 능력으로 어느 정도 회복을 시켰지만 일시적이에요. 잘 먹고 쉬지 않으면 또 이렇게 될 거에요.”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를 받으려고 한 말이 아니에요. 정말 또 쓰러지지 않으려면 몸 관리 잘해요.”

“네...”

“...그리고 또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는데...”

“....?”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표정을 굳힌 치료사가 길게 심호흡을 하고는 말했다.

“...아가씨... 혹시 최근 생리를 하신 적 있어요?”

“...아니요.”

갑자기 뜬금없이 이게 무슨 소리인가.

놀리는 건가 싶어서 인상을 찌푸렸지만, 치료사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그럼 그 전에 생리는 언제 했어요?”

“...아직 초경도 안 왔는데 근데 그건 왜 물으세요?”

대답을 들은 치료사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드물지만 이런 경우가 있어요. 어린 시절부터 육체 강화 계열의 능력을 사용하면 발생하는 현상인데... 하아... 조금만 일찍 왔어도...”

무언가 불길한 치료사의 말투에 나도 모르게 재촉하고 말았다.

“왜요! 뭔데 자꾸 말을 돌려요!”

“...아가씨... 진정하시고 제 말 잘 들으세요....”

***

“...차라리 잘됐어.”

생리 같은 걸 해봤자, 불편할 뿐이다.

비비안만 봐도 생리 때마다 아파서 끙끙거리지 않던가.

그런 건 안 하는 게 몇 배는 이득이다.

—...육체가 이미 능력에 적응을 해버려서... 아가씨는 더는 성장하지 않을 거예요.

“이것도 잘됐어! 잘된 거지! 얼마나 편해!”

성장하지 않는다는 건 커진 몸에 적응할 필요도 없이 쭉 기술을 훈련할 수 있다는 거 아닌가.

거기에 다른 애들처럼 성장통으로 아파할 필요도 없다.

—...네. 죄송하지만... 아이도 가지지 못할 겁니다.

문뜩 걸음이 멈췄다.

“...응..!...이..이것도...잘됐네...겨...결혼도...안해도..되니까...”

비비안을 닮은 귀여운 딸을 낳겠다는 꿈.

이토록 노력했는데 나는 그 작은 꿈조차 이루지 못하는 건가.

태어나 처음으로 가진 꿈조차 이룰 수 없다면...

‘뭐 때문에...’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노력한 것일까.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지금 한 방울이라도 눈물을 흘리며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았다.

내가 도망치듯 빠른 걸음으로 방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비비안이 방을 마법을 사용해 꾸미고 있었다.

“어..언니!..이..일찍 왔네..?”

“...비비안 여기서 뭐 해?”

나는 터져 나올 것 같은 감정을 간신히 끊어내며 말했다.

“헤헤... 들켰네? 언니가 마법을 사용하지 말라고는 했지만... 그래도 언니가 이긴 걸 축하해주고 싶어서...”

언제나처럼 내게 다가와 끌어안는 비비안.

“...늦었지만, 축하해. 언니.”

어느새 나보다 한 뼘은 커져 버린 비비안이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

“언니?”

앞으로 평생 젖이 나올 리 없는 내 빈약한 가슴과는 달리 비비안의 잘 부풀어 오른 가슴이 느껴졌다.

...이가 까득 갈렸다.

‘왜?’

왜 너는 그렇게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거야?

왜 너는 내가 가지고 싶은 걸 전부 가진 거야?

‘나는...’

나는 모든 걸 희생했는데…….

내게 남은 건 가문을 부흥시킨다는 목표뿐인데...

그것조차 네가 나보다 앞선다면...

“...언니? 괜찮아? 어디 아파?”

나는 무엇을 위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 모든 걸 희생한 거지?

"....언니?"

***

“흐끄윽...흐윽...죄..죄송해요..흐으윽...죄송해요...죄송해요.죄송해요.”

...내가 다시 상황을 인식했을 땐 피투성이가 된 비비안이 구석에서 울고 있었다.

‘뭐야?’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누가 감히 내 소중한 비비안을 저렇게 만들었단 말인가?

그때 기분 나쁘게 질척거리는 감각에 손을 확인하니...

손을 감싼 붕대에 피가 흥건했다.

“...아?”

그 순간, 내가 저지른 짓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끄윽...흐아...아..아파..언니...

─...그...그만해...언니...나...피..나...

—흐윽..끄윽...잘못했어요..언니..요..용서해....주세요...

구역질이 치솟았다.

내가 어머니에게 당했던 걸 그대로 비비안에게 하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아..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니야!’

이러려던 게 아니다.

나는 그냥 조금 지쳤을 뿐인데.

절대로 비비안에게 이러려던 게 아니었다.

‘사...사과해야해. 비비안한테...’

미안하다고,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라고, 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비비..”

내가 손을 뻗는 순간 비비안이 몸을 흠칫 떨며 쉬어버린 목소리로 애원한다.

“....히끄윽...어..언니..흑...아...아파요....때..때리지...마세요..끄윽..흑...다..다시는...마법..안쓸테니까..흐윽...용서해주세요.”

비비안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애정이 아닌 공포만이 가득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

...그 후로 비비안과 나의 관계를 완전히 달라졌다.

믿고 있던 언니에게 배신당한 비비안은 방안에 틀어박혀 버렸고, 나는 비겁하게도 내가 저지른 짓에서 도망치기 위해서 더욱더 훈련에 몰입했다.

그렇게 몇 년 뒤 나의 카르네아 입학이 확정됐다.

입학 허가를 받고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하나였다.

‘...비비안은?’

가문에 홀로 남겨진 비비안이 받을 취급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었다.

‘...지켜야 해.’

지금 와서 이런 짓을 해봤자 비비안에게 용서받을 수 없다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나는 비비안의 언니였다.

그날 이후 나는 끊임 없이 가문에서 비비안을 탈출시킬 계획을 구상했다.

‘비비안의 재능이라면...’

충분히 카르네아에 합격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고, 결심을 한 나는 몇 년 만에 비비안을 마주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너도 내년에 들어와.”

“네...? 저, 저 같은 게 어떻게 카르네아에…. 무, 무리에요.”

비비안이 나를 두려워하는 건 알고 있다.

괴롭지만 지금은 그것을 이용해서라도 비비안을 베아트리스가에서 떼어놓아야 했다.

“비비안... 지금 내 말에 토를 다는 거야?”

“아... 아니에요. 그런게..아니라.”

“흐음...”

“어, 언니. 제가 잘못했어요. 드...들어갈게요. 어떻게든 들어갈게요.”

그리고 내 예상대로 비비안은 카르네아에 합격했다.

...사실은 비비안이 카르네아 합격한 뒤 몇 번이고 만나러 가고 싶었다.

하지만 두려워 찾아가질 못했다.

다시 한번 비비안이 내 손길을 거부한다면 그때는 도저히 견딜 자신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비비안이 내게 찾아왔을 땐 두 눈을 의심했다.

비비안이 나를 먼저 찾아오다니.

기뻐서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물론 그 뒤에 벌어진 일은 최악이었지만...

그건 유진 그 변태 자식이 문제였다.

‘개새끼.’

비비안을 다시 만나게 해준 것만큼은 정말 마음속 깊이 감사한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치사한 방법으로 기절시키지 않나, 엉덩이에 슬라임을 처넣지 않나...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갑자기 끝내는 게 어디 있어!’

아직도 감금에서 풀어준 그 날을 생각하면 화가 치솟는다.

시작했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사람을 이렇게 만들고 훌쩍 떠나는 법이 어디 있는가.

“개새끼! 병신새끼! 고자새끼!”

변태 자식의 조교를 경험한 뒤로는 혼자서 하는 거로는 전혀 만족할 수 없었다.

그러다 문뜩 또 유진을 떠올리고 있다는 걸 깨달은 내가 벽에 머리를 처박았다.

‘....나 진짜 미쳤나봐!!’

분명 조금 전까지는 비비안을 떠올리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또 그 자식의 생각이다.

‘이, 이게 다 쌓여서 그런거야...’

깊게 심호흡한 내가 침대 밑에서 슬라임이 담긴 유리병을 꺼냈다.

“....빨강아.”

처음에는 징그럽고 끔찍히 싫었지만, 어느새 정이 들어 이름까지 붙여준 슬라임.

뽕—

나는 허리 아래에 베개를 넣고서 조심스럽게 다리를 벌렸다.

그리고 빨강이가 갇혀있던 뚜껑을 열었다.

스륵스륵─

너무나 익숙하게 뒷구멍으로 파고드는 빨강이.

“...끄으읏...!”

내장을 헤집어 놓는 듯한 고통은 여전했지만, 이젠 이거라도 없으면 진정이 되지 않는다.

“으으익! 끄읏..!....하..끄으윽...!”

하지만 역시나....

‘못 가겠어!’

자극은 충분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했다.

...좀 더.

좀 더 저항할 수 없게 강하게 누군가 나를 억눌러줬으면 좋겠다.

“...좀....더....강하..게...흐윽...!”

“...저... 언니?”

“...흐읏...하아.......?...우라흐흫엣!”

얼굴이 빨갛게 변한 비비안을 눈치챈 순간 비앙카가 괴상한 소리를 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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