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 직계의 자지 굉장해여어어 (4)
* * *
“하아...”
답답한 심정에 정기 연락을 주고받는 정원에 좀 일찍 나와 산책을 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처음 멜피사를 봤을 때는 금방 조교가 끝날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지금 멜피사의 조교는 순조롭게 진행됐고 지금 와서는 거의 완벽하게 조교 됐다고 말해도 될 수준이다.
...하지만
─────────조교 된 히로인 ─루시아 우르엘라─비비안 베아트리스─레이카 칼리오페─가르시아 마이샤─엠마─────────
여전히 상태창에서 멜피사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왜 갱신이 안 되는 거지?’
야겜을 다 설치하고 나니 알 수 없는 오류로 실행이 안 될 때 만큼이나 열이 받았다.
이제 이틀 뒤면 처음 황녀와 약속했던 일주일이 끝난다.
황실에서의 시간을 최소화하고 싶은 나로서는 가능하다면 그때까지 조교를 완료하고 싶었다.
‘다시 생각해보자.’
다른 히로인들과 멜피사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해보자 머릿속에서 한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죄책감인가.’
이유야 어쨌든 멜피사는 내 어머니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로 인해 멜피사는 내게 복종하는 게 당연하다 여기고 있다.
그걸 시스템은 내게 조교 된 것이 아니라 죄책감 때문에 따르고 있다고 판단했다.
라고 짐작되었다.
‘...일단 죄책감부터 없애야겠는데.’
죄책감을 없애기 위해서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만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문제는 멜피사의 죄책감이 몇 대 얻어맞는다고 사라질 수준이 아니라는 거다.
‘진짜 손가락을 자를 수도 없고...’
멜피사가 말하는 대로 자궁을 뭉개거나 사지를 망가트리면 죄책감은 좀 사그라들겠지만 나는 그런 미친 짓을 할 생각은 없었다.
‘괜찮은 게 없나... 적당히 고통스럽고 괴로우면서도 너무 선을 넘지 않는거...’
머리를 아무리 굴려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무언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유진님.”
나를 부르는 맑고 듣기 좋은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때 하나 묻지 않을 정도로 잘 관리된 흰 정장을 입은 마르잔이 보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아. 내가 먼저 와서 기다린 거뿐이니까.”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마음이 한결 편하군요. 배려 감사합니다.”
마르잔이 방긋 웃었다.
그렇게 많이 대화해본 건 아니지만 마르잔은 선은 잘 지키지만 선 안에서는 나름대로 편하게 지내는 느낌이었다.
“오늘 전할 말은?”
“네, 보고드리겠습니다. 루시아님께서는 예정대로 내일 먼저 출발하십니다. 그리고 유진님께서 언제쯤 출발할지 물어보셨습니다.”
마르잔의 질문에 내가 가볍게 턱을 쓰다듬었다.
사실 잘 모르겠다.
일단 멜피사의 공략이 끝나야 출발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게 언젠지를 모르겠다는 말이다.
“...아직 잘 모르겠네. 루시아에게 한동안은 산키센 마을의 크림파이 여관에서 기다리라고 전해줘. 개학식 전날까지 내가 가지 않으면 아카데미로 먼저 가고.”
“알겠습니다. 말씀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마르잔이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자 머리카락이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며 감춰져 있던 귀걸이가 반짝이는 게 보였다.
그걸 보는 순간, 무언가가 머릿속에서 번뜩였다.
‘이거다...!’
이거라면 적당한 벌이 될 것 같았다.
제법 고통스러우면서, 수치스럽지만 몸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복종의 의미를 상징하는 벌이 생각났다.
“...저...유진님?”
나를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자 내가 마르잔의 귀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 갑자기 미안하다...”
“...아...아닙니다. 조금 놀랐을 뿐입니다.”
마르잔이 가슴 위에 한쪽 손을 올리고 한숨을 길게 내쉰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게 있다만.”
“네. 말씀하시죠.”
“...그 귀걸이는 소중한 물건이냐?”
내가 귀걸이를 가지고 있을 리가 없고, 황실 안에 거의 갇혀있다시피 하니 귀걸이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마침 마르잔의 귀걸이를 보니 크기나 모양도 딱 적당했다.
가능하다면 저걸 넘겨받고 싶었다.
“아닙니다. 그저 마음에 들어 산 것입니다. 그런데 그건 어째서 물으시는지?”
“그럼... 미안하지만 그걸 내게 넘겨 줄 수 있겠느냐? 물론 값은 지불하겠다.”
“아, 이걸 원하시는 거군요. 그렇다면 오늘은 이미 외출하기에는 늦었으니 내일 제가 사 오겠습니다.”
“아니, 지금 네가 끼고 있는 것이 좋다.”
벌써 약속한 일주일이 코앞이다.
내일까지 기다릴 시간조차 없다.
당장 오늘 밤부터 사용할 생각이었으니까.
“읏..!...제...제가 낀 걸 말입니까?”
“그래, 네가 낀 거 말이다.”
“...아..알겠습니다. 별로 비싼 물건도 아니니 값은 따로 안 주셔도 됩니다.”
“아니, 그럴 순 없지. 받거라.”
마르잔이 귀걸이를 떼어 건네주자 나는 금화를 한 장 꺼내 주었다.
“흐엣!...이...이건 너무 주셨습니다!”
“괜찮다. 내겐 그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이다.”
내가 귀걸이를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과소비였지만 어차피 아버지에게 ‘특산품’을 소개하고 받은 용돈은 웬만큼 낭비해도 티도 안 날 정도로 두둑하다.
“그...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몸 둘 바를... 가...감사히받겠습니다... 유진님...그럼 저...저는..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말을 잘 전해다...”
그때였다.
“흐음~♬”
불길한 콧노래가 들렸다.
“...!”
표정을 보아하니 마르잔도 눈치챈 모양이다.
‘빌어먹을.’
일부러 리아나의 침실에서 멀리 떨어진 정원을 약속장소로 잡았는데 여기까지 찾아오다니!
‘...이미 도망치기엔 늦었다. 어떻게 하지? 우연히 만난 거라고 시치미를 뗄까?’
안된다...
명확한 이유는 없지만, 황녀라면 마르잔을 보는 순간 분명 나와 루시아가 관계가 있다는 걸 눈치챈다는 직감이 들었다.
“흐흥~♬”
콧노래 소리가 더욱 가까워졌다.
이제는 망설일 시간조차 없다.
결단을 내린 내가 말했다.
“...마르잔, 내 뺨을 때려라.”
“네? 제가 어... 어떻게 감히 유진님의 뺨을.”
“설명할 시간이 없다 빨리 뺨을 때리고 그대로 뛰어나가라.”
“네...? 진심이십니까?”
“어서!”
내가 작은 목소리로 소리치자 눈을 질끈 감은 마르잔이 손을 휘둘렀다.
짜악─!
죄송합니다.
내게 입 모양으로 사과한 마르잔은 시킨 대로 달려간다.
‘얼얼하다.’
입안이 터졌는지 피 맛이 느껴지는 걸 보니 정말 봐주는 거 없이 때린 모양이다.
“...”
내가 뺨을 매만지고 있자 등 뒤에서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나무 틈 사이로 황금색 머리카락이 슬쩍 보였다.
황녀가 진심으로 숨고자 하면 저렇게 어리숙하게 행동 할 리 없으니 애초에 찾아달라고 말하는데 분명했다.
“...황녀 전하.”
“어머, 들켜버렸네♬”
리아나가 혀를 살짝 내밀며 배시시 웃는다.
“보셨습니까?”
“으음~ 뭐를?”
“...보셨군요.”
“하하하핫. 그래. 응! 봤어! 봤어!”
잠시 즐겁게 웃은 황녀가 순식간에 정색하며 말했다.
“...그런데 아무리 루시아의 직속 기사라 하더라도 감히 제국의 대귀족, 그것도 칼리오페의 혈육에게 손을 대다니 벌을 줘야겠지?"
리아나는 한다는 사람이다.
저 말을 그냥 넘어간다면 반드시 마르잔에게 벌이 내려질 것이다.
“정말 괜찮습니다. 제가 잘못한 거니까요.”
“흐음~. 정말...? 뭘 했는데?”
“...성희롱을 했습니다.”
“에에?! 유진이 성희롱을 했어? 그런 것에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내 대답에 황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저를 뭐로 보시는 겁니까. 저도 남자입니다.”
“그런 것 치고는 내가 유혹했을 때는 안 넘어오던데?”
리아나가 양손으로 가슴을 받혀 올리며 말했다.
“...어찌 감히 황녀 전하의 옥체에 손을 대겠습니다. 이번에는 저 아이가 워낙 제 취향이라 참지 못하고 희롱을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참으로 창피하군요. 그래도 대가로 뺨 한 대면 싼 편 아니겠습니까.”
“헤에, 유진은 저런 애가 취향이구나... 그래서 뭐라고 희롱했는데?”
“....”
성희롱했다고는 말했지만 어떻게 했는지까지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침묵했다.
그러자 눈을 가늘게 뜬 리아나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흐음, 안 되겠네. 대귀족에 몸에 손을 댔으니 일단 손목부터 자르는 거로 시작...”
“...팬티를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말을 뱉고 나서 바로 후회했지만 안타깝게도 당장 머리에 떠오르는 게 이거밖에 없었다.
‘...이 병신아...’
다른 말도 많을 텐데 하필 팬티냐.
그 순간 하필이면 머릿속에서 경멸하는 표정으로 팬티를 보여주는 여기사가 떠오른 게 문제였다.
“팬...티? 하...하하하하하핫!”
대답을 들은 리아나가 배를 잡고 폭소한다.
“패..팬티.. 황실의 한복판에서! 하하하하하! 응응, 유진은 언제나 재미있다니까?♪”
“...황녀 전하께서라도 즐거우셨으니 다행입니다.”
“응응, 정말이지... 유진이랑 있으면 하루하루가 즐거울 거 같아! 아! 참고로 내 팬티는...”
리아나가 치마를 살짝 들어 올리자 내가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황녀 전하. 여긴 황실입니다. 부디 자중해주십시오.”
“황실에서 팬티를 보여달라고 하는 유진은 자중을 안 하는 거 같은데?”
“....”
“그리고 황실이면 내 집이잖아? 집에서도 편하게 못 있으면 어떻게 하란 말이야.”
굉장히 억울하고 따지고 싶었지만...
뭔가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했다.
“우흐흣! 나를 즐겁게 해준 유진에게 특별 찬스를 줄게. 지금 내가 입은 팬티를 맞추면...”
“...안 맞출 거니 뒤는 말씀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흐음, 저 아이건 뺨을 맞아도 좋다고 물어보더니.. 내 건 안 궁금하다는 거지? 뭐, 알았어. 나도 안 말해줘.”
짧게 눈을 흘깃 황녀가 볼을 부풀리더니 이내 포기한 듯 치마를 내렸다.
그리고 내가 안도의 한숨을 쉬는 순간, 리아나는 순식간에 다가와 속삭였다.
“정답은... 안 입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