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 칼리오페가의 후일담 (7)
* * *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절대로 싫어요!”
분명 나보다 몇 살은 나이를 더 먹었을 레이카 칼리오페가 침대에 손발을 내리치며 어리광을 부린다.
“...레이카.”
“싫어요! 싫다고요! 오라버니 왜 벌써 가는 거예요! 아직 일주일은 더 있어도 되잖아요!”
“...그러니까.”
“아아아아아! 몰라요! 안 들려요! 싫어! 싫어!! 레이카는 이런 거 싫어.”
“....”
말문이 턱 막힌다.
과연 저게 ‘아카조교사’에서 나를 몇 번이고 죽음으로 이끌었던 ‘칼리오페의 악녀’가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그래도, 가야 합니다.”
“...흐에...흐에엥...왜! 왜..가냐구!..흑...오..오라버니 가지말라구... 오라버니 없으면 나 죽어...흐에엥...”
어리광만으로는 내 결심을 돌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레이카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운다.
순식간에 바뀌는 태도에 혹시 연기가 아닐까 싶었지만 정말 눈물을 넘어 콧물마저 다 빼고 있는 걸 보니 진심인 것 같았다.
‘...하아.’
내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사실 내가 완벽하게 조교 했다면 이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다.
내가 명령한다면 서운하다는 감정마저 억눌렀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처음 40% 비하면 많이 줄어들었지만 레이카에게는 아직 약물 의존성이 10% 넘게 남아 있기에 생긴 부작용이었다.
‘...다음부터는 조심하자.’
나는 다시 한 번 미약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겠다고 다짐했다.
무분별한 약물의 남용은 이처럼 두려운 것이었다.
“칼리오페의 장녀가 이게 무슨 얼굴입니까. 자, 흥 하세요.”
“흐윽....그치마안...흥!”
내가 손수건을 레이카의 코에 가져다 대자 레이카가 있는 힘껏 코를 푼다.
“어이구, 완전 애가 다 됐습니다.”
“후에에...오라버니이...”
이래서 외모가 중요한 거다.
코를 푸는 더러운 장면조차 이뻐 보이니 말이다.
“...꼭 지금 가야 하느냐?”
그때, 가르시아 마이샤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레이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오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연륜이 있어서 그런지 감정을 잘 다스리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아 우르엘라 때문이냐? 그 아이와 꼭 함께 갈 필요는 없지 않으냐?”
“흐윽...맞아요! 왜 그 도둑고양이랑 꼭 같이 가려는 거에요!”
눈가를 붉게 물들인 레이카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누가 누구보고 도둑고양이라는 건지.’
내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루시아가 들으면 어이가 없어서 웃음조차 나오지 않을 대사였다.
“...루시아는 제게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그럼, 오라버니 나는요? 나는 안 소중해요? 나는 걔한테 가슴이 작다고 놀림도 받았는데?"
그러자 다시 레이카가 울음을 터트리려는 낌새가 보인다.
사실 얼마 전까지 이 질문을 들었다면 냉정하게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얼마나 괴롭혀도 오라버니~ 오라버니~ 거리며 꼬리를 살랑거리는 레이카를 떠올리니 아무래도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레이카도 소중합니다. 하아, 선물을 줄 테니 그만 울어요.”
“...선물요?”
레이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이건 꺼내고 싶지 않았지만, 레이카의 우는 모습은 더욱 보고 싶지 않았기에 정말 큰마음을 먹고 가방에서 꺼냈다.
“..이..이건...”
눈을 크게 뜬 레이카가 침을 꼴깍 삼킨다.
가방에서 나온 건 색이 보라색인 걸 제외하고는 내 자지와 거의 완벽하게 흡사한 모양과 감촉을 지닌 딜도였다.
...내게도 수치심이 있다.
당연히 직접 만든 건 아니고 루시아가 트리스티아에게 외주를 넣어서 만든 딜도였다.
“...내 것은 없느냐?”
그러자 팔짱을 낀 채 입술이 툭 튀어나온 가르시아가 물었다.
안타깝게도 저건 시제품이라 아직 하나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
시제품이라는 말은 언젠가 본 제품이 나온다는 소리다.
마음 같아서는 쪽팔리니까 팔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거부하기엔 너무 큰 금액이었다...’
루시아의 말을 빌리자면 딜도 판매 순수익의 60%를 떼어주기로 했기 때문에 수치심을 집어삼켰다.
“...하나밖에 없으니 어머니도 같이 쓰십시오.”
내가 말해놓고도 이게 맞나 싶었다.
어머니에게 의붓아들의 자지를 본뜬 딜도를 딸과 같이 쓰라고 말하다니.
“그..그래? 그..그럼 그러도록하마!”
하지만 신나서 고개를 끄덕이는 가르시아를 보자 이젠 아무래도 좋아졌다.
“...흐음. 어..어디 한 번 상태나 확인해볼까.”
가르시아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딜도를 향해 손을 뻗자 레이카가 손목을 낚아챘다.
“...레이카, 이게 무슨 짓이냐?”
“...어머니야말로 지금 무슨 짓입니까?”
“아들이 내게 준 선물을 확인하고 있지 않으냐? 어서 놓거라.”
가르시아가 날카롭게 노려보지만 레이카 역시 한 발자국도 밀지 않고 대꾸했다.
“...어머니, 늙어서 귀가 잘 안 들리시는지요? 그건 유진 오라버니께서 어머니가 아니라 저에게 준 선물입니다.”
“어미에게 그따위 말버릇이라니 미친 게냐? 그리고 유진이는 분명 ‘같이’ 쓰라 하지 않았느냐!”
“그럼 제가 쓰고 나서 ‘나중에’ 쓰시지요! 솔직히 어머니가 사용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지만 제가 그 정도는 양보하겠습니다!”
레이카가 딜도를 휙 가져오자 이번에는 가르시아가 레이카의 손목을 붙잡았다.
“...제국의 법도가 지엄한데 어찌 어미보다 자식이 손을 먼저 데려고 하느냐?”
“법도? 여기서 갑자기 법도가 왜 나옵니까! 도대체 그럼 어머니가 아들에게 손을 대는 건 도대체 무슨 법도입니까?”
“시, 시끄럽다! 말꼬리 잡지 말아라! 그렇게 따지면 나이도 많은 네가 유진에게 오라버니라고 하는 건 말이 되느냐!”
“어머니! 지금 선 넘으셨습니다! 제가 어머니께 분명 나이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죠!”
“선은 네가 먼저 넘었다!”
딸과 어머니의 진심이 담긴 캣파이트...
아니, 그냥 파이트를 보고있자 정신이 멍해진다.
나는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나서 속삭였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내가 문을 닫고 나가자 이번에는 벽에 등을 기댄 채 볼을 부풀린 엠마가 있었다.
“...도련님은 거짓말쟁이.”
“내가 무슨 거짓말을 했다는 거냐?”
정말 진심으로 묻자 엠마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한숨을 쉬었다.
“...봐봐요. 또 까먹었어. 저랑 다음 주에 마을로 놀러 가기로 했으면서.”
그러고 보니 약속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안 한 것 같기도 하다.
그동안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었다.
“어머니! 정말 해보자는 겁니까!”
“그래! 내가 오늘, 네 버릇을 단단히 고쳐주마!”
콰앙—!
방안에서 폭음이 울려 퍼진다.
‘...일단 도망치자.’
나는 잔뜩 삐진 엠마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는 방에서 멀어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뭐에요.”
“엠마야, 미안하다. 그때와는 상황이 바뀌었다.”
“...약속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서 약속이래요.”
“....”
똑 부러지는 엠마의 말.
정론 그 자체라 뭐라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그럼 나와 카르네아에 같이 가겠느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가 물었다.
레이카와 가르시아는 절대로 데려갈 수 없지만, 엠마 같은 고용인 하나 정도야 별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정말요?”
“그래, 물론 내가 가장 신뢰하는 엠마가 칼리오페 가문에서 떠나면 내가 ‘불안’하고 ‘초조’하기도 하고 가문과 케일이 어찌 될까 두려워 ‘사고’가 날 수 있겠지만 그건 네 탓이 아니니 ‘전혀’! ‘조금’도! 신경 쓸 필요 없다.”
내가 중간중간 말을 강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데려가겠다고 한 것도 진담이지만 이것도 진담이었다.
“이이이!! 진짜! 도련님 미워요! 도련님에게 사고가 날 수 있다는데 제가 어떻게 따라가요...”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엠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하다. 내가 없는 동안 칼리오페를 잘 부탁한다. 내가 믿는 건 너밖에 없다.”
“몰라요! 도련님! 밉다고 했잖아요!”
“...그럼...”
“이익..!..저 화났으니까! 그거 하지 마요! 그냥 계속 쓰다듬어요! 제가 화가 풀릴 때까지!”
이래서야 누가 고용인이고 누가 주인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슬슬 팔이 아플 때까지 엠마를 쓰다듬은 내가 물었다.
“이제 좀 화가 풀렸냐?”
“아뇨. 전혀 안 풀렸어요.”
“....”
농담이 아니라 슬슬 팔이 저리고 떠날 준비도 해야한다.
내가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물었다.
“어떻게 해야 화를 풀 테냐.”
“....저도 선물 주세요.”
“....”
역시 엠마... 혼혈답게 귀가 밝아도 너무 밝았다.
“그건 하나밖에 없다.”
“그것도 들었어요. 저는 빼놓고 아가씨에게만 준건 아쉽지만...뭐, 나중에 훔쳐오던가 할게요.”
당당하게 내 앞에서 훔친다고 선언했지만 뭐, 이정도야 애교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무슨 선물을 받고 싶으냐?”
“속옷요.”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갑자기 뭔 소리를 하나 했더니 귀엽기 짝이 없는 부탁이었다.
“그래, 얼마든지 사주마. 어른스러운 것부터 귀여운 것까지 색상, 종류별로..”
내가 자신 있게 말하자 엠마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말고요.”
“그럼 뭘 말하는 거냐? 내가 아는 속옷은...”
“도련님 속옷요. 안 빤걸로요.”
“...?”
지금 뭘 달라고 한 건가?
설마 잘못 들었다고 부정하기에는 너무 또박또박한 발음이었다.
“...그걸 왜?”
“...저, 일 년에 여섯 번은 발정기니까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엠마가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이 순간 나는 생각하는 걸 포기했다.
원래 설의눈에 민트초코닭꼬치를 함께 먹는 정신 이상자들이 넘쳐나는 세계가 아니던가.
그런데 선물로 입던 팬티를 달라는 것쯤이야 놀랄 일도 아니다.
방긋 웃은 나는 엠마의 치마 아래에 손을 넣고는 말했다.
“지금은 발정기가 아닌데도 이렇게 젖은 것이냐?”
“...흐앗..! 도..도련님! 보..복도에서...시..싫은건...아니지만.,.흐읏!”
엠마는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이고 신음을 흘린다.
“장난이다. 설마 복도에서 하겠느냐.”
“하아...하아...도련님. 저는 장난 아니에요….”
“...뭐?”
“...저 발정기니까요.”
그 순간 엠마의 동공이 고양이의 것처럼 세로로 늘어난다.
“하아하아... 그래도 참아보려고 했는데... 이건 전부 도련님이 잘못한 거예요!”
“...자...잠시만 기다려보거라 이젠 시간이...!”
“늦었어요! 자! 순순히 따라오세요!”
휘익—!
나는 저항 할 틈도 없이 엠마에게 끌려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