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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차 히로인이 조교를 기억함-101화 (101/354)

〈 101화 〉 칼리오페가의 후일담 (2)

* * *

「세계수의 씨앗이 잠에서 깨어납니다!」 ‘세계수의 씨앗’이 ‘서리 정수’로부터 영양분을 흡수합니다! ─세계수의 씨앗이 세계수의 묘목으로 진화했습니다.─세계수의 축복의 등급이 상승합니다!─회복능력이 제법 상승됩니다.─모든 능력치가 조금 상승합니다.

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심장이 얼어붙을 것만 같은 추위가 한순간에 사라지고 지금껏 느낀 적 없던 활력이 넘쳐난다.

“어떻게...? 분명 정수가 반발하는 것을 보았는데?”

내가 갑작스럽게 회복된 걸 본 에다드는 잠시 멍하게 중얼거리더니 이내 정신을 차리고 몸을 더듬거렸다.

“괜찮으냐! 어디 아프거나 상태가 안 좋은 곳은 없느냐?”

“괜찮습니다. 정수가 제가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사실 ‘세계수’가 ‘서리 정수’를 잡아먹은 거지만 하나하나 설명하자면 밤을 새워도 시간이 부족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로 부작용이 사라질 리가….”

“저도 제 매력이 이 정도인 줄은 몰랐습니다.”

“...쯧, 못난 놈. 아비를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구나.”

“과찬이십니다.”

그렇게 말하며 에다드가 혀를 찼지만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

“못난 거로 부족해 어리석기까지 하구나. 칭찬이 아니라 욕이었다.”

“그럼, 그렇다고 하겠습니다.”

말은 저렇게 해도 막상 부작용이 발생하니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 걸 알고도 멈추려 한 에다드의 마음은 잘 알고 있었다.

“...말을 말자꾸나. ...그래도 이걸로 가주로서의 마지막 임무도 마쳤으니 빨리 에르덴에게 자리를 넘기고 은퇴하고 싶구나.”

“은퇴하면 뭘 하실 생각입니까?”

“뒷방 늙은이로 지낼 생각은 없으니 여행이나 다닐 생각이다.”

“가르시아 어머님은요?”

내 질문에 에다드는 정곡을 찔린 듯 쓴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네 녀석도 알고 있지 않으냐 나와 가르시아 사이에는 어떠한 감정도 없다는 걸. 같이 다녀봤자 서로 불편할 뿐이니 이곳에 놔두고 혼자 다닐 생각이다.”

그렇게 말하는 에다드의 얼굴에는 벌써 여행을 떠날 기대감이 가득 해 보였다.

약간 철이 없다고 느껴져도 에다드는 원래부터가 ‘기사’로서는 훌륭했지만 ‘아버지’로서는 절대 좋은 인간이 아니었다.

가족을 아끼지 않는다거나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저 아버지로서의 재능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칼리오페의 가주라는 책임감 하나로 견뎌 왔는데 이제 그 책임감마저 내려놓았으니 자유를 만끽하는 건 당연했다.

“그럼 이걸 한 번 읽어보시죠.”

나는 품속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 에다드에게 건네주었다.

‘아카조교사’를 플레이하던 시절 멘탈이 터졌을 때 히로인들 공략을 포기하고 아무 마을이나 돌아다니며 여자들을 따먹었을 때의 정보였다.

“...이건?”

“각 지방의 ‘특산물’을 적어 놓은 것입니다. 아버지께 도움이 될 것 같아 적어 놓았습니다.”

“...넌 이걸 어떻게. 여행을 다닐 시간은 없었을 텐데.”

“....”

내가 말없이 방긋 웃자 에다드가 고개를 저었다.

“되었다. 어차피 말하지 않을 거 묻지 않으마. 그래서 내게 어쩌라는 거냐?”

“딱히 어디에 쓰라고 드린 것은 아닙니다. 말했다시피 ‘특산물’이니 몸에 좋은 것이나 많이 드시고 오시죠.”

“흠...”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던 에다드가 수첩을 슬쩍 품 안에 찔러 넣었다.

내가 계단을 오르며 슬쩍 말을 꺼냈다.

“...이번 용돈은 두둑하게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정수를 가져가고도 모자란단 말이냐?”

“그거야 제가 잘해서 받은 것이니 말입니다. 칼리오페에는 상과 벌이 명확하지 않습니까. 수첩에 대한 대가는 따로 쳐주셔야지 않겠습니까.”

내 능글맞은 대답에 에다드가 고개를 저었다.

“카르네아에서 언변만 늘었구나. 하아, 오랜만에 아들과의 대화로 기분이 좋았지만 하도 뜯긴 게 많으니 피곤하구나.”

“원래 자식이란 없으면 보고 싶어지고 있으면 골치 아픈 그런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그럼, 아버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아, 그 전에 연회에 데려올 파트너... 아니 쓸데없는 소리였군. 이미 결정되었는데 말이지.”

파트너라는 말에 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파트너? 엠마 말씀입니까?”

에다드가 말하는데 설마 가르시아와 레이카는 아닐 테니까 남은 건 자연스럽게 엠마뿐이었다.

그러자 에다드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되물었다.

“엠마? 그 메이드 말이냐? 그 아이가 영특하고 네가 아끼는 것은 알지만 연회 자리의 상대로서 데려가기에는 격이 맞지 않는다.”

당연한 말이다.

딱히 에다드가 선민사상이 있는 게 아니라 이 세계에서는 이게 당연한 일이다.

엠마 본인에게 슬쩍 떠봤을 때조차 첩으로 들어오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고 나중에 고용인으로 데려가 달라고만 말했으니까.

“...그럼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내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자 오히려 에다드가 이상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당연히 루시아 우르엘라 아니겠느냐?”

“....?”

루시아?

여기서 루시아가 왜 나온단 말인가?

“루시아가... 아니 루시아양이 여길 왜 온단 말입니까?”

“...정수의 부작용이 머리까지 닿았느냐? 네가 칼리오페에 입학하기 전에도 루시아 그 아이가 매년 연말에는 대가문과 황실을 들리며 우호를 다지지 않았느냐?”

에다드의 말에 머리가 더욱 어지러워진다.

‘뭐야?’

내가 알던 ‘아카조교사’에서는 루시아가 우호를 다지기 위해 대가문을 들리는 설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뭐, 원래는 그나마 거리가 가까운 우리 쪽부터 왔지만, 이번에는 어째서인지 남부의 아멜리아 가문부터 들린다고 하더구나.”

“...듣고 보니 이제 기억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 그렇게 떠들어대더니 네 녀석도 좀 지치긴 한 모양이구나. 됐다. 이제 피곤하니까 그만 나가보거라.”

“예, 아버지. 편히 쉬십시오.”

나는 에다드에게 인사를 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걸었다.

그 와중 내 머리를 채우는 생각은 오직 하나였다.

‘루시아! 도대체 뭘 하려고...!’

루시아가 무언가를 꾸미고 있었다.

***

내 복잡한 심경이 어쨌든 시간은 흘렀고 연회는 시작됐다.

공식적으로는 새해를 축하하는 연회지만 사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라면 오늘 에르덴이 가주 자리를 계승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 짜고 치는 판이라는 거지...’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만약 정말로 깜짝 공개한다면 케일을 지지한 귀족들은 무슨 일을 당하겠는가.

미리 정보를 흘려 줄을 잘못 잡은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할 시간을 주는 것도 관행이라면 관행이다.

나는 연회장 구석에 등을 기대고 포도주를 홀짝였다.

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너무 골치가 아팠다.

‘...루시아. 출발하기 전에 미리 편지라도 한 통 보내줬으면...’

루시아가 한 일이니까 내게 피해가 올 만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다.

‘아마도 황녀라 관련되어있어서 그런 거겠지.’

에다드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평소 루시아의 방문 루트는'칼리오페 > 아멜리아 > 황성'순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굳이'아멜리아 > 칼리오페 > 황성'순으로 가려는 걸 보면 나와 황녀 때문인 게 거의 확실했다.

1회차의 기억 탓인지 루시아는 황녀를 극도로 경계 했으니까.

‘...그런데 1회차 때 황녀가 그렇게 위험했나?’

문뜩 기억을 떠올린 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황녀를 두려워하는 건 그 전에 겪은 수많은 끔살 때문이지 딱히 ‘1회차’의 경험 때문이 아니다.

물론 황녀가 손에 꼽힐 정도로 위험한 보스는 맞지만, 그래도 1회차에서는 본성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얌전하지 않았던가.

아직 본성을 감추고 있는 이 시점에서 루시아가 과민반응은 뭔가 마음에 걸렸다.

‘오~라~버~니~’

그때 멀리서 나를 발견한 레이카는 입을 뻥긋거리더니 내게 다가왔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남매의 선을 넘을 듯 말 듯 한 거리까지 달라붙은 레이카가 속삭였다.

“오라버니, 저 어때요? 반해버리겠어요? 덮치고 싶죠? 따먹고 싶죠?”

“....”

나는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 녹색 드레스를 입은 레이카를 잠시 훑어보았다.

객관적으로 봐도 칼리오페의 일원들은 전부 외모가 빼어난 편이다.

거기에 연회라 그런지 단단히 꾸미고 오기까지 했으니 레이카의 외모는 그저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였다.

“빨리요. 어때요? 레이카를 오라버니의 것으로 물들이고 싶어졌나요?”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천박하게 그게 무슨 짓이니 레이카.”

어느새 나타난 가르시아가 부채로 입을 가린 채 말했다.

레이카와 마찬가지로 녹색 드레스를 입은 가르시아는 그야말로 ‘귀부인’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뭐, 어떤가요? 어차피 오라버니에게 보여주려고 입은 건데. 그리고 어머니야말로 오라버니 한테 잘 보이려고 몇 번이나 드레스를 갈아입지 않았어요?”

“...무슨 소리냐? 나는 그저 칼리오페의 안주인으로서 가장 어울리는...”

“그렇게 노출이 많은 드레스가요? 어머니는 나이도 있으신데 좀 단정하게 입는 게 어떠신가요?”

“레이카...!”

“...아이쿠!”

가르시아가 화를 내려고 하자 일부로 발소리를 크게 내며 뒤로 물러나는 레이카.

그러자 주위의 시선이 이곳에 몰리고 가르시아가 뻣뻣하게 굳은 얼굴로 미소를 짓는다.

“오, 오랜만입니다. 헤리스 공. 네 그동안 잘 지냈...”

“어머니는 처리했고... 그래서 오라버니 제 모습이 어떤가요? ‘제국의 달’과 비견될 만해요?”

가르시아가 다른 귀족들을 상대하는 사이 레이카가 눈을 깜빡거리며 물었다.

어쩐지 연회라고 해도 좀 지나칠 정도로 꾸몄다 싶더니 루시아 때문이었다.

‘...음.’

제대로 꾸민 레이카는 절세미인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루시아에 비하면 한 끗발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레이카가 삐지지 않게 잘 돌려 말할까 고민하고 있자.

“...유진.”

옆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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