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회차 히로인이 조교를 기억함-89화 (89/354)

〈 89화 〉 악역 영애 길들이기 (1)

* * *

탓, 탓, 탓, 탓.

레이카 칼리오페는 녹색 곱슬머리가 휘날릴 정도로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지났다.

평상시의 레이카였다면 이처럼 경박하게 걸을 리 없겠지만 지금은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유진 칼리오페.’

케일의 말대로라면 고용인들을 보내도 되돌려질 게 뻔하니 기습적으로 유진을 만나러 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레이카는 유진의 방문 앞에까지 간단한 방해조차 없이 도착했다.

“...뭐야 쉽잖아?”

레이카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몇 번이나 시도했다는 케일의 말과는 달리 너무 쉽게 도착해서 오히려 의심이 갈 정도다.

‘...도대체 내 오라버니는 얼마나 무능하기에 이것조차...’

안쓰러움을 담은 한숨이 흘린 레이카가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순간 이상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흐윽...하..흐윽..이...이제..!흐읏..가..가게..해줘..”

“아직입니다. 좀 더 참으세요.”

“흐아...그..그말이..버..벌써..몇..번째냐..!흐윽...하아..!”

미친듯이 헐떡이는 여자의 신음과 유진의 목소리.

‘...흐음..’

레이카는 오른쪽 뺨에 손가락을 대고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 얌전해 보이던 유진이 해가 저물기도 전에 관계를 맺고 있다니.

신기하기는 했지만 별로 놀랄 일은 아니다.

하급 귀족의 자제도 마음만 먹으면 창녀 한두 명은 장난감처럼 가지고 논다.

하물며 유진은 삼남이라고는 하나 칼리오페의 피를 이었다.

원한다면 방안 가득 창녀들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케일처럼 혼자서 위로하는 게 특이하다고 볼 수 있었다.

‘...뭐,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지만.’

보통 정사 중에는 배려를 해주는 게 예의라지만 레이카는 유진에게 그렇게 해줄 생각이 없었다.

“하윽!..하아..하아...이..이제..안대....제..제발...가게..해줘..미칠..거...”

그러나 문손잡이를 잡는 순간 들린 여자의 목소리에서 레이카는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이 목소리 분명 어디선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창녀들과 말을 섞어 본 적이 없으니 그럴 리가 없지만 분명 저 목소리는 어디선가 들어 본 적 있는 것 같았다.

레이카는 인상을 찌푸린 채 위화감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방문에 귀를 붙였다.

“가고 싶으면 대답하세요. 제 자지가 그렇게 맛있습니까?”

“아흑..하윽..하..그, 그래...맛있...으..니까!..가게..가게해줘!...!”

“핫, 어머니. 아들에게 애원하면서까지 가고 싶습니까?”

“네에엣..!..제...제에발!..해주..세요...! 하윽..아, 안대..!..이거..안대..!..아..아윽..아.아아..앗..!

유진의 입에서 ‘어머니’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레이카는 심장이 멈춘 것 같았다.

그가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 한 명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그, 그럴 리 없어.’

어머니가 그럴 리가 없다.

그저 목소리가 닮았을 뿐이다.

가르시아 마이샤가 그럴 리가 없다.

유진이 변태적인 플레이를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한참이나 굳어있던 레이카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스스슥

다행스럽게도 기름칠이 잘 되어있는지 문이 열리는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으읏...’

문이 열리는 순간 인상이 저절로 찡그려질 정도로 지독한 정액 냄새가 풍겼다.

레이카는 숨을 죽이고 살짝 열린 틈으로 눈을 가져다 댔다.

“하아...하아..헤으윽..”

“자, 어머니.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어나시죠.”

“..하읏..휴..휴식시간을 다오..조..조금 전에 갔단 말이다...”

“어차피 어머니도 즐기고 있지 않습니까! 자, 이번에는 자세를 반대로 해보시죠.”

“..즈..즐기지..않았다! 어디까지나 약효를 빼기 위해서...끄으윽...!아..알았으니까...엉덩이를 때리지 말거라!...이..이렇게 말이냐?”

“네, 잘했습니다. 이렇게 하니 더 깊게 들어가지 않습니까! 어머니의 보지는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크윽...그..따위..칭찬..하아...하나도...기쁘지..하윽.!..흣..!”

“보지가 이렇게 조여오는데 무슨 소리입니까!”

유진과 가르시아의 정사를 엿본 레이카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현기증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이건...도대체...?”

레이카는 느낄 수 있었다.

저것이 결코 강간이 아니라는 것을.

이것이 혈육이기에 느끼는 것인지 같은 여자이기에 느끼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어머니는 레이카가 한 번도 본 적 없을 정도로 기뻐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유진이랑..?’

이게 현실일 리 없다.

그 엄하고 자존심 높은 어머니가 지금 유진 칼리오페의 아래에서 아양을 떨고 있는 게 현실이어서는 안된다.

“...윽..우욱!”

상황을 이해하는 순간 오물 구덩이에 빠진 듯한 혐오감이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당장이라도 이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가르시아의 교육으로 단련된 레이카의 정신은 도망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짜악!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후려친 레이카는 긴 한숨과 함께 마음을 가라앉혔다.

“...내가... 해결해야해..”

알고는 있지만 지나친 충격으로 인해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애초에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한단 말인가?

‘아버지..? 아니야.. 그건 안돼.’

아버지에게 말하는 건 애초에 논외다.

아버지에게 이 상황에 대해 말을 한다면 유진은 완전히 후계자 지위를 박탈당하겠지만 처벌을 받는 건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유진과 어머니가 동시에 사라지게 된다면?

가만히 있던 에르덴만이 이득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외가에 도움을....’

레이카는 고개를 저었다.

마이샤 가문은 레이카의 외가이지만 레이카는 그 멍청한 가문이랑 같은 피가 흐른다고 믿고 싶지 않았다.

딸이 칼리오페의 안주인이 되었으면 그걸 이용해 권력을 잡을 생각을 해야지 아직도 촌구석 영지에 처박혔을 때를 떠올리며 허허실실 웃어대는 꼴을 보면 속이 뒤집혔다.

‘정신 차려! 냉정하게 생각해! 지금은 너밖에 없어!’

레이카는 피가 날 때까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 닥칠 때면 언제나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었다.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다 보면 결국 해결할 방법이 나왔으니까.

그러나 어머니가 저렇게 된 이상 그 역할을 맡아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자신을 배신하지 않고,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누군가가.

“...케일.”

레이카가 케일의 이름을 불렀다.

케일 칼리오페

그밖에 없었다.

능력은 없고, 겁은 많은 데다, 자존심만 높아 평소에는 전혀 믿음직스럽지 못한 오라버니지만...

지금만큼은 힘이 될 것 같았다.

‘지금 나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해... 그러니까 일단 케일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본 것을 털어놓고 냉정함을 되찾는 것이 중요했다.

“...하아, 잠시 꽃을 따러 간 사이에 손님이 오셨네요.”

오싹─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레이카는 치마를 젖히며 안쪽 허벅지에 달아놓은 단검을 잡아 휘둘렀다.

반드시 죽이겠다는 의지를 가진 동작이었다.

상대가 유진의 고용인이면 그걸로도 괜찮고, 만일 평범한 고용인이더라도 어머니의 추태는 반드시 감춰야 할 상황이었으니까.

피잉—!

“....위험한 걸 휘두르시네요? 그것도 제법 잘 휘두르시고요. 아가씨는 이런 쪽에는 흥미가 없는 줄 알았는데... 어디서 배우셨나요?”

하지만 엠마는 당연하다는 듯 단검을 손날로 잡아내고는 자연스럽게 빼앗기까지 했다.

순식간에 무기를 잃은 레이카가 주먹을 꽉 쥐었다.

어차피 전장에 나설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적당한 수준까지만 배워놓은 게 문제였다.

‘..크읏...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연습해놓을걸!’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과거를 돌이킬 수는 없다.

“...더는...반항하지 않을 테니 공격하지 마.”

그렇게 말하며 양팔을 들고 뒤를 천천히 돌아본 레이카는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너...뭐야?”

그곳에 서 있는 건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엠마의 동공은 세로로 길게 찢어져 있었고 머리에는 짐승의 귀가 움찔거렸다.

“왜 그렇게 놀란 눈으로... 어머, 또 튀어나왔네요. ...하아, 아가씨. 봐서는 안 되는 걸 너무 많이 보셨네요.”

허공에 단검을 휙휙 휘두른 엠마가 안타깝다는 듯 속삭였다.

레이카의 다리에서 힘이 쭉 풀린다.

그나마 오줌을 지리지 않은 것이 레이카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마..마족...”

눈앞에 있는 건 마족이었다.

레이카의 머릿속에서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던 마족에 관한 이야기들이 마구 떠오르며 견디기 힘든 공포가 솟아난다.

“...마족이 아니라 아인족으로 불러주면 좋겠는데 말이죠. 그리고 저는 아인족보다는 인간에 가까운 혼혈이에요. ...뭐, 안 듣고 계시네요.”

레이카의 상태를 본 엠마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르시아의 배신을 본 충격과 아인족을 본 공포가 동시에 찾아오니 정신이 견디지 못한 것 같았다.

“...사..살려....”

레이카가 말을 채 끝내기 전에 등 뒤로 돌아온 엠마의 팔이 순식간에 목을 감싸고는 꾸욱 조여왔다.

“아가씨... 그거 아세요?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고 하더라고요...”

“케흑...커..하...으...끄윽..주..기...시..러..”

“아, 이 경우에는 고양이가 죽인다고 해야 하나?”

잠시 후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팔다리를 파들파들 떨던 레이카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아가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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