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회차 히로인이 조교를 기억함-66화 (66/354)

〈 66화 〉 우유로부터 시작되는 나비효과 (3)

* * *

“움직이지 마!”

트리스탄이 무언가를 하려는 낌새를 보이자 내가 소리쳤다.

“어디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봐. 그때는….”

연기에 몰입해 쓸데없는 한마디를 더 할 뻔했지만, 다행스럽게 제정신을 차렸다.

“...아무튼, 움직이지 마세요!”

“...개자식! 어차피 이졸데를 죽일 생각으로 찾아온 거 아니냐!”

“아닙니다!”

“거짓말하지 마라!”

“아니라고!”

한 명은 잡아먹는다고 하지 않나.

한 명은 죽인다고 하지 않나.

부녀가 쌍으로 왜 이렇게 피해망상에 빠져있는지 모르겠다.

“....”

“....”

어떤 말을 해도 소용없을 거 같아 잠시 아무 말 없이 노려보고 있자, 트리스탄도 진정했는지 거칠었던 호흡이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그때야 나는 천천히 말을 꺼냈다.

“...트리스탄 교수님. 제 이름은 유진이라 합니다.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칼리오페의 삼남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쩌라는 말이냐. 네놈이 설령 칼리오페 가문의 핏줄이라 할지라도 딸에게 손을 대면 반드시 죽일 것이다.”

“그런 의도로 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문은 밝힌 건 그저 제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교수님, 저는 이졸데가 갑자기 쓰려져서 구할 생각이었을 뿐 해를 끼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지금 내게 그 말을 믿으라는 건가?”

“믿든 안 믿든 이게 진실입니다.”

잠시 침묵하던 트리스탄이 내게 다시 물었다.

“그럼 어째서 지금 이졸데를 위협하고 있지?”

“교수님이 그렇게 마법을 날려대는데 살 방법이라고는 이것밖에 생각나지 않더군요. 이러지 않았더라면 저는 이미 교수님의 마법에 목숨을 잃지 않았을까요?”

“...”

자기가 생각해도 틀린 말은 아닌지 트리스탄이 입을 다물었다.

“교수님.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는 이졸데에게 해를 끼칠 생각이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더는 공격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시면 얌전히 물러나겠습니다.”

“...맹세하겠네. 자네가 얌전히 물러난다면 공격하지 않겠네.”

“...그 말 믿겠습니다.”

나는 싸울 의지가 없다는 걸 보여주듯 양손을 들고 천천히 물러났다.

그렇게 어느 정도 뒤로 물러나자 트리스탄이 절뚝거리는 다리로 이쪽으로 달려와 이졸데를 껴안았다.

“이졸데! 이졸데! 괜찮으냐!”

가까이서 본 트리스탄의 몸에는 온통 붕대가 감겨있었다.

이졸데의 상태를 확인한 트리스탄은 내 쪽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이야기도 듣지 않고 공격한 건 미안하군.”

“미안하다는 말로 넘어갈 일은 아니지만... 그보다 지금은 이졸데를 치료받게 해야죠. 교수님의 몸 상태도 안 좋은 거 같으니 일단 제가 양호실로 데려가..”

“안되네.”

내 말을 끊으며 트리스탄이 말했다.

“양호실이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면 다른 곳으로...”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네. 이졸데는 결계 밖으로 내보내서는 안 되네. ...내가 집안으로 옮기겠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단호한 트리스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

트리스탄은 상처 입은 몸으로 직접 이졸데를 침대에 옮기고 이불까지 덮어주었다.

내가 도와주겠다고 말했지만 결사코 거절하는 탓에 그저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의자에 앉아서 잠시 기다리고 있자 트리스탄이 지친 얼굴로 차를 가져다주었다.

“오해해서 미안하네. 다시 한번 사과하겠네.”

두 번만 오해하면 사람 죽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차를 한 입 마시는 거로 참아냈다.

그렇게 차를 홀짝이는 사이 날카로운 눈빛을 되찾은 트리스탄이 내게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건가.”

“우연히 길을 잃어..”

“길을 잃어서 이곳에 왔다는 소리는 하지 말게.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다가올수록 혐오감이 드는 결계도 쳐놓았으니. 명확한 목적이 있지 않으면 들어올 수조차 없는 곳이네.”

이곳에 들어올 때 거미줄에 걸린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조차 결계였다니...

진짜 별별 종류의 결계를 다 쳐놓고 있었다.

“....”

내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고 있자, 트리스탄은 순식간에 지팡이를 꺼내 나를 겨누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묻겠네. 어째서 이곳에 왔지?”

지팡이가 없어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지만 굳이 꺼낸 것은 그만큼 진심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일 것이다.

트리스탄의 얼굴을 보니 거짓말을 해봤자 소용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한숨을 쉰 나는 말을 꺼내놓았다.

“...사실 얼마 전 암시장에서 교수님을 보았습니다.”

“....”

“오해를 피하고자 미리 말씀드리면 제가 암시장에서 산 건 고기였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이 사가신 재료들은 개울달팽이, 천년목 진액, 달빛새의 깃털 등 얼핏 보면 고급 해독제의 재료지만 조금만 조합식을 변경한다면 중독성이 있는 약을 제조할 수 있는 것들이었죠.”

“...자네가 연금학에 그렇게 조예가 깊었나.”

“그건 중요치 않습니다. 그보다 교수님. 이번엔 제가 질문하겠습니다. 그 재료로 무엇을 만들었습니까?”

“내가 해독제를 만들었다면 믿을 텐가.”

“...”

솔직히 믿기 어려웠다.

회복계열 고유능력자를 한 번 부르면 해결될 일을 굳이 저렇게 돌아가야 할 이유가 있는가.

잠시 후, 지팡이를 내린 트리스탄은 잠들어있는 이졸데의 얼굴을 한 번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서 말하기는 그러니 공방으로 자리를 옮기지.”

***

트리스탄의 공방에는 각양각색의 마법서들이 가득했다.

당연히 결계 관련 마법부터 연금술을 거쳐, 사용이 금지된 저주계열까지.

보통 교수들이 한 종류의 마법을 깊게 파고드는 것에 반해서 트리스탄은 필요한 게 있으니 닥치는 대로 모은 느낌이었다.

“...설명하기 전에 이졸데를 밖에 내보낼 수 없는 이유가 뭔지 아나?”

트리스탄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부터는 ‘아카조교사’에서 나오지 않았던 숨겨진 이야기였다.

내가 알고 있을 리 없다.

“이졸데는 수명이 다했네.”

“...?”

수명이 다했다?

트리스탄의 말에 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사람이 무슨 기계도 아니고 죽었다는 것도 아니고 수명이 다했다는 말이 어디 있는가.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트리스탄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라는 건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이졸데의 수명은 이미 몇 년 전에 끝났네. 하지만 나는 그걸 억지로 붙잡았고 그 대가를 치르는 중이지.”

“...대가요?”

“그래, 세상의 모든 것이 이졸데를 죽이려 한다면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고개를 젓자 트리스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시작은 내 아내였네. 어느 날 집에 돌아와 보니 정신이 이상해진 아내가 어린 이졸데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고 있었네…. 당황한 나는 아내에게 마법을 날렸네.”

“...”

“아내는 죽어가는 와중에 정신을 차렸는지 내게 이졸데를 지켜달라 부탁했네. 그때부터 나는 누구도 이졸데를 다치게 하지 못하도록 결계에 집중했네. 하지만 결계는 그저 시간을 늦출 뿐 완벽하게 지킬 순 없었네. 결계 안에 있더라도 이졸데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중독되었고, 저주에 걸렸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리 결계를 치더라도 그것을 뚫고 이졸데를 죽이러 오는 사람도 나타났네. 내가 자네에게 과민반응 한 것도 이 때문일세.”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정해진 수명을 넘은 딸을 세계의 의지가 죽이려 하고 그것을 막기 위해 분투하는 아버지이라니.

하지만 이것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건 트리스탄의 분위기가 증명하고 있었다.

“하지만...드디어 오늘이 와버렸군. 지금 딸이 겪고 있는 증상은 내게도 손 쓸 방법이 없네. 이건 병도 중독도 아니야. ...그저 순수하게 생명력을 갉아먹는 것이니.”

‘...그래서. 그랬네.’

트리스탄의 말을 들으니 이제 이해가 갔다.

어째서 트리스탄이 그토록 결계에 집중했는지.

그리고 왜 트리스탄이 그토록 혼자서 ‘촉수’를 막아내려고 했는지.

지금까지는 학생들을 위해서라고 생각했지만 내 착각이었다.

....진실은 내 예상보다 훨씬 잔혹하고 이기적이었다.

“교수님...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뭐지?”

“저 뒤에 있는 상자는 뭐죠?”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불길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검은 상자가 있었다.

...직감이 맞다면 저 안에 든 것은 이졸데를 2장의 보스 ‘기어오는 공포’로 바꿀 물건일 것이다.

“...자네는 눈치가 너무 빠르군. 마치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난 트리스탄이 상자 쪽으로 향해 걸어가 상자를 쓰다듬었다.

“...이졸데가 시련을 겪을 때마다 시련의 강도가 높아지고 있네. 처음에는 간단히 해독할 수 있던 독도 지금 와서는 내 모든 능력을 한계까지 끌어낸 뒤에야 간신히 해독제를 만들 수 있었네. 만일 다음에 이졸데가 독에 중독되면 그때는 끝이라는 소리지.”

“...그래서 이졸데에게 인외의 길을 걷게 하겠다는 겁니까?”

“그래. 이졸데 인간이 아니게 되면 인간으로서의 수명은 의미가 없으니까.”

“인간에서 벗어나서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리고 아직 모르는 것 아닙니까. 당장 파르테논에 가십시오. 성녀라면 이졸데를 치료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다 그 성녀가 이졸데에게 살의를 느끼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내 손으로 이졸데를 사지에 몰아넣는 건가? ”

“....”

트리스탄의 날카로운 질문에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만일 아무 일도 없이 잘 넘어갔다고 해보자고, 그렇게 이번 시련을 넘기면 다음에는 또 무슨 시련이 오는 거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사고? 독? 저주? 빌어먹을! 이번 시련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란 말이다!”

지금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딸을 지켜 온 아버지가 포기하는 순간 내뱉은 목소리에는 내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이졸데가 얼마나 견딜 수 있을 거로 생각하십니까.”

“...길어봐야 삼 일이네.”

삼 일.

방학이 시작된 다음 날.

즉, 아카조교사에서 메인이벤트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소리쳐서 미안하군. 이만 떠나주게. 이게 내가 자네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네.”

트리스탄의 축객령에 밖으로 나서기 직전 나는 뒤를 돌아보며 선언했다.

“...삼 일. 제가 그때까지 반드시 답을 찾아오겠습니다.”

내 말을 들은 트리스탄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기대하지 않고 기다리겠네.”

* *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