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메스가키를 조련하는 법 (5)
* * *
새콤달콤한 딸기향이 가득했다.
하늘하늘한 캐노피로 둘러싸인 공주님 침대, 알록달록한 벽지, 온통 분홍빛이 가득한 물품들.
아카데미의 기숙사보다는 어린아이들의 침실에 더 가까운 모습.
그중 정점을 찍는 것은 침대 옆에 놓인 장난감 테이블이었다.
그곳에는 여러 종류의 동물 인형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티타임을 가지고 있었다.
‘흐음...’
팔짱을 끼고 한참 동안 진지한 얼굴로 고민하던 비앙카 베아트리스가 마침내 결심한 듯 손을 뻗었고...
곰돌이 인형의 모자를 미묘하게 틀었다.
‘..후후...’
다른 사람이라면 뭐가 달라졌는지도 모를 정도의 변화였지만 비앙카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평상시의 비앙카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광경을 보고 입을 떡 벌렸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밖에서의 비앙카는 고슴도치처럼 다가오면 다 찔러버린다는 느낌이었으니까...
과연 누가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그래도 방 안의 분위기는 비앙카의 어린 외모와 퍽 잘 어울렸다.
하지만 비앙카는 그러한 이유로 물건을 수집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이었다.
어릴 적부터 베아트리스 가문의 영재교육을 받았던 비앙카에게 인형을 가지고 놀 시간 따위는 없었다.
그렇기에 스스로도 이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르네아 아카데미에 입학하던 첫날.
정말 우연히 본 낡은 곰 인형 하나가 비앙카의 마음을 끌었고, 그것을 계기로 한둘씩 귀여운 물건들을 사 모으다 보니 어느새 방 안이 이렇게 변해버리고 말았다.
목욕하러 가기 전 마지막으로 인형들의 상태를 점검하던 비앙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완벽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제복을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하는 비앙카.
사락, 사락.
마지막 남은 셔츠를 벗자 그 안에 보통 있어야 할 브래지어가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비앙카도 브래지어를 몇 번 입었지만 이내 불편하기만 할 뿐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걸 인정하고 니플밴드를 붙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옷을 모두 벗고 거울에 몸을 비춰 보자 비앙카의 살짝 표정이 굳었다.
가슴은 있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어야 할 정도였고, 음부는 털 하나 없이 깨끗했다.
‘....’
비비안과 비교하자면 성장이 느리다 못해 아예 멈춰있는 것 같은 체형.
잠시 가슴을 주물 거리던 비앙카가 휙 고개를 돌렸다.
괜히 떠올려봤자 자신만 우울해질 뿐이다.
후회하기에는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다.
욕실에 들어간 비앙카가 따듯하게 데워진 욕조에서 물을 퍼내 몸에 끼얹는다.
촤악
그것을 몇 번 반복한 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욕조에 발끝부터 집어넣었다.
“...흐으...”
몸이 완전히 잠기자 기분 좋은 한숨이 흘러나온다.
욕조에 들어간 비앙카는 고개를 뒤로 편안하게 젖히고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 근육 고릴라는 뭐....’
대련이라도 할 것도 없었다.
처음부터 수준 차이가 너무 많이 났다.
그 멍청이는 입만 떠들지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었으니까.
처음부터 다 보이는 공격 직진 일변도의 공격으로는 몇 년이 지나도 머리끝조차 잡을 수 없을 것이다.
첨벙
비앙카의 발재간에 욕조 밖으로 물이 튀었다.
‘...그리고 또 한 명.’
비앙카가 받히고 있던 팔을 내리자 그녀의 머리가 완전히 욕조 안에 잠기고 잠시 거품만이 솟았다.
촤아악─
잠시 후 물 밖으로 튀어나온 비앙카가 젖은 머리칼을 쓸어넘기자 그 사이로 날카로운 눈빛이 나타났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안 물어봤네.’
준수....라고 하기에는 너무 뛰어난 외모 탓인지 뭔가 있어보이던 남자.
하지만 막상 제대로 하는 건 하나도 없었다.
초급 마법밖에 사용하지 못했고 심지어 그 초급 마법조차 제대로 된 위력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중간에서 약간 위 정도?
마지막에 휘두른 주먹은 마법을 튕겨내기 위해서였지 부셔내기 위해서가 아니었지만, 약해 빠진 바람 칼날의 내구도가 견디지 못하고 깨져버린 것이다.
...그때를 떠올리자 잊고 있던 기억이 하나 되살아났다.
왼쪽 뒷머리를 만져보니 확연히 줄어든 길이가 느껴졌다.
빠직
비앙카의 반듯한 이마에 십자 혈관이 튀어 오른다.
잘 정돈된 단발에 은근한 자부심을 품고 있던 만큼 성질이 돋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후우...’
처음부터 사용했다면 통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었기에 최후의 순간 펼쳐진 이중영창.
그건 분명 비앙카의 의표를 찔렀다.
말로만 들으면 별거 없지만, 마법사가 거리를 내준다는 발상 자체가 상식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래도 고릴라보다는 괜찮았나...’
멍청해 보였지만 그 녀석은 나름대로 진지하게 하급 마법으로 자신을 이길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한 번 자각하자 잘려나간 머리칼이 너무 신경 쓰였다.
‘...쯧 좀 더 팰걸 그랬나.’
잘생긴 얼굴이 망가지는 건 조금 아깝다는 생각에 얼굴을 제외한 온몸을 두들겨 패고는 바닥에 내팽개쳤지만, 잘린 머리칼을 보자 거기서 멈춘 게 아쉬웠다.
“...하아...자라는데 오래 걸리는데.”
욕조에서 일어난 비앙카가 거울 앞에 놓인 가위를 들었다.
‘뭐, 다음에 또 보면... 그땐.’
가위의 날카로운 칼날에 비앙카의 얼굴이 섬뜩하게 비쳤다.
──그리고
싹둑
연보랏빛 머리카락이 땅에 떨어졌다.
**
“유진...히익..!”
언제나처럼 말을 걸려던 유리아가 내 얼굴을 보더니 깜짝 놀라서 물러난다.
“괘, 괜찮아? 얼굴이 반쪽이 됐는데?”
“...응. 조금... 잠을 설쳐서 괜찮아.”
“그, 그래... 많이 피곤해 보인다. 몸조리 잘해...”
유리아가 당황한 걸음으로 물러났다.
‘저 정도인가...’
평상시에는 어떻게든 접점을 만들려고 노력하던 유리아가 거의 귀신을 본 수준으로 기겁하며 도망치니 조금 우울해진다.
‘...피곤해 죽겠다.’
한밤중의 숲속에서 교수와 단둘이... 라고 하면 뭔가 굉장히 야릇한 느낌이 들지만 당연한 말이지만 그딴 건 아니었다.
─끄으으으윽!
─기합을 넣어라!
─으이아아아아!
─고작 이 정도 생각으로 내 특훈에서 도망쳤나!
다시 떠올려도 소름 끼친다.
비앙카에게 처맞은 것만으로도 충분할 정도로 몸을 혹사했는데 거기에 로레오스와 밤샘 훈련까지 하니 진짜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화도 낼 수 없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소득이 있었다.
훈련받다 죽을 것 같아서 잠깐이라도 쉴 겸 던진 질문에서 시작됐다.
“허억...허억...교수님...왜 하급 마법은 하필 손끝에서 나갑니까?”
“...재미있는 질문이군.”
무작정 던진 질문이었지만 의외로 로레오스는 흥미롭다는 듯 대답했다.
“...하급 마법이 가지는 특징 중 하나는 좌표를 따로 지정하는 대신 영창에 기록된 좌표를 사용하는 것이지.”
「바람 ─ 칼날」
로레오스 교수의 오른손 검지 끝에 바람 칼날이 맺힌다.
“그러나 숙련된 마법사라면 영창하면서 무의식적으로 그 좌표를 조금 수정할 수 있다.”
「바람 ─ 칼날」
이번에는 로레오스의 머리 위에 바람 칼날이 맺혔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조금 이동시키는 것뿐. 중급이나 상급 마법처럼 완전히 떨어진 곳에 좌표를 수정해서 날릴 수는 없다.”
「꿰뚫어라─대지─ 창」 콰르릉!
멀리 떨어져 있는 나무 아래에서 창이 솟아나 나무를 박살 냈다.
“...라는게 학계의 정석이었지만, 내가 아는 어떤 녀석은 하급마법의 좌표를 제멋대로 수정해서 쓰더구나.”
“...그럼 교수님도 가능하신가요?”
내 질문에 로레오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뭐 보여줬다시피 어깨나 가슴 정도로 위치를 조절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완전히 좌표를 바꾸는 것은 무리다. 본래부터 나는 마법의 본질을 탐구하기보다는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것인지 연구하는 쪽이니 말이다.”
로레오스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전장에서 적을 죽이기 위해서는 중급이나 고급 마법을 날리는 게 낫지 하급 마법을 연구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만약에 네가 마법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면 아까 말해던 그 녀석을 소개...!”
거기까지 말하던 로레오스의 눈이 크게 띄었다.
“그래...내가 왜 그 녀석을 떠올리지 못했지...”
“...?”
“...유진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다. 잠시 급하게 할 일이 떠올랐다.”
불안한 복선을 남기고 로레오스가 떠난 게 어제의 일이었다.
그리고 한숨도 못 자고 대충 씻고서 나오니 지금이었다.
“그럼, 강의를 시작하지.”
거의 나만큼이나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온 트리스탄 교수가 낮은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힘들어도 강의는 들어야지.
라고 결심한 지 3초 만에 잠들었다.
“....”
밤샘 후 아카데미에서 꿀잠은 못 참지.
***
한숨을 푹 자고 난 뒤의 점심시간.
“하읏...하...유..진님...”
로레오스에게 미끼로 던지고 온 것에 대한 미안함을 담아 비비안을 조금 상냥하게 안아주고 있었다.
“하아..하아..하으읏..!”
어제 하루 보지 않아서 그런지 비비안이 애절하게 매달렸다.
“비비안..”
“흐읏..네에..네엣...유진님...”
“...하급 마법의 사출 장소가 내가 아닌 상대의 좌표를 지정하는 방법을 알고 있나?”
조금 분위기를 깨는 말이지만, 비비안은 한 번 가고 나면 적어도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는 정신을 못 차린다.
그러니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절정에 도달하기 전인 지금밖에 시간이 없었다.
“흐윽..하....읏....자..잘 모르겠어요. 으흣..하.”
비비안이 몸을 움찔거리며 대답했다.
각성 후였다면 대부분의 마법에 관한 질문은 직관적으로 대답해줬을 텐데...
아직 각성 전이라 그런가 아니면 성교중이라 생각이 거기까지 닿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괜찮다.”
“흐읏...머..멍청해서...죄송해요...”
“괜찮다. 그럼 슬슬.. 보내주마.”
“흐읏..유..진..님..가..사..합니..하읏...”
비비안의 보지가 꾸욱 하며 조여오는 게 절정에 가깝다는 걸 알려주었다.
찔꺽, 찔꺽, 찔꺽.
그렇게 내가 마지막으로 속도를 올리려고 하자.
“주인님?”
루시아가 나를 불렀다.
“이런걸 원하시는 거죠?”
「물─구」
루시아의 영창과 동시에 비비안의 옆에서 나타난 물 덩어리.
그것은 이내 주위를 뱅글뱅글 돌더니 비비안의 머리 위에서 폭 터졌다.
“꺄앗..!”
갑작스럽게 물을 뒤집어쓰자 귀여운 비명을 지르는 비비안.
....하지만 그것에 집중할 여유가 없었다.
“...?”
나는 언제나처럼 부드럽게 웃는 루시아를 바라보며 눈을 껌뻑거렸다.
“어떻게...”
...네가 어떻게 그걸 써?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