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 메스가키를 조련하는 법 (4)
* * *
‘이걸 찾네...’
내가 머리를 긁적였다.
나름 잘 숨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초반 강캐답게 싸우면서도 내가 있는 곳을 파악한 모양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헤실거리는 얼굴로 비앙카에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어차피 비앙카가 찾아내지 못했어도 내가 먼저 나갔어야 했다.
그렇게 보면 차라리 방심이라도 끌어낼겸 들킨 게 좋을 수도 있다.
“...”
숨어 있다가 들켜놓고는 왠지 모르게 당당한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비앙카가 인상을 찌푸렸지만 나는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비앙카를 상대로는 무조건 뻔뻔하게 나갈 생각이었다.
“...일학년이 여긴 무슨 일? 여기 단련실은 이학년 전용이라는 건 알고 있을 텐데.”
내 넥타이 색깔을 잠시 확인한 비앙카가 벗어놓았던 외투를 입으며 물었다.
“음, 다른 건 아니고요. 혹시 존경하는 비앙카 선배님과 대련이나 한 번 할 수 있을까 해서 찾아왔습니다.”
“뭐? 너 방금 저걸 보고도 대련을 신청할 마음이 들어? 아, 혹시 그런 건가? 맞는 게 좋은 그런 취향? 으엑, 징그러, 역겨워. 토 나올 거 같아.”
“....”
일부로 과장된 말투로 거절하는 비앙카.
하지만 내가 여전히 방긋 웃고 있자 이번에는 순식간에 정색하며 한없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귀찮으니까 꺼져. 병신아.”
“음... 어떻게 해도 안 될까요?”
“하, 너 지능에 문제가 있어? 그런 플레이를 하고 싶으면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고. 나는 관심 없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더는 상대하지 않겠다는 듯 뒤돌아 나가는 비앙카.
저벅, 저벅
“선배님...?”
“...”
“아아, 안들리시나요?”
“...”
“아아아아아!”
양손을 입에 대고 소리까지 질러보지만, 비앙카는 철저하게 무시했다.
‘그걸 써야겠네.’
하지만 내게는 비앙카를 시선을 끌 수 있는 마법의 단어가 있었다.
“...아쉽네요.”
비앙카의 등을 향해 내가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비비안이 언니 이야기를 많이 하던데...”
우뚝
그 순간 비앙카의 발걸음이 멈췄다.
“와우, 귀가 안 들린 건 아닌가 봐요. 저는 또 귀가 먹은 줄 알고 걱정...”
“...너 그 애랑은 무슨 관계야?”
말을 끊으며 쏘아붙이는 비앙카의 눈빛이 까딱 대답을 잘못하면 죽여버린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는 뻔뻔하게 웃으며 밀어붙였다.
“궁금해요? 흐음... 알려줄까요? 말까요?”
“...너 진짜 제정신이 아니구나?”
“선배님, 그건 대답이 아닌데요?”
빠직
그런 소리가 들린 듯했다.
비앙카의 새하얗고 앙증맞은 이마에서 십자 모양의 혈관이 튀어나왔다.
“닥치고 내가 묻는 말에나 대답해.”
내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지금은 절대 사실대로 말할 수 없다.
사실대로 말하면 ‘조교를 통해 비비안을 야외노출을 즐기는 애로 만들었고, 어제는 처녀를 빼었었고, 앞으로는 매일같이 몸을 섞을 사이입니다.’라고 말해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화내지 마세요. 그냥 반 친구입니다.”
“....”
내 말의 진의를 재보듯이 인상을 찌푸리는 비앙카.
그런 비앙카를 위해 내가 한 마디를 보탰다.
“...뭐, 아직은 말이죠.”
“...너...아니...하...”
그러자 내가 자신을 가지고 놀고 있다는 걸 깨달은 비앙카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다리를 내리찍었다.
쿵!
포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바닥이 깨지고 소리가 대련실 가득 울려 퍼진다.
‘와우...’
혹시 조금 심하게 깝죽거렸나 하는 후회가 살짝 밀려올 무렵.
“...마음이 바뀌었어.”
비앙카가 걸쳤던 외투를 휙 내던지며 손가락을 까닥였다.
“덤벼, 놀아줄게.”
“...”
확실하다.
조금 과하게 심하게 깝쳤다.
“그럼, 한 수 부탁드릴게요.”
내가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자세를 잡았다.
***
넓은 단련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비앙카 베아트리스가 손목을 풀며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방금까지는 활화산처럼 분노를 터트리던 주제 전투가 시작되는 순간 한없이 냉정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후우...’
...그래도 여기까지는 계획대로다.
비앙카는 고유 능력은 ‘육체강화’다.
좀 더 보충하자면 평범한 기사가 십수 년을 수련해야 얻을 수 있는 신체 능력을 단숨에 얻는 것이다.
간단하지만 그만큼 강력한 능력.
특히 지금처럼 초반 시나리오에서는 저 고유 능력 하나로 1반의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말이다.
“걱정하지 마...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콰앙!
그 말과 동시에 비앙카가 땅을 박찼다.
확실히 예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였지만, 내 마법은 그보다 빨랐다.
「바람─칼날」
영창과 동시에 손끝에서 쏘아지는 바람 칼날.
하도 많이 사용해서 이제는 내가 고유능력자인지 마법사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후욱!
비앙카는 정확히 자신을 향해 쏘아진 바람 칼날을 허리를 뒤로 크게 젖히며 피했다.
놀랄 것은 없다.
이 정도는 당연히 피해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비앙카가 크게 젖혀진 허리를 단숨에 세우며 그 반동으로 잠시 멈췄던 움직임을 다시 가속한다.
「바람─칼날」
“하, 쏠 줄 아는 건 바람 칼날뿐이야?”
「바람─칼날」
“...애석하게도 그러네요.”
그리고 또「바람─칼날」
내가 날리는 마법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하면서 어느새 몇 걸음 앞까지 도달한 비앙카.
“큿..!”
내가 입술을 깨물며 발악하듯 바람 칼날을 날렸다.
「바람─칼날」
비앙카가 강화된 주먹으로 칼날의 옆면을 후려치자 바람 칼날은 박살 나며 허공에 흩어졌다.
“...흥!”
그 순간 승기를 확신한 비앙카가 즐거운 듯 웃었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바람─칼날」
이중영창에 가까운 고속영창.
지금까지 내가 일정한 속도로 바람 칼날을 영창 한 것은 바로 이것을 위해서였다.
“....!”
아무리 비앙카라도 영거리에서 쏘아지는 마법은 당황스러웠는지 눈을 크게 떴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고 몸을 빙글 돌리는 것으로 피해냈다.
─샤악
결국, 내 비장의 수로 이뤄 낸 것은 연보랏빛 머리카락 몇 개가 허공에서 나풀거리게 하는 것이었다.
“...이건 조금 재미있었네. 그래서 이제 끝?”
말 그대로 코앞에 도달한 비앙카가 말했다.
비앙카와의 결투...
처음부터 성립할 리가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비앙카는 2학년 중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수재이고 나는 잘 쳐줘도 1학년 3반의 수준이다.
패배는 당연했다.
“...네.”
“그럼, 맞아야겠지?”
“....음....살살 부탁드릴게요.”
“죽지는 않을 거야.”
내게 마력은 남아있는 상태였지만 비앙카는 아무렇지 않게 떠들었다.
알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뭘 해도 패배는 확정됐다는 걸.
어차피 마법사의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거리유지다.
비슷한 수준의 마법사와 기사가 싸우면 거리가 배로 늘어날수록 마법사의 승률은 몇 배씩 늘어난다고 로레오스가 교수가 말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숨결이 느껴질 정도의 거리를 내준 나의 패배였다.
“이 꽉 깨물어.”
친절하신 선배님의 조언대로 이를 꽉 깨무는 순간.
쾅!!
허리가 기역 자로 꺾였다.
“커헉...!”
숨을 쉴 수가 없다.
패배는 인정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한 채 맞아 줄 생각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몰래 옷과 피부 사이에 염동력으로 된 방어막을 쳐놓았다.
하지만 그런데도 내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위력이었다.
“...흐음. 이걸로 기절을 안 해?”
“...케흑...비..앙카 선배님...자, 잠시만요.”
“싫어. 나는 허접이랑 말 안 해.”
퍼억
비앙카가 주먹을 휘둘렀고 눈앞에 불꽃이 튀었다.
**
뒤지기 직전까지 처맞았다….
농담처럼 말하지만, 진짜 자비가 없었다.
아무리 내가 도발을 했다지만 사람을 그렇게 패고서 그냥 바닥에 버려두고 가다니...
세계수의 회복 효과가 아니었다면 아직도 바닥에서 신음을 흘리고 있었을 것이다.
‘...죽겠네.’
뼈마디는 욱신거리고, 온몸에는 멍이 잔뜩 들었다.
아마 한동안은 고생할 것이다.
...그래도 가장 필요한 정보는 손에 넣었다.
내가 비앙카 베아트리스를 굳이 찾아온 이유는 처맞기를 좋아해서도 아니고 단순한 심심풀이도 아니다.
비앙카를 조교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녀를 무력으로 꺾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만에 하나 ‘아카조교사’ 때와 다른 공격 패턴을 보여줄지 확인하러 온 것이다.
‘..패턴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것을 알아낸 것만으로도 충분한 수확이다.
물론 아직 패턴을 알아냈다고 해도 비앙카를 이길 수 있는 건 아니다.
‘할만해.’
하지만 머릿속에서 비앙카를 상대할 수 있는 흐릿한 그림이 잡힐 듯했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지금은 기숙사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잘 생각이었다.
그렇게 내가 교문을 지나치는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진 칼리오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온몸의 소름이 끼쳤다.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있던 남자는 마력은 조금의 마력도 뿜어내고 있지 않았지만, 비앙카가 보여주었던 살기는 장난쯤으로 여겨질 정도의 공포를 주었다.
나는 떨리는 몸을 애써 억누르며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로레오스 교수님.”
천천히 발광석 아래로 걸어 나온 로레오스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내가 방과 후에 특별 수업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교수님 무언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일단 제 이야기를 들어보시면...”
내가 필사적으로 머리를 쥐어짜며 변명을 만들어 보려고 했지만.
“...길겠군.”
로레오스는 허락하지 않았다.
“네?”
“...오늘 새벽 특훈은 길겠다는 소리다.”
하.
로레오스와의 빌어먹을 특훈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