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회차 히로인이 조교를 기억함-40화 (40/354)

〈 40화 〉 비비안 조교 일지 (5)

* * *

‘화, 화장실...’

비비안은 입술을 꽉 깨문 채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걸었다.

티끌만 한 자극으로도 바로 오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오늘 있을 대련수업이 긴장된 탓에 물을 많이 마신 탓이었다.

사실 아침부터 화장실에 가고 싶었지만 루시아님의 허락 없이는 오줌조차 마음대로 눌 수 없었다.

결국, 수업을 두 개나 더 끝내고 나서야 간신히 화장실 이용을 허락받았다.

‘빨리..빨리..’

방광에 자극이 가지 않는 최대한의 속도로 움직였다.

간신히 도착한 화장실의 문을 여는 순간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

유리아의 패거리였다.

곧바로 문을 닫고 나오고 싶었지만 유리아의 패거리는 이미 자신과 눈이 마주쳤고 방광도 한계에 도달한 터라 도저히 다른 화장실까지 갈만한 여유가 없었다.

결국, 화장실 안으로 들어서자 유리아가 날카로운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스윽

비비안은 자연스럽게 시선을 깔았다.

이곳에서 얻어맞았던 기억이 떠오르자 몸이 덜덜 떨린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최근 어떤 일이 있었던가.

지금 이를 까득 갈고 있는 레부즈에도 대놓고 티를 내진 않았지만, 교실에서 있었던 교과서 방뇨 사건의 범인이 루시아님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유리아는 잠시 아무 말 없이 비비안을 내려보았다.

“....가자.”

그리고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패거리를 이끌고 지나갔다.

‘하아...’

비비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긴장이 풀리자 오줌을 지릴 것 같았다.

“읏...!”

쏴아아─

빠르게 문을 열고 변기에 앉는 순간 거센 물줄기가 쏟아졌다.

***

“2명씩 짝을 지어라.”

운동장 한복판에서 로레오스 교수가 말했다.

...정말 싫었지만, 대련수업이 시작되었다.

다들 둘씩 조를 짜기 시작지만 아무도 나와 조를 짜려고 하지 않았다.

루시아님의 보호가 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괴롭히지 않는 수준.

이런 곳에서까지 나와 조를 짜려는 사람은 없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힐끗 유진을 바라보자 유리아가 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래서 유진아 오늘은 나랑 같이하는 게 어때?”

인정하기는 싫지만, 적어도 5반에서는 가문도 그렇고 외모도 그렇고 유리아가 유진과 제일 잘 어울렸다.

‘읏...’

유리아가 내민 손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는 유진을 보고는 나는 고개를 휙 돌렸다.

당연한 것을 보고 상처받을 필요는 없었으니까.

오늘도 로레오스 교수님과 조를 짤 생각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자 뒤에서 의외의 대답이 들렸다.

“미안, 이미 짜기로 한 사람이 있어서.”

그리고 가까워지는 발소리.

이윽고 발소리의 주인이 어깨를 두드렸다.

“비비안. 나랑 할래?”

유진이었다.

“...저, 정말 나랑 해도 괜찮아?”

멍청한 비비안...

이럴 때라도 말을 안 더듬으면 얼마나 좋을까.

“응, 같이 할 사람을 못 구해서. 아, 혹시 팀을 벌써 짰나?”

하지만 유진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나를 위해 거짓말까지 해주었다.

그런 유진의 배려가 너무나 미안하고 고마웠다.

“아니야... 아무도 없어. 같이 하자. 고마워... 같이하자고 해서. 유진아...”

“고맙긴 뭘.”

유진이 씩 웃으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붙잡아도 되는지 머뭇거리고 있자 유진이 먼저 다가와 내 손을 붙잡았다.

“우린 친구잖아.”

친구...

내가 그를 친구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이미 인간임을 포기하고 가축으로 전락한 내가 유진의 곁에 서도 되는 걸까.

“그러니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그 목소리가 너무 다정해서 그저 눈물이 흐르지 않게 하는데 필사적이었다.

“응...”

***

그날 저녁 나는 오랜만에 루시아님 앞에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렇다고 교육이 없던 건 아니다.

오히려 교육의 괴로움으로 따지면 지금까지 순위권을 다투고 있었다.

“우엑...욱윽...으윽.”

구역질이 계속 튀어나왔다.

삼켰음에도 목 밖으로도 형상이 뚜렷하게 드러날 정도의 크기.

지금까지 많이 연습했지만, 주인님의 주인님의 자지를 본떠서 만들었다는 조각은 너무 거대했다.

“좀 더 넣어요. 전부 삼키세요.”

“우욱....”

조각을 뿌리 끝까지 삼키는 순간 기도가 압박되어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다.

“끄..끄윽...끼그...윽..”

입에서는 기괴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손발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그렇게 1초만 더, 1초만 더 견디자는 마음을 가지고 한계까지 견뎌보았지만 이제 한계였다.

“우에엑...헤엑...헤엑...”

결국, 토해내듯이 조각을 뱉어내고 있는 힘껏 숨을 들이쉬었다.

루시아님이 그런 나를 보며 말했다.

“1분 14초...뭐.. 그럭저럭이네요. 하지만 주인님께서 당신을 사용할 때면 지금처럼 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주인님께서 원하신다면 설령 당신이 죽는 한이 있어도 견디세요.”

“...멍..”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착각해서는 안 된다.

나는 고작해야 정액을 받아내는 존재.

나의 모든 것을 더해도 그분의 정액 한 방울조차 못한 존재였다.

“자, 그럼 마지막 준비에요. 이미 비워놓기는 했지만 확실하게 하는 게 좋겠죠.”

루시아님이 가방에서 꺼낸 것은 두 주먹을 합친 크기의 유리병이었다.

그 안에는 꿈틀거리는 반투명한 생명체가 있었다.

“....”

슬라임이었다.

때, 각질, 소변과 대변 등 온갖 노폐물을 먹어 영양분으로 삼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몇 안 되는 마물.

특히 지금처럼 푸른 빛을 띠는 슬라임은 슬라임 중에서도 고급종이라 베아트리스 같은 가문에서는 보기조차 쉽지 않은 물건이다.

“넣으세요.”

유리병의 뚜껑을 열자 슬라임이 스믈스믈 기어 나온다.

“...멍..”

나는 루시아님께 교육받은 대로 바닥에 엎드린 채 팬티를 반쯤 내려 항문을 드러나게 했다.

그러자 어느새 다가온 슬라임이 몸 일부를 촉수처럼 길게 늘이더니 이내 엉덩이 구멍을 두드린다.

톡, 톡, 톡.

몇 번 두드려 본 슬라임은 안전했다고 판단 한 것인지 단숨에 항문을 비집고 들어온다.

“흐으그..그윽...읏...!”

신음이 흘러나왔지만, 고통은 없었다.

그러나 배출해야 하는 구멍에서 반대로 무언가가 들어가는 감각과 심지어 그것이 마물이라는 생각에 알 수 없는 공포심이 솟아났다.

꿈틀─ 꿈틀─

장을 청소하기 위해 뱃속에서 슬라임이 마구 움직였다.

“흐읏..! 아..! 으아으가...!”

그때마다 입에서 알 수 없는 말이 튀어나온다.

슬라임이 점액과 장액이 뒤섞이며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은 감각이 계속 솟아났다.

“...끄읏..으그읏...!하아...”

한참 뒤 볼일을 마친 슬라임은 다시 기어 나와 스스로 병 안으로 들어갔다.

끼익­

슬라임이 담긴 병의 뚜껑을 닫은 루시아님이 말했다.

“이건 선물로 드릴게요. 자, 그럼 비비안. 저의 주인님을 뵈러 갈까요.”

“..하아..하아...멍...”

나는 목줄에 이끌린 채 루시아님의 뒤를 따라갔다.

텅 빈 복도에는 루시아님의 발소리만이 크게 울렸다.

반짝하게 닦인 바닥에 암캐처럼 네발로 기어 다니는 나의 모습이 비쳤다.

“...흐윽...”

이제 정말 끝이 다가온 탓일까.

갑자기 눈물이 흘러나왔다.

무서웠다.

아무리 주인님의 주인님의 할지라도.

다른 남자에게 안기는 건 싫었다.

...적어도 처음 만큼은 내가 마음에 품은 상대에게 주고 싶었다.

눈물로 흐릿한 시야에 유진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그러니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유진...’

그의 얼굴이 떠오르는 순간 발이 무거워지며 더는 걸어갈 수 없었다.

“...비비안. 뭐 하는 짓이죠?”

내가 걷는 것을 멈추자 루시아님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두려움에 몸이 굳는 것 같지만,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두 다리로 일어났다.

“하...”

루시아님이 분노보다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 터트렸다.

"비비안. 딱 한 번 기회를 드리죠. 엎드려요."

그 서리 같은 눈초리를 보는 순간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그렇기에 시선을 아래로 내리 깐 채 입을 열었다.

“...싫...어...요.”

─짜악

오랜만에 루시아님이 손을 휘둘렀다.

여전히 매서웠고, 한 번에 입안이 터져서 비릿한 피 맛이 가득했다.

“...못..하겠어요..”

─짜악

“...죄, 죄송해요..”

─짜악

“죄송해요....”

─짜악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뺨을 때리던 루시아님이 이내 손을 멈추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비비안. 마지막에 와서 정말 실망스럽게 하는군요.”

“...저..정말...죄..죄송해요. 루시아님...”

지금이라도 잘못했다고 무릎을 꿇고 빌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도 처음 만큼은 유진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안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요. 맘대로 하세요. 떠나고 싶으면 떠나요.”

눈이 크게 떠졌다.

결단코 안된다고 할 줄 알았던 루시아님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비비안. 이 자리를 떠나는 저는 순간 처음 말했던 대로 아카데미와 당신의 가문에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슬프지만 이런 반응은 예상했다.

그렇기에 나도 눈을 꽉 감고 입을 열었다.

“...그, 그렇다면 저, 저도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마, 말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자신한테 한 행동을 아카데미에 말한다면 루시아님도 함부로 건들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정말로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아아하하하핫..! 비비안? ...지금 저를 협박하겠다고요?”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리던 루시아님이 손이 단숨에 내 목을 쥐었다.

“그래, 어디 해봐.”

“..케흑..흐윽...흑...”

“그 알량한 베아트리스 가문이 너를 지켜 줄 수 있을 것 같아? 심지어 가문에서도 버림받은 낙오자가?"

루시아님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제 이름과 가문에 맹세코. 당신이 저에 대해 단 한 마디라도 언급하는 순간 당신의 가문을 무너트리겠습니다.”

우르엘라 가문의 차기 가주로 확정된 루시아님의 말은 남부의 의지와도 같다.

“착각하지 마세요. 단순히 가문을 망하게 하겠다는 게 아니니까요. 그건 시작에 불과해요. 모든 것을 밟을 것입니다. 그렇게 밟고 밟아서 간신히 목숨만은 부지 할 수 있도록 해줄게요. 그렇다고 죽음으로 도망칠 생각도 하지 마세요. 당신이 죽으면 다음은 당신의 언니를, 그다음에는 아버지를, 그다음에는 사촌을 이렇게 베아트리스의 이름을 가진 모든 사람이 죽을 때까지 이 짓을 반복할 테니까요.”

거기까지 말한 루시아님이 손을 떼며 언제나 같은 미소를 보여주며 말했다.

“그런데도 당신이 떠나겠다면 존중하죠. 선택해요. 비비안. 어떻게 할 건가요?”

“....죄송...”

무릎이 저절로 굽혀졌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땅에 머리가 닿았다.

“제, 제가..히끅...자, 잠시 ...미쳤나봐요..제..제발..용서해주세요.”

필사적으로 빌었다.

아무리 나의 연심?心이 소중할 지라도 그 모든 사람의 목숨을 책임질 자신이 없었다.

“하아....비비안..”

루시아님의 구두가 내 머리를 짓눌렀다.

“이것이 당신이 제가 반항하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여야 할 겁니다.”

“히끅..네에...가..감사...감사합니다.”

“하, 저보다는 저의 주인님께 감사하세요. 그분의 뜻이 당신을 살린 것이니까요.”

“네, 네에...감사합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비비안의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졌다.

태어나 처음으로 품은 연심조차 지키지 못한 자신에게 절망했다.

그럼에도 나를 위해주었던 유진에게 사죄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이렇게 만든 세계를 증오했다.

그 순간, 비비안의 절망 속 가장 깊은 곳에서 무언가 꿈틀거렸고.

─또각

동시에 한 남자의 발소리가 복도 끝에서 울려 퍼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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