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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차 히로인이 조교를 기억함-24화 (24/354)

〈 24화 〉 루시아는 웃고 있다 (7)

* * *

“하아...하아...”

비가 내려 기온이 떨어졌는지 거칠 숨결과 함께 입김이 흘러나왔다.

슬슬 육체도 정신도 한계였다.

‘씨발…. 왜 안 와!’

견딜 만큼 견딘 것 같은데 아직도 교수들을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콰르릉­!

그때 번개가 번쩍이며 세상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크르릉!”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늑대가 뛰어들어 발톱을 휘두른다.

나도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지만….

코끝이 살짝 베여나갔다.

...바로 반응해도 이 정도다.

능력치가 올라가지 전이었다면 영문도 모르고 죽었겠지.

「바람─칼날」

늑대가 또다시 달려들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바람 칼날로 가죽을 베었다.

“그르르….”

그동안은 영창을 하면 움찔대던 척이라도 하던 늑대가 이젠 피하지도 않는다.

“빌어먹을….”

늑대 새끼도 내가 항상 염동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다.

...그래도 ‘세계수의 축복’이 주는 회복력에 정신력과 마력까지 포함되었기에 지금까지 견뎌냈다.

‘...그것도 이제 끝이지만.’

사용량에 회복속도가 따라잡힌 지 오래다.

잘해야 앞으로 2번이면 마력도 정신력도 바닥날 거다.

“크르릉­”

압도적인 유리함에도 섣불리 달려들지 않고 주위를 빙글빙글 맴도는 늑대.

처음에는 시간을 끌어서 좋다고 했는데 진짜 한계가 다가오니 두렵게 느껴진다.

“크르아­!”

「바람─칼날」

[염동력 (Rank E)]

소리를 지르길래 염동력까지 사용해 공격했지만...

늑대는 처음부터 달려들 생각은 없었는지 재빨리 뒤로 물러난다.

‘씨발….’

저게 진짜 짐승 새끼가 맞는지 의심이 간다.

달려드는 척 소리를 질러 내 마력과 정신력을 낭비하게 했다.

...짐승 주제 내 블러핑을 따라 한 것이다.

‘이거 안 좋은데….’

이건 존나 불공평한 게임이다.

나로서는 한 대라도 맞으면 죽으니까 반응할 수밖에 없는데 저 새끼는 실패해도 조금 아프고 만다.

「바람─칼날」

[염동력 (Rank E)]

....지금처럼 말이다.

“크르르….”

늑대가 자신의 가죽에 난 상처를 살펴보더니 씩 웃는다.

염동력을 사용했는데도 가죽에 생채기만 났다.

....이젠 정말 정신력이 바닥난 것이다.

“아오오오오오오오­!”

늑대가 승리의 함성을 내지른다.

저 새끼도 본능적으로 내가 한계라는 걸 알아챈 모양이다.

“...씨발, 아직 아니야.”

갈 때 가더라도 저 빌어먹을 늑대를 향해 마지막으로….

어질­

그 순간 잠깐 정신이 시야가 흐려졌다.

마력과 정신력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한 부작용이었다.

“카아으으으아!”

다시 눈을 뜨자, 나 하나 정도는 통째로 씹어 삼킬 정도로 거대한 아가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대로 죽나?’

하루에 2번씩이나 죽을뻔하다니 역시 좆망겜 다웠다….

그나마 고블린에 죽는 것보다는 낫다고 위안을 해야 하나.

그래도 이렇게 죽고 나면 남은 사람들은 나를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 늑대와 맞선 영웅으로 기억해줄 테니까….

‘그 정도면….’

그 정도면 괜찮지 않은가.

원래도 야겜에만 미쳐 살던 인생이었다.

그런 나 하나로 모두를 지키며 죽는다면 꽤 괜찮은 죽음 아닌가.

그렇게 자기합리화 끝에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순간….

「꿰뚫어라 – 부서지지 않는 ­ 대지의 – 창」

익숙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맹세코 나는 게이가 아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 세상 누구보다 로레오스가 멋져 보였다.

콰콰콰콰콰카카쾅쾅­!

로레오스가 사용한 마법은 지금까지 싸움이 애들 장난처럼 보이게 만드는 수준이었다.

대지에서 솟아난 수십 개의 창이 달려오던 늑대를 그대로 허공에 박제해버린다.

....괜찮은 죽음은 취소다.

희생의 뭔 놈의 희생.

역시 살아남는 게 최고다.

“수고했다.”

로레오스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너무...늦었...”

늦은 주제 웃고 있는 얼굴이 얄미워 불평이라도 한마디 하려는 그 순간….

긴장이 풀려서인지 졸음이 쏟아진다.

...모르겠다.

일단 한숨 자자….

***

‘.....’

눈앞에 광경에 로레오스가 주먹을 굳게 움켜쥐었다.

샤악­!

늑대의 발톱이 유진의 코끝을 스쳤다. 뛰어들 뻔했지만, 간신히 멈춰섰다.

‘아직이다….’

로레오스는 유진과 늑대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교수로서는 당장 뛰어들어가 구해야 했지만, 교수가 아닌 한 명의 스승으로서는 이 상황을 멈출 수 없었다.

‘...성장하고 있다.’

천 번의 훈련보다 더욱 귀중한 한 번의 실전이 존재한다.

바로 그런 실전을 통해 인간은 넘어 설 수 없는 벽을 넘어서는 것이다.

로레오스가 보기에는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한 명의 전사로서 이런 기회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알기에 섣불리 나서서 이 순간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역시….’

역시, 유진도 다른 방향의 재능을 지니고 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웃어서는 안 되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만큼 유진이 지금 보여주는 움직임은 그가 알고 있던 유진과는 전혀 달랐다.

그렇게 잠시 상황을 지켜보던 와중 마법을 쏘아내려던 유진이 휘청거렸다.

‘이런...!’

마력 부족으로 인한 현기증 같았다.

아무리 각성을 한다고 해도, 영약이라도 먹지 않는 이상 마력의 절대량만큼은 단숨에 올릴 수 없다.

‘...아쉽지만, 여기까지인가.’

비틀거리는 유진을 보자마자 늑대가 달려들었다.

하지만 로레오스의 영창은 그보다 빨랐다.

「꿰뚫어라 – 부서지지 않는 ­ 대지의 – 창」

로레오스가 그저 유진을 지켜보고 있던 건 반드시 늑대보다 먼저 움직일 수 있다는 절대적인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1학년의 병아리들이 상대하기에는 늑대는 너무 높은 벽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마물과의 전쟁 속에서 살아온 로레오스에게 있어서는 그 정도 벽은 단숨에 무너트릴 수 있는 모래성 같은 것이다.

단숨에 늑대를 즉사시킨 로레오스가 걸어 나오며 말했다.

“수고했다.”

“...너무...늦었...”

끝까지 투덜대며 기절한 유진을 받아주었다.

자랑스러웠다.

끝까지 강자와 싸운 투쟁심이.

동료를 지키기 위해 남은 영웅심이.

‘훌륭했다.’

유진이 기절했기에 말로는 꺼내지 못했지만, 대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로레오스 교수님, 괜찮으십니까?”

곧이어 뒤따라 온 인원들이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래, 그보다 이 아이의 상태를 확인해주기 바란다.”

다가온 의료진들이 유진에게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부상은 조금 있지만, 그래도 심각한 부분은 없네요. 며칠 휴식을 취하면 전부 나을 것 같습니다.”

“알겠다.”

유진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로레오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제 유진의 성장을 보며 흡족해하는 것은 끝났다.

다시 한 명의 교수로 돌아와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그때 이름 모를 여자 조교수가 로레오스에게 말을 걸었다.

“역시 로레오스 교수님입니다. 중상급 마물을 마법 한 번으로 처리하다니요. 확인해보니 마력 배분부터….”

“....”

로레오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에게는 죄가 없다는 건 알지만 이런 상황에서 아부하는 것 자체가 짜증이 치솟았다.

“시간이 괜찮으시면 나중에 따로 차라도 한잔하면서….”

그때 늑대 사체를 관찰하던 한 남자가 말했다.

“...조교수님! 이거 상처가 좀 특이한데요?”

“뭐? 뭐 말하는 건데! 지금 나 로레오스 교수님이랑 말하는 거 안 보여!”

“아…. 죄송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상처가 이상해서…. 학생이 사용한 마법 흔적은 바람 칼날뿐인데 하급 마법으로 이렇게까지 날카롭게 자를 수 있나요?”

“지금 그게 중요해? 지금은 그게 아니라 그 짐승 새끼가 어디서 나타난 건지 파악해야 하는 거 아니야!”

조교수가 남자에게 쏘아붙였다.

‘...음?’

그러자 늑대의 사체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 로레오스가 앞으로 나섰다.

“잠시 내가 확인해봐도 되겠나.”

“로, 로레오스 교수님이 직접요? 그럴 필요가….”

“그럼 확인해보겠네.”

조교수의 말을 끊으며 로레오스가 늑대의 사체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핫.’

분명 유진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은 [바람 – 칼날]뿐이다.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을 감출 필요도 없고, 감추지도 않았을 것이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극한 상황에서까지 감출 순 없을 테니까.

하지만 이건 뭔가?

늑대의 가죽과 근육을 넘어 뼈마저 잘려있다.

명백히 하급 마법의 수준을 넘어선 날카로움이었다.

‘어떻게…?’

마법에는 ‘격’이 존재한다.

하급 마법인 [바람 – 칼날]을 100년을 수련해도 중급 마법인 [베어라 – 바람­ 칼날]을 절대로 넘어 설 수 없다.

그렇기에 삼류 마법사와 일류 마법사가 동시에 하급 마법을 사용했을 때 정확도나 영창 속도, 혹은 마력 배분에서는 차이가 날망정 마법 자체의 위력에서는 크게 차이 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마법사들은 더 상위의 마법을 배우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더 뛰어난 마법이기에.

하지만 지금 유진이 저지른 일은 그 마법의 법칙을 완전히 박살 내버렸다.

「중급 마법을 뛰어넘는 하급 마법」

이건 마법의 역사를 통째로 바꿀 사건이었다.

“...이건 내가 사용한 [베어라 – 바람­ 칼날]의 흔적이다. 혼선을 줘서 미안하군.”

잠시 고민하던 로레오스가 이 일은 감추기로 했다.

마법사 중에는 마법 그 자체에 홀려 정신이 나간 존재가 많다.

만일 이런 게 가능하다는 걸 알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유진을 손에 넣으려고 하는 놈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러니 유진이 스스로를 지킬 힘을 기를 때까지는 이 일을 가슴 속에 묻어두기로 했다.

“아, 역시…. 죄송합니다.”

“멍청하긴! 당연한 거잖아! 왜 로레오스 교수님을 귀찮게 만들어. 하급 바람 마법으로 이런 상처가 남을 리가 없잖아!”

“...그래도 분명 마법 흔적이 하급 바람 속성이랑 중급 대지 마법…. 아! 로, 로레오스 교수님을 의심하는 건 당연히 아닙니다.”

“이 멍청아! 됐으니까 당장 가서 흔적이나 찾아와!”

“네, 넵!”

등 뒤로 떠드는 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로레오스는 유진을 자랑스럽게 바라보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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