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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차 히로인이 조교를 기억함-23화 (23/354)

〈 23화 〉 루시아는 웃고 있다 (6)

* * *

비비안에게 있어 구슬을 찾는 건 놀라울 정도로 쉬웠다.

어째서 이걸 시험 문제로 냈는지 이해하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저 3개의 구슬을 찾는 게 진짜 시험 문젠가?’

그나마 조금 감지하기 어려운 3개의 구슬을 찾는 거라면 이해가 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가장 점수가 높을 것 같은 구슬은 시작 위치와 완전히 반대 쪽에서 느껴졌다.

평소의 비비안 같았으면 바로 포기했겠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유진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아보자.

그런 마음을 가지고 구슬을 찾으러 갔다.

하지만 비비안이 구슬을 향해 열심히 걸어가고 있을 때 구슬의 마력은 갑자기 사라졌다.

...마치 자신을 가지고 노는 것 처럼.

‘이게 뭐야….’

이번에야말로 노력해보려 했는데….

갑자기 사라지다니 억울하고 분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다 포기하고 아무 구슬이나 주워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두 번째 구슬은 남아있었다.

그래서 걷고, 걸었다.

약해 빠진 체력으로는 조금만 걸어도 휴식이 필요했다.

징그럽기 짝이 없는 센트피디아와는 싸울 자신이 없었으니, 멀리 둘러서 피해 다녔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는 시간이 더 걸렸지만, 유진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찾았다!”

그렇게 노을이 질 무렵까지 돌아다니다 발견한 은색 구슬.

구슬은 제법 높은 나무에 박혀있었다.

“흐읏..!”

발돋움해서 손을 뻗어보지만 닿지 않는다.

“다시…. 흣!”

손을 길게 뻗고 폴짝 뛰어오른다.

그렇게 몇 번이고 반복한 끝에….

탓­!

손끝으로 구슬을 쳐낼 수 있었다.

“찾았다….”

혹시나 잃어버릴까 서둘러 떨어진 구슬을 주웠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뭔가를 해낸 기분이었다.

별거 아니었지만 멍청한 나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기뻤다.

그때였다.

“크르르─”

등 뒤에 거친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늑대’가 있었다.

──까아아아아아악!

본능적으로 내지른 비명.

‘...어, 어째서?’

처음에는 부정했다.

시험장에 저런 위험한 마물이 있을 리 없지 않은가.

환각이다.

착각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물러나려고 했지만….

까득─

끔찍한 소리가 비비안을 현실로 끌어냈다.

그때야 비비안은 늑대가 씹고 있는 게 무엇인지 눈치챘다.

인간의 손.

튀어나온 손가락 끝에 걸린 건 학생들에게 나눠준 반지였다.

까드득─

단숨에 남은 손으로 집어삼킨 늑대는 천천히 비비안에게 다가왔다.

“시..싫어,”

뒷걸음질을 쳐보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다.

...도망칠 수 없다는걸.

코앞까지 다가온 늑대가 앞발을 높게 치켜든다.

‘...싫어...누가...제발... 도와줘.’

비비안이 두 눈을 질끈 감고 기도했다.

....그리고

──콰앙!

유진이 나타났다.

***

‘씨발...’

존나 무겁다.

한 번의 공격으로 바로 서열 파악했다.

이건 절대로 못 이긴다.

염동력을 몇 번이나 겹쳐 방어막을 만들고, 중간에 바람 칼날로 위력마저 줄였는데도 간신히 멈춰 세웠다.

“크르르─”

사냥을 방해받아 화났는지 늑대가 이빨을 드러내며 그르렁거린다.

무섭다.

분명 게임 속에서는 자유롭게 성장하게 놔둬도 중급 마물 수준이었는데 도대체 뭘 처먹었는지 벌써 중상급까지 올라갔다.

‘...생각은 나중에 하자.’

어차피 지금은 저 늑대가 어떻게 성장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일단은 살아남아야 한다.

사실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원래 이런 게임이지 않았던가.

모르면 죽어야 하는 좆망겜.

아무래도 내가 알지 못한 이벤트가 작용한 모양이다.

이제 탐색은 끝났는지 늑대가 서서히 내게 다가온다.

「바람─칼날」

쏘아낸 마법이 늑대의 가죽을 베었다.

“크르르─”

상처를 바라본 늑대의 눈빛이 사나워진다.

인간으로 치면 커터칼에 피부가 베인 정도일까, 조금 아프고 거슬리지만...

충분히 무시 할 만 했다.

“크아아아!”

달려오던 늑대가 갑자기 허공을 물어뜯는다.

[바람 ─ 칼날]

[염동력 (Rank E)]

마법은 무시했지만 염동력도 무시 할 수 있을까?

염동력으로 날카롭게 벼린 칼날이 늑대 가죽을 뚫었다.

상처도 깊고 피도 좀 뿜어져 나오는 거 보니 이건 과도 정도는 되겠다.

치명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시할 수는 없다는 거다.

"크르르그..."

뒤로 물러나 공격 한 상대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늑대.

「바람─칼날」

[염동력 (Rank E)]

그런 늑대를 향해 또다시 마법과 고유능력을 동시에 사용했다.

촤아악!

이제야 늑대는 공격하는 것이 나라는 걸 눈치챈 모양이다.

“크르르…!”

잔뜩 화가 났는지 콧김을 거칠게 뿜고 있다.

「바람─칼날」

영창을 하자 늑대가 움찔거리며 물러났다.

사실 이번에는 마법만 사용했는데 말이다.

‘이게 앞으로 몇 번이나 통할까.’

처음에 염동력을 무리해서 사용하느라 정신력을 꽤 많이 사용했다.

...마법보다는 확실히 사용 가능 횟수가 적을 만큼.

‘그래도 이 정도면….’

그래도 지금처럼 최대한 시간을 끈다면 교수가 올 때까지는 견딜만 했다.

「바람─칼날」

늑대가 다가오려는 낌새를 보이자 다시 영창 했다.

타다닷­

그러자 늑대가 등을 보이며 숲 속으로 달려갔다.

“도망...?”

고작 이 정도에 중상급 마물이 도망친다고?

...그럴 리가 없다.

플레이어의 직감이 말했다.

조심하라고.

그리고 동시에 뒤에서 느껴지는 불길한 기운.

콰앙­!

정답이었다.

저 늑대 새끼가 한 바퀴를 돌아와 비비안을 노렸다.

“아아...유, 유진아…!!”

“으으윽...!”

능력 배분 따위는 생각도 않고 급하게 염동력을 사용했다.

그래도 충분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는데 생각이 딱 맞았다.

‘...끄으...비비안 앞에 막아서길 잘했지.’

그나마 다행인 건 부상이 그렇게 깊지는 않다.

송곳니 끝이 팔뚝에 살짝 박힌 정도.

이 정도면 ‘세계수의 축복’으로 회복이 가능하다.

[바람 ─ 칼날]

영창을 하자 다시 뒤로 물러나는 늑대 새끼.

나를 노려보는 눈이 마치 ‘이래도 싸울 수 있겠냐고’ 비웃는 거 같다.

‘아주 똑똑한 개새끼네….’

영악한 짐승이라는 평가가 딱 맞다.

내가 견딜 수 있다고 말한 건 혼자 있을 때의 경우다.

지금처럼 비비안을 지키면서 싸우면 얼마 견디지 못해 죽고 만다.

그러니까 방해물을 치워야 했다….

“...비비안.”

“나, 나..때문에...유진이...”

비비안의 멘탈로는 이 상황을 견디기 어려웠는지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렇다고 쳐다볼 여유도 없다.

시선을 돌리면 저 늑대가 바로 달려들 테니까.

내가 시선을 늑대에 고정한 채로 다시 소리쳤다.

“정신차려 비비안 베아트리스! 그러고도 네가 내 동생이야!”

“네..넷...!...어?”

혹시나 해서 해봤는데 효과가 끝내준다.

비비안의 언니 말투로 말하자 비비안이 바로 정신을 차린다.

“비비안, 일어날 수 있겠어? 미안하지만 일어날 수 없어도 일어나야 해.”

“...응...아, 알았어.”

그래, 죽기 싫으면 일어나야지.

일어난 비비안이 내 옆에서 어설프게 싸울 준비를 한다.

“...아니, 너는 싸우지 말고 숲 밖으로 나가.”

“하, 하지만... 유진은..”

“네가 여기 있으면 내가 제대로 싸울 수 없어.”

“...그, 그래도 혼자서는….”

비비안은 루시아만큼 내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다.

게다가 착하기는 더럽게 착하니 내가 비비안을 위해서 싸우고 있는 지금은 도망치지 못할 거다.

...그러니 도망칠만한 명분을 줘야 한다.

“부탁이야, 비비안. 가서 로레오스 교수님을 불러와 줘. 그래야 둘 다 살아. 내가 싸우고 있다고 말하면 바로 오실 거야.”

“...유...진아..”

“나도 오래 못 버티니까! 빨리!”

내가 소리치자 그때서야 비비안이 서서히 발을 움직인다.

“..유, 유진아...미...미안해. 내가..꼭..불러올테니까..”

"크르를­!"

비비안이 도망치는 걸 보는 늑대가 비비안에게 달려든다.

「바람─칼날」[염동력 (Rank E)]

“어딜 가려고.”

늑대의 콧등이 염동력에 잘려나갔다.

피가 솟구치는 게 제법 아파 보였다.

“넌 나랑 놀아야지.”

"크르아아아...!"

분노에 찬 늑대의 울음소리가 소름 끼친다.

툭, 투두둑.

때마침 기가 막히게 비까지 쏟아져 내린다.

‘자…. 과연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내가 늑대를 노려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

비비안이 달렸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빗속에서 자신의 약함을 저주하며 달렸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중간에 넘어져서 피가 철철 흘렀지만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유진을 살려야 했다.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자신을 대신해 상처 입은 유진을 떠올리자 울음이 터져 나왔다.

“하으..하으...아아아아!”

나는 왜 이렇게 약한 걸까.

나는 어째서 이렇게 쓸모없는 걸까.

내가 진작 포기했다면….

구슬을 찾겠다고 시간을 끌지 않았다면….

늑대를 마주칠 일도, 유진이 다칠 일도 없었을 텐데...

비비안은 달려가며 생각했다.

‘나는….’

비비안은 쓸모없는 존재였다.

***

로레오스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비 내리는 숲을 달렸다.

‘빌어먹을 관리자 새끼들!’

처음 반지의 신호가 사라졌을 때 움직였어야 했다.

하지만 시험 관리자들이라는 것들은 신호가 ‘사망’이 아니고 ‘소멸’이라는 이유로 단순한 오류라고 말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과 ‘위험’ 신호들이 연속으로 발생했고, 그것을 보고서도 관리자들은 아직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오류일 가능성이 크다고 막아섰다.

분노한 로레오스가 혼자서라도 들어가겠다고 하니 규정상 불가하다는 말만 늘어놓았다.

그렇게 로레오스가 폭발하기 직전에 그 아이가 나타났다.

─교수님, 숲에 마물이 나타났습니다.

결국,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건 우르엘라가의 차기 가주의 말을 듣고 난 뒤였다.

‘...그때 두들겨 패서라도 갔어야 했는데.’

멍청하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 관리자들의 얼굴을 떠올리자 위가 뒤집히는 느낌이다.

탓탓탓­

그때, 발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비비안이 보였다.

척 보기에도 비비안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기에 로레오스는 그녀를 붙잡아 세웠다.

“비비안!”

“아아아!! 놔! 이거 놔! 놓으라고!”

“비비안! 정신 차려라! 나다!”

“놔! 유, 유진이 위험하다고!!”

「바람─칼날」「대지─창」

전장에서도 쉽게 볼 수 없을 만큼 찰나의 순간에 펼쳐진 고속영창.

막아선 것이 로레오스가 아니었다면 당했을 것이다.

간신히 마법을 피해낸 로레오스가 비비안의 손목을 붙잡았다.

“진정해라 비비안! 진정하고 날 봐라!”

“하으...하....놔...놓으라고...! 제발..!”

로레오스가 자세히 살펴보니 비비안은 저체온증, 탈진, 마력 부족 등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런 몸 상태로 어떻게 쓰러지지 않고 뛰어가고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로레오스는 작은 불꽃을 만들어 주위를 따듯하게 데우고, 외투를 벗어 비비안에게 걸쳐주었다.

“비비안 진정해라. 괜찮다. 내가 왔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진정한 비비안이 정신을 차렸다.

“하으...하...로, 로레오스..교..교수님..?”

“그래, 나다. 그러니 말해봐라. 무슨 일이냐.”

“흐윽...유..유지니..혼자서...저 때문에...마물이랑...다쳤는데...”

비비안이 횡설수설 내뱉었지만, 전장에서 이 정도 공황상태는 일상이었다.

상황을 파악한 로레오스가 비비안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알았다. 알려줘서 고맙구나. 그리고 비비안, 네 몸 상태는 한계다. 여기서 가만히 다른 교수들이 찾으러 오는 걸 기다리고 있어라.”

“그, 그치만...유, 유진이..”

“네가 따라와 봐야 방해밖에 되지 않는다. 이건 담당 교수로서의 명령이다. 여기서 얌전히 기다려라.”

“하, 하지만...나 때문에...유진이...아..아으...아아아아아아...”

탐지기를 살펴보니 유진이 있는 위치는 얼마 멀지 않았다.

“...대신 내가 약속하마.”

굳은 얼굴로 로레오스가 품속에서 가죽 장갑을 꺼내 손에 끼웠다.

“반드시 유진을 찾아서 돌아오겠다고.”

마치 그가 전장에 서 있던 그때처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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