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루시아는 웃고 있다 (5)
* * *
‘뱀’이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배가 고팠다.
‘늑대’를 놓친 것이 문제였다.
상처를 입혀놓고 힘이 빠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설마 도망칠 땅굴을 파놓았을 줄이야.
늑대의 피 냄새를 추적해 이 숲까지 따라왔지만, 동면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 사냥마저 실패한 탓에 남은 힘이 얼마 없다.
먹이가 필요했다.
평소라면 입에 넣지 않을 저급한 먹이라도 지금은 당장 뱃속에 처넣어야 했다.
“....”
날름거리는 혀끝에 먹이의 냄새가 잡혔다.
─스스슥
뱀은 먹이의 냄새를 따라 땅을 기었다.
***
냄새를 쫓아온 곳에는 황금색의 털을 가진 인간 암컷이 있었다.
“흠흐음♬”
암컷은 아무런 경계도 없이 털을 손질하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한입에 집어삼킬 수 있을 것 같은 모습.
하지만 뱀은 그러지 않았다.
뱀이 웃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웃을 수 있다면 지금 같은 얼굴을 했을 것이다.
가까이서 풍기는 냄새를 맡아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무리 배가 고프더라도 저것은 가볍게 사냥할만한 먹이가 아니었다.
저건 평생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최상급의 먹이.
...분명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는 미식이 될 것이다.
뱀은 입맛을 다시며 생각했다.
절대 늑대처럼 도망치게 할 순 없다.
그러니 단숨에 집어삼킨 뒤 입안에서 천천히 음미하자고.
뚜, 뚜드득, 뚝
먹이를 맛볼 생각에 흥분한 근육이 수축하며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이 확장된다.
뱀의 몸이 둘둘 말리며 한계까지 근육을 당겼다.
그리고...
단숨에 몸을 풀어내며 은밀하고 신속하게 달려들었다.
촤악!
뱀이 아가리를 쩍 벌리고 먹이의 머리통을 삼키려고 하는 순간.
“정말….”
먹이가 눈을 떴다.
“.....!”
뱀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포식자와피식자의 위치를 착각하다니.
그만큼 이 암컷의 의태는 완벽했다.
“...기껏 머리카락이 잘 땋아져서 기분이 좋았는데 말이죠.”
의태가 벗겨진 ‘그것’을 보자 온몸의 세포가 경고했다.
──도망쳐라.
그것은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격이 높은 포식자였다.
행동은 빨랐다.
이처럼 빠른 판단력이야 말로 하급 마물로 태어난 뱀이 상급 마물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뱀이 아가리를 닫고 그대로 몸을 돌려 달아났다.
...그러려고 했다.
「깨지고─부서져라」
황녀가 검지를 겨눈 뱀의 꼬리 부분부터 거울이 깨지듯 실금이 생기더니, 한순간에 뱀의 온몸으로 금이 퍼져나간다.
쩌저적!
그리고 뱀은 가루처럼 부서져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아, 정말! 머리카락을 다시 땋아야 하잖아요.”
한순간에 뱀을 처리한 황녀가 볼을 부풀리고 툴툴거렸다.
“왜! 꼭 귀찮은 일은 같이 일어나죠?”
그렇게 말한 황녀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주저앉은 채 소리가 새지 않도록 입을 틀어막고 있는 학생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화...황녀 전하...”
카르네아 아카데미 1학년 1반의 학생 브레이든이었다.
1반에서 몇 안 되는 평민인 브레이든은 황녀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다른 귀족들이 그를 평민이라고 깔보는 와중에도 황녀만큼은 그를 편견 없이 대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존경했던 황녀가 지금은 어째서 몸서리치게 두려운지 알 수 없었다.
황녀 전하께서는 마물 하나를 죽였을 뿐이다.
사용한 마법이 특이하기는 했지만, 그건 황실의 혈족 마법이었다.
딱히 숨겨진 것도 아니고, 마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물론, 마법의 위력은 알려졌던 것과는비교 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
하지만결국, 황녀 전하께서는 마물에게서 학생들을 지킨 것이다.
잘못은커녕 찬양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일.
...그런데도 황녀가 참을 수 없게 두려웠다.
마치 한없이 인간과 닮았지만, 그래도 분명 인간이 아닌 무언가를 보는 것처럼...
“음...그러니까...이름이 뭐였더라?”
“사, 살려주세요. 전하...제...제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브레이든은 빌었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저 빌었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니까.
“도대체 뭘 말하지 않는다는 걸까요?”
“그, 그건...”
대답할 수 있을 리 없다.
스스로도 어째서 황녀를 두려워하는지 모르니까.
그저 보아서는 안 되는 걸 보았다는 직감뿐이었다.
“흐음…. 모르나 보네요.”
“제...제발... 황녀 전하...”
애원하는 브레이든에게 다가가며 황녀가 부드럽게 속삭였다.
“당신, 재미없네요.”
* * *
“...살아있네?”
내가 약간 어리둥절한 느낌으로 눈을 떴다.
어떻게 ‘세계수의 축복’을 손에 넣어서 살아난 것은 알겠다.
빛나던 씨앗도 보이지 않고 그것 말고는 살 방법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크게 다쳤는데 어디하나 뻐근하거나 괴롭진 않은 건 신기했다.
아니, 그 정도 수준이 아니다.
몸이 지금까지 없었을 정도로 개운했다.
지금이라면 로레오스의 특훈을 받아도 녹초가 안될 것 같았다.
‘...아니, 그건 아닌가?’
어쨌든 새로운 특성을 얻었기에 오랜만에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 : 유진 칼리오페]
[직업 : 고유능력자]
[칭호 : 없음]
[능력치]
근력 11 ▶ 13 민첩 10 ▶ 13 체력 10 ▶ 14
지력 10 ▶ 11 마력 10 ▶ 11 행운 20 ▶ 25
[스킬]
[염동력 (Rank E)]
[바람─칼날 (하급 바람 원소 마법)] [‘루시아’에게서 조교사로 생성됨, 위력 60%]
[특성]
[세계수의 축복 (Rank C)]◀New!
[침대 위의 왕자 (Rank B)]
[조교사 (Rank EX)]
능력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좋은 의미로 말이다.
세계수의 축복을 획득해 능력치가 오를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상승량은 예상을 훨씬 초과해있었다.
“...개이득이네.”
이게 만화에서나 보던 초회복이라는 건가? 죽음에서 부활하면 강해지는 그런거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죽음을 코앞에 두는 건 다신 경험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종합능력치로 보면 이제야 겨우 아카데미 최하위에서 중하위로 올라왔을 뿐이다.
하지만 지난 몇 주 동안 특훈을 하며 겨우 1밖에 오르지 않았던 능력치가 이렇게나 오른 건 분명 엄청난 이득이었다.
‘특성은..’
이어서 세계수의 축복도 확인했다.
세계수의 축복 (Rank C)
세계수의 축복으로 이루어진 씨앗입니다. 잘 키워낸다면 뭔가 좋은 일 있을지도?
모든 능력치가 조금 상승합니다.
회복능력이 적당히 상승합니다.
세계수의 축복을 받습니다.
이 부분은 게임과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게임에서도 딱 이 정도 설명이 적혀있었으니까.
'괜찮네.'
고생한 만큼의 보답은 있었다.
이제 확인 할 만한 것은 다 확인한 것 같다.
얼마나 기절했었는지 모르지만, 밤이 오기 전까지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일단 나가자.”
***
상승한 능력치의 효과가 확실히 느껴졌다.
돌아 나가는 것은 들어올 때의 절반의 시간도 안 걸린 것 같다.
밖으로 나와 기지개를 켜며 몸 상태를 확인하니 실소가 나왔다.
“엉망이네...”
나와 고블린의 것이 뒤섞인 피가 온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었고, 교복은 붕대로 쓰느라 제대로 남아있는 부분이 없었다.
하지만 몸단장이나 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아카조교사’에서 늑대가 본격적으로 사냥에 나서는 것은 해가 완전히 지고 난 이후다.
루시아에게도 노을이 질 무렵에는 교수들을 불러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노을이 지고 있었다.
앞으로 몇 시간 안으로 늑대가 움직인다는 거다.
확실히 말하지만, 나는 늑대를 상대 할 생각이 없었다.
늑대를 잡는다고 특성이나 아이템을 주는 것도 아니고 필요한 건 다 얻었으니 내가 직접 나설 필요는 없다.
세계수의 축복은 내가 먹고, 사냥은 교수가 하는 완벽한 계획이다.
나는 대충 흙먼지를 털어내고는 숲 밖을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멀리서 익숙한 은발이 보였다.
루시아였다.
내 명령대로 이제 교수를 부르러 가는 것 같았다
빠르게 주위를 둘러본 내가 작게 루시아의 이름을 불렀다.
“...루시아.”
작게 불렀는데도 그걸 용케 들었는지 루시아가 뒤를 돌아본다.
“...유지...주인님!”
연기를 위해 냉정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던 루시아의 가면이 순식간에 벗겨진다.
...주위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했기에 망정이지 주인님이라 부른 것을 들켰다면 큰일 날뻔했다.
“아..아...주, 주인님.. 괜찮으세요? 어, 어떡해…. 설마 벌써 늑대랑 싸웠나요?”
“아니다. 신경 쓸 필요 없다.”
“그럼... 도대체 뭐랑 싸운건가요...어째서...또 혼자...”
패닉 상태에 빠진 루시아가 내 몸을 마구 더듬으며 상처를 찾는다.
“....”
아무래도 내가 뭔가 대단한 것과 싸운 것으로 착각하는 모양이다.
...차마 이 상황에 고블린이랑 싸우다 죽을 뻔 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주인님...이렇게 다치셨는데...나는...왜...또...죽여..거야..”
눈에 초점이 사라진 루시아가 중얼거리는 게 조금 무섭다.
어깨에 힘을 살짝 줘서 떼어내려고 하지만 루시아는 밀려나지 않는다.
“루시아.”
“...반드시...죽여...”
“루시아!”
“...네...주인님.”
내가 강하게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는지 루시아가 내 얼굴을 바라본다.
그리고 또다시 루시아의 푸른 눈동자에 물기가 고인다.
“주인님...얼굴에도 피가...”
“괜찮다고 말했을텐데. 그보다 내가 시킨 일은 제대로 했겠지.”
“흑...네…. 눈에 띄는 대로 지네 새끼도 태워 죽였고, 흐윽... 구슬은 찾는 대로 다른 학생들에게 나눠줘서 돌려보냈어요.”
“...그래, 수고했다.”
전부 계획대로 이루어진 모양이다.
이제 숲을 빠져나가서 교수를 불러오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게 완벽하게 끝이 난다.
...그러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말이다.
짹째째째잭!
그 순간 새들이동시에하늘 위로 날아오르며 위험을 경고한다.
늑대의 본격적인 움직임을 알리는 신호였다.
‘...어째서?’
내가 하늘을 바라보지만, 분명 해는 아직 저물지 않았다.
시간은 남았단 말이다.
──까아아아아아악!
그때 울려 퍼지는 여자의 비명소리.
....빌어먹게도.
정말 빌어먹게도 익숙한 목소리였다.
‘...비비안!'
비비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살려야 한다.
내가 직업을 고유능력자로 고른 것도 비비안의 공략이 전제되었기 때문이다.
비비안이 없다면 내가 계획한 모든 것이 틀어진다.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달려나가며 내가 루시아에게 명령했다.
“루시아! 당장 학생들을 숲 밖으로 대피시키고 교수진을 불러와라! 긴급사태다!”
“주, 주인님! 저도 주인님과 같이….”
“됐으니까 명령을 쳐 들으란 말이다! 이 병신 같은 년아! 아니면 나를 죽게 만들 셈이냐!”
말이 심한 것 같아도 어쩔 수 없다.
말싸움할 시간도 설득 할 시간도 없었다.
“...네... 주인님…. 부디 무사하세요.”
피가 흐르도록 입술을 깨문 루시아가 떠나는 걸 보자마자 나는 다시 달려나갔다.
‘제발...! 늦지 말아라!’
─반드시
반드시 비비안을 구해야 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