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회차 히로인이 조교를 기억함-13화 (13/354)

〈 13화 〉 이 멋진 마을에서 첫 경험을 (1)

* * *

‘으에엑….’

토할 거 같다.

하늘이 노랗고 입에서는 단내가 풀풀 난다.

골인 지점에 들어오는 순간 쓰러지듯이 땅바닥에 드러누웠다.

“엄살 부리지 말고 일어나!”

로레오스 교수가 소리쳤다.

하지만 특훈을 하는 동안 지켜봐서 그런가, 내가 엄살 부리는 게 아니라 진짜 한계라는 걸 아는지 강제로 일으키지는 않았다.

그렇게 잠깐의 꿀 같은 휴식을 즐기고 있자 로레오스가 다시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한다. 당장 일어나, 마법 훈련장까지 걸어가라.”

이젠 진짜 일어나야 한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가능한 느릿하게 마법 훈련장 걸어갔다.

반항해봤자 소용없다는 건 이미 지겨울 정도로 경험했기도 했고, 고통스러운 육체 훈련과 달리 마법 훈련은 재미가 있다.

“「화염─구」” “「바람─칼날」”

훈련장에 들어서자마자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주문 소리.

나도 내게 배정된 자리에서 서서 정면을 바라보았다.

마법의 훈련 방식은 클레이 사격과 비슷하다.

적당한 거리에서 튀어나오는 허수아비 골렘을 마법을 사용해 공격하면 된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이다.

퉁­

허수아비가 튀어나오고 내가 영창을 외운다.

“「바람─칼날」”

내가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허수아비를 향해 쏘아졌다.

샤악!

바람의 칼날은 허수아비의 몸통을 반 정도 파고들더니 사라졌다.

‘나이스.’

다른 학생들처럼 허수아비를 완전히 반으로 갈라내기에는 위력이 60%에 불과해 불가능했지만….

‘오히려 좋아.’

정식 마법이 아닌 스킬로서 사용해서 그런가, 다른 마법사들처럼 복잡한 계산을 할 필요 없다.

“「바람─칼날」”

그냥 이미지를 떠올리고 주문을 외우는 것만으로 자동으로 마력이 담겨 나가니 오히려 정확도와 속도는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퉁­ 퉁­

“「바람─칼날」” “「바람─칼날」”

점점 더 빠른 속도로 튀어나오는 허수아비.

그때마다 내가 쏘아낸 마법에 맞아 쓰러진다.

마치 리듬 게임을 하는 것 같은 재미가 있다.

“「바람─칼...」”

그렇게 계속 마법을 쏘아내고 있자 어느 순간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은 두통이 밀려오더니 시야가 흐릿해진다.

“무슨 일이지?”

비틀거리긴 했지만, 간신히 쓰러지는 건 넘겼다.

하지만 그 모습을 봤는지 로레오스가 황급히 다가와 물었다.

‘아...’

아무 생각 없이 마법을 난사했더니 벌써 마력이 바닥났다.

하급마법을 몇 번 쐈다고 이러다니 앞날이 마법사로는 앞날이 갑갑했지만….

‘뭐 어때.’

일단 범용성이 높은 마법사로 등록해놓는 게 편할 거 같아 마법사로 등록했지만.

결국, 나는 고유능력자다.

마력보다는 정신력이 중요하다 이 말이다.

“마력이 바닥나서 현기증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고작 이걸로 말이냐.”

허허, 이 새끼 인성 봐라?

마력이 바닥났다니까. 고작 이걸로라니.

내 마력이 이것밖에 안 되는데 어쩌라는 건지.

그러나 속마음은 속마음이고 입은 다르게 떠들어댄다.

“...죄송합니다.”

카르오네 아카데미에서 교수는 무적이고 신이다.

무조건 잘 보여야 한다는 뜻이다.

별로 잘못한 게 없어도 죄송하다고 말한다.

“...전장에서는 자기관리를 못 하는 것도 죄다. 벌로 훈련을 마친 후 쓰러진 허수아비 전부 회수해오도록.”

말 취소다.

신은 개뿔.

그냥 시발놈이다.

***

‘...아무래도 내가 지나친 기대를 한 모양이군.’

땀을 뻘뻘 흘리며 허수아비를 정리하는 유진을 보며 로레오스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60%…. 잘 쳐줘야 70% 정도.’

그게 유진이 사용하는 마법의 위력이었다.

심지어 바람 속성 하나밖에 사용하지 못하면서, 그것도 하급마법, 그중에서도 바람 칼날 하나만을 사용할 수 있었다.

‘아쉽군….’

칼리오페 가문 정도 되면 로레오스 같이 귀족들의 허명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소문이 들려온다.

─북방을 수호하는 제국의 방패.

그것이 칼리오페 가문이다.

그래서 유진에게도 숨겨놓은 한 수가 있을 줄 알았는데.

‘의지뿐이었나….’

분명 압도적인 격차에도 굴하지 않는 의지만큼은 감탄스러웠다.

하지만 가끔 그런 경우가 있다.

의지에 재능이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말이다.

‘정말…. 아쉬워.’

허수아비를 상대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유진의 상황 판단력과 순발력은 상위권이다.

하지만 마법에 대한 재능이 극단적으로 부족했고, 마나량과 체력도 평균 이하였다.

“하아...이걸로..마지막..입니다..”

땀에 쩔은 유진이 허수아비를 가지고 돌아왔다. 다른 학생들이 전부 돌아갔음에도 끝까지 남아 회수해온 것이다.

보통 귀족자제라면 이런 대우에 불만을 느끼고 가문의 위세를 들먹일 만도 한데 유진에게는 전혀 그런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모습조차 로레오스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래도 말해야 한다.’

유진을 위해서라도 확실히 말해줘야 한다.

─너는 전장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특별 훈련부터 그만두게 만들어야 한다.

“유진, 이번 주말에는 단련장에….”

단련장을 언급하는 순간 유진이 입술을 꽉 깨무는 것이 보였다.

...말문이 막힌다.

유진 자신도 재능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는 거다. 그런데도 끝까지 남아 특별 훈련을 받을 만큼 간절하다.

차마 유진의 눈을 보며 말할 자신이 없어 시선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오지 않아도 좋다. 다음 주에 있을 중간고사에 대비해라.”

“...알겠습니다.”

중간고사 핑계를 대다니..

참으로 오랜만에 비겁한 행동을 했다.

그러나 더 이상 특별 훈련은 없다고 말하기에 유진의 모습이 너무나 보기 힘들었다.

‘차라리 둘이 반대였다면….’

로레오스의 머릿속에 보랏빛 머리카락을 가진 여학생이 떠올랐다.

「비비안 베아트리스」

유진 칼리오페가 재능이 의지에 미치지 못한다면 이 아이는 정반대였다.

비비안은 열정도 없고, 자신감도 없다.

그저 시키니까 한다.

딱 그 정도 수준이다.

그녀가 스스로 나서서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비비안에게는 재능이 있었다.

첫 만남에서 압력을 무의식적으로 흘려보낼 때부터 심상치 않다고는 생각했지만.

“「물─화살」” “「대지­창」”

분명 물의 속성만을 다루던 비비안은 어느새 대지의 속성마저 다루고 있었다.

물론, 아직은 둘 다 하급 수준이고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의 개수도 아카데미 1학년생 중에서는 평균에 불과하지만, 문제는 습득한 기간이다.

고작 반 학기도 안 되는 시간에 한 개의 속성을 통달하고 다른 속성마저 익히고 있다.

비비안의 마력을 다루는 재능은 5반에서 아니, 1학년 중 최상위권이라도 해도 좋다.

‘반대였다면….’

...차라리 둘의 재능이 반대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로레오스가 주먹을 쥐었다.

마음 같아서는 유진에게 더 많은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말해주고 싶었다.

노력한다면 너도 해낼 수 있다고.

만일 그가 어설픈 스승역을 자처했다면 그랬을 거다.

하지만 로레오스는 직접 전장을 몸으로 겪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전쟁에서는 ‘의지’와 ‘재능’이 모두 필요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의지가 없는 자는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죽어버릴 뿐이고 재능이 부족한 자는 아무리 의지가 있어도 금방 벽에 부딪히고 만다.

‘무언가 방법이 있으면 좋겠지만….’

괜찮은 척 하지만 축 처져있는 유진의 뒷모습을 보며 로레오스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

“유진, 이번 주말에는 단련장에….”

입술이 꽉 깨물어진다. 표정관리를 해야 하지만 쉽지 않았다.

이 새끼…. 오늘 좀 선을 많이 넘는다.

이 정도 했으면 좀 쉬어도 되는 거 아닌가?

또 주말에 단련장에서 시간을 보내라고?

하지만 로레오스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전혀 예상과 달랐다.

“...오지 않아도 좋다. 다음 주에 있을 중간고사에 대비해라.”

‘오, 개꿀!’

이라고 만세를 부르며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래서는 곧바로 단련장 직행이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 자리에서 벗어난다.

그렇게 완전히 로레오스 시야에 벗어났을 때 싱글벙글 웃으며 재빨리 기숙사로 돌아갔다.

‘그래도 사람이라고 시험 기간은 챙겨주네.’

마음속에서 로레오스의 평가가 약간 올라갔다.

「1학년 1학기의 중간고사」

루시아 루트를 탔을 때 1장 보스를 마주하는 장소이다.

이벤트 스토리는 어디서 들어봤을 정도로 뻔하다. 아카데미 안에서 중간고사를 치르던 중 예상치 못한 마물의 습격으로 학생들이 다치거나 죽는다.

물론 이미 알고 있기에 사건을 막으려면 막을 수 있지만….

‘...나한테는 반드시 필요한 이벤트다.’

이 이벤트를 통해서 신체 능력과 회복력을 상승시킬 수 있는 히든피스를 얻을 수 있다. 그건 앞으로 좆망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

‘어차피 이벤트는 자연스럽게 진행될 거고, 그 전에 조교 도구나 구해 놓아야겠지.’

중간고사 이벤트는 공략법이 정해져 있다.

주로 문제가 되는건 루시아의 돌발행동이었는데 이미 조교도가 한계를 찍을 정도니 명령만 내리면 문제없다.

그러니 중간고사를 고민 할 바에는 차라리 시간이 있을 때 마을에 가서 비비안 공략에 필요한 도구나 사는 게 나을 것이다.

"루시아."

“네. 주인님”

이젠 당연하다는 듯 내 방을 청소하고 있는 루시아.

사실 뭘 청소하는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열심히 청소했는지 어디를 만져도 먼지 하나 묻어나오지 않았고 바닥에는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는다.

“내일 아침 10시에 마차를 타고 마을에 갈 거다.”

상점은 오후에 6시쯤 열지만, 마을에서 아이템 구경도 하려면 미리 가 있는 게 좋을 거다.

“아, 네. 다녀오세여. 주인님.”

“...너도 같이 갈 거다. 눈에 띄지 않게 변장을 해서 나와라.”

"네…?"

그녀답지 않게 반문하는 루시아.

나는 루시아를 향해 인상을 쓰며 쏘아붙였다.

"...멍청한 년. 내가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죄, 죄송해여. 너, 너무 갑작스러워서."

시선이 요동치고 말을 마구 더듬는 게 마치 비비안이라도 보는 것 같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생각해보니 1회차 생활을 연기하라고 했으니 주말에 다른 친구와 약속이 있을 수도 있다.

‘...쯧, 기왕이면 데려가는 게 좋은데.’

돈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사치할 만큼 풍족하지도 않다.

그러니 루시아에게 빨아먹을 수 있는 건 빨아먹는 게 좋다.

루시아의 돈을 강탈하는 건 ‘1회차 때의 나’ 다운 행동이 아니라 할 수는 없지만, 같이 나가서 루시아가 가져다 바치는 건 자연스럽게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아, 아무 일도 없어여! 꼭 갈게여! 무슨 일이 있어도 갈게여!"

“...다른 약속이 있다면 혼자 다녀와도 된다.”

“아뇨! 꼭! 갈게여!”

확 하고 얼굴을 들이미는 루시아.

달콤한 루시아의 살내음이 코끝을 스친다.

갑자기 다가오니 심장이 마구 떨렸다.

내가 애써 태연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쯧, 물러나라. 허락도 없이 다가오지마라.”

"죄. 죄송합니다. ...그런데 주인님? 괜찮으시다면 오늘은 조금 일찍 돌아가도 될까여?"

“...맘대로 해라.”

어차피 마나도 체력도 바닥이라 당당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었다.

일찍 돌아가 준다면 나야 고맙다.

“네!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10시에 마차 정류장에서 뵐게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후다닥, 달려나가는 루시아.

저러다 넘어지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닌가 보다.

“하아.. 그럼, 내일 꼭 사야 하는 아이템은….”

루시아가 사라지고 나는 축 처진 몸을 이끌고 필요한 물건들을 떠올리며 욕실에 들어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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