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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변대훤(18) (41/41)

3. 변대훤(18)

진화는 없다. 난 알면서 문을 두드렸다.

집주인은 점잖은 미소로 날 맞이했다.

그곳에는 나처럼 정수리에 문신을 새기고 머리털을 민 지수가 있었다. 지수의 문신은 내 것과 달리 ‘변대훤 전용 수캐 M148-78’과 큐아르코드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지수의 새 이름 따위 내 관심 밖이었다.

지수는 개 주둥이 모양 마스크를 쓰고 족쇄를 찬 채 무릎 꿇은 자세였다. 호흡이 힘겨운 듯 거칠게 씩씩대는 소리가 정신 사나웠다.

저주받은 보디빌더처럼 우락부락해진 청동빛 몸에 핏줄이 비정상적으로 불거져있었다. 근육마다 칭칭 휘감은 핏줄기가 검거나 보랏빛이었다.

세련되고 날씬했던 장딴지에 볼링공만 한 알이 빡빡 섰다. 청동빛 종아리에 새긴 스타킹 문신을 보아하니 남은 평생 반바지를 입긴 그른 신세 같았다.

성기엔 무거운 추를 매달고 질질 끌었다. 좆끝엔 탑기 것보다 배는 더 큰 징과 공, 각종 보형물이 덕지덕지 삽입된 상태였다.

그 때문에 더는 인간의 생식기로 일컫기 어려웠다. 짐승의 것 같지도 않았다.

곤충과 기계의 결합처럼 보였다.

길게 늘어나 우글우글한 꽃상추 똥구멍을 활짝 피워서 발바닥에 올려놓은 모습이었다. 항문 날개에 꿴 쇠고리 피어스가 골반에 심어놓은 고정용 피어스에 쇠줄로 연결되어 케이블인 양 구멍을 양옆으로 쫙 잡아 벌렸다.

내 장미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거대한 크기와 고약한 악취로 압도하는 애널 라플레시아였다.

그랬구나. 지수의 붉은 밑살 무더기를 본 순간 깨달았다.

사고 후유증으로 성행위를 할 수 없는 게 아니었구나. 넌 나 몰래 다 하고 있었구나.

아르바이트 같은 건 한 적 없구나. 아니면 내 생각과 다른 아르바이트였겠구나.

탑기가 ‘변대훤 전용 수캐 M148-78’의 오른쪽 젖퉁이를 찌긋찌긋 잡아당겼다. 그럴 때마다 ‘변대훤 전용 수캐 M148-78’의 좆이 물총 쏘듯 좆물을 찍찍 쐈다.

“형 애인 어때. 많이 이뻐졌지?”

난 대답하지 않았다.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어떻게 인간 말을 할 수 있을까?

“어차피 병신된 후장 개조 좀 했어. 인제 형 거보다 더해. 무릎으로도 못 채워.”

“…….”

“자지는 거의 뭐 괴물이 돼버려서 난 안 했어. 형 거야. 형만 쓸 수 있게 해줄게.”

“…….”

“잘 왔어.”

“…….”

“우리 행복하자.”

내 안의 누군가가 과거와 현재, 두려운 미래까지 안다는 듯 내게 언뜻언뜻 속삭였다. 자꾸만 이 순간이 초래할 결과를 가르치려는 양 건방지게 지껄였다.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실수를 인정하고 솔직해지면 돼. 그래야 자신을 용서할 수 있어. 자신을 용서하지 않으면 이대로 죄책감에 잡아먹히고 말 거야. 양심은 거추장스러운 게 아니야. 도덕과도 상관없어. 양심은 그저 스스로 솔직한 마음이야. 힘들겠지만 한 번만 용기를 내. 그러지 않으면 자유롭지 못하게 돼버려. 잘못된 선택에 발목 잡혀서 스스로 구속하고 말 거야. 네가 만든 죄책감이 널 해칠 수 없게 해야 해. 그러니 네 마음이 내는 이 목소리를 들어. 다른 무엇에도 기대지 말고 네 마음인 날 믿어. 솔직함만이 멸망으로부터 널 구할 유일한 방법이야.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어. 스스로 솔직해지는 건 오직 자기 자신만 할 수 있어. 아주 형편없어도 좋으니까, 네 솔직함을 나한테 줘. 내가 힘을 얻어서 널 지킬 수 있게. 대훤아, 널 너무너무 사랑해.’

시끄러워.

난 사랑이 싫어. 내가 사랑을 좋아했으면 애초에 김지수 같은 걸 골랐겠어? 재미없긴.

난 듣지 않았다. 아니, 돌이켜보면 이 모든 건 내가 아니라 내 무의식 탓이었다.

무의식이 줄곧 지옥을 외쳐온 게 아니라면 이 결말을 맞을 수 있었을까? 선택 하나하나가 다 내 입맛에 따른 결과였다.

자업자득이었다. 그러니 어찌 불행하겠어?

좋아. 한번 솔직해져 볼게. 나, 즐겼어.

김지수 네가 날 두고 바람피울 때마다 비극의 주인공이나 된 듯 슬픔에 젖고, 어쩔 수 없는 척 네게 돈을 내주면서 천사표인 양 짜릿짜릿 거만 떠는 맛을 즐겼단 말이야.

“히히.”

웃음이 터졌다.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지수는 자신의 꼬리뼈 살점을 꿰뚫은 피어스에 매단 짐승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날 돌아보고 있었다. 청동빛 등 양쪽에 줄지은 링 피어스를 예쁘게 묶어놓은 리본을 나부껴서 리본체조를 했다.

구태여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지수와 내가 뜨거운 동료애로 연결된 순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너와 난 공범이야. 그러니 끝까지 가야지?

감정은 날 언제나 좌절하게 하는 원흉. 알고 싶지 않은 정보까지 귀띔해대는, 성가시기 그지없는 척척박사.

감정이란 민탑기나 김지수한텐 인생을 더 우아하게 꾸미는 축복일지 모르지만, 나 같은 족속에겐 한없이 잔인해서 죽기 전까지 외롭고 괴롭게 하는 저주일 뿐 아닌가?

인제 감정 따위 필요 없었다. 사람 아닌 내게 필요한 건 명령, 그리고 전립샘이 아작나 느끼지 못할 때까지 뜨겁게 달구고 망가트려 줄 거대 수컷 음경 고기였다.

군더더기 한 번 없이 단정하게 움직였다. 모자와 사람 옷을 차례차례 벗어서 개놓았다.

내 진정한 주인께서 말을 잃고 턱을 괴셨다. 입가를 문지르고 소리 없이 경탄하셨다.

뿌듯했다. 마침내 마음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주인님 댁 축사에 스스로 기어들어 갇힌 듯 속이 편안했다.

감히 고개를 들어 주인을 올려다볼 수 없었다. 그러나 눈으로 보지 않아도 주인께서 쉬이 말씀하지 못하실 만큼 크게 감동하셨다는 사실만은 찌릿대는 항문과 둥둥거리는 전립선이 내게 열렬히 고하고 있었다.

어쩌면 주인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든 듯했다. 그러나 감격의 눈물 같은 건 사람 아닌 내게 더는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주인께서 품속에 손을 집어넣으셨다. 그리고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셨다.

주인께서 꺼내신 건 항공권 셋이었다. 주인께서는 그중에 한 장을 들어 보이시고 다시 품에 넣으셨다.

한 장은 내게 주셨다. 마지막 한 장으로는 ‘변대훤 전용 수캐 M148-78’을 가리키고 내게 건네셨다.

“이건 형 맘대로 해.”

주인께서 잡으신 목줄과 함께였다.

“이것도 내가 형 주는 선물이니까.”

끼잉. 낑.

소리가 나는 쪽을 보았다. ‘변대훤 전용 수캐 M148-78’이 동물적 본능으로 불길함을 감지한 듯 슬프게 울었다.

말은 필요 없었다. 무릎을 꿇었다.

동전 한 닢 남기지 않고 완전무결하게 처분한 전 재산을 주인 앞에 내바쳤다.

쾅!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이마를 대리석 바닥에 깼다. 새 주인을 향한 충성심의 표현이었다.

선지피가 흘러나오는 모양이었다. 뜨뜻하고 끈적한 액체가 이마 밑에 찔찔 고였다.

입꼬리가 길게 기어올랐다. 내 까까머리는 정수리에 새긴 글자를 여권처럼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중이었다.

【……전 세계가 K-애국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피 모으기 운동’과 ‘장기 모으기 운동’에 이어 ‘은 모으기 운동’, 그리고 ‘다시 한번 금 모으기 운동’이 한창인 가운데 평화와 번영을 위한 케이팝 은빛 콘서트 특별 생방송 현장에…….】

집주인이 틀어놓은 티브이에서 내내 금과 은에 관해 떠들었다. 그건 어느 성인물보다 더 날 흥분에 못 견디게 하는 내용이었다.

김지수가 내 금고를 털어서 민탑기와 함께 보라보라로 여행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법처럼 금값이 폭등했다. 급작스러운 CBDC로의 전면 전환 때문이었다.

금값은 오늘로써 여덟 배가 넘게 뛰었다. 은은 여든여덟 배가 뛰어 금보다 비싼 금속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모든 고통과 좌절은 날 우울하게 하지 못했다. 김지수가 허무하게 탕진해버린, 어마어마한 이익이 될 수 있었던, 훗날 우리 행복을 위해 차곡차곡 모으고 지켜온 성의가 물거품이 돼버렸단 생각을 하자 좆나 꼴렸다.

애송이들. 쯧쯧.

이렇게 하지도 못하면서. 나처럼 인생 던지지도 못하는 주제에 대단히 화끈한 척은.

“흐흐?”

지수야.

드디어 너와 평생 함께할 방법이 뭔지 깨달았어. 아니, 언제부턴가 난 방법을 알고 있었어.

어쩌면 이 땅에 날 때부터 알았는지도 몰라. 그냥 받아들이기만 하면 끝날 문제였어.

왜 이렇게 멀리 돌아왔을까.

이야말로 애인 나부랭이보다 더 네게 사랑받을 길 아닌가. 네가 죽기 전까지 포기 못 하고 미친 듯 탐닉할 ‘나쁜 것’으로 거듭나야 옳았다. 네가 발을 헛디뎌 네 고향인 지옥에 떨어지게 도우면 되는 거였다.

네겐 사랑이 사랑이 아니고, 증오는 증오가 아니니까. 사랑을 사랑하지 않는 네게 사랑을 바치다니?

사랑도 증오도 아닌 내 무신경이 널 숨 막히게 했구나.

내 영원한 짐승. 널 따라 나 또한 짐승이 되겠어.

그동안 날 얼마나 원망했니. 난 왜 그리 미련한 바보였나.

지수야, 미안해. 다신 그러지 않을게.

이제부턴 내가 널 위해 사랑을 증오할게. 그리고 우릴 위해 증오를 사랑할게.

우린 사랑마저 초월했다. 그동안 나와 네 사이를 가로막아온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났다.

양심과 도덕이란 감옥에서 탈출했다. 업장의 영수증 따위 구겨 내던졌다.

이 축복받은 속세에 우리만의 주지육림을 세우자. 히히. 짐승이 되자. 응?

“컥……!”

뉘우치고 싶지 않아. 솔직해지긴 죽기보다 싫어.

내 선택은 무조건 옳아. 그래야만 해.

코를 방바닥에 사정없이 짓눌렀다. 추하고 못난 돼지 코가 됐을 내 면상을 상상하니 웃음이 절로 났다.

기분 좋아. 자지 꼴려. 망가진 전립선 뜨끈. 늘어난 똥구멍 후끈. 너덜너덜 젖꼭지 근질. 못생긴 내 면상. 냄새나는 겨드랑이. 한심한 좆불알. 구역질 나는 좆털. 축축하게 젖은 똥털. 새까만 발바닥. 꼴사나운 자세…….

“커컥! 쿠헉! 꾸헤엑―?”

네 사랑이 오래전에 부활시킨 나. 이제 난 너와 네 새 남자 덕에 거침없는 짐승으로 한 단계 진보한다.

나무는 나무가 아니고 바위는 바위가 아니듯 이제까지 알던 나 또한 실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인간 변대훤을 새로운 차원으로 안내할 혁명. 인간의 한계를 깨라는 명령.

순서. 정리. 체제. 뿌리치지 못하는 척 실은 조금도 뿌리치고 싶지 않은, 진화!

……퇴화?

몰라. 아무러면 어때.

모든 건 이미 완벽했다. 나와 이 순간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완벽하듯이.

어머니, 태어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지수 님, 부활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민탑기 님, 진화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나의 세상. 그러나 서로 다른 차원에 사는 나와 너.

우리, 무한히 따로 또 함께. 나, 원래 너보다 아래였지만, 이제 너희 둘을 능가.

푸힛!

“훙뀌에헥……!”

나? 훤? 대, 변?

자유―로움[email protected]#$%^&*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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