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변대훤(12)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지수의 숨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지수야.”
“읏, 억.”
“물 무서워하면서……. 왜 그랬어.”
“너, 흑. 나처럼……. 어흑! 병신 될까 봐.”
그럼 처음부터 물에 안 빠뜨렸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뻔했지만 무시했다.
“나 혼자서도 나올 수 있는데…….”
“그래도, 끅! 못 나오면 어떡해.”
“그래. 고마워, 지수야. 덕분에 살았다.”
“어흐엉, 허엉…….”
“나 인제 괜찮아. 그니까 너도 진정해.”
“진정이 안 돼……. 크흑, 커흑.”
“내가 어떻게 해줄까?”
“나 좀 봐줘.”
“보고 있는데……?”
“나 좀 그냥 봐주라고! 그만 뭐라 해!”
“…….”
할 말이 없었다.
“너 일로 와.”
지수가 별안간 벌떡 서서 날 질질 끌고 어디론가 향했다. 바비큐 그릴 앞이었다.
지수가 젖은 사슴처럼 발발 떨었다. 가엾은 두 눈에 공포가 덕지덕지했다.
“잘 봐.”
“어?”
“이럼 되지. 틋, 크흐하학!”
“야, 손 빼!”
“그힉! 흐아아악!”
순식간에 일어난 사태였다. 우리 둘의 입이 슬픈 괴물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허히이익……! 아아아아악―!”
지수가 손목을 부여잡고 땅바닥을 뒹굴었다. 끔찍한 비명이 울울한 산천 속속들이 울려 퍼졌다.
“미쳤어? 병원 가. 어?”
“싫어! 병원 안 가. 흐극, 흐그극…….”
“왜!”
“병원 가면 죽어.”
“다쳤잖아!”
“형도 다쳤잖아!”
“…….”
“형 상처는 하나도 안 아물었잖아.”
“…….”
“대훤아. 흑, 흐욱……. 나도 상처 만들었어.”
“…….”
“딴 놈 만나지 마, 대훤아……. 극. 하읏, 하욱! 나 말고 딴 새끼 안 만나면 안 돼?”
“…….”
“대답해, 변대훤. 나 아프단 말이야. 흣, 으흑. 너만큼은 아니라도, 나도 아프다고…….”
“…….”
“이래도 안 돼? 병신 된 나 버리고 그 새끼한테 갈 거야? 나 그럼 인제 너랑 못 살아? 그 새끼랑 뉴질랜드 가서 결혼할 거야? 아흑, 하흐흑…….”
“…….”
“바람피우지 마, 나도 안 피울게……. 그날 이후로 안 피웠잖아. 똑같이 하지 말고 그냥 좀 용서해주면 안 돼?”
“…….”
“나 네 애인이잖아. 너도 내 애인이잖아…….”
“…….”
네 말이 맞아. 벌은 충분히 받았지. 불쌍한 내 김지수.
나도 참 불쌍하지만, 너도 참 불쌍하다.
나도 내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주제에 심술을 부려서 지수를 다치게 하다니. 사무치게 후회스러웠다.
“내가 미안해, 지수야. 내가 미안해…….”
한 사람을 다른 한 사람이 벌할 필요는 없다. 이미 크나큰 벌을 스스로 받고 있을 테니까. 죄지은 사람이 제일 괴로운 법이다.
그런데도 구태여 복수를 한다면, 그 사람이 받아야 할 몫의 갑절이 될 뿐이다. 그럼 그만큼의 새 죄가 생겨나겠지.
물에 젖은 지수를 끌어안았듯 불에 덴 지수를 끌어안았다. 내 품에 머뭇머뭇 파고든 지수가 울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