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변대훤(8)
조금만 더 늦었으면 절단할뻔했어요.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성기 얘기였다.
병상에 누운 지수를 우두커니 내려다보았다.
지수는 음낭과 전립선을 포함한 생식기 전체와 항문, 직장, 결장에 대장과 소장 일부를 장장 열여덟 시간에 걸쳐 복구하는 대수술 끝에 잠들어있었다.
구조대원이 지수를 물에서 막 건졌을 당시 흡사 반쯤 물어뜯고 남은 생선같이 참혹하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실제로 지수의 조직을 먹으려고 달려들어 꽉 깨문 물고기 수십 마리를 떨어내느라 의료진이 퍽 고생을 했다. 운 나쁜 지수는 단순히 익사할뻔한 게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한강 물속 깨진 맥주병에 찔려서 하반신이 작살나고 만 것이다. 항문이 찢어지고 골반과 척추를 다치고 음경 조직이 너덜너덜해진 데다 민물 아메반지 뭔지에 감염까지 된 상태였다.
그뿐만 아니라 찢어져 열린 복강 내로 한강 쓰레기가 가득 유입되어 청소하는 데만 수 시간이 걸렸다. 사용한 생리대나 솔빗이 창자에 엉킨 것을 풀고, 해캄이나 파래 같은 녹조류를 씻어내고, 장기 군데군데를 꿰뚫은 주삿바늘과 낚싯바늘까지 뽑고 나서야 본격적인 봉합수술이 가능했다고 전해 들었다.
차가운 물 속에서 숨도 쉬지 못하는 채로 그 모든 일을 겪을 동안 지수는 무슨 심정이었을까. 끔찍한 사고였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지수는 예후에 따라 앞으로 걸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지켜보기로 된 상황이었다. 몸에 카테터를 단 채 처참한 몰골로 병상 위에서 눈 못 뜨는 지수를 보며 내가 느끼는 감정이 뭔지 알 길 없었다.
지수한텐 나뿐이었다.
8년 동안 지수의 애인으로 살았다. 지수가 하늘 아래 의지할 곳 따위 없는 혈혈단신이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였다.
왜인지 김지수가 마냥 안쓰럽지 않았다.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넌 왜 널 걱정할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어쩌면 김지수 말이 다 맞았다. 내가 김지수를 그렇게 만든 걸지도 몰랐다.
내가 아니었으면, 내가 김지수한테 무조건 헌신하지 않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면, 내가 조금만 널 덜 사랑했다면, 너 대신 나 자신을 좀 더 사랑해줬다면 넌 한강에 뛰어들지도 않았을 테고, 지금쯤 훨씬 나은 인간이 되어 삶을 멋있게 스스로 꾸려나가고 있었을 테고,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너와 교류하며 네게 신경 썼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잘나 보이던 넌, 뭇사람 가운데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던 넌, 나 때문에 이런 외톨이가 되고 말았다. 네가 바람을 피우던 수많은 상대 중에 지금 네 곁을 지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잖아.
사실은 난 네가 이렇게 되기만을 바라왔는지도 몰라. 네 응석을 끝없이 받아주고 널 망쳐서, 아주 몹쓸 인간으로 만들고 싶었는지도 몰라.
언젠가 이를 지금 같은 상황을 학수고대하며 그간의 애달픔을 버텨왔는지도 몰라.
“…….”
그런데 왜 기쁘지 않을까. 네가 온몸에 붕대를 감고 마취에서 못 깨어나는 비참한 모습이라서일까.
갈비뼈 안이 다 썩어 문드러진 듯했다. 네가 가여운 만큼 나도 가여웠다.
그래도 내가 널 돌봐야 하는 건 너무 당연했다. 그동안 이런저런 빌미로 벌칙금과 상납금을 너무 많이 떼여서 병원비가 좀 막막하긴 하지만, 너한테 나뿐인 걸 아는 내가 널 모른 척한다면 그야말로 천벌 받을 일이었다.
여차하면 금고도 있었다. 언젠가 너와 내 작은 꿈을 이루려고 마련한 금고지만……. 인제 와서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일까.
그래, 이번만 넘기면 다신 너 안 볼 거야. 이게 내 마지막 선물이다.
돈이야 어떻게든 되겠지. 그니까 넌 날 위해서 멀쩡하게 일어나야만 해.
하반신이 마비되어 기어코 남은 평생마저 네 휠체어를 밀게 만든다면 가만두지 않을 거다. 그땐 나도 너한테 모질게 굴지 모른다.
“흐으, 흐우으……!”
그때 지수가 깨어난 듯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지수 가까이 다가갔다.
“괜찮아. 나 여기 있어.”
“아프, 아파! 합, 픗. 아파. 대훤아…….”
많이 아프지. 그러게 거기서 왜 뛰어내려. 바보 같은 자식.
허덕이며 내 이름을 부르는 김지수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김지수. 너란 자식은 왜 세상에 나서 이렇게 날…….
“대훠……. 대훤아?”
지수가 바늘 꽂은 손을 뻗어 허우적거렸다. 그때야 지수의 손을 잡았다.
“어.”
“미안해…….”
“…….”
“내가 미안해…….”
“…….”
“사랑해…….”
“…….”
“알아, 나 이런 말 할 자격 없는 거. 근데 사랑해, 대훤아. 미안하다. 나 아, 흣. 아직도 너 사랑해서 미안.”
“…….”
“근데 너도 알잖아……. 나 원래 바보잖아…….”
“…….”
“너무 아파, 대훤아. 나 벌 받나 봐. 죽을, 만큼, 잘못했으니까, 죽을 만큼, 아파도 싼데, 근데 나 다 아프고 나면 너랑 집에 갈 수 있지……?”
“…….”
“형, 왜 대답 안 해. 흑, 흐윽……. 인제 나랑 살기 싫어?”
“…….”
“나랑, 극. 원래처럼, 우리 예전처럼, 되는 게 싫으면…….”
“…….”
“나 왜 살렸어.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 왜 건져.”
“…….”
“너 진짜 너무해…….”
“…….”
“미안해……. 내가 미안해. 대훤이 형, 내가 다 잘못했어. 허억, 흐웃. 근데 나 너 보내기 싫어…….”
“…….”
“안 보낼래. 너랑 있을래. 하아…….”
“…….”
“나한테 잘해주지 마. 근데 가지 마. 나 너무……. 아파. 죽을 거야. 너 없으면 이번엔 진짜 죽는단 말이야. 나 죽기 싫어.”
“…….”
“잘못했는데, 근데, 잘못했다고, 윽! 해서……. 죽어도 싼 건 아니잖아…….”
“…….”
“형이 살려줘.”
“…….”
“대훤이 형, 나 한 번만 살려줘. 나도 사람 노릇 한번 해보자.”
“…….”
“포기하지 마. 왜 그러는데. 우리 그 정도 사이 아니잖아. 난 너랑 헤어질 생각 한 적 없단 말이야. 근데 넌 왜 딴사람처럼 그러는데. 왜 차갑냐고. 그걱…….”
“…….”
“너무 차가워……. 하지 마, 차갑지 마…….”
‘차갑다’라. 왜인지 그 단어만 입에 맴도는 유치한 이 마음은 어디서 온 걸까.
불알이 간질거렸다.
“숨도 못 쉬게 아픈데, 근데 너 땜에 더 아파…….”
“그만.”
“형?”
“말하지 말고 자. 너 쉬어야 된대.”
“헉? 흐욱! 싫어! 자고 일어나면 너 내 옆에 없을 거잖아……!”
“네가 이러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가.”
“내가 잘못, 끅? 잘못했어. 허윽, 흐우우……. 무서워, 형. 나 여기 혼자 놔두고 가지 마.”
“알았어. 가만있어. 자꾸 말하고 움직이면 더 아프잖아.”
“손, 잡아줘, 형…….”
“잡고 있는데…….”
“진짜 미안해, 형. 근데 나 형 사랑해. 미안…….”
네가 날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날 옥상에 올라가지 않았더라면. 젊은 날의 널 쫓아다니지 않았더라면. 네가 내게 수줍게 고백하지 않았더라면.
사랑하지 않았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