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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변대훤(7) (30/41)

3. 변대훤(7)

“여보세요? 지수야, 있어?”

멧돼지처럼 튀어나온 김지수 때문에 하마터면 기절할뻔했다. 지수의 손에 무언가 끈덕지고 비릿한 액체가 묻어있었다.

지수를 털어내자마자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배, 배가 왜, 왜, 왜 그래?”

“하읏, 허억……. 학, 나 배때기 갈라질 뻔했어. 계속 손으로 잡고 여기까지 뛰어왔잖아.”

“어디서?”

“나도 몰라. 갑자기 봉고차 문 열리더니 억지로 태우잖아. 씨팔 그대로 끌려갔으면 진짜 좆 될뻔했네. 하……!”

“봐봐.”

“됐어, 하지 마. 아, 숨차.”

걸레 조각 같은 옷을 꿋꿋이 들치고 안을 살폈다. 음각을 새긴 듯 야윈 배와 새까만 상처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다행히 피는 흐르지 않았다.

그래도…….

“병원 가자.”

“싫어.”

“다쳤잖아.”

“그냥 좀 베인 거야. 안 가.”

“그럼 어떡하려고…….”

‘우리 집으로 가자.’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김지수가 시선을 피한 채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리고 한참이나 말이 없는 날 대신하려는 양 억지스레 입을 열었다.

“약 좀 바르면 낫겠지. 후우…….”

“…….”

“아, 봉고차에서 뛰어내려서 여기까지 계속 도망 왔는데 거기가 어디더라? 여기랑 얼마나 떨어진 데인지도 모르겠네.”

“봉고차는 왜 탔어……?”

“내가 탔냐? 억지로 태웠다니까?”

“그니까 내 말은, 어쩌다 그렇게 됐는데?”

“넌 지금 그게 중요해? 내가 죽을뻔했는데?”

죽을뻔했으니까 중요한 거 아닌가.

“배때기에 빵꾸 난 거 보여, 안 보여. 인정머리가 없냐.”

지수는 상처까지 입은 주제에 내가 그냥 적당히 넘어가 주길 바라는 듯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경찰에 신고는 해놔야 되지 않을까. 그런 일 또 생기면…….”

“대훤아. 나 그냥 좀 쉬고 싶다.”

‘그래, 얼른 우리 집 가서 쉬자.’ 그 말 역시 나오지 않았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저 멀뚱멀뚱 서있었다. 지수가 내 눈치를 보듯 말했다.

“어쨌거나 고맙다, 변대훤. 너 아니었으면 나 어쩔뻔했냐. 아깐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진짜 너밖에 안 떠오르더라.”

“그……. 걘?”

“어? 뭐.”

“있잖아.”

“있긴 뭐가 있어. 없어.”

“탑기.”

지수가 갑자기 상처를 부여잡고 얼굴을 구겼다. 그렇게 대답하기 싫은가.

나 아니어도 너 주워가겠다는 사람 많잖아. 왜 나한테 전화했니.

난 가엾은 너한테 왜 이렇게 유치하게 구는 걸까. 나 자신을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가 없었다.

나도 나 자신을 싫어하고 미워하면서 지수만은 날 사랑해주기를 그렇게나 원했다니. 지금 와서 생각하면 어불성설이었다.

“걔랑 옛날에 헤어졌잖아. 뭔 소리야.”

지수가 느지막이 말하고 입맛 없는 표정을 지었다. 담배꽁초를 땅에 떨구고 발로 난폭하게 밟아 꺼뜨렸다.

“왜 헤어졌어?”

“뭘 왜 헤어져. 그때 너도 옆에 있었잖아. 기억 안 나?”

“그때 이후로 안 만났어?”

“헤어졌는데 왜 만나.”

“…….”

“아, 어떻게 만나. 만나주지도 않아.”

“만나기 싫대?”

“그래! 그니까 그만 물어봐. 걔랑은 인제 뭐 없어. 꼬락서니 보면 모르겠냐?”

“아…….”

“근데 우리 여기서 계속 이러고 얘기해야 돼? 게네가 나 잡으러 쫓아오면 어떡해.”

“그럼 어떡하게?”

“……변대훤.”

“어?”

“넌 나 안 보고 싶었냐?”

지수가 느닷없이 물었다. 노려보는 눈빛이 슬프고 짙었다.

‘바보야, 당연히 보고 싶었지.’

그렇게 대답해야 할 텐데.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보고 싶지 않았던 걸까?

그러네. 내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더라? 아파했나?

……괜찮았나?

내가 대답이 없자 지수가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뿌렸다. 왠지 다급해 보였다.

“말을 안 해. 너 설마 아직도 삐졌냐? 아니지? 왜, 뭐가 문젠데?”

“문제없는데…….”

“근데. 어우, 아파.”

지수가 별안간 윗몸을 수그려 복부의 상처를 감쌌다. 내가 아는 지수는 심한 상처에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성격이었다.

“형.”

“어?”

“나 안 보고 싶었냐고.”

지수가 담뱃갑을 여닫다 말고 내게 눈웃음을 지었다. 괜스레 훌쩍이고 코를 소매로 훔치기도 했다.

나름의 애교였다. 불쌍한 척에 더 가까웠다.

그러게. 왜 안 보고 싶었을까.

“왜 그러고 서서 암말도 안 해. 씨팔 너 환자 앞에 놔두고 지금 고문하냐?”

“어? 아니, 그게…….”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도 없고, 말이 안 나오는 게 당연했다.

차라리 장난감 신세일 때가 나았다. 그땐 이런 고민을 스스로 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상처 난 거 안 보여? 너 내 꼬락서니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아?”

“별로 아무렇지가 않아.”

“뭐?”

아뿔싸. 마음속 말이 밖으로 나와버렸다.

지수보다 더 당황한 쪽은 나였다. 어쩔 줄 모르고 눈 돌리는 날 지수가 다그쳤다.

“변대훤. 너 왜 그래? 어디 아파?”

“아……. 나도 잘 모르겠어.”

“정신 차려! 일로 와. 한 번 안자.”

“싫어.”

지수가 두 팔을 벌린 채 꽁꽁 얼었다. 지수의 얼굴빛이 검게 물들었다.

“병원부터 가자. 그런 다음에 너도 얼른 들어가야지.”

김지수가 노숙하는 모습을 다 봤으면서. 내 입이 모진 말을 뱉었다.

지수가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말했다.

“나한테 안기기 싫으면 네가 나 안아줘. 그럼 되잖아.”

“…….”

“나 땜에 열받았어도 한 번 안아줄 순 있잖아. 그게 그렇게 어려워?”

“빨리 가자.”

“너 왜 그렇게 차가운데?”

“뭐가.”

“너……. 인제 나 싫어? 아니잖아.”

그런 거였나. 내가 김지수를 더는 사랑하지 않게 된 건가.

지수가 입 밖으로 꺼내서 내게 깨닫게 하기 전까지 내내 희미했던 의문 일체가 선명해지는 기분이었다.

왜 집에 홀로 남은 채 전처럼 아무것도 못 하고 무너져서 탈수증세가 올 때까지 눈물을 쏟지 않았는지, 왜 밥 잘 먹고 잠 잘 잤는지, 왜 멍하니 정신 놓고 있다가 실수하거나 사고 치기는커녕 묵묵히 주변을 정리 정돈하고 오히려 전보다 만족스럽고 쾌적한 생활을 하게 되었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그런 거 아니야. 내가 어떻게 널 싫어하겠어.’

그런 말로 지난 8년의 사랑을 속여넘길 수 없었다. 지수한테 무엇 하나 해준 것 없는 난데 끝에 와서 폐를 끼친다면 그건 사람 된 도리가 아니었다.

“미안.”

달리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솔직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말을 꺼내놓자마자 후회했다. 지수가 양 볼을 씰룩였다.

상상보다 훨씬 참혹한 표정이었다.

지수가 상처받은 듯 얼굴을 멍청히 굳혔다. 그러다 미간을 움찔움찔 찌푸렸다.

고통스럽다는 듯 이목구비를 죄 일그러뜨렸다. 부인하듯 헛웃음을 억지로 턱턱 뱉었다.

“아, 좀 장난치지 마. 그만해.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

“뭘 그렇게 쳐다봐. 병원 안 가고 집에 갈래. 힘들다. 차 어디 댔어?”

“…….”

“뭐 해, 변대훤. 가자니까?”

“안 가.”

“왜.”

“나 혼자 갈 거야.”

“…….”

“병원 갈 거면 병원 가고, 파출소 갈 거면 파출소 가고, 아니면 나 그냥 들어갈게.”

“너 갑자기 왜 그래? 어? 왜, 뭐가 문젠데?”

“아.”

김지수가 저벅저벅 닥쳐서 내 한쪽 어깨를 잡아챘다. 동아줄 움키듯 날 움킨 손이 초조한 양 잘게 떨었다.

“너 진짜 바람피우냐? 그때 너한테 병 옮긴 그 새끼랑 너 아직도 연락하지?”

바람은 네가 주야장천 피워댄 게 바람이고. 말싸움 붙는 대신 입을 다물었다.

다 끝난 마당에 얌전히 당하는 게 나았다. 어차피 더 억울할 것도 없었다.

내 8년 만난 전 애인은 바보인 척할 뿐 진짜 바보는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김지수가 어름적어름적 늘어놓았다.

“그 새끼가 인제 나 싫다잖아.”

“…….”

“안 받아준다잖아. 붙잡고 매달리고 어떻게 해도 안 되더라.”

“…….”

“나랑 너랑 예전처럼 돌아가자. 그게 네가 바라던 거잖아.”

그렇지. 그게 내가 바라던 거 맞는데.

매일 밤 너와 다시 행복하게 지내는 꿈을 꿨는데. 지난 몇 년간 베갯잇을 셀 수 없이 적셨는데.

그런데 왜 내 마음이 환희로 일어나지 않지?

“싫…….”

“…….”

“……어.”

대놓고 싫다고 말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지수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내가 먼젓번에 좀, 아니 뭐……. 내가 전부터 몇 번 한눈팔긴 했지만 그거 말곤 너한테 잘못한 게 뭐가 있냐. 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

“…….”

“내가 무슨 죽을죄를 지었길래 네가 나한테 이러는데. 왜 변대훤 너까지 정신 못 차리냐고.”

“지수야.”

“어.”

“미안해. 내가 할 말이 없다. 그니까…….”

“…….”

“그냥 그만하자.”

“…….”

“나 다 그만할래.”

지수가 얼굴을 바꿨다. 짐승같이 사납고 가련한 표정이었다.

“뭘 그만해. 네가 내 허락도 없이 어딜 혼자 빠져.”

“…….”

“솔직히 그동안 너도 다 알면서 나랑 여기까지 온 거 아니야? 네가 받아들였잖아. 그래도 좋다며. 네가 그래도 나 좋다며!”

“…….”

“내 말이면 죽는시늉도 할 것처럼 다 해놓고 너 인제 와서 이러는 거 아니다. 나보다 네가 더 나빠. 알아?”

“…….”

“지금 이러려고 그동안 꾹 참았냐? 7년 동안 나한테 복수하려고 계획했어? 독하다, 독해, 변대훤. 난 너에 비하면 쨉도 안 돼. 네가 인마, 진짜 악질이야.”

“…….”

“나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거 너야. 네가 나 이렇게 만들었잖아. 내가 어떻게 해도 넌 나 안 버릴 것처럼 철석같이 믿게 해놓고 인제 와서 뭐? 다 그만해?”

“…….”

“나 이런 새끼 되게 망쳐놓고 여기까지 와서 갖다 버리겠다? 그럴 거면 지금까지 왜 착한 척 진짜배기인 척했냐.”

“…….”

“무슨 일이 있어도 나랑 안 헤어진다며.”

“…….”

“아! 안 헤어진다며!”

“…….”

“대답해. 안 해? 처음부터 왜 거짓말해. 내가 너한테 뭔 짓을 해도 다 받아주고 사랑해주고 평생 그럴 것처럼 속여놓고 갑자기 다 내 잘못이니까 헤어져? 어어, 그럼 다 끝나?”

“…….”

“왜. 언젠 내 잘못 아니었던 적 있어? 왜 그만해, 왜!”

“…….”

“차라리 내가 싫다고 해. 솔직하게 맘이 없다고 하라고.”

“…….”

“넌 나 버리면 안 되지. 차라리 데리고 살면서 괴롭혀. 너도 나만큼 잘못해! 그럼 되잖아?”

“…….”

“내가 너한테 언제 완전히 끝내자고 한 적 있어? 난 네가 나한테 무슨 잘못을 해도 진심으로 끝내잔 소리 안 할 건데 넌 왜 그래? 왜 네 마음대로야?”

“…….”

“끝까지 가기로 한 두 명 중에 누구 하나가 잠깐 실수 좀 했다고 다 그만하고 집어치우자는 게 그게 사랑이야?”

“…….”

“진짜 사랑이면 안 되는 게 없어야지. 사랑한다며. 네 입으로 네가 한 말은 지켜야지.”

“…….”

“왜 나 버려. 안 돼. 나 버리면 너 진짜 가만 안 둬.”

“…….”

“버리지 말라고, 아으아악!”

“…….”

“네가? 감히? 나랑 헤어지고 잘살 수 있을 거 같아? 넌 나 없이 절대 못 살아.”

“…….”

“어차피 이때까지도 미우나 고우나 울고불고 짜면서 잘 붙어있었잖아.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면 되는데 괜히 앙탈 부리지 마. 형 진짜 죽는다.”

“…….”

“아! 이뻐해 줄게! 걔 이뻐해 주던 것처럼 너도 이뻐해 주면 되잖아?”

지수의 입술이 만드는 그 어떤 말도 내 목울대를 두근두근 떨리게 하지 못했다. 심장을 쓰리게 찢어 기쁨의 선홍빛 피를 흘리게 하지 못했다.

배 속 깊은 곳과 다섯 손가락 끝을 저릿저릿하게 만들지 못했다. 눈에서 눈물을 왈칵 쏟게 하지 못했다.

“지수야.”

“어, 형.”

“그동안……. 너한테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

“…….”

이제 안 좋아해서…….

“……미안해.”

난 지수를 좋아해 보지 않은 적이 없었다. 지수가 더는 좋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미리 생각해둔 것 또한 없었다.

내가 지수를 사랑하지 않는 것 때문에 지수가 상처받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과 서서히 멀어지는 것 중에 어느 쪽이 바람직한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미안해, 지수야. 미안하단 말밖에 할 말이 없다.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으니까.

“좋은 사람 만나.”

좋은 사람 만나란 말은 입에 발린 소리인 줄 알았다.

“나보다 너한테 훨씬 잘해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흔치는 않겠지만.

너한테 모질게 구는 건 생각보다 더 어렵고 힘든 일이구나. 지수 넌 그동안 이렇게 힘든 일을 어떻게 해왔니. 너도 참 힘들었겠구나.

“거짓말 치지 마. 변대훤 너 나 사랑하잖아.”

“…….”

“형 나 사랑하잖아. 네가 어떻게 날 안 사랑해. 내가 언제 그래도 된다고 했는데.”

“…….”

“아, 안 된다고……. 너 없으면 나 그냥 쓰레기란 말이야…….”

“…….”

“그만 좀 해. 제발…….”

“…….”

“우리 어디 가서 밥이나 먹자. 어? 일단 뭐 좀 먹고 마저 하자. 대훤아. 밥부터 먹고 갈궈. 그땐 내가 얼마든지 받아준다.”

“…….”

“가자, 나 대구탕 사줘. 너 그거 좋아하잖아.”

“잘 지내.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그런 게 어딨어! 나랑 너랑은 안 사랑해도 헤어지면 안 돼! 서로 죽이고 싶어도 평생 붙어있어야 돼!”

“왜?”

“내가 그렇게 정했으니까!”

“네가 어떻게 정했든 인제 안 중요해, 지수야.”

“왜.”

“다 끝났으니까.”

지수가 눈 안을 텅 비웠다.

“알았어. 가. 그렇게 가고 싶으면 한번 가봐.”

“…….”

“너 가면 나 여기서 뛰어내릴 거야.”

“…….”

“구라 같지. 너 보는 앞에서 자살해줄게.”

“…….”

“죽어서 너한테 복수할 거다.”

예전 같았으면 내 가슴을 갈기갈기 도려놓았을, 비수같이 유치한 말도 이제 내 심장 껍질을 뚫지 못했다. 내가 언제 냉혈한이 된 걸까.

“나한테 복수해서 네 맘이 풀리면 그렇게 해.”

“뭐……?”

“너한테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뭐 해. 어디 가.”

“갈게.”

“야!”

뒷걸음질을 그쳤다. 녀석에게서 뒤돌아섰다.

내 청춘의 전부였던 얼굴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믿을 수 없게도 후련했다.

심지어 잽싸게 달려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자유를 만끽하며 새벽을 질주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새처럼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는 땅에서 기어 다니며 고통받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변대훤! 거기 서! 씨팔놈 너 거기 안 서? 나 뛰어내린다고 했다. 너, 이……. 힉?”

돌아보면 소금 기둥이 돼버릴 것 같았다. 내 맘이 어쩌다 순식간에 바뀌었을까.

난 뭘 그토록 붙잡고 있었던 걸까.

풍―덩!

“……?”

먼 데서 난 소리였다. 뒤를 돌아보았다.

김지수가 없었다.

“김지수……?”

지수가 있던 자리로 발걸음을 후들후들 옮겼다. 이런 데서 순간이동이라도 한 게 아니면, 김지수 너 설마…….

난간을 덥석 붙잡았다. 두 팔이 달달 떨었다.

아래를 내려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확인해야 했다. 내 평생의 사랑인 김지수가 검은 한강 물속에 뛰어들었는지 알아내야 했다.

말 안 듣는 고개를 난간 너머로 꾸역꾸역 밀었다.

어?

난간 아래를 살피고 또 살폈다. 그러나 시꺼멓고 잔잔한 물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김지수가 저기 진짜로 뛰어들었을 리 없지. 날 놀라게 하려고 수작 부리는 거겠지?

그럼 어디 숨은 거지?

“……!”

한강에서 막 시선을 거두려던 순간이었다. 강 표면에 무언가가 두둥실 떠올랐다.

“지, 지수야―!”

김지수, 이 미친놈……! 네가 진짜 미쳤구나.

내 목소리가 들릴까. 언제 저기까지 떠내려간 거지?

즉사한 건 아니겠지? 내가 지수를 죽였나?

아니야. 빨리 건지면 죽지 않을 것이다.

“엽, 여보, 여보세요? 여기 동작대교…….”

끊자마자 지수가 떨어진 쪽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렸다.

왜 날 놔주지 않아. 넌 살든 죽든 내 인생에서 순순히 물러나 줄 작정은 아닌 모양이지.

귀신이 돼서 날 쫓아다니면서 평생 죄책감에 몸부림치게 하려고?

너한테 내가 뭘 얼마나 더 해줘야 돼. 난 후회 없이, 할 만큼은 다 한 것 같은데.

너랑 내 사이 남은 빚이든, 전생의 업이든, 청산하려면 얼마나 더 남은 건데.

퍽. 퍽. 퍽.

을씨년스러운 물가를 맴돌다가 서서 가슴만 콱콱 쳤다. 속에 쌓아둔 한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그냥 나도 널 따라 뛰어들까. 그럼 만족하겠니.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순간 다리 힘이 풀렸다.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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