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변대훤(5)
지수와 우연히 재회한 곳은 강습을 마치고 나오던 길의 영등포였다.
처음엔 알아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수는 탑기랑 잘 먹고 잘 사는 줄 알았으니까.
거지꼴이 돼있을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지수도 나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으니 서울, 그것도 영등포에 있었을까.
소년 시절 아름답고 순수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추악하고 지저분한 아저씨가 보였다.
바로 나와 다를 바 없는 얼굴이었다.
언제나 내게 의욕을 불러일으키고 꿈을 품게 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동정의 말 한마디 건네는 것만으로도 절망의 구렁텅이에 같이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게 될 듯한 모습이었다.
물귀신 같았다.
“…….”
지수야……?
마음은 지수를 불렀지만 입은 그러지 못했다. 우뚝 멈춰선 채 지수를 그저 바라보았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지수가 끈질긴 시선과 인기척을 느낀 듯 몸을 스르륵 일으켰다. 날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 발 한 발 땅을 디뎠다. 내게서 달아났다.
뒤늦은 입술을 뗐다.
“지, 윽…….”
그러나 지수의 이름이 목에 콱 걸려 뱉을 수 없었다. 지수가 두려운 괴물 돌아보듯 날 뒤돌아 노려보면서 절뚝절뚝 달리기 시작했다.
나쁜 자식. 내 몸과 마음을 다른 아무도 쓰고 싶지 않게 망쳐놓고, 우리 8년을 매몰차게 배신해놓고 몇 번이나 그 애한테 갔으면 잘 지내야 하잖아.
이렇게 내 앞에 난데없이 나타나서 날 더 억울하게 만들면 안 되는 거잖아.
그만 뛰어. 다리도 성치 않은 것 같은데 왜 계속 뛰는 거야.
어처구니가 없었다. 진짜 도망가고 싶은 건 나였다.
넌 내가 그렇게, 그렇게 싫어?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더 간절한 쪽의 승리였다. 피죽도 못 얻어먹은 것 같은 지수는, 예쁜 얼굴이 다 상한 채 면도도 못 한 김지수는, 나보다 훨씬 간절하고 빠른 속도로 날 따돌리고 자취를 감춰버렸다.
네가 나보다 더 간절한 적은 없었는데. 우리가 전생에 무슨 원수지간이었길래 네 가엾은 모습을 또다시 나한테 보여주고야 마는지.
몸을 여기저기 부딪고 발목을 접질리면서도 내게서 허둥지둥 내빼던 김지수의 잔상이 너무 초라했다. 그래서 화가 났다.
나한테 어떤 심한 짓을 해도 견뎌냈던 마음이, 네 처량한 꼴을 보자마자 한 방에 무너졌다.
그렇게 널 놓쳤다. 공포와 수치로 떠는 널 눈으로 보고도 강하게 낚아채서 단단히 붙들어주지 못했다.
내겐 달아나는 널 따라잡을 능력조차 없었다.
난 어김없는 실패자였다. 그리고 비겁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