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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민탑기(13) (21/41)

2. 민탑기(13)

나 자신을 텅 빈 눈으로 내려다보고 할 말을 잃었다.

“흣……. 흐흑…….”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뜨거운 눈꺼풀 바깥으로 자꾸자꾸 흘러나와 턱 밑으로 떨어졌다.

이마를 두 손으로 감쌌다.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흐으윽, 흐억, 허어엉……!”

목 놓아 울어도 가슴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 순간만큼은 아무리 두들겨 맞고 협박당해도 울음을 멈출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양쪽 젖꼭지와 좆뚜껑, 좆기둥, 불알에 단 피어스까지는 참아볼 수 있었다. 정말 참을 수 없는 건 배에 그려놓은 S자형 트랩 문신과 양쪽 허벅다리 위쪽의 스타킹 밴드 문신, 그리고 민둥 고추 위 선악과 모양의 전립선 문신이었다.

심지어 어느 부분은 정교하고 어느 부분은 완전히 날림이었다. 마치 새기다가 도중에 귀찮아진 듯 형편없는 마무리였다.

믿고 싶지 않아 손끝으로 쓸어보았다. 따가웠다. 문신 주위가 벌건 것을 보고 예상은 했지만, 진짜 문신이었다.

정수리에도 문신을 새겼는지 홧홧하게 쓰라렸다. 거울에 비춰봤자 머리카락 때문에 확인하기 힘들 것 같았다.

그뿐만 아니라 벌어져서 닫히지 않는 항문에서 묽은 선홍빛 액체가 끊임없이 샜다. 새까맣고 딱딱한 벌레 같은 것도 같이 빠져나와서 거실 바닥 웅덩이에 둥둥 떠다녔다.

그게 수박즙과 수박씨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시꺼멓게 멍든 뱃가죽을 꾹꾹 눌러보았다.

배 속에 부서진 수박 껍질 같은 게 왕창 든 것처럼 불편하고 아팠다. 아마 내가 의식을 잃은 사이에 여럿이서 내 안에 수박을 집어넣고 깨뜨리기 놀이를 한 것 같았다.

끅끅거린 탓에 숨이 막혔다. 항문살을 더듬더듬 만졌다.

쭈글쭈글 튀어나온 고깃가죽 둘레뿐 아니라 구멍 안쪽 육벽까지 올통볼통 장식한 고리와 볼 피어스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게 단가? 설마 더 있진 않겠지……?

천근만근 같은 몸을 움직여 거울을 찾았다. 그리고 아래를 비춰보았다.

“…….”

한 뼘은 늘어나서 기다랗게 벌어진 채 상추처럼 나풀나풀 날개를 편 흑항문은 문제가 아니었다. 허벅지 안쪽과 항문 근처에 직직 그은 낙서, 아니, 문신은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음담패설과 음경 그림, 그리고 바를 정자였다.

그 모두를 확인한 순간 거짓말처럼 눈물이 말라붙었다.

언젠가는 이 생활에도 끝이 있을 것으로 믿었는데.

지잉. 지이잉.

거실 구석 핸드폰이 아까부터 자꾸 진동했다. 떨리는 손으로 화면을 밀었다.

[야]

[이거 니 번호라매ㅋㅋ]

[아저씨 안녕]

[010778285**]

[내번호]

[저장ㄱㄱ]

[변기야ㅋㄲㄱ]

[사진]

[사진]

[사진]

[대훤이 형 후장 전후]

내 항문이 원래 이랬나. 색이 좀 검긴 하지만 실감 나지 않을 만큼 멀쩡하고 건강한 항문 사진이었다.

그리고 현재로 추정되는 항문 사진이었다. 고약한 성병에 잔뜩 오염된 항문은 닭 볏 모양 엠보싱과 누런 수포가 돋은 채 검은 날개를 펄럭펄럭 펼치고 충혈된 속살 점막을 올록볼록 꺼내고 예의 피어스를 잔뜩 단 흉측한 모습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터진 유부 주머니처럼 벌어져 닫히지 않는 구멍 안은 정액과 장액, 오줌과 침, 담뱃갑과 담배꽁초, 사용한 콘돔, 성냥과 휴지 등 온갖 쓰레기를 한가득 담고도 공간이 넉넉히 남았다.

마지막 사진은 다리 사이에 수박을 박고 개구리처럼 칠락팔락 자빠진 전신샷이었다.

[흑똥꼬 보닌까 또 박으러 가고싶내ㅎ]

[피스팅맛집ㅇㅈ]

[ㅆㅂㄹㅁ재떨이후장에 박긴 뭘박아ㅋㅋㅋㄱㅋㄲㄱ돌앗나]

[이미 자지 썪은거가틈]

[아저씨나용돈줘]

[다음엔ㅇㅈㄱㄱ?]

[?]

[사진]

[사진]

[우리 맥스 이쁘지☺]

[사진]

[맥스 발기한 좆❤]

[우리 갈 때까지 내 새끼 사진 보면서 딸이나 쳐☹]

청동빛 발이 거실 바닥을 밟았다. 그리고 내 앞에 섰다.

핸드폰을 든 채 지저분한 얼굴을 들었다. 공허뿐인 눈으로 전 애인을 우러렀다.

……지수야?

지수의 눈 속에서 분노가 일렁였다. 청동빛 팔이 날 거칠게 잡아 일으켰다.

지수는 성큼성큼 내걸어서 날 화장실에 넣고 발로 차 넘어뜨렸다. 타일 바닥을 굴러 욕조에 부딪히고 소리는 물론 미동조차 내지 않았다. 고추와 구멍에 단 피어스만 나 대신 짤락짤락 울었다.

인제 발길질 같은 건 아무렇지 않았다.

“너. 변대훤. 앞으로 여기 처박혀서 나오지 마. 보기만 해도 더러우니까.”

꽝.

지수가 화장실 문을 닫았다. 내가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사랑하는 한 사람이 날 화장실에 가뒀다.

날 미워하는 건 괜찮아. 너 자신이 미워서 날 가둘 수밖에 없는 거라면 그러지 마. 네가 아픈 건 싫어.

지금도 난 네 걱정뿐이네. 그렇다면 얼마나 축복이니.

차가운 화장실 안에 갇힌 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거의 모든 걸 잃어버린 지금에도 내 가슴을 뜨겁게 하고 내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사랑의 힘은 남아있었다.

나한텐 지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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