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민탑기(11)
축축한 옷에서 지린내가 올라왔다. 은은한 욕지기가 지속되는 한편 오줌 냄새 탓인지 괜스레 똥이 마려웠다.
탑기가 내게 소개해준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형 남편이에요. 인사해요.”
“…….”
수박이었다.
“형 사이즈에 맞추려면 이 정도는 돼야 급이 맞을 거 같아서요. 나랑 우리 자기도 아직 결혼 못 했는데. 부러워요, 대훤이 형.”
“……감사합니다.”
“나한테 감사하지 말고 신랑한테 감사해요. 형 같은 중고 신삥 거둬주잖아요.”
“저 같은 중고 신삥을 거둬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탑기에게 감사 인사한 것처럼 수박에 감사 인사했다.
“솔직히 형이 한 번 갔다 온 거나 뭐가 달라요? 아니다. 몇 번을 갔다 와도 형 가랑이처럼은 안 되겠네요.”
“…….”
“후딱 식 올리고 사진이나 한 장 찍죠?”
내 초혼은 조촐하게 치러졌다.
내가 만약 결혼한다면 상대는 지수일 줄 알았는데. 내 오랜 애인과의 결혼을 꿈꿔왔는데.
탑기가 입소리로 성의 없는 결혼행진곡을 깔았다.
“딴딴따단. 딴딴따단.”
때 이른 수박에 정중히 절을 올리고 진―하게 키스했다. 혀를 화려하게 펼쳐 문대고 민망한 콧소리를 냈다.
방바닥에 고추를 비비며 타액을 왕창 뱉어 신랑에게 질질 흘렸다. 농염한 부부의 입맞춤으로써 서약을 마쳤다.
수줍은 뽀뽀로는 통과되지 않을 것이 자명했다. 탑기가 결혼식 장면을 전부 녹화하고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형. 김―치.”
“김치. 헤헤.”
찰칵. 찰칵찰칵!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고 웃으면서 웨딩촬영하는 와중에도 머릿속엔 두려움뿐이었다. 새신랑이 된 수박을 밤마다 엉덩이에 박아야 하는 걸까.
딩동. 초인종 소리가 났다.
본능처럼 탑기를 올려다보았다. 지수도 나와 마찬가지였다.
누구지? 우리 셋 다 여기 있는데.
엄마? 아빠? 그럴 리 없다. 연락도 안 왔…….
그런데 탑기가 나서서 현관문을 열었다. 시끄러운 남자 무리 소리가 났다.
“형, 인사해요. 내 친구들. 자기도 인사해.”
거실에 우르르 들이닥쳐서 집 안을 둘러보는 남자아이는 총 다섯이었다. 팔다리는 물론 목과 얼굴까지 문신을 휘감은 불량아 패거리였다.
컹! 컹컹!
“히익……!”
초대형견까지 뒤따랐다. 개가 흥분한 듯 으르렁대는 모습에 놀라자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지수도 당황한 듯 얼굴을 굳혔다.
“누가 내 집에 네 친구들 데리고 와도 된다 그랬냐?”
“자기가 저번에 그랬잖아. 이쁜 친구들 있으면 데리고 오라고. 기억 안 나?”
“네 눈엔 지금 게네가 이쁘냐?”
탑기가 데려온 다섯 양아치가 니코틴 빛깔 누런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지수 말마따나 하나도 예쁘지 않았다.
“내 친구들이 왜. 이쁘기만 한데. 이랬다저랬다 왜 말이 바뀌어? 요즘 자기랑만 맨날 붙어서 노는 거 재미없단 말이야. 나가서 놀지도 못하게 하잖아. 자기는 빠져, 그럼. 형이랑 놀면 되니까. 그렇죠, 대훤이 형? 근데 왜 인사 안 해요? 내 친구들한테 인사하라니까요?”
몸뚱이를 최대한 오그려서 정조대를 감췄다. 목에 찬 개 목줄까지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탑기가 얼마 전에 날 애완용품 도매점에 데려가서 직접 채워보고 나서 사준 물건이었다.
이런 꼴을 탑기와 지수뿐만 아니라 처음 만난 사람들한테까지 보이게 될 줄이야. 그렇지만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미소를 지었다. 입을 움직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탑기 주인님의 장난감 개고기입니다.”
매뉴얼 외듯 한 말에 남자애 다섯이 폭소를 터뜨렸다. 시끄럽게 손뼉을 치고 감탄사를 지르면서 탑기를 추켜세웠다.
김지수가 벌떡 일어났다. 훤칠한 청동빛 몸이 위협하듯 탑기한테 바짝 붙었다.
“나가.”
낮은 목소리에 남자 일곱 명을 단숨에 제압할 카리스마가 차고 넘쳤다.
내 흐릿한 눈빛이 전 애인을 좇았다. 지수가 그리웠다.
탑기가 파충류 같은 눈망울로 지수에게 맞섰다.
“자기야.”
“너도 나가.”
“왜? 재밌을 텐데. 아니면 자기도 오늘 후장 한번 개통할래?”
“안 나가?”
탑기가 간단히 눈짓했다. 다섯 양아치가 기다렸다는 듯 지수에게 슬그머니 달려들었다.
지수가 헛웃음을 흘리고 가드를 올렸다. 탑기한텐 안 되지만, 지수도 체육관에 오래 다니면서 운동을 한 전적이 있었다.
지수한테 제대로 맞으면 뼈도 못 추릴 텐데. 정말 큰일 날 텐데.
“윽!”
그러나 양아치 다섯이 떼로 달려들어 순식간에 지수의 사지를 옭아맸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두 눈을 크게 떴다.
지난 몇 개월간 죽은 것이나 다름없던 온몸에 피가 돌았다. 심장이 뜨겁고 머리에 힘이 들어갔다.
“어억!”
지수가 반항하면 반항할수록 양아치 떼거리의 구속이 더욱 거세졌다. 청동빛 목을 감고 옥죄는 팔뚝 때문인지 지수가 급기야 고통스러운 얼굴로 신음을 터뜨렸다.
안 돼.
난 돼도 지수 넌 안 돼.
뭔지는 몰라도 불알을 털렁대며 알몸으로 기었다. 그리고 탑기의 발치에 멈춰 올려다보았다.
탑기가 상냥한 척 입꼬리를 가다듬고 눈썹을 높이 든 채 날 내려다보았다. 뭔가 ‘재밌는 것’을 요구할 때의 표정이었다.
“주인님. 끙, 끼잉. 낑……♡”
지수가 결박되든 말든 아무렇지 않은 척 바보같이 헤실헤실 웃어 보이면서 말했다.
“그거 해요♡”
“큭. 내가요? 내가 형 같은 거랑 왜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지수를 지켜야 했다.
탑기와 다섯 불량배가 지수한테 몹쓸 짓이라도 저지른다면 난 살 수 없었다.
내가 겪은 그 많은 불행을 지수한테까지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다 같이 놀아요.”
“그래요? 자신 있어요?”
탑기의 말에 주위를 힐끔 둘러보았다. 특이한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거나 길러서 파마를 했거나 아예 빡빡 민 아이 등 젊은 남자애 다섯이었다.
길거리에서 맞닥뜨린다면 눈도 못 마주칠 부류였다. 문명사회가 아니었으면 진작 날 사냥해서 ‘약육강식’이 뭔지 몸소 알렸을 들개떼였다.
다섯을 상대할 자신이 있느냐고? 탑기가 흥미를 담뿍 묻힌 눈으로 날 콱콱 꿰뚫었다.
다섯 불한당이 붙잡은 전 애인을 바라보았다.
난 괜찮아, 지수야.
어차피 버린 몸이었다. 병들고 결딴나서 더 추락할 데도 없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내 선택은 다르지 않을 터였다. 난 지수의 영원한 수호천사였다.
지수가 더는 내 애인이 아니더라도 그 사실만은 변함없었다.
“자신 있어요. 헤, 헤헤……. 친구분들, 저랑 놀아요.”
다섯 남자가 조롱 섞은 탄성을 지르고 실실 웃었다. 탑기가 다섯 친구에게 청테이프를 던지고 말했다.
“자기는 그럼 거기 앉아서 구경이나 해. 형이 내 친구들이랑 화끈하게 놀아준대.”
다섯 양아치가 지수를 구겨서 의자에 앉히고 청테이프로 칭칭 감았다.
“읍. 으읍!”
지수의 입까지 청테이프를 붙여서 막았다. 지수가 짙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내 쪽을 노려보았다.
“헤헷, 텟…….”
유감스럽지만 사랑하는 전 애인만 계속 쳐다보고 있을 순 없었다. 날 향해 몰려드는 다섯 남자를 올려다보며 멍한 표정을 짓고 웃었다.
내게 허락된 유일한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