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 민탑기(7) (15/41)

2. 민탑기(7)

[형님♡: 대훤이 형]

[형님♡: 어이 넘버투]

[형님♡: 아빠❤]

[형님♡: 언제 와요 아 보고 싶은데ㅡㅡ]

[형님♡: 우리 자기도 형 보고 싶대요ㅋㅋㅋㅋ]

[형님♡: 딴 길로 새면 알죠?]

[형님♡: 사진]

[형님♡: 사진]

[형님♡: 사진]

[형님♡: 사진]

여러 장의 사진 속 난 졸도한 듯 완전히 맛이 간 얼굴로 식탁 위에 칠령팔락 널브러진 꼴이었다. 다리 사이에 검은색 대형 딜도가 비죽 삐져나와 있었다.

우습고 불쌍한 꼬락서니보다 눈에 띄는 것은, 배때기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신분증과 운전면허증, 그리고 가슴 양쪽에 걸쳐 마치 항문 주름처럼 넓게 펼쳐둔 아코디언이었다.

사진을 본 순간 모든 번뇌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비로소 각오가 섰다.

어린 남자의 주문에 따라 지체 없이 집으로 향했다.

빌어야 할 대상은 김지수가 아니라 처음부터 언제나 어린 남자였다.

“미안해요. 내가, 내가 잘못했어요. 지수는 나한테 인제 마음 없는데……. 동생 사람인데, 억지로 붙들어놓으려고 한 내 잘못이에요. 두 사람 잘 만났으면 좋겠어요. 그니까 나 좀 그냥 놔줘요. 제발, 이렇게 부탁할게요.”

두 사람 앞에 무릎 꿇고 애원했다. 어린 남자가 긴 침묵 끝에 단호한 말투로 물었다.

“그 말은, 우리 자기한테서 완전히 떨어져 나가주겠다, 이 소리예요?”

“네.”

“진심이에요? 진짜 우리 자기한테 조금도 미련 없어요?”

없긴 왜 없어. 김지수란 존재 자체가 내 인생의 걸어 다니는 미련 덩어리였다.

“없어요. 두 사람 방해 안 할게요. 그러니까 나 좀 보내줘요. 조용히 살게 그냥 내버려 두라고요.”

“우리 자기랑 아예 헤어지겠다는 거죠?”

“예.”

민탑기 네가 이겼다. 내가 졌다.

김지수 너 실컷 가져라. 네 맘껏 갖고 놀다 버리면 그때야 내가 수거하마.

“확실해요? 구라면 형 아빠 창?”

“예……?”

“까봐요.”

어린 남자는 어김없이 저속한 말씨로 날 황당하게 했다. 아무리 어린 남자를 속여야 한들 그런 맹세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 지금 장난치는 거 아니에요. 김지수 이 자식 너 다 가지라고요.”

그게 네가 진짜로 원하는 거잖아. 왜 말이 없어.

어린 남자가 목소리를 착 깔았다.

“언제는 집으로 들어오기만 하라더니 인제 와서 뭐요? 헤어져? 나 다 가지라고? 웃기는 형이네. 형이 뭔데 우리 자기를 배신해요? 형 그렇게 안 봤는데 완전히 얄팍한 인간이네요.”

“예. 얄팍한 인간이에요. 나 같은 건 지수 옆에 있을 자격 없어요. 그니까 물러나 주겠다고요.”

“쥐새끼같이 이랬다저랬다……. 맘이 그렇게 쉽게 변해요? 형은 사랑이 쉬워요? 자기야, 자기가 형 순정남이라며. 근데 지금 이거 뭐야? 이 형 자기 사랑하긴 한 거 맞아?”

주먹을 으스러뜨릴 듯 꽉 쥐었다.

사랑했다. 어린 시절부터 내내 지수 하나만 사랑해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랑하고 있었다. 내게 이런 수모를 겪게 한 김지수를 사랑하지 않은 적 없었다.

자기 자신의 팔다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자기 자신의 간덩이를 남한테 줘버리고 멀쩡하게 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썩은 팔다리나 부은 간땡이일지언정 없어도 그만이라고 어느 누가 그렇게 생각하겠느냔 말이다.

“변대훤 네 마음대로 해.”

김지수가 말했다. 내 심장의 반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머지 반절은 쿵 추락했다.

“아니. 인제 자기 유일한 애인으로서 그냥은 못 넘어가지.”

어린 남자가 말하고 내게 덧붙였다.

“감히 우리 자기 가슴에 대못 박고 여기서 멀쩡히 걸어 나가려고요? 그렇겐 안 되죠. 떨어져 나갈 때 떨어져 나가더라도 우리 자기 배신한 대가는 치르고 나서 꺼져요.”

“무슨 대가요.”

“박쥐 새낀 벌 받아야죠.”

벌, 벌, 벌, 그놈의 벌. 더는 못 참아.

“으아악! 아아아아악!”

머리를 감싸고 비명을 쏟아냈다.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벌 그만! 흐, 허아아아악……!”

머리를 아무 데나 쿵쿵 처박았다. 그러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가혹한 시스템 같았다. 매트릭스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새처럼 훨훨 날아가고 싶었다.

“형 돌았어요?”

“쯧쯧.”

두 사람이 날 조롱했다. 상관없었다.

명치 한곳에 딱딱하게 뭉친 채 날 서서히 죽이는 응어리를 풀지 않는다면 당장 숨부터 콱 막힐 것 같았다. 실성해 광인이 될 것 같았다.

“나보고 어떡하라고! 시키는 대로 다 했잖아! 사진은 왜 찍는데. 그런 걸로 왜 사람을 협박해? 난 너희 땜에, 너희 땜에 병까지 옮았는데…….”

몸을 앞뒤로 미친 듯이 흔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당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뭘 옮아요?”

어린 남자가 내 아랫도리를 잡아챘다.

“어흣, 하지 마요…….”

“가만있어요.”

“으웃!”

바지가 무릎 아래로 내려갔다. 속옷을 입지 않아서 알궁둥이가 곧바로 드러났다.

“흐욱…….”

서러운 고개를 바닥 가까이 떨궜다. 딱 죽고 싶었다.

“형 바람피웠어요……?”

뭐?

입 못 다문 고개를 들고 좀비 같은 눈으로 어린 남자를 노려보았다. 어린 남자의 뻔뻔한 낯짝이 경멸하는 빛을 입었다.

“그사이에 어디서 누구랑 바람피웠길래 이런 더러운 걸 달고 들어와요? 누구예요?”

“…….”

“자기야. 형이 자기 몰래 바람피워서 병 걸려 와놓고 자기한테 덮어씌우려고 헤어지자는 거 같은데?”

“너희들한테 옮은 거잖아! 내가 너희들 말고 누구한테 옮아.”

“그거야 형이 알겠죠. 그리고 나랑 우리 자기한테 병 같은 거 없거든요? 볼래요?”

어린 남자가 아랫도리를 훌러덩 깠다. 깨끗하고 맑고 자신 있는 성기가 나타났다.

“뒤에도 보여줘요?”

어린 남자가 뒤돌아 엉덩이를 내밀었다. 마찬가지로 티 없이 맑은 아이였다.

“자기 것도 봐봐.”

어린 남자가 김지수의 성기를 꺼내 자세히 살핀 다음 날 향해 덜렁덜렁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것 봐요. 우린 아닌데요? 인제 어떡할래요? 형 딱 걸렸어요.”

악마 같은 자식. 억울한 가슴을 주먹으로 콱콱 때렸다.

나한테 더러운 걸 옮겨놓은 두 사람은 말짱하고, 왜 나만……!

“어떡할래, 자기?”

어린 남자가 심드렁한 얼굴로 지수에게 들러붙어 물었다.

“형은 어쨌든 이대로 그냥 도망가겠단 거잖아. 형한테 병 옮긴 그 새끼한테 가려는 거 같은데. 그 새끼가 7년 만난 자기보다 훨씬 좋은가 봐. 똥개라 그런지 역시 지조가 없네.”

“대훤아.”

지수가 날 불렀다. 지수를 간곡한 눈빛으로 우러렀다.

난 내 오랜 애인을 잘 알았다. 지수는 냉혈한이 아니었다.

김지수는 분명 인간적인 남자였다. 8년을 함께해온 내게 최소한의 도의는 지켜줄 사람이었다.

“아아, 지수야……!”

무릎으로 기어 지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아니잖아. 나 아니잖아……! 너도 알잖아. 다른 사람 다 몰라도 넌 알아야지. 너무 힘들어. 괴로워서 죽고 싶어. 제발 나 좀 살려줘. 숨 좀 쉬게 해줘, 지수야. 어? 그래 줄 수 있잖아. 흣, 허아아…….”

“그래 줄 수 있지.”

“흐읏, 흐훅…….”

숨이 가쁘고 목이 메었다. 어지러운 고개가 이리저리 휘청였다.

“그래, 그렇게 나랑 헤어지고 싶으면 헤어져야지. 그건 맞지.”

불길했다.

“근데 감히, 뭐? 네가 나한테? 헤어져?”

“…….”

“난 너랑 헤어질 수 있어도 넌 안 되지. 인제 좀 재밌게 지내보려는데 어딜 도망가. 내가 말했지. 너희들 둘 다 내 거라고.”

김지수가 말하고 어린 남자의 볼깃살을 콱 그러잡았다.

“아흥? 아잉, 자기도……!”

“나랑 헤어지고 싶으면 헤어져. 그렇게 해. 지금부터 변대훤 넌 내 애인 아니야. 첫 번째도 아니고 두 번째도 뭣도 아니야.”

그럼 뭔데. 나도 좀 알자. 내가 도대체 너한테 뭐야?

“뭐, 놔줘? 보내줘? 널 어디로 보내. 킥킥. 네가 갈 데가 어딨어. 넌 갈 데 없어. 페북 스타 되고 싶지?”

지수가 어린 남자처럼 날 협박한 걸까. 8년을 만나온 날 존중하기는커녕 공개적으로 망신 주겠다고 겁준 걸까.

설마. 그럴 리 없잖아.

어린 남자 앞에서 체면을 세우느라고 괜히 더 심하게 구는 것일 테지. 김지수는 원래 못된 소리를 잘하니까.

끝에 가면 못 이기는 척 사정을 보아주겠지. 지수는 언제나 내가 비는 꼴을 좋아했다.

그니까 한 번만 더, 그래도 안 되면 두어 번 더 애걸복걸하면…….

지수와 눈을 필사적으로 맞췄다. 가슴속 가장 진실한 마음의 소리를 끌어내 외쳤다.

“지수야. 나 더 이상은 못 하겠어. 며칠은 어떻게 어떻게 참아봤는데, 근데 자꾸 내가 너한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져. 맞잖아. 네가 나한테 이런다는 건 내가 너한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란 거잖아. 그래도 우리, 김지수 너랑 나랑 8년 동안 애인이었잖아. 나한테 이렇게까지는 하면 안 되는 거잖아.”

“사람? 애인?”

“…….”

“넌 개야. 사람은 얘고. 얘가 내가 진짜 사랑하는 애인이고, 넌 그냥 우리 장난감이고 광대고 똥개 새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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