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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민탑기(4) (12/41)

2. 민탑기(4)

도어록이 열리지 않았다. 당황한 나머지 평소 관성으로 눌러온 집 비밀번호가 순간 생각이 안 날 정도였다.

정신을 차리고 번호를 다시 눌렀다. 그러나 알맞게 입력해도 도어록은 오류의 표시로 삑삑 울어댈 뿐이었다.

하는 수 없이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지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지수야, 현관문이 왜…….”

―대훤이 형!

핸드폰을 귀에서 떼고 화면을 확인했다. 김지수한테 전화를 건 게 맞았다.

“문 열어요.”

―애교 보여주면 열어주―지.

어린 남자는 내가 무슨 결심을 하고 돌아왔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애교처럼 태평한 소리나 하고 있다니.

목소리를 착 가라앉히고 말했다.

“경찰 부르기 전에 문 열어요.”

―힝.

오늘은 기필코 차분히 대화해서 두 사람을 내보내려고 마음먹었다. 내가 목숨보다 사랑하는 지수인들 잠시 헤어지기로 생각 정리를 마쳤다.

수업하는 내내 어젯밤 셋이 뒤엉켜 삼색 모둠 소시지처럼 볼기짝 살코기를 겹친 채 지범지범 붙어먹던 끔찍한 기억에 시달리다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니 더는 두 사람을 봐줄 이유가 없었다. 어린 남자가 핸드폰 너머에서 말했다.

―알았어요, 형……. 비밀번호 카톡으로 보내줄게요.

뚝. 어린 남자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통화를 종료했다.

그러자마자 핸드폰이 지이잉, 메시지 도착을 알리며 진동했다. 뭐가 이렇게 빨라.

신세대라 다르긴 달랐다. 그나저나 통화 중에 비밀번호를 그냥 불러주면 되지, 쓸데없이 왜 메시지로…….

“…….”

핸드폰을 들고 화면을 내려다보는 자세 그대로 얼었다. 핸드폰을 쥔 손끝이 파들파들 떨었다.

어느새 나도 모르는 단체 채팅방에 초대되어 있었다. 참여자는 세 명. 나, 김지수, 그리고 어린 남자였다.

하지만 고작 그게 내가 굳어버린 이유는 아니었다. 어린 남자가 단체 채팅방에 올린 사진 때문이었다.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만큼 꼴사납고 파렴치한 모습의 남자를 찍은 사진이었다. 나였다.

그 아래 ‘음성메시지’가 뒤따랐다.

앞뒤가 맞지 않았다. 비밀번호를 메시지로 찍어주겠다고 말해놓고 음성파일을 올려놓다니. 무슨 게임이라도 하자는 걸까.

서서히 손가락을 옮겼다. 그리고 음성메시지를 눌렀다.

【하윽! 하앗, 흐억! 흐웃……. 억!】

“……!”

핸드폰을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소리를 꺼야지, 바보 자식! 핸드폰을 떨구면 어떡해?

황망히 쭈그려서 핸드폰을 주웠다. 소리부터 끄려고 보니 화면이 시꺼멨다.

뭐지? 꺼졌나? 고장 났나? 근데 왜 계속 소리가 나지? 아, 잠겼나.

손이 파들거려서 도무지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음성메시지 재생을 중지하려다가 잘못해서 다른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말았다.

“흣, 흣…….”

빨리 수습해야 할 시간에 사방을 두리번거리기에 이르렀다. 다행히 복도엔 아무도 없었다.

도대체 몇 분짜리 음성인 거야. 겨우겨우 음성메시지 재생을 중지했다.

사람이 있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키히힉!】

갑작스러운 기계음에 간이 떨어질 뻔했다. 소리의 근원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인터폰이 붉게 발광했다. 언제부터 저걸로 날 보고 있었지?

【대훤이 형. 인제 애교 떨 맘 생겼어요?】

“…….”

【아직 안 생겼어요?】

울고 싶었다.

어린 남자가 하라는 대로 더는 하기 싫었다. 어린 남자가 김지수나 나, 우리 커플을 멋대로 휘두르는 걸 원하지 않았다.

차라리 내가 사라지자. 자리에서 일어나 뒤돌아섰다.

아무리 사악하고 못 배워먹은 애라도 내가 제 말을 안 듣는다고 해서 내 사진이나 그런 걸…….

【도망가면 재미없을 줄 알아요. 한번 가봐요.】

“…….”

【송과초등학교죠?】

그것까지 어떻게…….

김지수가 알려줬나? 아닐 텐데. 내 물건을 뒤졌나?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이런 건 다 남 일인 줄 알았는데.

【들어와서 얘기해요.】

인터폰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인터폰이 불빛을 켠 채 날 카메라로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일하는 곳 뭐. 네가 어쩔 건데.

해봐. 내가 부모님 소개로 면접 보고 다니는 학교에, 아니면 동네 학부형한테 유포라도 하려고? 그런 짓을 하면 본인은 무사할 줄 아나?

……그래도 어린 남자 말대로 일단은 들어가서 대화로 좋게 해결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손을 억지로 뻗어서 습관처럼 도어록 뚜껑을 밀었다.

맞다, 비밀번호. 눈이 인터폰에 갔다.

【애교 떨어요.】

어린 남자의 목소리와 말투는 장난기 하나 없이 싸늘했다. 평소와 다르게 너무 쌀쌀맞아서 더 애교는커녕 말 한마디조차 선뜻 입 밖으로 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셋 셀 때까지 안 하면 형 신음 소리 복도에 다 들리게 인터폰에다가 대고 틀게요. 셋.】

“…….”

【둘.】

“하, 할게요! 하아……!”

【…….】

“문, 열어주세요. 아, 아잉.”

【한 거예요?】

“아니, 저……. 아앙, 문 열어줘요.”

【흠.】

“앙, 으앙, 제발요.”

분노로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어린 남자를 흉내 냈다. 어린 남자가 평소에 몸소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애교라는 게 뭔지, 어떻게 하는지조차 몰랐을 터였다.

인터폰 너머에서 한참 말이 없었다. 긴 침묵 속에서 자괴감으로 미쳐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눈물 나네요. 오케이, 이번만 통과!】

개자식.

인터폰이 불을 뚝 껐다. 철문 뒤편에서 발소리가 울렸다.

벌컥! 어린 남자가 현관문을 열었다.

“대훤이 형! 왔어요?”

“…….”

“보고 싶었어요. 컴온 컴온.”

어린 남자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집 안에는 들어와야 했다.

내 이런저런 모습을 촬영한 건에 관해서도 확실히 언급하고 지울 것을 요구해야겠다.

굳게 마음먹었다. 전쟁터로 나가는 군인의 심정이었다.

“형 왜 아직도 마스크 쓰고 있어요?”

어린 남자가 물었다. 김지수가 거실 소파에 앉아서 게임을 하다가 날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아, 마스크.

“우리 자기 정액 냄새가 그렇게 좋아요? 계속 맡고 싶은가 보네. 푸붑!”

화기가 가라앉지도 않았는데.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마스크를 벗었다. 또 두 사람한테 휘말리기 전에 입을 얼른 열었다.

“지수야, 우리 얘기 좀 하자.”

“넌 맨날 할 얘기가 그렇게 많냐?”

“아니. 내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아무…….”

어린 남자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응? 대훤이 형. 아침에 내가 얼굴에 붙여준 거 어디로 갔어요?”

“예……?”

“우리 여보 후장 털 어디 갔냐고 묻잖아요.”

“그건 모르겠고, 내 말부터 들어요. 여긴……. 퓨흑!”

꽝!

몸이 순간이동 하듯 옆으로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우으윽…….”

벽을 껴안고 힘 푼 다리로 미끄러졌다. 어린 남자가 헛웃음 쳤다.

“자기야, 형 간땡이 배 밖으로 나왔잖아. 자기가 형 마저 찜질 좀 해. 내가 또 하면 형 죽어.”

어린 남자가 말하는 소리가 아스라했다.

“대훤이 형. 형이 내 말부터 들어요.”

“흣……. 훅.”

이해가 안 됐다. 서로 대화해서 뭐든 해결할 수 없나?

물론 지수한테도 그간 내 말이 통하지 않기는 했지만, 내 알 바도 아닌 타인에게 이렇게 무차별로 얻어맞고 볼 일인가? 내가 모자란 바보 천치라고밖에 설명할 길 없었다.

애인이고 뭐고 새벽에 흠씬 두들겨 맞은 그 순간에 경찰에 신고해 둘을 내쫓고 거들떠보지도 말아야 했나.

아니다. 그랬으면 어린 남자가 분명 가만있지 않았을 거다. 내 부끄럽고 변태 같은 모습을 갖고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른다.

이게 나았다. 잘된 일이었다.

“맛있는 건 어딨어요?”

“극. 흐웃, 예……?”

“내가 올 때 맛있는 거 사 오라고 했잖아요. 원래 아빠는 퇴근할 때 맛있는 거 사 와야 되는 거 몰라요? 형 아빠 없어요?”

내가 왜 그래야 되는데. 뭣보다 언젠 바깥 음식 같은 거 안 먹는다고 하지 않았나. 웬 아빠 타령이야. 이 애야말로 아버지가 없는 것은 아닐까.

“내가 왜…….”

네 아빤데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어린 남자가 말했다.

“형이 아무것도 안 사 오면 우린 뭐 형이 밥 차릴 때까지 배고픈데 계속 굶어요?”

“…….”

“우리 자기 후장 털은 얻다 갖다 팔아먹었어요. 빨리 털어놔요.”

그걸 누가 사는데. 어린 남자가 계속 다그쳤다.

“형. 아침에 분명히 붙여놨는데 어디로 갔냐고요.”

“몰라요.”

“모른다고요? 형 지금 모른다고 했어요?”

사실 모르진 않았다. 현관을 나서자마자 떼서 복도 바닥에 버려버렸으니까.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네.”

“진짜 몰라요?”

“네. 힉? 프흡……!”

어린 남자가 내 귀퉁배기를 날렸다.

퍼―헉!

“흐악!”

콰당탕. 식탁 모서리에 옆구리를 부딪히고 식탁 의자와 함께 나동그라졌다.

“흣, 흐읏…….”

어린 남자가 부엌 바닥을 구르는 내게 한 걸음씩 다가왔다.

“몰라요?”

“힉!”

“모른다고요?”

“흐갹!”

앞이 잘 안 보였다. 어린 남자의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귓속 깊은 곳 사이렌 소리만 선명했다.

어린 남자는 가볍게 한 대 친 것 같은데 화물트럭이 박고 간 고라니가 된 것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아아. 아. 흐끅……. 흑.”

얼얼한 귀퉁배기를 감싸 쥔 채 오금을 덜덜 떨었다.

몸의 고통은 낯설지 않았다. 불구가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참을만했다.

두 사람, 내 사랑하는 애인과 애인의 새 남자한테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희롱당하는 것도 아주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제일 견딜 수 없는 건, 김지수뿐 아니라 어린 남자의 손찌검에마저 익숙해져 가는 나 자신이었다. 어린 남자가 날 부지불식간에 길들이고 말 것 같았다.

“2번 형.”

“흐힉? 힉…….”

어린 남자가 자세를 낮춰 내게 내려온 순간 온몸이 절로 경기를 일으켰다. 나보다 어린 데다 잘생기고 인기 많은 남자한테 공포 분위기를 조성당하는 건 너무 잔인했다.

죽고 싶을 만큼 창피했다.

“몰라요?”

어린 남자가 낮은 목소리와 느린 말투로 물었다. 대답 대신 두 주먹을 살그머니 내리고 어린 남자를 힐긋 쳐다보았다.

검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흐욱…….”

얼굴을 찌푸리고 울상을 지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용서해줄게요.”

네가 뭔데 날 용서해. 내가 뭘 잘못했는데.

어린 남자의 표정이 천사처럼 온화했다.

정말일까. 솔직하게 말하면 끝날 일일까.

어린 남자가 날 손수 일으켜 앉히고 내 매무새까지 다듬었다. 예쁜 이목구비와 새카만 속눈썹을 내려다보다가 홀린 듯 고백했다.

“출근, 하다가……. 버렸어요.”

“어디에다가요?”

“복도에요.”

“그랬어요? 뭐야.”

어린 남자가 별것도 아니라는 듯 해사하게 웃고 말했다.

“왜 쓸데없이 거짓말해요. 거짓말하려면 끝까지 하든가요. 언제 떨어져서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 했으면 그냥 이번에 믿어주고 끝내려 했는데.”

“…….”

“사실 형 출근할 때 인터폰으로 다 봤어요. 희희!”

얼굴의 모든 구멍을 열고 어린 남자를 노려보았다.

“여기서 나가자마자 복도에 버려버릴 만큼 우리 자기 똥털이 그렇게 싫어요?”

“억지 좀 그만 부려요! 내가 언제 지수 털이 싫대요? 얼굴에 그런 거 붙이고 출근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한 번을 안 쉬고 말해놓고 씨근벌떡 숨을 들이마셨다. 어린 남자가 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자기 말만 했다.

“아무리 그래도 애들 가르치는 일 하는 사람이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습관처럼 거짓말이나 술술 하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무슨 상관이에요. 나한테 뭔 상관이냐고요. 남의 직장에까지 신경 쓰지 말고 지수한테나 신경 써요.”

내 마지막 말에 어린 남자가 눈썹을 약간 찡그렸다. 묘한 표정이었다.

“나만요? 형은 인제 우리 자기한테 신경 안 쓸 것처럼 얘기해요, 왜?”

어린 남자가 정곡을 찔렀다. 애써 태연한 척 지수를 흘낏 한 번 살폈다.

언제나처럼 무뚝뚝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김지수는 의외로 또 이런 쪽엔 눈치가 빠삭했다.

어린 남자가 일부러 수선 떨지 않아도 내 속셈을 알아차릴 동물적 감각 같은 게 있었다. 뭣보다 우린 8년 차였다.

분위기가 좀 일단락되고 나면 얘기를 꺼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린 남자가 장난스러운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리고 선수 치듯 말했다.

“도망가게요?”

“…….”

짐짓 ‘말도 안 되는 소리나 해대고 한심해서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양 입을 꾹 다문 채 코로 한숨을 쉬었다.

김지수의 무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지수도 이미 다 눈치챈 듯싶었다.

“자기야, 형이 우리 버리려나 봐. 힝…….”

“…….”

“아니라고 안 하는 거 보니까 진짠가 보네.”

지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냥 아무 생각 없는 건지도 몰랐다.

지수는 내가 사라져도 상관없나. 어린 남자가 있기 때문일까.

두 사람한테서 깔끔하게 벗어나고 싶은 마음 반, 내 오랜 애인이 날 끈질기게 붙잡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반이었다. 메마르고 습한 두 감정이 내 안에서 대류를 일으켰다.

“알았어요. 형, 가요.”

어린 남자가 집주인같이 말했다.

내 집인데 내가 어딜 가. 너희가 나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허락만 해준다면 순순히 달아나고 싶었다. 현대판 노예가 따로 없었다.

“어제 2번 형이랑 우리 셋이서 진짜 재밌고 좋았는데 아쉽다. 근데 형이 우리가 싫으면 어쩔 수 없죠.”

어린 남자가 조금도 아쉽지 않은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 너무하게 잘난 두 사람의 외모에 걸맞은 말의 내용이었다.

난 왜 하필 지수처럼 잘생긴 녀석이랑 만나서 이런 더러운 꼴을 봐야 하나. 지수의 외모가 나와 다를 바 없이 평범했다면 이런저런 지저분하고 골치 아픈 일 없이 우리 둘이서만 알콩달콩 조용히 잘 지냈을 것 아닌가.

“어제 형 완전 야하고 섹시했는데. 우리 자기 ‘진짜 이상형’이 그거거든요. 발정 난 개새끼. 몰랐죠? 형 출근해서 집에 없는 동안 우리 자기가 형 얘기만 했어요. 귀에 딱지 앉는 줄 알았다니까요. 내가 얼마나 질투 났는지 알아요?”

“……지수야, 갈게.”

어린 남자의 말은 분명 계속 더 듣고 싶을 만큼 달콤했다. 그러나 전부 거짓이었다.

어제 내가 그렇게 섹시했다고? 어제 우리 셋이서 그렇게 재밌고 좋았다고?

웃기지 마. 내 기억은 잘못되지 않았다.

어제 난 지수와의 관계 중에 실례를 했고, 새벽 내내 어린 남자한테 구타당했고, 아침에마저 소변 한 번 제대로 못 본 채 시달리다가 도망치듯 출근했다. 그런데 어린 남자는 마치 내 기억이 잘못된 것처럼 뻔뻔하게 날 속이려고 들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보내줄 때 가야 했다.

“형, 잘 가요. 바이.”

어린 남자가 손을 흔들었다. 마지막으로 지수를 한 번 눈에 담았다.

나중에 보자, 지수야. 빨리 정신 차려라.

돌아서서 현관으로 향했다. 일단은 숙소를 잡아야 하나.

인제 곧 방학이니까 조금만 버티다가 본가로 내려갈까. 그렇지만 지수가 금방 날 찾을지도 모르잖아.

나가서 차차 생각하자. 조급한 발을 신발에 밀어 넣었다.

그때였다.

턱. 어깨를 잡는 뜨거운 체온에 기겁하고 펄쩍 뛰었다.

왜, 또 왜……! 원망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어린 남자를 돌아보았다. 어린 남자가 죽자 살자 참았던 웃음을 비로소 마음껏 짓듯 눈을 기괴하게 휘고 입을 쭉 찢었다.

“형. 근데 있잖아요.”

“네?”

“우리 자기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형이 너무 괘씸해서 안 되겠대요.”

“뭐가요.”

“사실 오늘 우리 자기가 형 주려고 선물도 샀거든요. 형 일 가있는 동안 나까지 끌려가서 선물 고르는 거 도와줬어요.”

“근데요.”

“근데 형은 우리 자기 똥꼬 털 복도에 휙 버려버리고 거짓말이나 하고 대뜸 도망가버리면 우리 자긴 뭐가 돼요?”

“그래서 어떡하라고요?”

원하는 게 뭐야? 당황한 눈을 크게 뜨고 김지수를 찾았다.

그러나 지수는 아직 거실에 있는 듯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돈을 빌렸으면 갚으면 되고,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으면 되죠. 형이 우리 자기 털 아무렇게나 내다 버렸으니까 형 고추 털 빡빡 미는 정도면 적당하지 않을까요?”

어린 남자가 정상인처럼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머지 발에 신발을 후닥닥 꿰고 일어났다. 열받은 심폐가 뜨끈뜨끈했다.

“무슨 잘못이요? 무슨 벌요? 난 모르니까 둘이 알아서 해요.”

“알았어요…….”

사람 미치게 하는 데 뭐가 있었다. 현관 문고리를 잡았다.

지긋지긋한 집에서 나와 현관문을 때려 닫으려는 순간이었다.

“근데 형, 장롱 안에 있던 거 다 어디 갔어요?”

쾅!

현관문이 뒤통수에 대고 위험을 알리듯 고함쳤다. 장롱 안에 있던 것?

【형.】

“…….”

【혀엉, 언제까지 거기 그러고 서있을 거예요? 나 심심한데.】

“…….”

【우리 자기가요, 벌 받을 자신 있으면 어디 한번 들어와 보래요.】

현관문을 등지고 선 시간이 억겁같이 길었다. 머릿속이 텅텅 달아났다.

끝내 발길을 돌이켜서 도어록을 밀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날 그만 괴롭힐 셈인지 진심으로 묻고 싶었다.

장롱 안 깊숙한 곳에 숨겨둔 소형금고엔 그동안 나 혼자 조금씩 사 모은 골드바와 은괴가 들어있었다. 골드바는 몇 개 안 되지만 은괴는 양이 꽤 많았다.

막연히 지수와 내 미래를 생각해서 저축 겸 사 모아둔 건데. 번쩍이는 현물을 놓고 보다 보면 쉽사리 써버릴 수 없는 건 물론이고 내 마음이 실체가 된 것 같아 뿌듯하고 보람찼다.

지수와 무엇을 하면 좋을까 상상하는 기쁨도 있었다. 언젠가 지수와 함께 긴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아주 멀고 매우 좋은 곳. 이 세상이 아니라 꼭 다른 세상 낙원 같은 곳. 이를테면 보라보라섬 말이다.

거기에 손을 댄 걸까. 어떻게 알았을까. 지수가 말했나.

비밀번호가 맞지 않았다. 어린 남자가 도어록 비밀번호를 바꿨단 사실을 그새 잊고 있었다.

“하, 씨……!”

철문을 꽝 두들겼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형, 무섭게 왜 그래요. 문 부서져요.】

“열어요.”

【벌 받을 자신 있나 봐요?】

“열라고요.”

【그냥은 안 되죠. 비밀번호는 뭔지 알죠? 형의 특급 애교 댄…….】

꿍. 꽝!

철문을 연달아 두들겼다.

【아앙, 알았어요. 무서워 죽겠네.】

어린 남자가 문을 열자마자 어린 남자를 밀치고 안에 들었다. 김지수는 거실에서 핸드폰을 보느라 날 본체만체했다.

발걸음을 재촉해 침실에 들었다. 그러자마자 장롱 속 금고를 꺼냈다.

잠금을 풀고 금고 문을 따자마자 쿵쾅쿵쾅 발소리가 들이닥쳤다. 당황한 눈을 굴려 얼른 금고 안을 확인했다.

금고 안의 모든 물건은 그대로였다.

“큭큭. 내가 훔쳐 갔을까 봐요?”

금고를 황급히 닫았다. 변대훤, 이 바보. 왜 이거 생각을 못 했을까.

그보다 김지수는 이런 기본적인 건 좀 단속을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애초에 우리 둘을 위해 모아둔 귀중품인데, 바람 다 피우고 오면 저도 써야 할 거잖아.

답답했다. 그나마 작은 금고니 이대로 들고 나가면 될 것 같았다.

금고를 안고 천천히 일어났다. 어린 남자가 번들번들한 눈으로 날 비웃었다.

“형, 너무한 거 아니에요? 왜 사람을 의심하고 그래요? 실망이에요.”

너무한 건 너겠지. 남의 집 물건은 왜 뒤져.

김지수 말마따나 미친 정신병자 같은 애였다.

말없이 시선을 거두고 침실을 나서기 위해 문 가까이 갔다.

“어디 가요?”

그런데 문짝만 한 어린 남자가 길을 막고 비켜서지 않았다.

“비켜요.”

“죽을래요?”

“…….”

“어디 가냐고 물었어요.”

차로 간다, 이 자식아. 잠깐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지수한테요.”

이렇게 말하면 저도 비켜주지 않을 수 없겠지?

어린 남자가 즉시 대답했다.

“안 되는데요.”

안 되긴 뭐가 안 돼. 네가 뭔데. 네가 지수야?

“비켜요. 지수랑 얘기할래요.”

김지수랑 해야 할 얘기 따위 없었다. 어린 남자를 밀치고 틈으로 빠져나가려고 몸을 비틀었다.

“흣……? 내려줘요, 내려, 윽!”

어린 남자가 날 금고째로 번쩍 들었다. 놀이기구에 오른 듯 너무 높아서 천장에 머리를 박을뻔했다.

“히윽!”

어린 남자는 날 어깨에 지고 몇 걸음 걸어서 침대에 내동댕이쳤다.

왜 침대에……? 무슨 짓을 하려고?

“우리 자기가 형 벌 받기 전까진 형 얼굴 보기 싫대요. 그니까 우리 자기야랑 얘기하고 싶으면 벌부터 받고 오라네요.”

가슴만 들썩였다.

무슨 놈의 벌. 음모를 빡빡 밀라는 변태 같은 벌?

금고를 꼭 고쳐 안고 쏘아붙였다.

“그럼 그냥 갈래요.”

벌떡 일어나서 발을 내디뎠다.

“읏!”

어린 남자가 내 한쪽 어깨를 팍 밀쳤다. 침대에서 몇 걸음 벗어나지도 못하고 방바닥에 미끄러졌다.

“벌 받을 자신 있어서 기어들어 온 거 아니었어요? 그냥 가긴 어딜 가요?”

“벌 너나 실컷 받아. 너희 둘이서 벌주고 벌 받고 다 해. 내가 나가줄 테니까 너희들 맘대로 하고 놀아.”

격한 숨이 가슴 안팎으로 드나들었다. 금고 땜에 마음이 급했다.

어린 남자가 날 가만 내려다보았다. 금고를 잃게 될 것만 같은 불길한 느낌이 날 덮쳤다.

지레 울상을 지었다. 어린 남자라면 날 개처럼 화장실로 끌고 들어가 털을 밀어버리고 금고를 빼앗는 일이 누워서 떡 먹듯 쉬울 테니까.

“우리 자기가 언제 형보고 나한테 반말해도 된다고 했어요?”

지금 그게 중요해?

어린 남자는 제정신이 아닌 걸까. 아니면 그냥 어린 남자에겐 무엇도 중요하지 않은 걸까.

어린 남자가 내 이마를 기분 나쁘게 밀었다. 쿵. 뒤통수가 바닥에 부딪혔다.

머리를 일으켰다. 어린 남자가 내 이마를 밀었다. 쿵.

“에익……!”

욱하는 마음에 발길질을 퍼부었다. 금고를 껴안은 채 바닥을 굴렀다. 그때였다.

“우욱!”

어린 남자가 내 금고 위에 앉았다.

“극, 끄윽……!”

몸뚱어리가 납작해진 것 같았다. 벌레처럼 즙을 뿜으면서 폭발해 죽고 말 것 같았다.

“그엑…….”

어린 남자가 상체를 수그렸다. 손깍지를 끼고 턱을 괴었다. 날 유심히 관찰했다.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이목구비에 압이 올라 두 눈이 뿍 튀어 나갈 것 같았다.

“응엑. 게헥.”

이러다간 터져 죽는다. 어린 남자에게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아 입만 벙긋거렸다.

금고에서 손을 떼고 어린 남자를 향해 뻗었다. 눈앞이 점점 붉고 희미해졌다.

“짓, 욱……. 악.”

지수야.

“허어억!”

그때 날 누르던 무게가 약간 줄었다. 이때다 싶어 숨을 미친 듯 들이켰다.

뇌로 자칫자칫 오르던 눈동자를 빠르게 내려 눈앞을 응시했다. 어린 남자가 궁둥이를 금고에서 아주 약간 든 채 날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어린 남자 또한 내가 정신을 되찾았다는 걸 알아차린 듯 옅은 미소를 짓고 금고에 도로 궁둥이를 붙였다.

“퓨흑……!”

눈알이 펑 날아갈 것 같았다. 혓바닥이 툭 빠질 것 같았다.

갈비뼈가 으스러지기 직전까지 휘었다는 것을 가슴 안에서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이대로 뼈가 부러지면 염통과 허파를 찌르고 뚫겠지.

어린 남자는 날 죽이고 싶은 걸까. 왜 저렇게 눈을 반짝이면서 내 모습을 구경하나. 그렇게 재밌나.

아무래도 좋았다.

“브륵.”

어린 남자가 금고에서 일어났다.

“그힉? 크헉! 케헉, 쿨럭. 쿨럭!”

어린 남자가 금고를 단단히 붙잡고 자신의 체중을 실었다.

“하으윽, 하웃……!”

크게 소리 높여 울부짖었다. ‘그만 좀 하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강력하고 신속하게 의사를 전달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다음번엔 정말로 목숨을 잃게 될 터였다.

“으아악……!”

어린 남자가 내 괴성에 뚝 멈췄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금고에 온 체중을 싣고 앉았다.

“하윽!”

찢어질 듯한 얼굴로 잔뜩 인상을 쓴 채 견딜 준비에 돌입했다. 그 순간 어린 남자가 말했다.

“벌 받을 거예요, 말 거예요.”

“받, 윽. 받……. 억.”

“안 들려요. 똑바로요.”

이를 콱 씹고 노려보았다. 무거워 죽겠는데 어떻게 대답하란 거야.

“받, 욱. 거예요. 받을, 거……. 효!”

인체의 신비였다. 어린 남자는 신비해진 날 그제야 완전히 놓아주었다.

“하웃, 하아, 하으우…….”

금고가 내 몸에서 굴러 침실 바닥에 툭 떨어졌다.

“그거 도로 잘 넣어놔요.”

“…….”

“그런 다음에 화장실로 들어가요.”

“…….”

“벌 받고 우리 자기 허락 맡고 다시 들고 나가든지 말든지 해요.”

“흐읏…….”

몸을 버들버들 일으켰다. 어린 남자는 내가 끙끙대며 금고를 장롱 안에 넣어놓을 때까지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았다.

투명 족쇄를 찬 노예처럼 무거운 발을 옮겨 화장실 안에 들었다. 어린 남자가 날 따라 들자마자 화장실 문을 철컥 잠갔다.

“문은 왜 잠가요……?”

“그냥요. 내 맘인데요?”

“잠그지 마요.”

“싫어요.”

“문 열어요.”

“싫어요. 바지 벗어요.”

“지수야!”

“우리 자기 아무리 불러봐야 소용없어요. 형이 벌 다 받기 전까진 들은 척도 안 할걸요?”

“…….”

“난 강요한 적 없어요. 형이 선택한 거니까 알아서 해요.”

이게 강요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어린 남자가 내 알몸 따위엔 조금의 흥미도 없으며 오히려 불쾌한 척 차갑고 의무적인 태도로 입을 움직였다.

“바지 벗고 면도기 들어요.”

버텨봤자 보내주지 않을 것이다.

좋게 좋게 끝내는 것, 그게 내 유일한 바람이었는데.

외로운 고개를 푹 숙였다. 스스로 바지를 끌렀다.

팬티까지는 차마 벗지 못하고 바지만 골반 아래 걸쳐둔 채 세면대 위 면도기를 집었다.

“팬티도 내려요.”

시선을 이곳저곳 딴 데로 돌렸다. 뜸을 아무리 들인들 어린 남자는 원하는 바를 이루기 전까지 지치지 않을 터였다.

숙제를 빨리 해치우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어린 남자가 보는 앞에서 팬티마저 내려 초라한 성기를 드러냈다.

“뭐 해요. 밀어요.”

어린 남자와 눈싸움을 벌였다. 졌다.

차디찬 면도기를 국부에 가져다 댔다. 한 번도 손댄 적 없는 음모가 길고 무성했다.

메마른 채로는 잘 밀 수 없었다. 건조한 생살을 면도날로 벅벅 긁으며 낫질하는 것이나 다름없이 음모 가닥을 베어냈다.

어린 남자가 내 모습을 한참 관람하다가 오버해서 한숨을 팍 뿌리고 닥쳐왔다.

“내가 할 거예요! 내가……!”

“그렇게 해서 언제 다 밀어요.”

어린 남자가 세면대 위 면도크림을 낚아챘다. 그리고 욕조까지 물러난 날 사냥했다.

“흐욱…….”

달아날 곳이 없었다. 욕실이 너무 좁았다.

“가만있어요.”

“하읏!”

어린 남자가 내 성기를 잡았다. 어디로든 도망갈 수 없게 가두고 나머지 손으로 내 음모에 면도크림을 칠했다.

어린 남자가 다 쓴 면도크림을 세면대에 내팽개치는 소음이 어지러웠다. 뜨거운 손이 다리 사이에 불쑥 쳐들어왔다.

“하아, 핫! 아읏.”

어린 남자가 면도크림을 내 사타구니에 고루 펴 발랐다. 왜 자꾸 소리가 나오는 건데.

따갑고 불편해서였다. 어린 남자의 손길 때문에 색스러운 소리가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아파서 나는 신음이었다.

“읍.”

입을 틀어막았다. 어린 남자가 기분 나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린 채 내 이마에 대고 뇌까렸다.

“변태 같은 새끼. 어휴, 나이도 많은 새끼가…….”

“……?”

“아. 못 들은 걸로 해요.”

어린 남자가 일을 태연히 마치고 손을 수건에 닦았다. 그리고 물러나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날 내려다보았다.

“빨리해요. 저녁 시간 다 됐어요.”

어쩌라고. 싫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면도기를 찔끔찔끔 움직였다.

면도기에 낀 음모를 세면대에 털 때마다 설움은 점점 쌓여만 갔다. 그럼에도 제모하는 일은 내가 해결해서 끝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업무 같아서 좀 위로가 되기도 했다.

다 끝낸 순간엔 뿌듯하기까지 했다.

“다 했어요.”

“…….”

그런데 어린 남자는 여전히 비켜주지 않았다.

“다 했다고요.”

“똥구멍 털도 밀어야죠.”

화장실 바닥 타일을 따끔따끔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왜, 아예 눈썹이랑 머리털까지 다 밀라고 하지.

하는 수 없이 면도기를 엉덩이 사이로 가져갔다. 다른 손으로 엉덩잇살을 젖히고 면도날을 항문에 천천히 미끄러뜨렸다.

밀라니 밀어야지.

“읏.”

면도날이 항문 살갗을 벤 듯 섬뜩한 느낌이 일었다. 면도기를 잡은 손이 버들버들 떨었다.

겁먹은 면도날이 결국 항문 주변만 배회했다. 이래선 끝나지 않겠지.

짜증 어린 한숨을 뱉고 면도기를 깊숙한 엉덩이 틈바구니에 우악스럽게 들이대서 함부로 쑤셨다. 불결한 면도날로 항문을 거듭 쓸었다.

면도기에 털이 몇 가닥 걸려 나오는 것을 보아 되긴 되는 것 같았다.

“후, 흣…….”

항문을 면도기로 얼마나 들쑤셨을까. 똥구멍이 쓰라렸다.

이 정도 했으면 됐잖아.

“인제 됐죠.”

“봐요.”

“네?”

어린 남자가 눈썹을 으쓱 들고 말했다.

“보자고요.”

“어, 어떻게요?”

어린 남자는 방법을 일러주지 않았다.

그냥 뒤돌아서면 되겠지? 어린 남자를 등졌다.

어린 남자가 지겹고 신경질 난다는 투로 말했다.

“그러고 있으면 뭐가 보이겠어요? 똥구멍 벌려요.”

근데 쟨 지수 대신 나한테 벌주는 입장인 주제에 상전이라도 된 것처럼 싹수가 바가지였다.

벌리라니 벌려야지. 양쪽 볼깃살을 더듬더듬 손에 잡고 문을 열었다.

“아읏…….”

피부 좀 잡아당겼다고 이렇게 아프다니. 도대체 밑구멍이 어떻게 된 걸까.

“더요. 열려라, 참깨!”

부끄러웠다. 난생처음 면도한 항문과 털 없는 생식기를 훤히 내보인 채 검사까지 받아야 할 일인가. 그것도 애인인 김지수가 아니라 김지수가 바람피운 상대 남자한테 말이다.

“허리 숙여요.”

“예?”

“아! 허리 확 숙이라고요. 계속 두 번씩 말하게 할래요? 답답해 뒈지겠네.”

“읏!”

강인한 손이 내 등허리를 손쉽게 내리눌렀다. 뻣뻣한 몸을 신기하게 반으로 딱 접었다.

“인제 좀 보이네.”

“흣, 헛…….”

다리 뒤쪽 근육이 땅겨 죽을 맛이었다. 그러나 어린 남자는 날 폴더폰처럼 고정한 채 놔주지 않았다.

우리에 갇힌 짐승 신세였다. 설상가상으로 눈이 부셔서 얼굴을 찡그렸다. 왜?

핸드폰 플래시였다.

“힉? 왜 찍어요……!”

“플래시예요.”

플래시를 켤 때 소리가 나나. 얘 핸드폰은 그런가.

어린 남자가 내 항문 가까이 플래시를 들이대고 자세히 살폈다. 어쩌면 제모 상태 확인은 그저 핑계인지도 몰랐다.

그냥 날 죽고 싶게 하려는 수작이 아닐까.

어린 남자도 참 지독했다. 사람을 이런 식으로 괴롭히다니.

떨어져 준다잖아. 둘이 잘 먹고 잘 살라는데 아직도 내가 거슬리나?

강제로 제모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은 마당에 나도 더는 미련 없었다. 지수와 내 긴 인생에서 몇 년쯤 어린 남자한테 던져줘도 그만이었다.

그러니 그만 날 보내줘.

그런데 어린 남자는 여태 뭘 하는 거지? 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지?

날 이렇게 해놓고 자는 건 아닐 테고, 설마 아직도 내 항문을 눈으로 보는 중인가?

“흣힉……!”

소름이 끼쳐서 사지를 흔들었다. 어린 남자가 그제야 날 놓아주었다.

“인제 가도 되죠.”

“형 똥구멍 아직 수북해요. 제대로 밀어요.”

“네……?”

“못 믿겠어요? 찍어서 보여줘요?”

내 거길 찍겠다고? 그건 안 돼. 찍히는 건 정말 싫었다.

“아니요. 다시, 하면, 되잖아요.”

다시요. 다시요. 다시. 아직 안 됐어요. 다시요.

어린 남자는 끊임없이 ‘다시’만 외쳤다. 몇 번이나 항문을 면도기로 긁고 허리 숙여 검사받는 일을 되풀이하다가 화장실 바닥 타일에 주저앉고 말았다.

숨이 찰 지경이었다.

“허, 헉. 훅. 후…….”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해.

“뭐 해요. 일어나서 마저 밀어요.”

“하아, 못 하겠어요. 아파 죽겠단 말이에요……! 흐읏.”

“형.”

“큿, 웃.”

“2번 형.”

“왜요.”

“다시 하라고요.”

“…….”

머릿속 전구가 불을 밝혔다. 어린 남자가 원하는 게 뭔지 드디어 알 것 같았다.

차가운 화장실 바닥 타일에 몸을 무너뜨렸다. 어린 남자를 향해 궁둥이를 쳐들었다.

주먹을 꽉 쥐고 어금니를 산산조각 낼 듯 깨물었다. 못생긴 얼굴이 더 못나지게 온 얼굴 근육을 다 짜그렸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애꿎은 화장실 바닥을 주먹으로 쾅 때리고 나서 말했다.

“……해줘요.”

“뭘요.”

“대신 좀 해줘요.”

“글쎄 뭘 대신해주냐고요.”

입술을 질끈 씹었다. 분명 벌을 다 받고 나면 금고를 들고 나가라고 했지. 그 말만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털 좀……. 밀어줘요.”

“무슨 털이요.”

“항문 털이요.”

“누구 항문 털이요.”

“내 거요. 밀라면서요.”

어린 남자가 탐탁잖다는 듯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탁하려면 제대로 해요.”

“…….”

“나보고 냄새나는 형 엉덩이 붙잡고 똥털 밀어달라고요? 형 같으면 해주고 싶겠어요?”

어. 너 그러고 싶어서 이러는 거잖아.

“벌은 내가 아니라 우리 자기가 형한테 주는 거고, 난 내 시간 써가면서 눈엣가시 같은 형 벌 받는 거 아무 대가도 없이 도와주고 있잖아요. 형이 지금처럼 나한테 화풀이나 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시켜먹는 건 좀 아니지 않아요? 사례라도 하면 몰라.”

사례? 너 지금 사례라고 했어? 금고로 사례하란 소리야?

어처구니가 없었다. 애당초에 김지수가 나한테 이런 벌을 내렸다는 것부터 믿지 않았다. 김지수는 열받는 일이 생기면 으르고 손찌검할지언정 이런 식으로 지루하고 변태같이 괴롭히는 법은 없었다.

다 네 생각이잖아.

“이미 형 도와주고 있는 사람한테 부탁까지 얹을 거면 못생긴 면상 쳐들고 똑바로 얘기해요. 내가 진짜 도와줄지 어떻게 알아요?”

그러려고 지금까지 뺑뺑이 돌린 거잖아.

남자의 어린 나이, 욕심, 시기 질투, 악한 마음, 위선…….

난 어린 남자를 마음속으로 흉보는 일을 그만두었다. 유치하고 앙큼하고 아주 웃기지도 않은 짓을 하는 연하의 남자가 바라는 대로 비굴하게 굴어주고 끝낼 일이었다.

쉬고 싶었다. 내가 이제껏 관리해서 쾌적한 이곳 우리 아파트가 아닌, 불결해도 좋으니 마음 하나 편하고 안락한 곳에서 몇 날 며칠을 그저 아무 생각 안 하고 지친 몸을 쉬게 하고 싶었다.

또 단것을 먹고 싶었다. 화장실도 마음 놓고 가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못 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상체를 스르르 일으켜서 엉금엉금 돌아앉았다. 공손히 무릎 꿇고 어린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선명한 이목구비가 날 벌레 보듯 잔인하게 내려다보았다. 나보다 훨씬 키 크고, 잘생기고, 몸 좋고, 어린 남자였다.

“제 항문 털 좀……. 밀어주세요. 이렇게 간곡히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어린 남자가 어김없이 뜸을 들였다. 그리고 대답 대신 세면대 위 면도크림을 집었다.

바닥에 달라붙은 날 한 팔로 거뜬히 일으켰다. 허둥지둥 욕조를 붙잡고 중심을 잡았다.

엉덩이 사이에 타는 듯한 아픔이 번졌다.

“흐아? 하우욱……!”

뒷구멍에서 질퍽한 소리가 울렸다. 어린 남자가 내 항문과 주변에 제모 크림을 묻히는 소리였다.

눈물이 핑 돌게 따가웠다. 두 다리가 다 후들거렸다.

“엉덩이 내리지 말고 똑바로 들어요.”

“어흣…….”

어린 남자의 차디찬 말투와 달리 궁둥이 사이를 오가는 손길은 녹일 듯 따끈했다. 언제까지 그 사이를 주물러댈 거지.

“형이 손으로 잡고 벌려요.”

“…….”

“그래야 도와줄 거 아니에요.”

신체검사를 당하는 죄수처럼 엉덩이 양옆을 스스로 잡아 벌려 어린 남자에게 보였다. 어린 남자가 달군 듯 뜨거운 손을 둔육 한 덩어리에 척 얹고 궁둥잇살을 꾹 눌렀다.

“아흐읏……. 아윽.”

그리고 내 항문 털을 면도하기 시작했다. 예상외로 거칠지 않고 되레 자상하고 섬세한 손길이었다.

난 왜 그런 것에 안도하고 심지어 위로받는 걸까. 나약한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오금과 좆끝에 자꾸만 힘이 들어갔다. 가만있고 싶은데 항문괄약근이 번번이 움츠러들었다.

이러다 한 소리 듣거나 얻어맞을 것 같아서 식은땀이 났다.

“괜찮으니까 힘 풀어볼래요?”

괜찮긴 뭐가 괜찮아. 하나도 안 괜찮아.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부드럽고 신사다운 목소리 때문인지 항문이 절로 긴장을 풀었다. 차가운 면도날의 감촉마저 상냥하게 변한 기분이었다.

“흣……!”

어린 남자의 손이 음낭을 젠틀하게 잡아당겼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파르르 떨었다.

어린 남자가 날 안심시키듯 말을 건넸다.

“잘 안된 데가 있어서요. 내가 깔끔하게 해줄게요. 나만 믿어요, 형.”

네가 뭔데. 내가 너희 두 사람 작당에 놀아나서 왜 깔끔해져야 하는데.

“흐훅…….”

따져 묻는 대신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감았다. 팔이 몇 개 더 있다면 세 원숭이처럼 귀에 입까지 다 막아버리고 싶었다.

딸그락. 어린 남자가 면도기를 내팽개치는 소리였다. 날벼락 같은 찬물이 내 등허리를 덮쳤다.

“악!”

놀라서 달아나려다가 욕조에 정수리를 꽝 박고 화장실 바닥에 철퍼덕 고꾸라졌다.

“아, 미안해요. 물 차갑죠? 엉덩이 들어봐요.”

거짓말. 안 미안하면서. 일부러 그랬잖아.

흐르는 물줄기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눈가를 계속 훔치면서 엉덩이를 조금씩 쳐들었다.

어린 남자가 샤워기의 거센 수압을 내 회음에 마구 때려 박았다.

“앗, 아윽! 뜨거워! 뜨거워!”

이젠 화상을 입힐 요량인가. 끓는 듯 뜨거운 수돗물이 항문살을 찜 찌듯 익혔다.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었다. 물줄기를 피해서 욕조 안에 숨었다.

어린 남자가 펄펄 김이 나는 물을 내 얼굴에 조준하고 쐈다.

“어픕, 푸헉!”

뜨거워. 너무 뜨거웠다. 욕조에서 기어나와 차가운 타일 벽에 붙었다. 화장실 바깥으로 뛰쳐나가려고 발을 내디뎠다.

“익?”

미끄덩. 우당탕!

물기에 미끄러지고 말았다. 넘어지면서 부딪힌 팔꿈치와 골반뼈의 아픔은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어린 남자가 내 가슴팍에 인정사정없이 뿌려대는 뜨거운 물 때문이었다.

“아흑! 그만……!”

오징어처럼 몸뚱어리를 이리 꼬고 저리 꽜다. 화장실 바닥을 뒹굴뒹굴 굴렀다. 조금이라도 덜 뜨거우려고 계속 몸을 뒤집어 찬 타일에 붙이고 식혔다.

“가악! 하아악!”

좆퉁이가 이리 튀고 저리 튀었다. 불알퉁이가 딸그랑딸그랑 울었다.

어린 남자가 고통스러워하는 날 내려다보고 달콤하게 웃었다. 그러다 한참이 지나서야 물을 뚝 잠그고 말했다.

“물 많이 뜨겁나 봐요. 이제 껐어요.”

“흐웃, 흐우……!”

악마 같은 자식……!

몸을 감싼 자세 그대로 뜨거운 숨만 몰아쉬었다.

각막마저 익은 것은 아닐까. 시야가 뿌옜다.

어린 남자가 선심 쓰듯 손을 내밀었다.

“형, 괜찮아요?”

어린 남자를 때리듯 뿌리치고 일어났다. 물을 줄줄 떨어뜨리는 몸으로 화장실 문을 열고 침실로 도망쳤다.

일분일초라도 더 빨리 이 흉가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형. 물 닦아야지 어디 가요.”

어린 남자의 목소리가 너무 가까웠다. 허겁지겁 침실 문을 열어젖혔다.

그런데 침실에 김지수가 버티고 있었다.

“끝났어?”

김지수가 금고 든 장롱 앞에 늘어지게 누운 채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면서 물었다. 내가 아니라 내 등 뒤에 있는 ‘첫 번째 애인’과 눈을 맞추고 건넨 질문이었다.

김지수고 뭐고 걷어차 버려야지. 장롱 안에서 옷이랑 금고를 꺼내서 뒤도 안 돌아보고 여기서 나가야 해.

장롱에 손을 뻗었다. 그때 웬 수건이 얼굴을 확 덮었다.

“으욱! 크훅……?”

“뭘 그렇게 놀라요. 물기 좀 닦아주려는데.”

어린 남자가 내 양쪽 겨드랑이 밑으로 팔을 집어넣고 날 단단히 옭맸다. 좆불알이 왱그랑댕그랑하는 것도 개의치 않고 몸부림쳤다.

어린 남자의 품은 산등성이같이 너르고 높았다. 넘을 길이 막막했다.

“오, 진짜 다 밀었네. 킥킥.”

“밀면 좀 커 보일 줄 알았는데 별 차이도 없어. 형 고추 작아서 불알만 존나게 더 커 보여. 웃기지.”

“후장 털도 밀었냐?”

“그럼. 형, 빨리 우리 자기한테 자랑해요.”

내 얼굴에서 수건이나 치워. 그러나 어린 남자는 수건 끝을 꽉꽉 졸라 손에 동이고 내 볼깃살을 철떡 올려붙였다.

“넘버투. 벌 받았으면 검사 맡아야죠. 방둥이 내밀어요.”

“읍, 업……!”

“하, 이런 거까지 내가 도와줘야 돼요?”

어린 남자가 수건 끄트머리를 마구 휘둘렀다. 머리가 이쪽저쪽 흔들렸다.

어지러워. 멀미가 났다.

어린 남자는 내 몸이 균형을 잃자마자 바닥에 넘어뜨렸다. 우악스러운 손길로 내 허벅다리를 열고 눌렀다.

“아픗, 아! 아파!”

면도날로 수백 번 갉아서 따가운 항문 주변 살가죽을 쫙 잡아당겼다.

“히읏……!”

어린 남자와 내 합작이었다. 항문 살갗의 보이지 않는 빗금과 면도날 자국이 어린 남자가 잡아당길 때마다 무수한 결대로 갈라지는 듯했다.

손으로 김치 찢어 먹을 때나 스트링치즈 쪼개 먹을 때처럼 세로로 무참히 망가질 것 같았다.

“똥구멍도 다 밀었네?”

“잘했지? 큭! 형 좀 이뻐진 거 같지 않아?”

“그건 잘 모르겠고.”

“그래? 후장 색깔이 시커메서 그런가?”

“생각보다 그렇게 깔끔해 보이진 않네.”

“그럼 어떡해. 형 후장에다 봉숭아 물이라도 들여?”

“복숭아를 왜. 아기야, 먹는 걸로 장난치는 거 아니다.”

두 남자가 벌거숭이처럼 털을 민 내 엉덩이를 잘 보이게 펼쳐놓고 정다운 담소를 나누었다. 양다리를 볼품없이 연 채 엉덩살만 푸들푸들 떨다가 더는 참을 수 없어서 수건 안에서 말했다.

“됐지. 하라는 대로 했잖아. 벌 받으라고 해서 받았지. 인제 나 갈래. 놔줘. 놔, 이거!”

“형. 우리 자기랑 내가 형 주려고 선물 사놨어요. 궁금하지 않아요?”

안 궁금해. 안 궁금하다고.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났다. 사실 아주 조금 궁금했다.

지수가 나한테 선물을 준 게 언제였지. 나갈 때 나가더라도 뭔지 보기나 할까.

“두구두구두구.”

어린 남자가 괜히 뜸을 들였다. 짜증만 났다.

지수가 나한테 주는 선물이라면서 왜 자기가 나서서 난리야.

“짠!”

어린 남자가 내 얼굴에서 수건을 확 벗겼다. 낯이 따갑고 눈이 부셨다.

“어때요? 맘에 들어요? 멋지죠?”

방바닥에 좌르륵 늘어놓은 갖가지 성인용품이 눈에 들어왔다.

차마 보기 힘들 만큼 민망하고 파렴치한 물건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건, 검은 아나콘다처럼 길게 누운 대형 딜도였다. 얼핏 봐도 50센티미터는 훌쩍 넘을 것 같았다.

이게 선물이라고……?

어린 남자가 신난다는 듯 떠들었다.

“우리 자기가 오늘부터 2번 형 어마어마한 똥걸레로 만들어주겠대요. 어제 형 하는 짓 보니까 재능이 보인다고요.”

“…….”

“우리 자기 사랑 듬뿍 받을 쫄깃 구멍은 나 하나면 충분하잖아요. 어차피 형은 다 늙어서 항문 헐렁헐렁 벌어진 김에 아예 확장시켜서 개고기 구멍 만드는 게 낫겠대요. 뭐, 외모도 안 되고 기술도 안 되고 아무것도 안 되면 몸으로 때우는 게 맞죠?”

“…….”

“형한테 여기 있는 거 다 써서 완전히 똥걸레로 개발하고 나면 형 엄청 야해질걸요? 아아, 나 형한테 밀려나서 다시 두 번째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벌써 질투 나요. 어떡해요?”

어린 남자가 사색이 된 날 붙잡고 귓가에 속삭였다.

“우리 자기가요, 2번 형 사람 아니라 괴물같이 변하면 진짜 진짜 꼴릴 거 같대요. 근데 있잖아요, 사실 나도 그럴 거 같아요.”

징그러운 웃음소리에 소름이 끼쳤다. 어린 남자의 가슴팍을 밀치고 몸을 들었다.

“싫어요. 저딴 걸 왜 해요. 허읏? 무슨……!”

“그럼 이건요?”

나쁜 자식……!

어린 남자가 내 아래를 톡톡 쳤다. 작고 초라한 거시기를 가둔 스테인리스 정조대가 보였다.

어느 틈에……. 어린 남자가 내 눈앞에 정조대 열쇠를 딸랑딸랑 흔들고 약을 올렸다.

열쇠를 쥐려고 손을 휘둘렀다. 그러나 어린 남자가 빨랐다.

어린 남자는 지수 옆에 자리 잡고 지수에게 정조대 열쇠를 넘겼다.

“이쁘네요. 잘 어울려요. 형 인제 딸도 못 치겠다. 그렇죠? 자기야, 자기처럼 형도 아무 데나 정액 발사 금지야.”

“나? 난 왜.”

“아앙, 자긴 우리 왕이잖아.”

“근데.”

“근데 귀한 정액을 얻다 막 버리려고? 형은 2번이니까 자격 미달로 딸딸이 금지, 우리 자기는 임금님이니까 자기 정액은 보물이라 아껴야 돼서 금지. 나한테만 써. 함부로 이상한 데 갖다 버리기만 해.”

“그럼 넌.”

“나 뭐?”

“너도 딸 안 잡을 거야?”

“풋. 난 원래 그런 거 안 해.”

“픽! 뻥치지 마. 이 새낀 입만 열면 구라가 술술 나와.”

“진짠데. 중학생 때 이후로 혼자 한 적 없어.”

“그러면? 그냥 참아? 안에서 썩겠다, 인마.”

“왜 썩어. 그게 다 내 정력인데. 난 함부로 안 뽑고 참아서 그거 다 내 온몸으로 도로 흡수해. 핏속에 넣고 팽팽 돌려. 나 탑기냥의 수컷 카리스마가 다 거기서 나오는 거다냥!”

“……그래?”

“그럼. 딴 사람도 아니고 내가 이렇게 말하면 신빙성 있지 않아?”

“빙신……. 뭐? 그게 뭔데.”

“내가 말하면 믿을만하지 않냐고. 자기 나랑 섹스해봤잖아.”

“그렇지. 너 장난 아니지.”

“그니까 어르신, 어르신도 꾹 참고 회춘해서 저랑 빠구리 많이 떠요. 아시겠죠?”

“어. 허허.”

“2번 형도요. 형은 혼자 힘으론 못 참을 거 같으니까 특별히 그거 채워서 관리해주는 거예요. 딱 일주일만 차고 있어도 형이 원래 얼마나 섹시하고 눈에 뵈는 거 없이 밝히는 개변태 새낀지 알게 될걸요?”

변태 짓 너나 실컷 해. 이 변태야.

무시하고 정조대를 손으로 잡아 뜯었다. 그러나 불알만 아프게 땅겼다.

“그거 우리 자기가 열쇠로 풀어줘야 열 수 있을 텐데요. 하지 마요, 다쳐요. 형 아프면 안 되잖아요.”

어린 남자가 약 올리듯 말하고 눈썹을 으쓱했다. 어린 남자를 흘겨보고 김지수를 향해 말했다.

“풀어줘.”

김지수는 끄떡하지 않았다. 어린 남자의 눈치를 한 번 살피고 소리쳤다.

“시키는 대로 다 했잖아! 벌 받으래서 받았잖아. 나 좀 그냥…….”

가게 해줘. 마지막 말까지는 목에 막혀 나오지 않았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렇게 말하면 더 못 가게 할 것 같아서였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끊임없는 요구를 계속 받아들인다고 여기서 나갈 수 있나? 여태껏 내가 두 사람 말에 반항해서 지금 털을 빡빡 민 채 노리갯감 행세 중인가?

글쎄, 알 수 없었다. 연애 강의 동영상을 여러 편 봤지만 이런 상황에 관해서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바람피우는 애인은 상종 못 할 쓰레기니까 헤어지라는 조언뿐. 그런 조언이야말로 하등 도움 안 되는 쓰레기였다.

헤어지려고 그런 강의를 찾아보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애인이 바람을 피웠다고 단숨에 헤어질 결심을 하는 냉혈한은 그런 동영상을 뒤져볼 생각도 하지 않겠지.

막말로 바람 한 번 피운 게 뭐 그리 죽을 죈가? 세상에 허물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물론 내가 지수랑 헤어져 있으려고 하는 것은 아주 헤어지겠단 뜻이 아니니 경우가 달랐다. 내 인생의 애인이 김지수 한 명이 아니라 여럿 있었다면, 나도 지수처럼 바람이란 걸 피워봤다면 내 생각도 지금과 달랐을까?

“변대훤.”

“흣, 어……?”

“내가 너 주려고 이거 다 오늘 나가서 얘랑 같이 사 온 건데 뜯어보지도 않고 그냥 간다고?”

김지수가 잘생긴 눈썹을 축 내리고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어린 남자가 거들었다.

“맞아요. 우리 자기가 2번 형 너무 기특하다고, 형한테 감정 새로 생기는 거 같고 설렌다고 얼마나 난리였는데요. 형이 뭘 알아요. 우리 자기가 2번 형이랑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잘해보고 싶대서 나 질투 나 죽을뻔했거든요?”

“……내가?”

“자기가 그랬잖아. 쇼핑하고 나서 밥 먹을 때. 기억 안 나? 아, 2번 형 앞이라고 또 기억 안 나는 척하네. 눈꼴셔서 못 봐주겠다. 아니, 자기야.”

“어.”

“그래도 내가 1번인데 자꾸 2번 형만 챙기면 내가 뭐가 돼? 응? 나 좀 서운해지려 그래.”

“1번은 원래 그런 거야. 1번이 괜히 형님이냐? 네가 형님이면 형님답게 참고 이해해야지.”

“그런 거야?”

“당연한 걸 물어보냐. 너 머리가 나쁘구나? 야, 변대훤. 얘 봐라. 1번 시켜놓으니까 이딴 소리나 하고 앉았다. 네가 보기엔 어때. 네가 다시 1번 하는 게 안 낫겠냐? 어? 말해봐, 변대훤.”

1번이고 나발이고 난 너희 둘이랑 한군데 살면서 더럽고 지저분한 짓거리 하기 싫어.

김지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재촉했다. 어린 남자가 남고 앞 떡볶이집 아저씨인 양 김지수의 어깨에 질척질척 들러붙었다.

메마른 입술을 열었다.

“지수 네가, 약속했잖아. 털 미는 게 벌 받는 거라며. 벌 받고 나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며. 그래서 밀었잖아. 봐, 이렇게 됐잖아. 나 너무 피곤해. 제발 나 좀 그냥 놔둬.”

어린 남자가 뻔뻔하기 짝이 없는 소리로 말했다.

“털 민 건 벌 받은 거 맞는데요, 형 아직 우리 자기한테 사과 안 했잖아요.”

뭐?

어린 남자를 검게 타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어린 남자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안 해놓고 우리 자기야한테 이래라저래라하는 거예요? 내가 우리 자기라면 용서해주려다가도 맘 변할 거 같은데. 태도가 왜 그래요? 형 집에서 가정교육 그렇게 받았어요?”

“왜 말이 바뀌어요?”

“누가 말이 바뀌어요. 내가요? 언제요? 분명히 말했죠? 난 형이 벌 받는 거 그냥 도와준 사람이에요. 두 사람 문제는 두 사람이 끝을 봐야죠. 아니, 그래서 우리 자기야한테 사과 안 할 거예요? 1번으로서 지금 형 심히 거슬리거든요? 말만 벌이지 못생긴 자지 후장 빽자지 매끈 애널로 만들어줬더니 감사는 못할망정 형 생각해서 선물까지 사 온 우리 자기야한테 대들어요? 당장 싹싹 빌어도 모자랄 판 아니에요?”

어린 남자가 도끼눈을 뜨고 닦달했다. 그러다 갑자기 눈빛을 초롱초롱하게 바꾸고 지수를 올려다보며 지수의 뺨을 쓰다듬었다. 지수의 가까이에서 촉촉한 입술로 간질간질 속삭였다.

“자기야, 우리 자기는 화내지 마요. 자기한텐 1번 탑기가 있잖아요. 넘버원 탑기가 못생긴 넘버투 몫까지 우리 자기 기분 좋게 해줄게요.”

그런데 김지수가 어린 남자를 한 팔로 치웠다.

“나와봐. 야, 변대훤. 이거 다 내가 너 주려고 사 온 거라니까? 안 궁금해? 왜 안 뜯어봐.”

어린 남자가 당황한 낯으로 지수의 뒤통수를 째려보았다. 그 모습을 보자 왠지 기분이 좋았다.

이 와중에도 이러다니. 역시 난 지수 바보였다.

지수한테서 떨어져 나가려고 맘먹은 순간에조차 지수의 관심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으니 말 다 했다.

“자기야, 아!”

지수가 말을 거는 어린 남자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손등으로 쳐냈다. 그리고 내게 계속 물었다.

“변대훤. 인제 대답도 안 해? 대답하기 싫어? 너 왜 그래?”

울컥. 바보같이 김지수 때문에 눈시울이 뜨겁고 코끝이 시큰했다.

너뿐인 걸까. 내가 진짜 널 두고 달아나서 잠시나마 살 수 있을까.

어떻게? 먼젓번처럼 숨도 못 쉬게 되는 거 아닐까.

“지수야.”

나 어떡해야 해. 널 사랑하는데, 평생 사랑할 텐데, 그런데 네가 데리고 있는 그 애랑 셋은 싫어.

너랑 내 추억에 다른 애가 끼어드는 건 싫어. 난 너 때문에만 울고 상처받고 괴로워하고 싶어.

너한테만 내 목숨을 맡기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싶어. 오직 너로 인해서 죽고 싶을 만큼 깊은 우울에 사로잡히고 싶어.

다만 너 때문에 더럽고 지저분하고 끔찍해지고 싶어. 너만이 날 악해지게 몰아붙였으면 해.

원래 너만 그렇게 할 수 있었잖아. 다른 사람은 싫어.

내가 사랑하는 네가 아닌 타인이 내게 그렇게 한다면, 진짜로 더럽고 지저분하고 끔찍하고 사악해져서 돌이킬 수 없게 변해버릴 것 같단 말이야. 불못에 던져 사그라트리기 전까진 어쩔 도리 없는 폐기물이 되고 말 것 같단 말이다.

내 입술이 날 배반하고 말했다.

“잘못했어.”

“뭘.”

“내가……. 네, 털, 아무 데나 버려서……. 미안해. 용서해주면 안 돼?”

“용서?”

“어.”

지수가 장난감 무덤에서 가늘고 긴 회초리 하나를 꺼내 들었다. 성인용품점이 아니라 시골집에서 공수해 온 듯 자연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나무때기였다.

“여기 와서 서봐.”

“어? 왜?”

“종아리 좀 맞자.”

“나 벌 받았는데……?”

“서라고.”

주뼛주뼛 서서 지수와 어린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이런 법이 어딨어.

“옆으로.”

지수가 말했다. 오늘날 학교에서도 안 하는 체벌을 왜 내가 이 나이에 저 애 보는 앞에서 받아야…….

찰싹!

“흡……!”

털 없는 항문을 쩍 펼치고 철퍼덕 고꾸라졌다. 어린 남자가 비웃는 소리가 났다.

“한 대 맞고 오버할래, 변대훤?”

“흐윽…….”

“딱 열 대 맞으면 용서해준다.”

하는 수 없이 꿈틀꿈틀 섰다. 어린 남자는 제집 안방에 들어앉은 주인인 양 편안한 자세로 내가 매 맞는 모습을 감상하는 중이었다.

휙. 찰딱!

두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꽉 깨문 채 아픔을 참았다. 두 남자가 보는 데서 알몸으로 종아리를 맞는 일이 제모당한 일보다 더 치욕스러웠다.

“왜 안 세. 안 세서 다시.”

찰싹!

“하나! 하아…….”

윅. 착. 철썩! 찰싹.

“둘, 셋. 넷! 악? 다섯……!”

휩. 윕. 찰싹찰싹, 철썩―!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학, 카학……!”

딸그락. 지수가 회초리를 내던졌다.

“흣, 흐우. 쿠후우…….”

열 대를 다 맞았으니 끝난 거겠지.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수야, 미안해. 잘못했어…….”

“됐어. 종아리도 맞았는데, 뭐.”

“그럼 나…….”

“내가 사 온 선물이나 빨리 뜯어봐.”

김지수가 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말했다.

“무슨 선물.”

“까보면 알 거 아니야.”

내키지 않아 멀뚱멀뚱 방바닥만 내려다보았다. 성인용품 여러 개는 모르는 내가 봐도 값깨나 나가 보였다.

“근데……. 이거 다 비싸지 않아?”

네가 돈이 어디서 나서. 덜컥 겁이 났다. 무슨 사고라도 친 건 아니겠지.

“비싸지.”

김지수가 뽐내듯 히죽히죽 웃었다. 어린 남자는 페르시아고양이처럼 새초롬한 표정을 짓고 지수 무릎에 기댄 채였다. 김지수가 어린 남자의 등허리를 쓰다듬으면서 덧붙였다.

“결제는 얘가 하긴 했는데, 어쨌든 산 건 나야. 얼마 전에 네 생일이었잖아. 생일선물이야.”

생일은 무슨. 8주년 기념일이겠지.

어린 남자가 결제했으면 어린 남자가 샀다는 얘기 아닌가? 그래도 지수가 날 생각해서 골라온 물건인데…….

성인용품이 선물이 못 될 건 없지만, 어린 남자 앞에서 이걸 다 늘어놓고 이러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걸까. 머리가 지끈거렸다.

“변대훤, 뭐 해. 빨리 개시해봐.”

“……뭘 하라고?”

“그렇게 좋으면 선물 받은 김에 지금 하나씩 써보라고. 킥킥.”

“이, 이걸 어떻게 써.”

“쓰라고 있는 건데 왜 못 써. 하나는 벌써 가랑이에 달고 있네.”

두 미남이 내 다리 사이를 보고 낄낄 웃었다.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고 허벅지를 닫았다.

검고 흉한 초대형 딜도가 눈에 들어왔다.

개시라니. 상상만 해도 참혹했다.

“큭, 형은 역시 내가 가져온 게 맘에 드나 봐.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어린 남자를 향해 눈을 치켜떴다.

“헐? 자기야! 2번 형 눈깔 봐. 자기가 전에 그랬잖아, 내 앞에서 눈깔 저따위로 뜨지 말라 했잖아. 기억나지? 근데 저 형이 자기 말 안 듣고 막 나 무섭게 째려보는데? 저 형은 인제 1번도 아니고 2번인데……. 그렇지, 자기야?”

김지수가 어린 남자의 말을 듣고 내 이름을 불렀다.

“대훤아.”

낮게 깐 목소리가 위압했다. 김지수가 성을 떼고 날 이름으로만 부르는 것은 대부분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어?”

어린 남자를 언제 노려봤느냔 듯 눈을 내리깔았다.

“너 또 얘한테 눈깔 이상하게 떴냐?”

“아니.”

어린 남자가 번개같이 끼어들었다.

“내가 다 봤는데 어디서 거짓말해요? 눈깔 이상하게 떴잖아요. 가족끼리 거짓말할래요? 그것도 2번이 1번한테?”

분위기 만들려고 열심이었다. 못된 자식. 지지 않고 대꾸했다.

“아닌데요. 눈 이상하게 안 떴어요.”

“방금 나 안 쳐다봤어요? 쳐다봤잖아요.”

“쳐다는 봤는데…….”

“계속 거짓말할 거죠?”

“거짓말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뻔뻔하게 자꾸 거짓말 치면 후장 털이 아니라 똥줄 융털까지 다 밀어버리는 수가 있어요.”

“쳐다는! 봤는데, 꼬나본 건 아니라고요…….”

“그럼 뭔데요? 왜 웃기게 쳐다봤는데요? 형 그렇게 당당해요?”

“네.”

“아아. 당당해요? 당당하면 왜 눈깔 웃기게 뜨고 쳐다봤는지 얘기해보라니까요?”

“잦, 잘생겨서요.”

“푸흡. 뭐라고요……?”

방바닥을 향해 처박은 고개로 죽상을 했다. 어린 남자가 김지수의 도톰한 가슴 근육에 얼굴을 묻었다.

“아앙, 2번 형 너무 웃겨. 이 형 왜 이렇게 웃겨?”

“허허.”

“2번 형, 나 봐봐요. 빨리요.”

고개를 조심조심 들었다. 탄탄한 몸매의 두 남자가 서로를 편안히 안고 있었다.

너무하게 잘생긴 두 쌍의 시선이 열 발가락을 오므라들게 했다. 시선으로 꿰뚫어 내 뱃속을 돌림방하듯 가슴 깊숙한 데까지 푹푹 찔러서 자존감을 찌지직찌지직 찢어 망가뜨렸다.

“내가 잘생겨서 눈 웃기게 뜨고 쳐다봤어요?”

“……네.”

“형 눈엔 내가 그렇게 잘생겼어요?”

주먹을 세게 쥐었다.

“네.”

“그래서요? 2번 형 나 따먹고 싶어요?”

“예? 아니요.”

“그럼 내 자지에 따먹히고 싶어요?”

“아니요.”

“근데 왜 쳐다봐요. 씨발 눈깔 뽑아버리고 싶잖아요. 잘생겼는데 어쩌라고요. 나도 알아요. 누가 몰라요.”

“미, 미안, 아? 죄송……? 해요.”

죄송이 아닌가? 미안하다고 할 걸 그랬나?

머리가 뱅뱅 돌았다. 오줌이 마려웠다.

어린 남자의 발칙한 질문 때문에 자꾸만 내가 어린 남자의 항문에 성기를 삽입하는 상상이나 어린 남자가 날 덮치고 내 항문 안에 성기를 밀어 넣는 상상이 끊이지 않았다. 전부 어린 남자 때문이었다.

“그게 사과예요? 됐고, 필요 없어요. 어휴, 변태같이 음침해서……. 자기야, 2번 형이 인제 막 나한테 치근덕거려. 어떡해? 응?”

“뭘 어떡해.”

지수가 되물었다. 어린 남자가 지수의 품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지수의 허벅지에 음경을 비비면서 말했다.

“자기 없을 때 저 형이 자기 몰래 내 고추랑 젖꼭지 빨고 키스하면 어떡해? 반항하면 내 입 막고 바지 벗긴 담에 나 강간하면 자기 어떡할 거야?”

“픽! 퍽이나 그러겠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왜 말이 안 돼. 저 형이 내 거 억지로 세워놓고 위에 올라타서 꽂고 혼자 막 흔들면 어떡해. 무섭단 말이야. 자기가 나 지켜줄 거지?”

“내가 널?”

“자기가 날 지켜야지 그러면 누가 지켜. 저 변태 오타쿠 같은 형이 토끼 같은 날 호시탐탐 노리는데! 자기는 저 사나운 맹수의 눈빛을 보고 불안하지도 않아?”

“어. 안 불안해. 불안하지가 않아.”

“죽을래? 큭큭큭!”

“아! 아파. 허허허.”

두 사람이 농담 따먹기를 하고 즐겁게 깔깔댈 동안 털 한 올 없는 성기와 항문을 노출한 채 이를 부딪치며 달달 떨어야 했다.

마냥 대기하는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한테 괴롭힘을 당할 바에야 유한한 휴식이 달콤했다.

오줌을 싸고 싶었다. 우리 러브 하우스가 언제부터 소변 한 번 마음대로 못 보는 공간이 돼버린 걸까.

“2번 형.”

목적을 잊은 짐승처럼 남자의 부름에 시선으로 답했다.

“그럼 형이 제일 좋아하는 이것부터 개시 한번 해볼까요?”

어린 남자가 거대 딜도를 두 손으로 겨우 들었다. 저걸 사람 몸에 넣는다고?

생긴 것만 저렇겠지? 저걸 다 넣는다면 창자가 남아나지 않을 텐데.

저런 걸 품어본 사람은 이미 건강하고 정상적인 신체를 가졌다고 할 수 없을 터였다.

“싫어요.”

슬금슬금 물러났다.

“왜요? 이거 원래 내 건데 특별히 형한테 선물로 주는 건데요.”

저게 원래 어린 남자 거라고? 믿지 않았다.

항문이 그렇게 좁다면 저걸 어떻게 넣겠는가. 설마 어린 남자 본인이 아니라 남한테 써온 건가……?

두려움이 배로 엄습했다.

“그, 그딴 거 들어가지도 않아요!”

그때였다.

“크힉!”

“풉.”

“힉힉, 힉힉힉!”

“푸하하하! 아하하!”

김지수와 민탑기. 두 사람이 배를 잡고 미친 듯이 웃어젖혔다.

“안 들어간대. 아학, 아학학!”

“히힉, 힉힉힉.”

“형! 자기 구멍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거 아니에요? 나 미치겠네. 2번 형 거기가 무슨 숫총각인 양 앙증맞은 미니어처 똥꼬인 줄 아나 본데요, 프힉! 내가 진짜 이걸로도 형 구멍 못 막을까 봐 더 큰 걸로 새로 사 오려다가 말았어요. 정신 좀 차려요. 나 진짜 살면서 형처럼 넓은 150평대 후장 본 적 없거든요. 자기야. 형 잡아.”

“어.”

김지수가 잔인하고 멍청한 키클롭스처럼 커다란 덩치를 일으켜 내게 한 걸음 한 걸음 닥쳤다.

도망쳐야 돼.

잽싸게 뒤돌았다. 그리고 돈벌레처럼 빠르게 기어 침실을 빠져나왔다.

“형 도망간다!”

등 뒤에서 어린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눈앞에 현관문이 보였다.

조금만 더…….

어? 근데 발가벗고 있는데 밖에 어떻게 나가지?

그런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아흑!”

차가운 손이 내 모가지와 다리 사이를 낚아챘다.

“욱, 켁!”

지수였다. 김지수가 날 그대로 공중에 들어 올려 다시 집 안 깊숙이 성큼성큼 내걸었다.

“여기다 올려. 큭.”

어린 남자의 목소리였다. 몸 앞판이 차가운 어딘가에 닿았다.

식탁 위였다.

“하지 마요, 흐아? 하아!”

두 성인 남자의 네 팔이 날 물샐틈없이 내리눌렀다.

왜 이렇게 된 거지? 어쩌다 이런 꼴을 당하는 거지?

“형이 제―일로 맘에 들어 한 것부터 넣어줄게요. 짠! 인사해요. 탑기냥 거라서 새것보다 더 귀한 중고 딜도! 이름은, 음……. 구렁이예요.”

죽어도 싫었다.

저 애의 딜도가 항문에 닿는다면 저 애 같은 걸레가 되고 말 것 같았다.

“싫어, 싫다고요! 넣지 마요, 하지 마! 내가 잘못했……. 지수, 지수야? 허악!”

“앗, 차가워? 큭큭큭. 처음이니까 특별히 젤 바라주는 거예요. 다음부턴 안 봐줘요. 그니까 기절하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받아요. 기절하면 처음부터 다시예요. 형같이 못생기고 늙은 새끼 구멍에 젤까지 쓰는데 기억도 못 하면 아깝잖아요. 젤값은 해야죠?”

“흐극, 으국.”

거대한 무언가가 항문을 꾸욱 눌렀다. 볼깃살 가운데를 차츰 비집었다. 엉덩이 안 골반뼈를 양옆으로 우드득우드득 벌렸다. 창자 속으로 파고들었다.

“푸풉! 봐요, 잘만 들어가잖아요. 형은 왜 그렇게 내숭이 심해요? 그 얼굴에 이 구멍으로 내숭 떨면 꼴값 아니에요?”

“아흐윽……? 아헉!”

“좀 솔직해져요. 나랑 우리 자기가 형 행복에 겨워서 아주 어쩔 줄 모르게 알아서 다 해줄 테니까요.”

어린 남자가 주먹과 팔뚝을 내 안에 밀어 넣는 중일까. 아니면 내 몸통을 가르는 것이 정녕 그 검은 흉물인가.

거대한 기둥이 아랫배를 꽉 채우고 끄트머리 어딘가에 턱 걸려서 옴짝달싹 안 했다. 하반신을 반으로 쪼개는 것 같았다.

“아각. 칵!”

“형아.”

“흣, 힉! 키힉?”

“숨 쉬어.”

부드득.

구렁이가 배 속 장애물을 돌파했다. 대가리 방향을 완전히 틀어 점점 더 깊은 데까지 기어들었다. 허들을 자꾸자꾸 넘었다.

“흣, 우우……!”

양쪽 동공이 각기 다른 곳을 향해 돌았다. 전신의 피가 젤리처럼 굳은 듯 감각이 아득했다.

고개를 떨어뜨렸다. 까무룩.

현실과의 연결이 끊어졌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오줌 싸는 꿈을 꾸면서 의식을 잃었다.

“그허아악……!”

아니었다. 천장이 보였다.

언제 몸을 뒤집은 걸까. 얼마 만에 눈뜬 거지?

의식을 되찾자마자 찢어질 듯한 눈을 부릅뜨고 괴성을 쏟아냈다.

생식기가 고장 난 수전처럼 체액을 뿜었다. 배가 남산같이 부푼 채였다.

어린 남자가 내 다리 사이를 발로 밟고 있었다. 악마의 눈과 마주쳤다.

“히히! 거의 다 들어갔어요. 내가 형 도와서 마저 넣어줄게요. 와다닥와다닥, 아뵤오―!”

물커덕.

“극.”

엉덩이에 쭐깃 침입한 사람의 온기를 느꼈다. 어린 남자의 발꿈치였다.

뱃가죽이 표피 아래 진피를 투두둑 찢으며 사방팔방 갈라졌다.

즐거움이 한때이듯 괴로움 역시 한때이길.

간곡히 빌었다. 작은 죽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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