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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민탑기(2) (10/41)

2. 민탑기(2)

아.

깜빡 잠들었나. 비몽사몽인 눈을 한참 비비고 나서야 눈꺼풀을 억지로 벌릴 수 있었다.

내가 왜 여기 앉아있지. 아, 똥 싼 데 닦아야지.

침실을 마저 수습하고 시계를 보자 출근 두어 시간쯤 전이었다. 두 사람은 아직 자는 중인가.

발소리를 죽여 두 사람이 있는 거실로 걸음을 옮겼다. 지수와 어린 남자가 마룻바닥에 아무렇게나 누워서 서로를 꼭 껴안고 잠든 채였다.

“…….”

무릎 꿇고 빌어도, 딴 남자를 집에 데려오게 허락해도, 바람피운 애인과 그 상대한테 밥을 해 먹여도, 그 상대와 동시에 안겨도, 준비 안 된 상태로 욕정을 받아내다 모르고 변을 지리고 두들겨 맞아도, 그렇게 해가며 붙잡고 매달려도 네가 새벽에 소중히 끌어안고 잠드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어린 남자인 거네.

어린 남자는 심지어 허락도 없이 사진을 찍어댄 배은망덕한…….

“……!”

머리를 때려 맞은 듯했다. 불과 몇 시간 전 모든 환락의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생전 안 해본 추태를 부리면서 나보다 한참 어린 남자와 경쟁하듯 아양 대결을 펼치고 지수 좆을 서로 차지하려고 몸 바쳐 아부하던 밤을 우주에서 없애버리고 싶었다. 파삭 깨져버린 양심 한 조각이 가슴 안에서 미쳐 날뛰며 날 닥치는 대로 에고 벴다.

이러라고 날 낳고 키워주신 게 아닌데. 여태껏 한심하고 바보 같은 짓을 많이 하고 살았지만, 이만큼 지저분하고 추악한 금수 짓을 한 적은 없었다.

내 죄를 내가 안다는 듯 몸의 중심부터 딱딱하게 뭉쳤다. 벌거벗은 알궁둥이를 어린 남자와 훗훗하게 겹쳐 붙인 채 항문을 쩍 벌리고 나자빠져서 지수 좆에 한 번씩 번갈아 꿰일 때마다 앙앙대던 모습을 돌이키면 내가 지린 똥보다 더 더러웠다.

어린 남자와 좆 하나에 달라붙어 서로의 타액에 흠뻑 젖은 살덩이를 물고 빨다니. 같은 불알과 똥구멍을 죽자 살자 먹어 치우며 서로의 침을 꿀떡꿀떡 섞어 마시다니.

어린 남자의 엉덩이가 문 것을 내 엉덩이에 꽂아달라고 애걸복걸하다니. 그대로 내 안에 서슴없이 품어서 좋다고 소리 지르다니.

어린 남자가 보는 앞에서 엉덩이를 씰룩씰룩 흔들고 허리를 뱅뱅 맷돌질하다니. 신뢰할 길 없는 남자와 공유하게 된 공용 좆을 아무 거리낌 없이 내 몸 안에다 마구 비비면서 혀를 헤벌떡 내밀다니.

너무 좋은 나머지 똥이 새는 줄도 모르고 탐닉하다 끝내 짐승인 양 변기 아닌 곳에 변을 지리는 파렴치한 모습으로 결딴나다니.

미친놈인가. 내가 왜 그랬을까.

지수한테 너무 오랫동안 사랑받지 못해서 진짜 돌아버렸나. 외로움이 정신병으로 탈바꿈한 걸까. 맥주가 문제였나.

어린 남자가 또 무슨 사진을 찍었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찍은 사진이 많은가?

왜 찍었지? 설마 누구한테 보여주진 않겠지?

불안한 눈동자가 어두운 거실을 빠르게 둘러보았다. 지수 핸드폰 모양은 내가 안다.

그럼……. 저거다.

어린 남자의 머리맡에 있는 핸드폰 모양이 낯설었다.

꼴딱.

침 넘기는 소리에 두 사람이 잠에서 깰까 봐 조마조마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어린 남자의 핸드폰을 향해 도둑처럼 살금살금 다가가는 중이었다.

핸드폰에서 소리가 나진 않겠지? 낯선 핸드폰을 조심스레 손에 들고 이것저것 만져봐도 화면을 어떻게 켜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씨름하다 드디어 화면에 불을 밝혔다.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했다.

설마 지수 생일은 아니겠지?

[0420]

비밀번호가 정확하지 않다는 알림이 떴다. 잘못 눌렀나. 다시 한번…….

[0420]

뿌우웅―!

“아.”

어린 남자의 핸드폰이 별안간 뱃고동 소리를 냈다. 핸드폰을 손에서 미끄러뜨리고 말았다.

떨그럭.

어린 남자의 핸드폰이 거실 바닥에 무겁게 부딪치며 소음을 만들었다. 누군가 날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서서히 시선을 들었다.

“……?”

어린 남자가 어둠 속에서 까만 눈을 치켜뜨고 날 응시하는 중이었다.

“흣? 훗!”

허둥지둥하다 그만 엉덩방아를 쿵 찧었다. 어린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야차처럼 날 쏘아보기만 했다.

그게 더 소름 끼쳤다. 왜 말이 없는 걸까.

“…….”

‘첫 번째’인 내가 이대로 주저앉아 ‘두 번째’의 처분을 마냥 기다릴 순 없는 일이었다. 태연하게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그리고 짐짓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섰다. 침실로 향했다.

어차피 출근하려면 쪽잠이라도 청해야 했다. 방에서 아직 냄새가 좀 나겠지만 빨리 도망…….

“으욱!”

사이보그처럼 힘센 손이 뒤통수 머리털을 홱 잡아당겼다. 이러다간 조만간 골룸처럼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릴 것 같았다.

“형님, 남의 핸드폰에 왜 손대요?”

“흐웃, 흐익……! 너도 내 핸드폰에 손댔잖아.”

욱해서 말을 쏴붙였다. 뜨거운 숨이 가슴 가득 들어찼다.

“내가 언제 형님처럼 형님 핸드폰 맘대로 열어본 적 있어요?”

“너도 열어봤잖아! 왜, 난 하면 안 돼?”

어린 남자가 내 핸드폰을 열어봤는지 안 열어봤는지는 내 알 바 아니었다. 그냥 하고 본 말이었다.

“아! 왜, 또……. 뭔데.”

김지수가 졸린 눈을 비비고 쩍쩍 하품했다.

어린 남자는 지수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도 안광을 반뜩반뜩 비추는 검정색 눈동자로 날 보고 말했다.

“나 진짜 형님한테 별로 손 올리고 싶지 않은데요, 내 거 건들면 벌 받아야 되거든요.”

거짓말.

퍼헉―!

“극붓……. 븟…….”

전동 퀵보드가 배 한가운데로 날아들었다. 눈앞을 까무룩 꺼트리는 충격이었다.

흐릿한 시야가 슬로모션처럼 기울었다. 거실 화분 속 흙이 나처럼 바닥을 굴렀다.

거기엔 지수한테 선물한 선인장도 껴있었다. 선인장이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아팠다.

퍽!

“욱.”

거인 것처럼 커다란 발이 명치를 가격했다.

“쿨럭! 커흐흑……!”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지수한테 맞을 때랑은 차원이 달랐다.

윽. 껙? 컥!

아마 배를 계속 맞은 듯했다. 숨 못 쉬고 끅끅대는 틈에 명치나 가슴을 맞으면 의식이 픽 나갔다.

다시 맞으면 잠깐 정신이 들었다. 그제야 공기를 들이마시려고 하면 어느새 눈앞이 검었다.

선인장을 짚거나 몸뚱이 아래 깔아뭉갤 때마다 가시가 내 피부 곳곳을 뚫었다. 엉망으로 깨진 채 가시를 질질 흘리는 선인장이 가엾었다.

선인장을 잘 돌보면 지수와 내 믿음도 함께 커나갈 것 같은 기분에 볼 때마다 반갑고 행복했는데.

다른 화분 쏟은 건 언제 다 치우지. 나보다 어린 남자가 날 복날 개 잡듯 두들겨 패는 와중에도 그 걱정을 했다.

어린 남자가 숨을 고르는 듯했다. 폭력이 잦아들자마자 굼벵이처럼 꿈틀꿈틀 기었다.

내가 맞는 동안 신나게 구경만 하던 내 애인 가까이 가기 위해서였다.

“지수야……. 윽!”

“…….”

“왜 보고만 있어. 그만 때리라고 해. 내가 왜 얘한테 맞아야 돼. 네가 있는데. 나 네 애인이잖아.”

“…….”

“내가 첫 번째고 쟨 두 번째라며. 근데 내가 동생한테 왜 맞아야 되는데. 허으윽…….”

지수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엉망이 된 이목구비를 비볐다. 지수가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면, 그 상대를 집에 들이지 않았다면 이 모든 불행을 나 혼자 다 짊어져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니까 지수야, 한 번은 내 편 돼줘야지. 내 다리 사이에 제일 먼저 거시기 들이대 주는 것 말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못난 깍두기처럼 구타당하는 이때 내 역성을 들어주고 네 품에 숨겨줘야지.

이미 난 어젯밤 일로 나 자신을 혐오하기 시작했단 말이다.

예전처럼 날 위해 나서줘야지. 나서는 척이라도 해줘야지. 예전엔 누가 날 건들면 절대 가만 안 뒀잖아. 넌 원래 그런 사람이잖아.

일평생 너 하나한테만 구박받고 사는 게 내 꿈이란 말이야. 다른 사람이 날 힘없는 어린애 대하듯 무시하고 말 못 하는 짐승 취급하듯 때리는 건 싫다.

그 사람이 네 새 남자인 건 더 싫다. 토끼 간처럼 네 앞에서만 떼놓을 뿐, 나도 원래는 자존심이란 게 있는 사람이란 말이야.

같은 남자한테 마냥 지고 싶지 않은 한 남자란 말이다.

지수가 담뱃불을 붙이고 말했다.

“그러게 왜 애 물건을 만져. 얘 그거 되게 싫어해.”

난 어린 남자 핸드폰 좀 만진 거 가지고 거실이 초토화될 때까지 얻어맞는 게 당연하고, 누가 자기 거 건들면 발작한다는 어린 남자는 남의 애인을 마음껏 건드리는 것으로 모자라 잘 만나는 커플 집까지 멋대로 쳐들어와서 원래 애인 몸뚱어리를 만지고 항문 냄새를 찍어 맡고 동의 없이 촬영까지 해도 되는 건가?

“그럼……. 내가 동생 핸드폰 좀 만진 게 그렇게 큰 잘못이면, 동생한테 이렇게 맞아도 돼?”

“…….”

“동생이 먼저 너한테 허락 맡고 나 때린 것도 아니잖아. 김지수, 나 쟤 형님이기 전에 네 애인이야. 너 아니면 내가 쟤랑 형 동생 해야 될 이유도 없어.”

“…….”

“동생은 무슨 동생이야. 이거 다 그냥 정신 나간 변태 짓이잖아. 세 명이 이렇게 같이 살면서 한꺼번에 붙어먹는 법이 어딨어. 누가 알면 돌 맞아 죽어.”

“…….”

“할 거면 제대로나 하든가. 두 번째가 첫 번째한테 이러면 안 되지. 하극상이지. 읏, 윽. 이럴 거면 다 집어치워. 손님으로 와서 주인 때려잡고 집은 온통 난장판으로 만들어놓고. 이게 맞아?”

어린 남자가 말했다.

“손님이라니요. 우린 인제 가족이라고 했어요, 안 했어요. 덜 맞았어요?”

지수한테 더욱더 매달렸다. 그런데 지수는 어린 남자의 말이 재밌다는 듯 실실 웃기만 했다.

“지수야, 봐. 두 번째가 저러면 안 되지. 어……?”

어린 남자가 내게 물었다.

“내가 왜 두 번째예요?”

“예?”

“형한테 아직도 형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요? 형님인 거에 자격이 왜 필요해요? 내가 지수랑 먼저 만났으니까 당연히 내가 형님인…….”

퍼헉!

“그욱, 커허윽!”

어린 남자의 솥뚜껑 같은 손이 내 왼뺨을 후려갈겼다. 배구공 날리듯 왼쪽 머리통을 스매싱했다.

“아아…….”

이명이 귓속에 길게 파고들었다. 고막이 터져버린 게 아닐까. 맞은 부위를 두 손으로 감쌌다.

안 들리게 되면 큰일인데. 출근해야 하는데.

“당연히 형님이 어딨어요. 형이건 동생이건 우리 자기가 어련히 알아서 정할 일이지 형이 뭔데요.”

“아아. 아…….”

무릎으로 기었다. 그리고 지수의 다리 사이 너른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지수야. 지수야!”

어린 남자가 코웃음 쳤다.

“하! 그런 거 형만 할 수 있는 줄 알아요?”

어린 남자가 날 발로 뻥 차서 구석으로 휭 날려버리고 지수한테 딱 들러붙었다.

“자기야, 흐으응? 형이 내 핸드폰 맘대로 만져놓고 자꾸 나한테 뭐라 그래. 무서워 죽겠어. 힝, 흐잉. 내가 형 혼내줘도 되지? 응? 하이잉.”

네가 제일 무섭거든.

지수 발치에 다시 붙었다. 지지 않고 말했다.

“지수야, 그래도 내가 첫 번째지? 어?”

지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따져 묻고 싶은 것도 많았다. 하지만 구태여 줄줄 늘어놓지 않아도 지수는 내 맘을 알 터였다.

그런데 청동빛 손이 나만 떼어놓았다. 지수마저 날 발로 멀리 밀어 떨어뜨렸다.

“너희들 일은 너희들끼리 해결 봐.”

“……지수야?”

내 애인이 달라붙는 날 자꾸만 털어냈다.

“형. 우리 자기 말 안 들려요? 우리 일은 우리끼리 해결하죠?”

“뭐, 뭘 어떻게 해결해요.”

“그러게 왜 남의 물건을 함부로 건드려요. 안 되겠다, 형님 오늘 동생한테 좀 맞읍시다. 아니다. ‘대훤이 형’은 인제 형님 자격 없어요. 내가 형님 할래요.”

“싫어요! 내가 형님이에요. 물건 건드린 거는, 미안하긴 한데, 넌 남의 애인 건드렸잖아……. 요.”

“아니요. 내가 형님이에요. 이제부턴 대훤이 형이 동생이에요. 알겠어요?”

“아니요. 모르겠는데요.”

“뭐가 그렇게 불만이에요. 동생 하기 싫어요?”

“싫어요. 내가 형님이에요.”

어린 남자가 날 빤히 보다 말했다.

“좋아요. 그럼 맞짱 한판 뜹시다.”

“예……?”

“입 아프게 어쩌고저쩌고 따질 거 없이 남자답게 맞짱 떠서 정하자고요.”

‘맞짱’이라니. 요샌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들어보기 힘든 말이었다.

“준비.”

어린 남자가 신난 얼굴을 하고 몸을 우두둑우두둑 풀었다.

맞짱 같은 건 떠본 적 없었다. 무력행사는 언제나 지수 담당이었다.

지수를 올려다보았다. 내 애인을 애절한 눈으로 우러러 말했다.

“지수야, 나 맞짱 안 떠. 하기 싫어……!”

지수의 발이 또다시 날 죽 떠밀었다. 지수 곁에 있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니까 왜 네 동생 물건에 손을 대냐. 사이좋게 지내라고 했지. 뿌린 대로 거두는 거야. 변대훤 네가 나랑만 사니까 단체생활에 적응이 잘 안되는 모양인데, 이번 기회에 반성 좀 해라.”

반성? 너 지금 반성이라고 했어?

반성은 내가 아니라 너희 둘이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쟤가 먼저 내 물건에 손댄 거는? 맨 처음에 네가 쟤 우리 집 데려왔을 때 기억 안 나? 쟤가 먼저 내 핸드폰 가져갔던 건 왜 아무 말도 안 하……. 프훅!”

갑작스러운 주먹질에 방바닥을 굴렀다. 어린 남자가 낄낄 웃으며 말했다.

“땅! 큭큭, 말하기 전에 시작해버렸네. 미안요.”

“하아, 하욱……!”

출근해야 되는데 자꾸 얼굴을 망치면 어쩌자는 걸까. 이런 걱정부터 해야 하는 처지에 한숨이 나왔다.

“형! 준비 땅 했잖아요. 빨리 덤벼봐요.”

“흐웃. 흣.”

“안 일어나면 봐줄 줄 알죠? 바로 또 갑니다.”

“잠깐, 안……. 컥!”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래요. 가만있는 거 보니까 맞을만한가 봐요?”

“하아욱! 흑, 흐어윽?”

“나 권투 오래 배웠거든요. 우리 자기한테 맞는 거랑은 좀 다르죠? 큭큭!”

많이 달랐다. 혼을 지구 밖까지 날려버리는 강펀치였다.

타격을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이 보통 사람을 이렇게 막 두들겨 패도 되는 건가. 어린 남자가 마치 내 생각을 읽은 듯 지껄였다.

“근데 형처럼 주먹다짐도 한번 해본 적 없게 생긴 사람 내가 이렇게 막 치니까 억울하죠? 큭큭! 근데요, 형. 내 맘이에요. 큭큭큭!”

퍼헉! 퍽! 콱. 따닥!

어린 남자의 무쇠 같은 발이 복부를 차서 척추 있는 데까지 쑥 집어넣었다. 입 밖으로 튀는 타액 색깔이 언뜻 선홍이었다.

“맞다. 형, 나 태국 가서 무에타이도 배워왔어요. 아! 대훤이 형, 일어나요. 이게 무슨 맞짱이에요. 재미 하나도 없잖아요. 어차피 두들겨 맞을 거 반격이라도 좀 해봐요. 계속 맞기만 할 거예요? 응? 그럼 계속 때려주고.”

콱! 퍽. 퍼벅, 우지끈. 푹. 우두둑. 쾅! 철떡.

“허으국…….”

“똥 질질 새는 엉덩이 들고 일어나요. 동생 하기 싫다면서요. 그럼 나랑 맞짱 떠서 이겨야죠. 아니면 항복하고 얌전히 형님 타이틀 나한테 넘기든가요. 어떡할래요. 아, 이것도 저것도 다 싫으면 그냥 대가리 병신 될 때까지 죽자고 처맞든가요.”

“흐익!”

세컨드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근데 그러려면 저 곰같이 힘센 남자와 싸워서 이겨야 한다고?

“어쭈. 피했어요?”

어린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저렇게 커다랗고 짐승 같은 자식을 어떻게 이겨.

불가능하잖아.

“흐윽, 흐웁!”

“큭큭. 그렇게 무서워요? 근데 대훤이 형, 피하면 두 댄데!”

“컥퓻……!”

어린 남자가 팔꿈치에 온 힘을 실어 날 내리찍었다. 갈비뼈에 금이 간 듯했다.

“꺽……. 컥.”

“나 같으면 그러고 있을 시간에 한번 쳐보기나 하겠다. 왜 그렇게 겁쟁이예요? 그니까 형이 사랑을 못 받죠.”

꽈배기 도넛처럼 나뒹구는 내 입에서 침이 잘잘 샜다. 지질구질하게 몸부림치는 와중에 자꾸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린 남자가 왠지 모르게 날 격려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수상쩍었다.

왜 자꾸 반격하라고 부추기는 걸까. 마치 겁 많은 내가 딱 한 번 용기 내길 바란다는 듯이…….

“일어나요.”

어린 남자가 내 목덜미를 잡아채서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흐흑, 허…….”

“또 갑니다.”

어린 남자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주먹을 쥔 채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마치 내가 덮치기를 기다린다는 듯 상체를 휙휙 젖히고 뜸을 들였다.

그래. 못 때릴 것도 없지.

아니, 나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진작에 두들겨 패서 초주검으로 만들어야 이치에 옳았다. 8년을 만나면서 내 삶과 젊은 날을 다 바친, 소중한 애인 김지수와 바람을 피우고 여기까지 기어들어 와서 날 더럽힌 널 내가 못 때릴 줄 알고?

어린 남자도 자기가 잘못한 줄 아니까 몇 대 맞고 죄책감을 덜고 싶은 거겠지. 두 주먹에 부들부들 힘을 더했다.

너야말로 맞아도 싸.

“이잇!”

오른 주먹으로 허공을 갈랐다.

푸헉―!

헉? 이럴 수가. 어린 남자의 얼굴 한가운데를 정통으로 맞혔다.

잘난 척 설치던 오만무도가 단 한 방에 쌍코피를 터뜨리고 나자빠졌다. 조각 같은 얼굴이 공중을 비행하며 붉은 줄 두 개를 켐트레일처럼 콧구멍으로 싸서 뿌렸다.

이게 되네? 내 주먹이 그렇게 센가?

어리둥절한 상황에 오른 주먹과 어린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어린 남자가 거실 바닥에 발라당 드러누워 사지를 움찔움찔 퉁겼다.

설마 죽지는 않겠지? 사람을 때려본 건 처음이었다.

덜컥 겁이 났다. 겁쟁이는 맞든 때리든 겁쟁이였다.

주먹 끝에 남아 욱신거리는 손맛과 가슴 구석에 새로 들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쾌감 때문에 더 두려웠다.

“저…….”

어린 남자한테 한 걸음 다가갔다. 어린 남자가 코를 부여잡았다.

“괜찮아요?”

“……킁. 컥.”

어린 남자가 코로 축축한 소리를 냈다. 코뼈라도 부러뜨린 건 아니겠지.

발만 동동 굴렀다. 그때였다.

“윽!”

어린 남자의 긴 팔이 내 멱살을 낚아챘다. 그리고 자신한테로 바짝 끌어당겼다.

“흣?”

코피에 엉망진창 젖은 얼굴과 마주쳤다. 내가 낸 피라고 생각하자 멀리 달아나고 싶었다.

온몸으로 버둥거렸다. 그러나 어린 남자가 날 놓아주지 않았다.

“대훤이 형.”

“놔요! 훗, 헛……!”

“무지 잘 치네요. 잘 치면서 왜 못 치는 척해요.”

“예?”

“흐히힛!”

어린 남자가 기괴한 표정을 짓고 시끄럽게 웃었다. 동작을 멈추고 그 모습을 꺼벙하게 내려다보았다.

“인제 쌍방이에요.”

“…….”

그것 때문이었나. 난 왜 이렇게 바보일까.

콰헉―!

주먹이 날아왔다. 내가 어린 남자를 때린 바로 그 위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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