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 김지수(4) (4/41)

1. 김지수(4)

“드르렁…….”

두 사람은 더 짜낼 수분이 없을 즈음 쓰러져 잠들었다. 신화 속 요정같이 널브러진 두 사람 덕에 우리 집 거실은 애욕의 동산으로 전락했다.

둘은 소변과 정액, 장액, 타액, 피땀 및 여러 가지에 젖은 내 몸뚱이를 더러운 가구나 눅눅한 이부자리 삼아 기대고 다리를 올렸다. 불란서 영화 속 두 주인공처럼 비위생 따위 추호도 개의치 않았다.

벌거벗은 두 사람의 네 다리가 사랑스럽게 겹쳤다. 어느새 얇은 커튼을 뚫고 스민 아침 햇살이 새로 하나 된 연인을 축복하듯 지수와 어린 남자 위에 내려앉았다.

두 남자의 뺨과 머리카락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가장 따뜻한 색, 노랑이었다.

마치 오줌처럼.

“읍…….”

더 참는 건 불가능했다. 두 눈이 초점을 스스로 내팽개쳤다.

의지와 관계없이 몸뚱이가 오줌길 문을 질금 열었다. 오줌이 요도 어딘가를 스멀스멀 미끄러지는 느낌이 어쩐지 또렷하지 않았다.

난 지수와 지수의 새로운 사랑이 새근새근 자는 동안 동물같이 배설하는 중일까.

하나 엎지른 오줌은 주워 담을 방법이 없었다. 납덩이 같은 눈꺼풀을 닫았다.

이대로 그냥 사라졌으면.

“탑기야.”

“왜, 자기?”

“사랑해.”

“응. 나도 나 사랑해.”

“이렇게까지 좋을지 몰랐어……. 나 인제 네 거야. 너 가져.”

“아! 뭐야? 왜 이렇게 축축해? 킁킁. 이게 뭔 냄새지?”

어린 남자의 날 선 목소리가 날 깨웠다. 지수의 꺼벙한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어? 왜.”

“헐? 자기야! 자기 원래 애인 오줌 쌌어!”

“뭐?”

“일어나 봐. 아악! 지린내 좆 돼.”

비단 나 혼자만의 오줌 냄새는 아닐 것이다. 꼼짝 못 하니 억울한 마음을 토로하는 대신 꽉 씹은 어금니에 힘을 더했다.

김지수가 간밤에 좆물 아닌 오줌을 몇 번이나 직직 지리고 줄줄 싸젖혔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지켜본 나였다. 둘은 마치 마룻바닥에 아무것도 싼 적 없다는 듯 파렴치하고 뻔뻔스럽게 굴고 있었다.

“형, 애인 형. 아! 왜 안 일어나.”

어린 남자가 날 툭툭 쳤다. 아니, 퍽퍽 때렸다.

감정을 모질게 실은 주먹질이었다. 눈물이 핑 돌게 아팠다.

누군 안 일어나고 싶은 줄 아나.

어쩌면 어린 남자가 맞았다. 두 사람은 구급차를 불러야 했는지도 모른다.

“왜 애를 때리고 그러냐.”

“안 일어나잖아.”

김지수 네가 걜 안 데려왔으면 내가 맞을 일도 없잖아. 몸부림칠 수 있다면 미친놈처럼 몸부림쳤을 만큼 지수가 미워 죽겠는데, 그런데도 멍청해빠진 가슴 한편이 지수 역성을 들어댔다.

그래도 왜 때리느냔 말 한마디나마 하잖아. 날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다는 거잖아.

매 순간 매번 내게 바보짓을 하게 해온 목소리였다.

그래도 그럴 때마다 행복했는데. 지수 때문에 저지른 내 삶 속 수많은 실수는 여전히 내게 금은붙이 같은 추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행복이 느껴지지 않았다. 행복의 자취마저 느낄 수 없었다.

지수와의 8년이 한순간의 꿈 같았다.

“벗겨.”

어린 남자가 말했다. 설마 내 얘긴 아니겠지……?

지수가 되물었다.

“어? 뭘.”

“빤쓰 벗겨야지. 오줌 쌌잖아.”

“그렇다고 애 빤쓰를 벗겨?”

“풉. 애는 무슨 애야. 자기가 안 벗기면 내가 벗긴다?”

“그걸 네가 왜 벗겨. 킥킥. 큰일 날 애네.”

“냄새나잖아.”

어린 남자의 손이 닿았다. 양 팔뚝에 소름이 오스스 일었다.

어린 남자가 내 바지를 끄르는 손길이 무지막지하고 우악스러웠다. 말 못 하는 짐승이 된 심정이었다.

“넌 보면 좀 심해. 성질이 왜 그러냐?”

지수가 염려스럽다는 듯 말을 뱉었다. 내가 아니라 어린 남자를 걱정하고 있었다.

“와……. 트렁크? 진짜? 나 이거 실제로 처음 봐. 우리 아빠도 이거 안 입는데.”

몸이 멀쩡했다면 즉시 얼굴을 붉혔을 것이다.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트렁크가 그렇게 이상한가. 얜 트렁크 같은 건 안 입나.

“사진 찍을래.”

뭐?

“민탑기. 뭐 하냐.”

“큭큭큭!”

건장한 팔이 기어코 팬티마저 끌어 내렸다.

찰칵. 찰칵찰칵!

가짜배기 셔터 소리가 이미 살해당한 것이나 다름없는 날 난도질했다.

김지수는 어린 남자를 저지하지 않았다. 어린 남자가 내 마비된 얼굴과 나가떨어진 몸뚱어리와 죽은 좆과 요강에 빠진 생쥐 같은 몰골을 핸드폰으로 모조리 찍어 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딴 남자를 집에 데려온 내 애인은 가장 간절한 순간에 애인 역할을 해주지 않았다. 그딴 건 진작에 포기하고 내다 버렸다. 꺼리고 피했다. 철저히 무시했다.

“응? 사진엔 눈 뜨고 있는데? 이 형 깼나 봐!”

“아닌데? 안 움직이잖아. 봐.”

“근데 왜 눈을 뜨고 있지?”

“눈 뜨고 자네.”

“그게 가능해?”

“그럴 수도 있지. 근데 이거 이렇게 해놓고 인제 어떡하려고.”

“몰라. 그냥 벗겨봤어. 큭큭! 자기가 알아서 해. 자기 애인이잖아.”

“야! 내 애인은 너지. 맞아, 아니야.”

“까르륵!”

“아, 저기 뭐라도 좀 덮어놔.”

풀썩. 무언가가 차디찬 몸뚱이를 덮었다.

“얼굴은 왜 안 덮어. 쟤가 눈 빤히 뜨고 있으니까 괜히 무섭잖아.”

지수였다. 내 애인이 날 두고 한 말이었다.

훅. 작은 천 쪼가리가 눈앞을 가렸다.

“큭큭!”

“야. 넌 가려도 하필 그걸로 가리냐?”

“이거밖에 없어.”

옅은 향수 냄새와 진한 남자 냄새가 났다. 어린 남자의 팬티인 모양이었다.

“자기야♡”

어린 남자가 흡사 골목 떡집 아저씨처럼 무르익다 못해 삭아 물크러진 소리로 지수를 불렀다. 지수가 자동 반사하는 기계같이 대답했다.

“어.”

“밥 먹기 전에 우리 한 판때기 더 할까? 아흥?”

“진심?”

“난 당연히 자기한테 언제나, 늘, 항상, 1,000%, 10,000% 진심이지.”

“지금 하자고? 말이 되냐? 어떻게 해. 못 해.”

“아니야. 자긴 할 수 있어. 자기 자신을 믿어. 세상에 불가능 같은 건 없어. 확인해볼래? 우리 기네스북 신기록 세우자!”

“아, 좀. 장난치지 마. 되겠냐?”

“파이팅! 아자!”

“쉬자. 밥 먹고 하자. 어?”

“아아아아앙. 한 번 더 오케이?”

“이따가 씻…….”

퍽. 퍽. 철썩. 철떡!

“닥치고 세워. 안 세워, 이 새끼야? 내 남자면 내가 세우랄 때 세워!”

“아니, 어떻게 바로 세우……. 아? 하아앙!”

“후음, 후읍. 업. 픕. 븍, 츳! 추르르릅……!”

우리 집은 더는 지수와 내가 안락하게 쉴 곳이 아니었다. 어린 남자의 호령 아래 있었다.

내 얼굴에 딴 남자의 속옷을 씌워두고, 김지수는 그 남자와 몸을 섞고 밥을 시켜 먹고 그리고 다시 몸을 섞었다. 어린 남자는 지칠 대로 지친 지수를 좀처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난 어린 남자의 사타구니 호르몬 냄새를 맡으면서 오후 내내 그 소리를 들었다. 두 사람이 밤낮도 모른 채 명을 재촉하다가 마침내 곯아떨어진 것은 저녁이 다 돼서였다.

그때쯤이었다. 손가락 끝마디가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절박한 손끝을 미친 듯이 흔들었다.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단 생각뿐이었다.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달아나고 싶었다.

극. 익.

떡처럼 눌어붙은 몸에서 참기름 같은 식은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마음이 급했다.

“흐으음…….”

둘 중 하나가 숨 쉬는 소리에도 염통이 벌떡거리고 치가 떨렸다.

어두컴컴한 밤에 이르자 가까스로 돌아누울 수 있었다. 그때 문제가 발생했다.

“어, 일어났네? 좀 괜찮아?”

김지수가 2리터짜리 생수통을 벌컥벌컥 들이켜다 나와 눈을 마주쳤다. 썩은 동태눈 주위가 라쿤 아이즈처럼 시커멨다.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가겠지. 경찰을 불러야 하나?

맞다, 핸드폰 뺏겼지. 달라 해도 안 줄 텐데.

그냥 조용히 일어나서 도망쳐? 붙잡진 않겠지?

그때였다. 어린 남자가 날 뒤늦게 돌아보고 청량한 미소를 함빡 지었다.

“형님!”

내가 왜 네 형님이야.

“대훤아, 밥 좀 차려. 우리 배고파. 얘 시켜 먹는 거 싫대.”

내가 왜 밥을 차려.

“맞아요. 배고파요. 나 배달 음식 싫단 말이에요. 억지로 먹다 토할뻔했어요. 근데 형님 냄새나요! 윽. 지독해……. 안 씻어요? 여기 빨리 청소도 해야 될 거 같은데요? 바닥에 냄새 밸 텐데.”

왜 내가 청소를 해.

“변대훤, 뭐 해. 왜 가만있어. 밥부터 하고, 아니다. 밥에서 냄새 졸라 나겠다. 일단 그러면 씻어. 하……. 지금 하면 밥 언제 먹어. 배고파 뒈지겠네.”

김지수가 짜증 난다는 듯 한숨을 팍팍 쉬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날 보고 물었다.

“근데 우리 콘돔 남는 거 좀 있냐?”

콘돔?

김지수의 말이 머리통 안을 떵 때렸다. 콘돔이라.

난 꼬박 하루 만에 입을 열었다.

“지금 나한테……. 콘돔 있냐고 물어본 거야?”

어린 남자가 쿡쿡 웃었다. 시선을 천천히 옮겨 어린 남자를 쳐다보았다.

보는 것만으로 나 자신을 부정당한 듯 수치스러워서 머리를 얻다 갖다 박고 꼴까닥 죽고 싶어질 만큼 잘생긴 얼굴이 날 비웃고 있었다.

난 다시 입을 열었다. 김지수가 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였다.

“우리 콘돔 없어.”

“그래? 그럼…….”

김지수의 말을 끊고 계속 말했다.

“콘돔이, 있겠어? 젖, 저번 주에 시킨 백 개……! 백! 개! 들이 그저께 다 썼잖아. 기억 안 나? 우리가 평소에 하는 횟수를 생각해봐. 남을 수가 없지. 지수 네가 더 잦, 잘 알 거 아니야. 아, 혹시 젖, 저 친구 앞이라서 일부러 그렇게 물어본 거야? 내가 눈치가 없었네.”

“뭐? 너 무슨…….”

“안 그래도 네가 콘돔 아껴야 되니까 세 번 중에 한 번만 콘돔 끼고 하자며. 왜, 젖, 저 친구랑은 콘 없이 못 하겠어?”

어린 남자가 얼굴을 살벌하게 굳혔다. 귀신같이 을씨년스러운 표정이었다.

김지수. 네 멋대로 해라.

“변대훤. 너 미쳤어? 잘 자다 일어나서 왜 헛소리야?”

“…….”

“너 안 씻어? 밥 안 먹을 거야?”

8년 동안 사랑하는 애인만 보고 살았다. 김지수는 내 보잘것없는 삶 속 1순위로 소중한 내 사람이니까.

언제나처럼, 방황은 잠시 잠깐일 뿐이니까. 우리 앞으로 더 행복하게 오래오래 만나야 하니까. 우린 다시 좋아질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만큼 사랑하는 네가 날 죽였다.

내 영혼을 죽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내 모든 것을 다 갈기갈기 찢어 없앴다.

“김지수.”

사랑하는 사람을 용서하기란 어렵다. 증오하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보다 배는 어렵다.

“변대훤. 불렀으면 말을 해.”

8년을 그만큼 애썼으니 됐다. 내 애인을 향한 긴긴 짝사랑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시점이었다.

“헤어지자.”

<2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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