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 김지수(3) (3/41)

1. 김지수(3)

난 언제나 추억에 산다. 지수 너와 함께 자란 소년기의 봄바람이 아직도 코끝에 스치는 듯하다. 완연한 신록 내음이다.

범속한 애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널 보며 네 안의 특별함을 발견했다. 그리고 가슴 시리게 동경했다.

네가 학교 안의 그 누구보다 궁금했다.

넌 내 평범함이 좋다고 했지. 좋은 건 좋다고 잘하고, 싫은 건 싫다고 잘 못 해서 좋다고 했잖아. 웃겨야지만 웃고 안 웃기면 안 웃어서 좋다고 그랬잖아.

신나는 건수가 생기면 허풍을 떨고 허튼소리를 해가며 목소리를 높이고, 곤란에 빠진 사람을 보면 좀처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당연히 화내야 할 일에는 폼 안 나게 말까지 더듬으면서 얼굴 붉히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땐 양보의 말 대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버리는 내가 좋다는 네 말이 그땐 그저 알쏭달쏭했다.

평범함엔 아무런 노력도 필요 없잖아. 평범한 게 장점이 될 수 있나. 장점이란 뭔가 특별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한테 칭찬할 점이 별로 없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좋았다.

지금은 네 말을 조금 알 것도 같다. 세상은 어느새 한 발자국 다가가기조차 쉽지 않을 만큼 찬바람 쌩쌩 부는 사람들로 가득하니까. 물론 그 사람들도 마음속 깊은 곳은 그렇지 않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네 말은, 네가 느끼는 내가 36.5℃ 정도는 된다는 뜻이었겠지. 그렇지?

네가 그렇게 말해준 순간부터 나도 내 평범함이 좋았다. 내 평범함이 고맙고 심지어 사랑스러웠다. 내심 우쭐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나라는 인간의 온도가 뚝 떨어져 버리거나 너무 높아지지 않게, 네 덕분에 소중해진 내 평범함을 널 위해 보살피고 고스란히 간직하려고 노력해왔던 것 같다.

‘뭐가 귀여워요. 개―좆같은 새끼야. 너 남자 좋아하냐?’

철호는 그냥 별 뜻 없는 장난으로 한 말이었을 텐데, 걔가 그것 땜에 후배인 너한테 꼬투리를 잡혀서 어느 날 먼지 나게 두들겨 맞았던 일을 잊을 수 없다.

그 일로 넌 벌을 받았고, 처음 하나로 시작한 벌은 새끼를 여럿 쳐서 점차 널 방황하게 했고, 방황은 진한 반항이 되어 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매력 중 한 가지로 떳떳이 자리매김했다.

아름다워서 가여운, 넌 정 맞는 모난 돌이었다.

네 갈수록 빛을 더해갈 뿐 사그라지지 않는 반짝임은 네가 그렇게나 싫어하던 범속한 애들이나 범속한 선생들로 하여금 널 더욱더 무참히 물어뜯을 것을 부추겼다. 누구도 눈덩이 같은 벌을 네 등에서 내려놓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네 유일한 보호자였던 아저씨는 단 한 번도 학교에 찾아오지 않았다.

네가 자퇴하던 날은 더없이 화창했던 기억이 난다. 언제나처럼 꼬질꼬질한 교복 차림으로 담배를 피우는 네가 있을 옥상으로 올라간 날이었다.

그때의 난 지금보다 더 오만했던 것 같다. 동생인 너보다 늘 철없었던 것 같다.

그날 넌 날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배알이 뒤틀렸을까. 아니면 그저 우스웠을까.

나 때문에 네가 그렇게 된 것 같아 고개도 못 드는 내게 화를 내던 네 얼굴이 어제처럼 선명하다.

‘꺼져. 여기서 너 밀어버리기 전에.’

그러나 난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내 인생에서 최고로 잘한 일이라고 자부한다.

‘왜 자꾸 따라다녀.’

삼 년 같던 삼 개월이 지나고, 주민등록상 성인이 되자마자 태어나서 처음 내 맘을 따라 막무가내로 저질러본 일이 바로 네 뒤만 졸졸 쫓는 거였다. 말로는 따라오지 말라면서도 절대 멀리 달아나진 않던 네 커다란 뒷모습을 기억한다.

‘따라오지 마. 너 나처럼 인생 조지고 싶어?’

어쩌면, 조금은. 그럼 네가 네 하루 24시간 중 아주 잠깐이나마 내게 나눠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또 네가 나랑 말을 섞을 때 덜 지루했으면 하니까. 나아가서 나한테 재미를 느끼고 너털웃음 한 번만 지어준다면 더 바랄 게 없을 테니까.

너와 내가 그리 다르지 않은 사람이란 걸 알아차릴지도 모르니까. 네가 나와 함께 있지 않을 때도 문득 날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니까.

……친해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딱 일 년을 널 쫓아다녔다. 고등학교라도 졸업시키고 말겠다는 일념은 명백한 핑계이자 애끓는 진심이었다.

‘너 나 계속 쫓아다니면 나 너한테 나쁜 짓 한다.’

스무 살의 너는 그때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넌 정말 나한테 나쁜 짓을 했다.

나이답지 않게 매우, 몹시, 아주아주 대단히 나빴던 널 난 더 많이 좋아하게 됐던 것 같다. 흔들릴 바에 차라리 꺾이고 말 듯 위태위태한 너와 가까워진 기분에 조금 안심도 되고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오직 좋았다. 하나도 싫지 않았다.

그렇게 너로 말미암아 난생처음 평범하지 못한 경험을 치렀다. 그리고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널 알게 된 시점부터 모든 것이 새로 정해진 듯 일목요연했다. 그때부터 쭉 너한테만은 특별한 사람이고 싶었다.

계속, 언제까지나. 가능하다면 끝의 끝까지. 거룩하도록 오래오래. 그저 너와 같이 있길.

영원히.

내게 사랑은 부활이다. 지수 네 덕에 난 다시 태어났으니까.

난 이미 널 만나기 전의 나로 되돌아갈 길 없잖아.

내가 항상 네 곁에서 너만 바라봐서 지겹고 하찮게 느껴진대도 괜찮다. 그만큼 지겹고 하찮은 날 갖다 버리지 않고 매일매일 네 심술 난 얼굴을 보여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너 때문에 힘들었던 적이 없지는 않지만, 사실 무지하게 많지만, 눈물과 권태 또한 사랑의 일부가 아닐까.

너와 헤어진 벌로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면서도 서로 안 적 없는 사람같이 스쳐 지나가야 한다면, 분명 네 미워 죽겠던 얼굴마저 가슴 구석에 고이 끌어안고 혼자 울 테니까. 늦은 밤마다 새벽마다, 비 내리고 바람 부는 날마다 소리 없이 울 테니까.

그러니까 우리 무슨 일이 있어도 헤어지지 말자. 지금처럼 딱 붙어있자.

누군가는 팔 년이나 만나놓고 유난이라고 눈을 흘기겠으나 난 내내 마음졸였다. 그럴 수밖에.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엔 너만큼 좋은 게 없다.

너만이 날 어린애처럼 진정으로 웃게 하고 인간처럼 가슴 치며 울게 하잖아.

내 손 놓지 말아주라. 손을 부서뜨려서 가루로 만들어도 좋으니까 아주아주 세게 잡아주라. 그게 힘들다면 내가 몇 번이고 다시 잡을 테니까, 꼭 못 이기는 척 몇 번이고 다시 잡혀주라. 그래 주라, 지수야.

언제부턴가 나한텐 내가 아닌 너만 있다. 널 내 몸처럼 애지중지하다 보니 어느새 너만 남았다. 이보다 경이롭고 멋진 일이 어디 있을까.

그러니 네 사랑이 비추다 숨어버리는 해 같다고 할지라도 기꺼이 바다가 되어 밤사이 온기를 품겠다. 타고 사윌 불이라면 돌화로처럼 극진한 은근함으로 겨우내 불씨를 보듬겠다.

네게 소홀히 한 끝에 널 훌쩍 졸업해버리고, 그간 흰 눈같이 보배같이 쌓아둔 추억 수만 가지를 뒤편짝으로 치워놓고 싶지 않다. 거기에 풋사랑이란 이름표를 붙이고 수치심의 비닐을 꽁꽁 씌워 마음속 가장 춥고 볕 안 드는 곳에 마냥 묻어두고 싶지 않다.

그저 그런 상대를 골라 적당하고 불순한 ‘보통 연애’를 즐기다 한 번씩 부질없이 느껴질 때면 몰래 한숨을 내쉬고 흡사 도피처를 찾듯 널 떠올리고 싶지 않다. 아쉬워서 더 애틋하고, 애틋하기에 구저분해질 뿐인 그리움에 새 옷을 적시고 싶지 않다.

그건 너무 군색하니까. 금덩어리 같은 우리 추억을 어떻게 그렇게 푸대접할까.

마찬가지로 널 다른 사람의 품으로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내가 절대 알지 못할 누군가가 널 조금씩 알아간다는 상상만으로 가슴 안에 바람이 분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의 취향에 맞춰 골라준 옷을 입고, 내가 쓰지 않는 섬유 유연제 냄새를 풍길 네가 싫다. 햇살 좋은 주말 오전이면 창 앞에 서서 바깥을 내다보며 모닝커피를 마시는 그 사람의 뒤로 몰래 다가가 부드럽게 끌어안을 네가 싫다.

아무 어려움 없이 그 사람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고 그 사람의 체취를 들이마실 네가 싫다. 그 사람의 귓가에 내가 모르는 농담을 던지고 남자다운 웃음을 터뜨릴 네가 참을 수 없이 싫다.

난 네가 녹음 짙은 계절에 그림 같은 근교에서 그 사람과 찬란한 한때를 보내다 문득 날 떠올리게 하고 싶지 않다. 잿빛으로 바래버린 내 생각 따윈 덮어버리고 서둘러 네 연둣빛 행복을 만끽하게 하고 싶지 않다.

나만큼 널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나만큼 널 이해하는 사람은 없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자신할 만큼 헌신으로 8년을 보냈다.

그러니 지수는 누굴 만나도 내 빈자리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 사람을 나와 비교하면서 불만족할 게 뻔하다. 그런 불행이 지수에게 닥치게 할 수 없다.

난 지수 네가 여전히 주말 밤마다 한 주를 마무리하듯 집에서 같이 영화 보며 맥주 마시는 시간을 즐긴다는 것을 안다. 이따금 네가 어디에 있든 내가 퇴근하고 널 데리러 가는 날이면 저물녘 함께 집으로 향하는 길에 아닌 척 실은 무척 신나서 내내 재잘대는 네 목소릴 안다.

공기가 선선한 계절에 4년째 우리 단골집인 개인 카페 옥외 테이블에 자리 잡은 네가 마치 제집 안방에 머물듯 자연스럽고 편안한 모습으로 서울 골목 경치에 녹아들 때 얼마나 멋스러운지 안다.

하늘이 어느덧 쪽빛으로 어둑어둑해 서로의 표정이 잘 안 보일 때까지 수다를 떨면서 조금도 지겨워하지 않는, 뜻밖의 잔재미가 있는 네 면면을 안다. 마지막엔 밤과 바람과 여유와 그날 하루가 못내 아쉽다는 듯 영화나 한 편 보고 들어가자고 말하는, 내 일상을 때때로 깨뜨려주는 네 낭만을 안다.

잠이 오지 않는 한여름 밤, 서로의 눈빛만으로 필이 통하면 바―로 쏘곤 하는 대형마트 24시간 영업점을 슬리퍼 차림으로 누비는 즉흥 새벽 데이트, 그리고 요란한 밤참에 피터 팬처럼 배를 두들기며 기뻐하는 널 안다.

네가 앓을 적에 내가 차와 죽을 끓이고, 시간마다 이불을 들쳐보며 네 상태를 살피고, 네 이마를 만지고 손과 팔을 주무르는 것을 좋아하는 네가 일부러 다 낫지 않은 척 꾀병 부릴 때의 표정을 난 너무도 잘 안다.

우리 추억은 일상 속 가장 가깝고 평범한 곳마다 녹아있어서 어딜 건드리든 사탕가루같이 잔뜩 묻어나온다. 그게 문제다. 어디로 도망쳐도 벗어날 곳이 없다.

그러니 헤어진다면 지수 너도 조금은 아플 게 분명하다. 그래서 더 싫다.

그런데도 헤어져야만 하는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네가 날 영영 떠나겠다고 하면 그땐 어쩌지. 내가 잡을 수도 없이 먼 데로 사라져버리면 어떡하지.

그런 두려움을 떨칠 수 없다. 두려움과 함께 살다 보니 인제 친구 같기도 하다.

난 널 한 번 더 주저하게 할만한 능력이나 내게 또다시 반하게 할 매력, 어떻게든 널 옆에 두고야 마는 박력이나 널 당당히 차지할 어떤 용기가 없는 사람인 것 같다.

아마 난 그냥 아파할 것 같다. 바보같이 술에 취해서도 너한테 끝내 전화를 걸지 못할 것 같다.

돌이킬 수 없이 밉보이는 게 무서워서, 모자란 난 네가 스스로 맘을 돌려주기만 애타게 바랄 것 같다. 널 영영 못 보게 될까 봐 제대로 붙잡아보지도 못하는 천하의 한심한 놈이 되고 말 것 같다.

내 빛인 널 잃고 어둡게 불 꺼진 얼굴로 남몰래 네 생각에만 빠져 지낼 것 같다. 쓸모없어진 핸드폰을 잠시도 손에서 놓지 못할 것 같다. 고장 난 우리 시곗바늘을 자꾸자꾸 뒤로만 돌려볼 것 같다.

네가 언젠간 나한테 다시 돌아와 주기만을 기다리며 괜찮은 척 괜찮지 않은 채로 살아갈 것 같다.

고단한 해피엔딩처럼 어딘가에서 너와 우연히 마주치는 장면을 상상하고 무거운 발을 옮길 것 같다. 하루하루 일상 속 길을 애써 디디는 매 순간 헤매고 말 것 같다.

아이처럼 길을 잃고 널 하릴없이 찾아 맴돌다 얼굴을 구길 것 같다. 기어코 우리 추억과 마주치고 무너져서 숨도 쉬지 못할 것 같다.

“응핫……. 앗응, 자기? 왜 이럴까. 진정해. 씁.”

“왜. 인제 너랑 나랑 사귀는 사이잖아.”

어? 방금 건 지수 목소린데.

“읏, 흐응. 그래서?”

“그래서는 뭔 그래서야. 사귀는 사인데 왜 이렇게 튕겨. 허아, 하. 같이 살면 사귄다며.”

“근데. 사귀면 떡 쳐야 돼?”

“어.”

“그런 게 어딨어. 앗, 하으응……!”

“여기 있어. 그니까 좋게 좋게 벗어. 아기야. 어? 이쁜아. 형 말 들어.”

“싫어. 아! 아흥웃…….”

“바지 벗어. 씨팔 확 찢어버리기 전에.”

“뒤질래? 좆같은 새끼가 이 씨발 얻다 대고 욕질이야.”

“어? 뭐? 갑자기 왜…….”

“욕하지 마, 개새끼야.”

“내 집에서 내가 욕도 못 해?”

“못 해.”

“왜?”

“꼴리니까. 크힛! 자기 욕하면 너무 섹시하단 말이야.”

“또 까불지. 탑기야. 내가 이때까지 너 땜에 얼마나 참았는지 아냐? 후.”

“모르지. 얼마나 참았는데?”

“너랑 할 때까지 모으려고 그동안 나 딸딸이도 한 번 안 쳤어.”

“큭큭. 구라 치네.”

“진짜. 자지 봐.”

“아이, 씨발! 노친네 아니랄까 봐…….”

“노친네? 야, 민탑기. 너 나한테 잘해.”

“왜.”

“네가 대준다 해서 결국 내가 너 집에까지 데리고 왔잖아. 맞아, 아니야. 난 진짜 너같이 미친 또라이 새끼는 살다 살다 첨 봤어.”

“내가 언제, 흐응! 대준다 그랬어? 사귄다 그랬……. 틍! 흣?”

“만족해? 만족하냐고.”

“앙! 하웃……. 응, 만족해. 난 자기가 진짜 나 일로 데리고 올진 몰랐는데, 나도 자기 같은 병신 또라이 새끼 처음 봐.”

“알면 좀 아가리 닫고 얌전히 후장이나 벌려. 나 네 자기라며. 어? 자기야.”

“흥하앗, 아앙……. 근데 있잖아, 저 형 진짜 괜찮은 거 맞아? 나 온다고 미리 얘기 안 했어?”

“몰라. 괜찮아.”

“흐응, 음…….”

“킥. 미리 얘기하면 뭐 달라지냐? 다리나 들어봐.”

“이렇게?”

“…….”

“큭. 어때?”

“와…….”

“인제 절로 가.”

“싫어. 와, 일로.”

“응앙!”

“피부 색깔 예술이다. 태닝하지?”

“하지.”

“이거 인제 다 내 거야. 흐음, 후와.”

“자기야. 지랄하지 말고 어깨나 좀 주물러봐. 마사지 잘하지?”

마사지? 과연 몽중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마사지라니,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였다. 지수는 누구한테 마사지 같은 걸 해줄 위인이…….

“이렇게?”

“응, 아…….”

“여기?”

“아니, 아까 거기. 더 밑에.”

“아아. 여기?”

“응, 좋아.”

환청이 들렸다. 환청이었다.

아니면 악몽일 것이다. 환청이 분명했다.

“괜찮아? 안 아파?”

“안 아파. 더 세게.”

“이거보다 더 세게? 진짜 안 아파?”

“하나도 안 아파. 딱 좋아.”

“와, 씨. 큰일 났다. 어떡하냐? 너 아프다 그럴까 봐 무서워서 세게 잡지도 못하겠어. 나 진짜 너 사랑하나 봐. 돌았네.”

“풋, 또 시작이네.”

“민탑기. 어떡할래. 너 나 책임져라.”

“그래서 사귀기로 했잖아.”

“그걸로 안 돼.”

“쉿. 조용히 좀, 입 좀 닥쳐봐.”

“아, 왜.”

“일단 자기 마사지 실력부터 좀 보자.”

“알았어. 내가 오늘 너 이걸로 끝장낸다.”

언제나 무뚝뚝하고 말수 없는 지수더러 조용히 좀 하라니? 난 지수 옆에서 나이 지긋한 침묵을 견디며 우리 봄날이 돌아오기만 기다리는데?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지수가 땀을 뻘뻘 흘려가며 ‘남자’의 몸뚱어리를 주무르는 중일까.

아니다. 말도 안 된다.

내게는 학처럼 드높고 솔처럼 고고한 지수가 저렇게 발랑 까진 어린애 하날 상대로 쩔쩔매고 비위나 맞춰댈 리 없다.

지수한테 그런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다. 아름답지 않다.

지수와 내가 지난 8년간 한 땀 한 땀 정성껏 지어온 사랑은 저깟 싸구려 마사지 따위로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거짓이니까 달콤하게 구는 것일 테다. 지수가 내게 저렇게 달콤하지 못한 건 날 언제나 진실로 대하기 때문이다.

근데 왜 가슴이 미어질까. 어딘가 텅 비어버린 듯 춥고 아플까.

“자기 마사지 좀 하네. 안 힘들어?”

“야! 하나도 안 힘들어. 지금 이거 뭐 얼마나 했다고. 허허.”

“큭. 땀 나는데?”

“나 땀 원래 많아.”

사실이 아니었다. 지수는 땀이 별로 안 나는 체질이었다.

“하아, 더러워. 자기한테 땀 냄새 나겠다.”

“냄새 안 나. 샤워하면 되지. 씻고 올까?”

“아니.”

“왜? 씻고 올게.”

“됐어. 나, 사실……. 냄새나는 게 더 좋아.”

남자가 말끝을 역겹게 늘였다.

실은 역겹지 않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듣기 좋았다.

더 듣고 싶어서 남자가 말하기를 기다리게 될 만큼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내 우울하고 허스키한 음성과는 딴판이었다.

그래서 지수가 저렇게 좋아하나.

돌이켜보면 남자는 등장한 순간부터 말 한마디 소리 한 번마다 애교가 철철 넘쳐흘렀다. 넘치게 귀염받고 자란 늦둥이 막내처럼 사랑스럽고 천연덕스러웠다.

그럼 뭐 해.

농담이겠지만 냄새나는 게 좋다니. 역시 정상은 아닌 듯했다.

정상적인 애라면 8년째 잘 만나고 있는 커플 사이에 끼어들지 않겠지.

남의 집에서 살겠다고 무작정 쳐들어온 걸 보면 그 집구석 꼬락서니까지 알만했다. 집이 없든가.

그래도 지수가 저렇게 푹 빠진 건 저런 귀염성 때문 아닐까. 지수를 위해서라면 그깟 애교쯤 나도 공부하고 연습하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는데.

지수는 왜 나한테 진작 그렇게 해달라고 말해주지 않았을까.

아니면 단지 저 애의 잘생긴 얼굴에 반한 것뿐일까? 내가 그렇게 못났나?

“냄새나는 게 좋아? 그게 왜 좋아?”

“야하잖아. 짐승 같고, 더럽잖아.”

짐승 같고 더러운 건 다름 아닌 남자애 본인이었다. 그때 지수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사실 나도.”

지수가 어린 남자의 장단에 맞추려고 마음에 없는 소릴 던진 걸 테다. 지수는 생전 냄새나는 게 좋다는 망발 따위 한 적 없다.

내 애인은 원체 냄새에 예민해서 냄새나는 부위라면 애무도 해주지 않는다. 어느 부위든 애무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편이 아니다.

지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런 주제에 어린 남자는 지수가 같잖다는 듯 웃었다.

“큭큭.”

“너랑 나랑 천생연분이네. 야, 탑기야. 그냥 결혼하자. 안 되겠다. 남자답게 이 형 책임져라.”

“풋. 결혼? 너 그렇게 자신 있어?”

많이 쳐줘 봐야 겨우 스물한둘이나 먹은 것 같은데 말하는 본새가 싹수없기도 했다. 지수가 엄연히 남자보다 한참 형일 텐데 형 소릴랑 죽어도 하지 않았다.

“자신 없어 보이냐?”

“재밌네. 아……. 시원해.”

“시원하지. 앞으로 네가 ‘마사지’ 딱 세 마디 하면 언제든지 바로 주물러줄 테니까 말만 해.”

마사지가 왜 세 마디야. 평소라면 귀엽게만 들렸을 실수도 딴 자식한테 씨불대니 속이 메슥거렸다.

어린 남자는 지수의 다정스러운 말에도 기뻐하지 않는 것은 물론 심지어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우습다는 듯 짧은 실소를 흘릴 뿐이었다.

서러움이 울컥 치밀었다. 코가 찡하게 아프고 눈꼬리가 간질거렸다.

아. 정말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원래도 없는 자존심이 개박살 나서 가루가 된 기분이었다. 고작 지수가 딴 사람한테 해주는 마사지 한 번에 그간 꾹꾹 눌러 담아온 울분이 터졌다. 왜인지 소리가 새 나가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지수야. 나도 여기 있잖아. 더더군다나 딴 방도 아니고, 너 지금 바로 내 옆에 있잖아. 근데 어떻게…….

“나 꿈꾸는 거 아니지.”

지수가 황홀하다는 듯 말했다.

“응?”

“민탑기 너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거, 이거 꿈 아니지.”

“큭. 할아버지 같아.”

“자꾸 생글대라. 너 그러다 진짜 큰일 난다.”

“무슨 큰일 나는데?”

“그냥 확, 여기 가둬놓고 죽을 때까지 못 나가게 하는 수가 있다.”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보자 보자 하니까 열이 뻗쳐서 다 뒤집어엎고 너 죽고 나 죽자 할 이판사판이었다. 이곳은 외부인을 죽을 때까지 가둬두기 위한 장소가 아니다.

지수와 나, 우리 단둘만의 보금자리였다. 오랜 시간 바라온 애착의 둥지였다.

“죽을 때까지 나 여기 가둬놓겠다고?”

“어.”

“나쁘지 않네. 할 수 있으면 해봐.”

“…….”

“큰일 한번 내지, 뭐. 까짓거 어렵나.”

“…….”

“못 하면 자기가 갇히는 거다?”

“너무 이뻐. 아……!”

“흐응!”

꼴값 떨고 자빠졌네. 어린 남자를 베란다 너머로 밀어버리고 싶었다.

그나저나 김지수가 저렇게 정신 빼놓은 듯한 소리로 나한테 예쁘다고 한 적 있나. 분명 몇 번쯤 그랬을 법도 한데,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기억나지 않는 걸까.

“탑기 넌 어떻게 이름도 이쁘냐.”

“네 이름이 더 예뻐. 근데 남자 이름으로 지수가 흔한가?”

“첨 봤을 때부터 너랑 이러고 싶었어.”

“숨도 안 쉬고 개수작 부리고 싶었어?”

“아무 데나 자빠뜨리고 네 구멍 개 씹창날 때까지 존나 쑤시고 싶었어.”

“풋, 큭큭. 아하하. 자기 진짜 귀엽다. 어떡하지.”

“네가 더 귀여워. 냄새도 존나 좋아. 어려서 그런가? 아직도 실감 안 나. 걔넨 너랑 나랑 이러는 줄 상상도 못 하겠지? 씨―팔 내가 너 존나게 땄다고 동네방네 소문 다 내고 자랑하고 다녀야지. 킥! 나랑 너랑 사귀는 거 알면 그 새끼들이 뭐라 그럴까. 허허. 개 얼빵한 표정으로 욕 존나 하겠지? 열 존나 받겠지?”

“하. 깬다. 나잇값 좀 해.”

“나 너 첨 봤을 때 뭔 연예인 온 줄 알았어. 보자마자 끌고 나가서 네 뒤에 자지 집어넣고 키스 갈기고 싶었는데, 그날 말고 왜 다 같이 술 먹은 날 안 있냐. 그날 언놈 때문인진 몰라도 네가 좀 기분이 좋았거든? 원랜 맨 정색이나 처빨다가 그날은 술자리 내내 실실 웃는데, 와…….”

“와. 뭐?”

“와, 너무 이쁜 거야. 눈웃음이 그냥 이건 안 쳐다볼 수가 없겠는 거야. 정신없이 쳐다보는데 네 귓구멍 콧구멍부터 겨드랑이 발가락 사이사이 후장 똥창까지 다 싹싹 발라먹고 싶더라. 그때, 아! 사랑인가……?”

“큭큭. 진지하게 무게 잡고 앉아서 말 한마디 없이 처야리길래 저 새끼 뭐지……. 했는데 속으로 그런 생각 하고 있었냐, 미친놈아.”

“어. 존나 했지. 내가 그때, 지금 예 앉아있는 새끼 중에 몇 놈씩이나 너 돌려먹었을까, 아직 아무도 없으면 너덜너덜해지게 내가 너 젤 먼저 따고 영역표시 확실하게 갈겨놔야겠다, 했지.”

“갈겨놓긴 자꾸 뭘 갈겨놔. 병신아. 나한테 뭐 오줌이라도 한 발 싸게?”

“필요하면 싸야지.”

“미친 새낀가. 그냥 아주 개 씨발놈의 짐승 새끼가 따로 없네.”

“갖고 싶은데 그러면 어떡하라고. 너 갖고 싶어서 딱 죽겠는데. 내 걸로 못 만들면 밤마다 잠도 못 자고 평생 후회만 하다 뒈질 거 같은데. 상사병 걸려 골로 가?”

“그만 좀 합시다. 예? 아저씨. 상사병 타령 한마디만 더 들으면 내 자지가 영원히 돌아가실 것 같으니까 아가리 다무시라고요.”

“괜찮아.”

“뭐가?”

“네 자지는 쓸 일 없어.”

“내 자지 쓸 일이 왜 없……. 욱. 응!”

“쪽. 쫍. 훔쪽. 음쭉!”

짧게 입맞춤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지수가 나한테 가벼운 입맞춤을 빗발처럼 퍼부은 적은 있나.

잘 기억나지 않았다.

“으악? 김지수 뽀뽀 귀신이네. 읍. 흐음……. 자기야. 아아, 나 숨 좀 쉬자.”

“어허. 기다려. 웁촉, 흠쭉. 쪽! 이쁘다! 내 애인.”

지수의 애인은 나였다. 무려 팔 년째 그러했다.

내가 있는 데서 다른 사람한테 애정을 듬뿍 담은 입맞춤을 연발할지언정 나만이 지수의 애인이었다.

어린 남자가 주제넘게 건방진 투로 일렀다.

“알면 잘해.”

“진짜 진짜 잘할게. 다리 벌릴 때마다 가버리게 해줄게. 딴 새끼 자지는 생각도 안 나게 최선을 다해서 박아줄게. 나중엔 걸레짝 코끼리 후장같이 펄럭펄럭 다 늘어나서 딴 새끼한테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구멍으로 만들어줄게. 형 믿지?”

“큭큭. 돌겠네…….”

“민탑기 너한텐 그런 똥구멍이 어울려. 네 이 얼굴에 구멍이 말짱한 게 가당키나 하냐?”

“자기 애인은 그런 말 듣는 거 좋아하나 봐?”

“내 애인 넌데?”

“저 형도 자기 애인이잖아. 저 형은 그런 말 들으면 흥분해?”

“몰라. 안 해봤어. 아! 난 네가 좋아. 탑기야…….”

“그래, 나 좋은 건 알겠는데 저 형 진짜 저렇게 그냥 놔둘 거야? 죽었으면 어쩌려고?”

송장 취급이 어느새 익숙했다. 자꾸 죽은 거 아니냔 소릴 들으니 내가 진짜 죽어서 영혼인 채로 둘을 지켜보는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변대훤? 아이, 안 죽었어.”

“아까 그러고 뒤집어져서 꼼짝도 안 하는데?”

“아가야. 사람 그렇게 쉽게 안 죽는다. 자, 인제 입으로 마사지 들어갑니다.”

어린 남자가 지수의 말에 시원스럽게 웃어젖혔다. 귓구멍을 찌르고 싶을 만큼 미남답고 매력 있는 웃음소리였다.

왜 하필 지수일까. 물론 지수만큼 멋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지만, 그래도 저 친구 정도면 지수에 버금가는 누구든 원하는 대로 만날 수 있잖아.

저 친구의 키와 얼굴, 몸과 센스, 무엇보다 인제 막 꽃피어 눈부신 젊음과 그로 말미암은 자신감이면 남자든 여자든 외계인이든 넘치게 사로잡아서 실컷 사랑할 텐데.

반드시 지수여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

백번 양보해서 지수랑 만나보고 싶을 수 있다고 치자. 지수처럼 인기 많은 애인을 독차지하기란 저 애가 나타나기 전부터 불가능했던 게 사실이니까.

그렇지만 지수가 사는 곳에 쳐들어와서, 버젓이 애인인 내가 거실 바닥에 쓰러져있는 동안 옆에서 마사지를 받아야 하나?

아무리 지수가 먼저 해준다고 했어도 가만히 그냥 받고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내 존재가 조금도 불편하지 않나.

더구나 ‘입으로 하는 마사지’라니. 하늘 아래 양심도, 부끄럼도, 무서운 것도 뭣도 없는 걸까.

“후음……. 음츗, 츱. 읏, 제 아가리 마사지가 좀 어떻습니까. 맘에 드십니까, 회장님?”

“끝?”

“회장님.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한 군데도 빼놓지 말고 온몸 전부 다 해줘. 밤새도록 입으로 만져줘.”

“여부가 있겠습니까. 분부 받들겠습니다, 회장님. 주둥아리 압, 혓바닥 빠르기, 침 양, 뭐든 말씀만 하십쇼.”

“자기 애쓰는 모습 보기 좋아.”

“감사합니다, 회장님.”

기가 찰 노릇이었다. 아무리 장난인들 천하의 김지수가 비굴한 자세로 술집 제비라도 된 양 아양을 떨며 겨우 멋모르는 어린애랑 놀아나다니.

여태껏 나 몰래 만난 여러 상대한테 전부 저렇게 했을까? 나한테만 저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건가?

아니면 오직 저 애만 특별하게 대하는 걸까. 여기 데려와서 내 속을 발칵 뒤집어놓을 만큼 단단히 뻑이 가서 자기도 미처 몰랐던 모습까지 막 튀어나오는 걸까.

어느 쪽이든 다 싫었다. 그래도 저 앨 특별하게 떠받드는 것보단 차라리 날 특별하게 구박하는 편이 백배 천배 나았다.

“흐음, 츗! 하아, 하를, 흐은…….”

“읏, 아앙……. 하읏.”

“트릇, 투릇. 할날날……. 앙.”

“후아, 후앙. 흣. 응…….”

두 사람이 지저분하게 쭉쭉댄 지 삼사십 분은 족히 지난 것 같았다.

“크항……. 응읍, 츳. 트훗!”

지수는 대체 남자의 어디에다 마사지를 한단 말인가. 어린 남자가 나랑은 다르게 머리가 한두 개쯤 더 달리고 몸통이 두 갈래에 팔다리가 히드라인 양 몇 개씩 더 돋은 게 아니고서야 뭐가 이렇게 오래 걸리느냔 말이다.

“아, 으응……. 자기 입술 부드러워. 촉촉해서 좋아. 혀가 말랑말랑하고 미끌미끌해.”

“응하, 하읏……. 춥.”

상기라도 온 듯 뱃속 깊은 곳 부아가 얼굴로 확 치솟았다. 손발은 차갑게 흔들리는데 열받은 정수리만 뜨끈뜨끈했다.

지수가 입맞춤해주면 당연히 부드럽고 촉촉하겠지. 혀가 미끈거리지 않고 까칠까칠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걸 일일이 어디 스포츠 중계하듯 주절주절 다 씨부렁거려야 하나?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린가?

“자기, 내 젖꼭지 얼마나 빨딱 섰는지 말해줘.”

“보자, 우리 이쁜 탑기 젖꼭지 존나게 빨딱 섰네. 확 다 씹어버리고 싶네. 축 처지게.”

“내 젖꼭지 자기가 상상했던 대로야?”

“아니. 더 이뻐. 쟤 건 시꺼먼데 네 건 핑크다.”

“그럼 이쁜 핑크 꼭지좆 잘 좀 핥아볼래? 발기한 내 좆 빤다고 상상하면서 유두로만 갈 만큼 야하게 빨아 먹어줘.”

“좆 빨듯이?”

“응. 자기 시커먼 남자 새끼 자지좆 빠는 거 좋아하잖아.”

“내가?”

금시초문이었다. 지수는 한평생 펠라티오를 받아나 봤지 사내자식 물건에 입을 갖다 댈 남자가 아니었다.

“응. 우리 자기, 냄새 지독한 같은 남자 불알 핥고 자지 땟국물 삼키면서 개같이 흥분하는 변태새낄 거 같은데. 그동안 나 보면서 내 귀두 빨아보고 싶단 생각 안 했어?”

“뭔 소리야.”

“자기야. 내 자지 한입 가득 물고 목구멍에 칵칵 꽂아 넣는 상상 하면서 혼자 좆이랑 알 안 만졌어?”

“그런 적 없는데.”

“나랑 전화 통화할 때마다 나 몰래 유두 간질이고 옷 위로 고추 비비면서 병신 찐따 같은 표정 지어본 적 없어?”

“어? 뭐야, 그게.”

“나 사랑한다며. 근데 내 생각 하면서 항문 주름 쓰다듬고 똥구멍 안으로 손톱 쿡쿡 찔러본 적이 없단 말이야?”

“뭔 개소리야. 씨팔 내가 내 거에 왜 집어넣어.”

침묵이 흘렀다. 어린 남자가 차갑게 깐 목소리로 말했다.

“난 야한 새끼가 좋아. 떡 치는 거에 미치고 환장해서 나랑 눈만 마주쳐도 쑤시고 빨고 박고 온갖 변태 짓 할 생각에 벌써 등허리 벌떡거리고 좆털 탈탈 튕기면서 침 질질 흘리는 짐승 새끼 아니면 관심 없어.”

“나 짐승 맞아. 야, 민탑기! 근데 넌 나이도 어린 새끼가…….”

“확실해? 난 솔직하게 다 까놓고 즐길 준비 됐는데, 자기 자신 없으면 그냥 관두자. 시간 낭비하기 싫다.”

“몇 번을 얘기하냐? 내가 말했지. 너랑 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데리고 온 거 보면 모르겠냐?”

“글쎄. 잘 모르겠는데.”

“나 지금 너한테 발정 나서 저기 쟤 내 애인이고 뭐고 하나도 눈에 안 들어와. 나 색에 환장한 새끼 맞고, 네 좆이건 젖이건 씨팔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빨아줄게. 됐냐?”

지수의 목소리에 노기가 서렸다. 지수는 그러나 어린 남자에게 화를 내지는 않았다.

어린 남자가 기계처럼 감정 없이 말했다.

“빼는 거 재미없어. 아저씨 주제에 내숭 떠는 것도 매력 뚝뚝 떨어져. 미리 말하는데 오늘 먹어보고 영 아니다 싶으면 나 그냥 자기 버리고 간다. 오케이?”

지수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뭐?”

“말했어, 난.”

지수보다 더 어처구니없어서 말이 안 나오는 쪽은 나였다. 지수가 활화산처럼 위태위태한 목소리를 한껏 높여 되물었다.

“버려? 네가 날? 내가 널 버리는 게 아니라 네가 날 버리겠다고?”

지수는 나이만 먹었지 저 애한테 비하면 한참 순진한 게 틀림없었다. 내가 다 안타깝고 열불이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어린 남자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응. 별로 맛없으면 뱉을 거야. 퉤퉤.”

지수를 열받게 하려고 작정한 게 아니고서야 저렇게 당당하고 뻔뻔할까. 남의 집에 혼자 와서 무서운 것도 없나.

어째서 저 애가 아니라 내가 긴장해야 하지. 새삼 서러운 기분이 들었다.

지수가 목소리를 여지없이 떨었다.

“씨팔새끼냐?”

“왜? 내가 자기 먹고 버리면 안 될 이유 있어?”

“너 씨팔새끼야?”

“응. 나 씨발새낀 맞아.”

“양심이 있으면 네가 지금 어디 와 있는지나 보고 씨불여. 맞아 뒈지고 싶은 거 아니면 그딴 소리 못 하지.”

심장이 뛰었다. 제발 이대로 둘이 한바탕 거하게 싸워서 이 말도 안 되는 사태가 흐지부지되기만을 간절히 빌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아까 기절할 때 끔찍한 기억까지 같이 잃어버린 척 오늘 일은 다 눈감아줄 수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지수와 평소처럼 지내면서 저 앨 흉내 내고 지수가 저 애 대신 나로 만족하게끔 노력할 자신 있었다.

지수는 그래도 거실 바닥에 퍼드러진 날 아주 조금은 신경 쓰는 걸까. 단지 저 앨 못 가게 붙잡으려고 내 존재를 이용하는 건 아니겠지?

그때였다.

“큭큭…….”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지수가 화를 내는데 웃음이 나오나?

아무래도 지수한테 세게 한번 혼나봐야 정신 차릴 자식이었다. 지수 또한 아연실색한 모양인지 잠자코 있다가 물었다.

“웃어……?”

“보면 몰라?”

“넌 지금 이게 웃겨? 멀쩡하던 사람 하나가 너 땜에 살았는지 뒈졌는지도 모르게 처자빠져 누워있는데 웃음이 나와?”

“아, 큭큭! 자기가 저렇게 만들어놓고 왜 나한테 난리야. 자기가 자기 원래 애인 열받아서 뒤로 넘어가게 했잖아. 내가 119 안 부르냐 했지? 괜찮다며.”

“…….”

“근데 저 형 진짜 죽었으면 어쩌게? 아까 119 불렀으면 사는 건데 자기가 괜찮다고 하고 나서 죽은 거면 어떡할래?”

“개소리하지 마.”

“확인해봐.”

“뭘 확인해.”

“저 형 죽었는지 살았는지 가서 들쳐보라고.”

“네가 쟬 왜 신경 써. 신경 쓰지 마. 네 애인 아니고 내 애인이야.”

“무서워?”

“조용히 해라.”

“무섭나 보네.”

“조용히 하라고 했지.”

쩌억―!

따귀를 올려붙이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누가 누굴 때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손을 올린 쪽은 당연히 지수겠지?

“뒈졌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저거’ 땜에 나한테 개지랄 발광 떨었으면 가서 확인하고 오라고. 저 형 죽었을까 봐 그렇게 겁나?”

“……상관없어.”

뭐가 상관없어. 왜 상관없어. 지수야, 거짓말이지……?

잡아 뜯긴 심장이 아래로 질질 미끄러졌다. 지수의 ‘상관없다’는 말이 대관절 무슨 뜻인지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돌 아래 땅 밑 차디찬 물속까지 한없이 처박히듯 마음이 침몰했다.

“자기 애인 죽어도 상관없어?”

“쟤 죽었든 살았든 지금 너랑 할래.”

지수야.

내 안에서 날 향해 환히 웃어주는 8년 전의 지수와 내 밖에서 날 세상 가장 우스운 남자로 만드는 8년째의 지수야. 둘 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내 나쁜 애인아.

네가 방금 한 말이 진심이 아닌 걸 안다. 알아도 아픈데, 아파도 이해할 수 있다.

내 애인은 조금 경솔할 뿐 말처럼 못된 심성을 지닌 사람이 아니다. 잔인한 혀같이 가슴마저 몰인정한 남자가 아니다.

8년이란 시간 동안 지수 곁을 지켜온 내가 그 사실을 모른다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었다.

날 아프게 하는 지수가 나보다 아플 것이다. 원래 당한 사람보다 잘못한 사람 맘이 더 무겁고 괴로운 법 아닌가.

그러니 난 지수를 미워하지 않아도 된다. 지수를 계속 사랑해도 괜찮다. 오히려 내가 지수를 걱정해야 맞다.

나만큼 지수를 바라보고, 사랑하고, 알고, 이해하고, 기다려본 사람이라면 지수와 나 둘 중 누구한테도 결코 손가락질할 수 없을 것이다.

“김지수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완전히 인간쓰레기구나?”

나도 안 하는 지수 욕을 할 권리는 저 자식한테 있지 않다. 어린 남자가 점점 거칠어지는 숨소리와 함께 덧붙였다.

“진짜 나랑 떡 치는 거 말고는 눈에 아예 뵈는 게 없나 보네. 저 형 그래도 자기 애인인데 불쌍하지도 않아? 나쁘다. 그러다 죄받아.”

“킥, 탑기야. 네가 그런 말 할 자격 되냐? 시끄럽고, 상황 끝났어. 도망가려면 가봐. 수틀리게 해봐. 너까지 같이 그냥 죽여버릴 거니까. 어차피 시체 치워야 되는 거면 하나나 둘이나 뭐가 달라. 그렇지?”

“자기야.”

“네가 겁대가리 없이 여기 오겠다고 지껄인 순간 각오했어야지. 나랑 쟤랑 둘 다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놓고 네 맘대로 다 한번 조지고 가봐.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봐.”

“자기 화내니까 갑자기 잘생겨 보이는데. 큰일 났다.”

“잘 들어. 민탑기 넌……. 씨팔놈아, 뭐 해. 가만있어.”

“흣, 아흑……!”

“똑바로 들어. 넌, 목구멍 똥구멍 다 벌어져서 제대로 닫지도 못할 때까지 내가 좆나게 따먹다 질려서 내팽개치기 전엔 내 거야. 질려서 내팽개쳐도 넌 내 거야. 왠지 아냐?”

“응흑……! 읏, 왜?”

“이거 네가 시작했잖아. 나랑 사귄다며. 탑기야? 내가 사랑한다 했지. 구라 같으면 발 빼봐. 어떻게 되는지. 그땐 내가 너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가 확실하게 보여줄게.”

“우리 자기, 무섭게 왜 이럴까?”

“너랑 나랑 이왕 사귀기로 한 거 좋게 좋게 잘 만나야지. 자기야. 그래, 안 그래.”

“자기 지금 미친 새끼 같은 거 알아?”

“진짜 열받게 하지 마. 제발 나 열받게 하지 마. 탑기야. 형 탑기 너한텐 나쁜 사람 되기 싫다.”

“근데 어떡하지. 자기 너무 먹음직스러워서 내가 좀 열받게 해야겠는데.”

“너 못 가. 네가 감히 가긴 어딜 가. 내 애인 저 지경으로 만들어놨으면 한두 번 대주는 걸론 안 되지. 네 죗값 다 치를 때까지 나랑 만나야지. 너 나한테서 절대 못 벗어나.”

“아……. 나 흥분돼, 자기야. 자기 이렇게 섹시한지 몰랐어.”

“사랑해.”

“푸핫! 그건 좀 빼고 해주라. 나 자꾸 빵 터져서 좆도 안 꼴, 흥웃?”

“사랑한다고.”

“흥윽, 학? 하어흑……!”

“사랑해.”

“흣, 윽! 알았어, 자기야. 알았으니까 그만, 잠, 악!”

“빨리. 너도 나 사랑한다고 해야지.”

“흥하악? 흐윽……! 나도 사랑해. 나도 우리 자기 사랑해요.”

“행복하다. 그렇지.”

“읏, 그응. 하앙읏…….”

“우리 신혼부부 같아. 어? 그렇지, 여보?”

“흐앗, 흐응! 힝……!”

“인제 젖꼭지 마저 빨아줄게.”

“아응, 좋아. 하읏! 좋아……!”

여보? 좋아?

분위기가 언제 딴판이 된 거지? 난 여태 뭘 기대하고 둘의 대화를 계속 엿들었지?

왜 벌떡 일어나서 두 사람 지금 뭐 하는 짓이냐고 소리 지르지 못할까. 언제까지 이대로 주검처럼 누운 채 무게를 더해가는 참담함에 중독될 셈일까.

기어코 끝장을 보고 싶어서 이러나. 지수가 어떻게 바람피우는지 낱낱이 확인하고 싶어서일까.

나 자신이 싫었다. 징그럽고 메스꺼웠다.

“민탑기, 네 겨드랑이도 인제 내 거야. 츄르릇, 추릇. 트할날냘.”

“아앙, 잡아먹어라, 잡아먹어.”

“나 네 겨드랑이만 봐도 쌀 수 있어.”

“변태.”

“네 여기 냄새 향수로 만들어서 갖고 다니고 싶어. 네 생각 날 때마다 뿌리고 맡고 싸게. 음웃, 읍.”

“응하앗……!”

“츄웃, 춧. 읍. 네 주둥이 빠는 것만큼 좋아.”

“저 형 입에다 키스하는 게 좋아, 내 겨드랑이랑 키스하는 게 좋아?”

“그걸 말이라고 하냐. 쟤랑 그런 거 안 해. 언젠지 기억도 안 나. 후루룩, 후룩! 할날날.”

“누흥……!”

그렇군. 김지수는 내 입에 키스하는 것보다 저 자식 겨드랑이랑 키스하는 걸 더 좋아하는군.

그렇게 생각할 줄 아나? 어림없다. 김지수는 물론이고 세상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니까.

무엇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내가 직접 보고 들은 것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왜 불안하지?

지수는 내 겨드랑이가 참 맛 좋다고 일러준 적 없다. 저 애한테 하듯 내 겨드랑이에 진하게 키스해서 맛을 본 적 없으니 당연지사였다.

발 또한 마찬가지였다.

“발 졸라 이쁘다. 발바닥 사이에 끼우고 싶네.”

“끼워볼래?”

“그래도 돼?”

“되지. 나 자기 자기잖아.”

“하아아…….”

“양말 다 벗기지 마.”

“왜.”

“재미없어.”

“알았어. 아읏, 후…….”

“뭐야, 엄청 미끈거리네. 벌써 그렇게 싸젖혔어?”

“졸라 좋아.”

“흐음, 양말 젖으면 나 자기 좆물 밟고 다니겠네.”

“밟아줘.”

“밟히고 싶어?”

“아윽! 커헉? 하억……!”

“우리 자긴 발도 좋아요?”

“다 좋아. 그냥 네가 좋아. 좋아 미치겠어. 허윽!”

“그런 말 안 해도 돼. 나 이미 자기 거잖아.”

“진시, 흐응! 진심이라니까. 내가 너 그냥 어떻게 한번 해보려는 게 아니고, 하억! 훗, 후우……. 나 진짜 너랑 진지하게 만나고 싶어.”

“왜? 내 어디가 그렇게 좋은데?”

“몰라. 근, 약? 컥! 흐훅……. 너 없이 살 자신이 없어. 너만 있으면 난 다 버릴 수 있어.”

“풉. 버릴 거나 있고?”

“어? 허억, 허.”

“설마 저기 저거 말하는 거 아니지?”

“흡, 흣! 왜. 그래도 쟤가 나한테 얼마나, 하윽! 잘하는……. 흐학? 타훅!”

“오, 그래? 그렇단 말이지?”

“흐각, 하어헉……!”

“저 형이 그렇게 잘해? 이렇게 해줘?”

“탁, 긱! 탑, 흥! 탑기야. 응허앙…….”

“응? 나보다 잘해? 저 형이 이만큼 해? 어떤데.”

“안, 억? 하으응욱, 하웅긋…….”

“어떠냐고. 병신아, 대답 안 해?”

“네가 잘해! 네가 잘해! 네가 잘……. 하아악!”

“그렇지? 고맙지?”

“어! 하앙, 하엉, 하으앙, 학…….”

“그럼 감사합니다, 해야지.”

“꺼져.”

“…….”

“……감사, 합니다. 됐냐.”

“일단은? 이리 와. 우리 강아지 머리 한 번 쓰다듬어줄게.”

내 지수가, 왜, 네 강아지야.

“필요 없어.”

“안 오지?”

“하! 야. 자.”

“이렇게 이쁘게 말 잘 들으면서 왜 자꾸 튕겨.”

“……너 갈까 봐.”

“응?”

“네가 나 버리고 갈까 봐 어쩔 수 없이 지금 이러는 거잖아. 네가 아까 나 버리고 간다며. 말 안 들으면 네가 또 개지랄 떨 거 아니야.”

“당연하지. 내 남자 되려면 튕기면 안 돼. 자기 예스맨 알지? 나한텐 항상 웃는 얼굴로 무조건 예스만, 노 금지. 세우라면 세우고 빨라면 빨고 삼키라면 삼키고 박으라면 박고. 별로 안 어렵잖아. 자기 나 사랑한다며.”

“사랑해.”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 행복하게 만들어줘야지. 자기가 나 없이 못 사는 것처럼 나도 자기 없이 못 살게 만들고 싶지 않아?”

“……만들고 싶어.”

“서로 없이 못 살려면 서로 모르는 거 하나도 없어야지. 서로 모르는 거 하나도 없어지려면 뭐든지 다 해봐야 되고, 뭐든지 다 해보려면 싫다고 빼는 것도 없어야지. 간단하지?”

“…….”

“그래야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언제 화내는지, 뭐가 사실은 내숭이었고 언제 진짜 진심이 나오는지, 어떻게 하면 꼼짝 못 하고 한 방에 가버리는지 알 수 있을 거 아니야.”

“…….”

“성감대 이런 건 너무 당연하고……. 잘하는 거, 못하는 거, 아무한테도 말 못 한 변태성욕에다가 몸 어디 어디에 점이 있는지까지 전부 다 알아야 도망 못 가게 꽉 묶지. 맞아, 틀려.”

“그건 그런데…….”

지수와 난 서로를 속속들이 다 안다. 모르는 게 없다. 삼사 년 차쯤부터 그랬다.

어린 자식이 어디서 데굴데굴 굴러와서 건방지게 아는 척 잘난 척 남다른 척하는 꼴이 우습고 더 나아가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근데 서로 모르는 게 많아야 좋은 거 아닌가? 얼마 전 발견한 연애 전문 동영상 채널에서 분명 아무리 연인 사이더라도 끝까지 신비감을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하던데.

“내 말이 틀려? 자기가 잘생긴 얼굴 팍 찡그리면서 싫어! 아니! 그럴 때마다 내가 얼마나 상처받는지 알아?”

“웬 오버야.”

“오버 아닌데. 진짜 상처받아.”

“민탑기 네가? 킥. 상처를? 킥. 받아? 키킥! 지나가던 똥개 새끼가 웃겠다. 킥킥킥.”

“…….”

“뭐 하냐.”

“흣.”

“야.”

“흐흣, 윽.”

“뭐야. 너 진짜 울어?”

“자기가, 욱. 흑. 내 말 안 믿잖아.”

“와……. 답도 없다.”

“극. 급.”

“이거 미친 개 쌍또라이 새끼 아니야. 야, 민탑기.”

“상처받는다고. 나도 사람이야. 응, 힉.”

“너 지금 나랑 장난치냐? 나 갖고 노냐?”

“믿기 싫으면 믿지 마. 꺼져. 씨발놈아, 너 집에 가.”

“여기 내 집이야.”

“꺼지라고.”

“진짠가? 진짜냐? 말이 안 되는데.”

“…….”

“아,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씨팔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는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다 내 잘못이다. 김지수 이 나쁜 새끼, 때찌! 때찌! 인제 됐냐?”

“킁. 응.”

거실 바닥을 꺼트릴 듯한 한숨 소리가 났다. 지수였다.

“야. 스무 살짜린 다 너처럼 이래?”

“아니. 내가 특별한 거지.”

“감당 안 되네. 나 아무래도 잘못 걸린 거 같은데.”

“뭐가?”

“흠……. 개또라이랑 잘못 엮인 거 같아.”

“자긴 근데 발 되게 좋아하나 봐.”

“어?”

“발. 아잉, 이거.”

“…….”

지수가 침을 꿀떡 넘기는 소리가 나한테까지 들렸다.

“자기가 칠칠찮게 질질 흘려서 내 발바닥에 묻혀놓은 거 다 말랐다.”

“그러네.”

“무슨 맛 나?”

“뭐가.”

“자.”

“먹어보라고?”

“싫어?”

싫다고 해. 싫다고 말해, 김지수.

“아니. 업억, 웁읏. 츱. 하앙아할……!”

“티힛! 더 먹어줘. 여기도, 여기랑……. 아응!”

“기다려. 전부 다 그냥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어줄 테니까. 훗흡, 픗헙. 넌 내 남자야. 쪽!”

“아, 거기! 어, 거기. 좋아……. 자기가 최고야. 더 해줘. 하아잉, 멈추지 마. 아응, 자기야. 더 빨리.”

“너 눈 풀렸어.”

“자기가 나 눈 풀리게 만들었잖, 흥우읏!”

“나 재미없다며.”

“쪼끔……. 하아, 쪼끔 재밌어졌어.”

“쪼끔? 쪼끔?”

“응. 흥하응? 하응……!”

“가문의 영광입니다, 회장님. 이건 좀 어떻습니까. 흔들리지 않고 편안합니까?”

“자기야, 나 녹아 없어질 거 같아…….”

“너 녹으면 내가 다 빨아 먹을 거야. 혀로 싹싹 핥아서 설거지해버릴 거야.”

“엉덩이 만져줘. 후우, 후으응. 우리 자기 손 왕 짱 크다. 아앙, 실컷 주무르고 쓰다듬어줘. 아니, 살살. 응아흥…….”

“살살?”

“응, 지금 좋아. 계속 그렇게 해줘. 간질간질해……. 나 오늘 자기 땜에 기분 로토야.”

“……후장 핑크네.”

“왜 훔쳐봐?”

“미안.”

“이쁘지.”

“어. 털도 하나도 없네. 방금 눈으로 극락 다녀왔다. 허허. 근데 후장엔 태닝 안 하냐? 왜 후장만 핑크야.”

“큭. 후장에 태닝을 왜 해. 뭔 개 씹 소리야.”

“그런가.”

“저 형, 자기 원래 애인 형은 근데 피부 되게 하얗더라.”

“쟨 후장은 시꺼메.”

“자기가 얼마나 박아댔으면 저렇게 하얀 사람 후장이 시커메져.”

“첨부터 시커멨어.”

“그래? 그럼 자기 만나기 전에 무지하게 놀았나 보다. 큭큭. 아! 왜 때려? 아파.”

“근데.”

“아프다고.”

“근데.”

“죽을래? 일로 와. 너도 맞아.”

“너? 형한테 너? 억. 악! 킥킥. 알았어. 항복. 항복! 아, 힘 왜 이렇게 세.”

“그니까 왜 때려. 나한테 때릴 데가 어딨다고 때려.”

“너 때릴 데 많아.”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몰라?”

“꼬추?”

“하아앙! 꼬추로는 얼마든지 맞아줄 수 있지. 자, 때려죽여!”

“죽을 각오 됐으면 처갖다 대.”

“대―령이오!”

두 사람 너무 즐거워 보이네. 별로다. 지수야.

두 사람이 덜 즐거워했다면 이렇게까지 숨 쉬는 게 괴롭진 않았을 텐데. 오늘날 지수와 내 사이가 저것보다 더 요란스러웠다면 아예 맘 놓고 비웃어줬을 텐데.

그래도 잠시 잠깐이다. 난 날 위로했다.

당장 떠오르지 않을 뿐이지 지수와 난 분명 지난날 훨씬 재밌고 신나는 시간을 수두룩이 보내왔다. 그러니까 부럽지 않았다. 설령 아주 조금 부럽다고 하더라도 우리 커플은 우리 커플만의 멋과 맛이 따로 있었다.

아는데, 근데 어린 남자의 웃음소리가 너무 컸다. 어린 남자를 귀여워하듯 나지막한 지수의 웃음소리는 내게 더 컸다.

8년 만난 나보다 새로운 사람이랑 어울리는 시간이 응당 짜릿하고 신선하겠지. 내가 지수라도 그럴 테다. 그렇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다.

두 사람이 몸과 팔다리를 엎치락뒤치락 버무리고 티격태격 실랑이하는 소리가 겉절이처럼 산뜻했다. 그럼 난 신 김친가. 묵은지인가.

내 항문이 그렇게 시커멓나. 내가 묵은지라서 그렇나. 항문도 묵어서 시커메진 걸까. 내가 내 거길 스스로 들여다본 적도 들여다볼 일도 없으니 몰랐다.

지수는 내 항문을 볼 때마다 시꺼멓고 못생겼다고 생각했을까. 차마 나한테 말 못 하고 그동안 속으로 욕했으려나.

지수가 보기에 내 항문이 예쁘지 않아서 흥분도 안 되고 안아주기도 싫었던 걸까.

저 애의 거긴 내 거랑 딴판으로 예쁘고 깨끗한가. 지수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기에 모자람 없는 생김생김일까.

그렇다면 나도 보고 싶었다. 나와는 다르게 핑크빛이라는 저 애의 항문을 내 두 눈으로 직접 살펴보고 내 항문과 어디가 어떻게 다르게 생겨먹었는지, 보석 박고 금테라도 몇 바퀴씩 둘렀는지 알아내고 싶었다.

시커먼 데다 털도 많고 못생겨서 지수를 흥분시키지 못하는 항문이 문제라면, 왜 진작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지? 표백제로 씻어내고 분홍 잉크로 문신을 새기고 털을 모조리 잡아뽑아서라도 지수가 원하는 색깔과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애썼을 텐데.

그랬다면 오늘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지금 같은 상황이 안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거 아닌가.

“변태같이 뭘 그렇게 들여다봐. 씨발 공부하니?”

“너무 이뻐갖고 눈깔을 못 떼겠는데 그러면 어떡해. 좀 보자. 내 건데 뭐 어때?”

“닳아. 안 돼. 내 구멍에 금테 둘렀어.”

“어. 그래 보인다. 어떻게 넌 똥꼬 주름 한 줄 한 줄까지 다 이쁘냐?”

“이쁘면 냄새 맡아. 깊게 들이마셔.”

“흐음, 후와……. 죽인다.”

“자기 인제 나 평생 못 잊는다. 자려고 눈만 감으면 내 똥꼬 냄새 생각난다.”

“여기 이건 뭐야. 수박씨? 아니네. 눈물점이네. 아, 여기 있는 건 눈물점이 아니라 좆물점이라 해야 되나?”

“큭. 좆물점 괜찮네.”

지랄한다. 좆물점은 무슨, 똥물점이겠지.

어린 남자를 도끼로 쪼개고 싶었다.

“사람 똥구멍이 어떻게 이렇지. 탑기야. 넌 면상보다 똥구멍이 훨씬 잘생긴 거 같은데? 대가리랑 똥구멍 위치 바꿔서 달고 다녀.”

“날 새겠네…….”

“너 똥도 잘 싸겠다? 변비, 설사, 치질, 뭐 그런 거 모르지? 한 번 쌀 때 막 황금 구렁이 원큐에 그냥 시원―하게 줄줄줄 뽑지? 양도 좆나게 많지? 변기 막냐?”

“미친 새끼. 너 왜 살아?”

“섹시해. 씨팔. 하! 이게 다 네가 섹시해서 그런 거 아니야. 갑자기 좆같네. 너 누가 이렇게 섹시하래.”

“시끄럽고 후장이나 빨아, 휴지수. 휴지수? 큭큭큭. 맞다, 자기가 아까 저 형 앞에서 나한테 키스했을 때 있잖아, 나 그때 미친 듯이 설레서 심장 터지는 줄 알았어.”

“그랬어?”

“응. 그니까 아까 했던 거같이 또 해줘. 이번엔 내 입 말고 똥구멍에다가.”

“예,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회장님. 하압, 흐릇……!”

“하아으응!”

내 애인은 주저하지 않았다.

딴 남자의 항문을 입에 가득 머금고 홍시를 파먹듯 맛있게 혀로 떠먹나. 수프 접시를 닦는 양 요란스레 혀뿌리를 휘둘러서 침을 듬뿍 바르고 도로 핥나. 입가에 엉망진창 묻혀가며 입맛을 쩝쩝 다시나.

나한텐 해준 적 없는 행위였다.

“하아, 하알……. 할웃, 하릇. 추릇, 춥. 츄흡!”

“잘 들이마시네. 자기는 남자 똥구멍이 맛있어?”

“허븝, 촉. 쪽! 어. 맛있어. 끝내줘.”

“끝내줘? 내 똥구멍 무슨 맛인데?”

“꾸리꾸리하고 좀 시큼?”

“큭큭큭……. 아히힉! 개소리할래? 존나 라벤더 향기 나거든!”

“탑기야. 내가 너 사랑하는데 네 똥구멍에서 향기 나진 않아.”

“큭큭. 쓰읍! 빨리 안 빨, 하아앙……?”

“흡, 후읍……. 빨리 빨게. 춧! 하엘, 하를.”

“하응, 혀 더 깊이, 뿌리까지 깊숙이 집어넣어 줘. 좆퉁이로 쑤시는 것처럼 혀 끝까지 박아줘. 자기 혓바닥으로 내 똥구멍 안쪽 날름날름 비비고 문질러줘. 응, 그렇게. 응하앙……! 자기 혀 너무 좋아.”

어린 남자의 발이 내 애인의 머리통 양옆을 단단히 붙잡은 듯 머리카락 헝크는 소리가 났다. 지수는 그런 취급을 당하고도 어린 남자의 항문을 파먹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자기 혀 너무 길고 굵어서, 흥! 자지도 필요 없겠는데……? 엉덩이 안에 벌써 도마뱀 한 마리 키우는 기분이야.”

“음웃……. 흡, 허븝!”

“아앙, 손 두 개 다 줘야지. 젖꼭지 안 만져줄 거야? 동생인 내가 일일이 알려줘야 돼? 흥앙, 우리 자기 멀티도 안 되고 어떡하지. 못 쓰겠네.”

“훗, 흇, 츗. 프룻…….”

“똑바로 할 거야?”

“엉! 업! 허븝, 퍼븝.”

“귀여워서 한 번 봐준다. 자기가 이번엔 눈 풀렸어. 자기보다 나이도 어린 남자 새끼 똥구멍 핥으면서 구차하게 매달리는 게 그렇게 좋아?”

“어. 응학, 버븝……. 존나 좋아. 존나 맛있어. 우릅, 후븝.”

“타고났네. 가축이네?”

“흠어븝……!”

“지수야! 김지수 네 잠지 섰다. 큭큭큭! 그걸로 뭐 하려고 그렇게 빨딱 세웠어? 그걸로 존나게 막 박으려고? 악칵칵! 아, 웃겨.”

“프흣, 시끄러워. 훔, 픕. 후르릇, 촙!”

“자기 혀 되게 뜨뜻하다. 열심히 잘 빠네. 공중화장실에 비데로 취직해도 되겠다. 그렇지?”

“흥어허법……!”

“너무 좋아하는데. 비데 자리 하나 알아봐 줘? 변비 있는 손님들한테 인기 많겠네. 뜨끈뜨끈하고 물컹물컹한 게 똥구멍 안에서 팔딱거리니까 똥 나올 거 같아. 풉큭!”

“하으음븝……! 싸.”

“진짜지? 진짜 싼다?”

“웁큿! 싸. 앙, 싸줘. 안 싸면 뒈진다. 할, 웁긋, 윽읍. 흡걱.”

“아악!”

“허흠! 흠. 허허.”

어린 남자가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쌤통이다, 이 자식아. 뭔지는 몰라도 뭔가 잘못된 모양이었다.

“갑작, 하앙! 갑자기 손가락, 읏흐응! 넣으면 어떡해…….”

“그니까 왜 자꾸 까불어. 흔, 허아아. 똥구멍 좋아. 엉덩이 좋아. 허벅지 대박 사랑해. 흐흠, 후와앙.”

“아항, 아흑? 킁. 자기야, 나 쪼금 아픈데…….”

“변기통 한번 탐스럽고 토실토실하네. 너 이 안에 존나 뭐 많이 들어가겠다?”

“아아앙, 싫어. 부끄러워.”

“푸짐―하고 복스러운 게 딱 시골 영감탱이네 항아리 장독 같냐. 어? 탑기야. 네 똥통 안에 된장 고추장 담고 메주 박아도 되냐?”

“앙! 응! 당연하지, 자기가 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해도 되지. 하아앙……!”

“흥, 킁, 컹. 탑기야. 근데 아직 된장 안 담갔는데 왜 내 손가락에 벌써 된장 냄새 밴 거 같냐.”

“그만, 하읏! 아파, 쑤시지 마. 내 구멍에서 손가락 빼줘. 아응, 꺼내줘. 아흐응, 앙, 벌려서 보지 마. 안 돼. 형, 싫어요. 하지 마세요. 제발 살려주……. 응히앗? 방금 거기 다시. 응, 거기 맞아.”

“네가 확실히 좁네. 너 아다냐? 츅, 츄르릇!”

“몰랐어?”

“아니. 아니까 만났지. 후다면 만났겠냐? 나 탑기 네 첫 남자 맞지?”

“푸흡! 그럼. 당연히 자기가 내 첫 남자지. 그럼 나 오늘 아다 떼는 거야? 무서운데…….”

“걱정하지 마.”

“안 돼, 씨발. 물렀거라. 어허, 네 이놈! 썩 꺼지지 못할까? 껄떡쇠 놈이 어디 감히. 이 몸은 아다란 말이다!”

“허허. 미친 새끼. 쯧쯧……. 형이 오늘 너 정상으로 만들어줄게.”

“하아앙……. 진짜? 어떻게?”

“이렇게.”

“앙!”

“이렇게.”

“아앙!”

“또 이렇게.”

“앙앙앙!”

“하르르릅……!”

“나흐우아앙!”

뭔가 잘못된 게 아닌 모양이었다. 뭐가 뭐든 잘돼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린 남자가 차갑고 상냥한 목소리로 내 애인을 불렀다.

“자기.”

“어? 쭙, 쯧. 나릇냐룻…….”

“인제 자지도 한번 빨아볼래?”

“흠읏……. 쪽! 어. 줘.”

“자지도 잘 빨 자신 있어?”

“어. 존나 잘 빨 자신 있어. 내가 어떻게 하면 돼?”

“천천히. 부드럽게.”

“미친 새끼……. 고추 봐라.”

“설레?”

“씨이팔, 와……. 킥킥킥. 내가 진짜 너같이 어린 놈 빤쓰 내리면서 해바라기가 튀어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자기 거야. 빨아. 누려.”

“이걸 어떻게 빨아! 이게 고추냐? 트랜스포머지? 인테리어란 인테리어는 종류별로 전부 다 했구먼.”

“투자 좀 했어. 혀부터 써봐.”

“하……. 응핫, 하릇. 탓! 아할…….”

“아어……. 그렇지. 좋다고 빨 거면서 괜히…….”

둘의 대화가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수를 봐야 했다. 사실인지 아닌지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었다.

무거운 눈꺼풀을 걷었다. 건조한 안구를 뻐덕뻐덕 굴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초토화된 식탁 끄트머리였다.

조금만 더……. 옆으로…….

훤칠하게 잘난 뒤태가 보였다. 내가 어제 사랑을 듬뿍 담아 펠라티오를 바치던 순간 취했던 것과 같은 자세로 소파 아래 무릎 꿇은 내 애인이었다.

주인 발밑의 충성스러운 개나 다름없었다. 김지수가 청동빛 목덜미를 아래위로 쉴 새 없이 들썩였다.

내 애인의 굴곡진 어깨 근육과 잘게 움푹진 옆구리 근육 사이로 길게 뻗은 것은, 바로 내 애인의 새 남자가 힘주어 불뚝거리는 연주황빛 허벅다리와 장딴지였다.

내 애인이 고운 입술로 꽉 붙들어 물고 정신없이 빨아올리는 ‘그것’이 청동빛 팔근육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지수의 바지 속 건강한 볼깃살 두 쪽이 번갈아 꿈트럭댈 때마다 내 애인이 딴 남자 좆을 혀로 맛보고 목으로 삼키며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른 체할 길 없었다.

“흠, 법, 펍. 큭! 으븝, 음웁.”

“이 안 닿게, 그래.”

“읍. 읍, 웁, 흡……!”

“방금처럼. 흐웃……. 좋아. 자기 소질 있어. 복스럽게 잘 빠네. 빨 복 있겠다.”

누구더러 평가를 내리는가. 나도 절대 입 밖으로 내지 않는 판단의 말을 감히 내 사람한테 선심 쓰듯 지껄이며 건방을 떠는가.

지수의 펠라티오를 그리 거뜬히 얻어내 즐기는 주제에 팔자 좋게 늘어진 꼴이 칭기즈칸같이 당당했다.

나도 한 번 무릎 꿇게 해본 일 없는, 내 소중한 사람이었다. 지수를 그렇게 다루는 상상만으로 가슴 끝부터 멍이 드는데. 어떻게 저렇게 손쉽게 대한단 말인가.

어린 남자가 지수한테 그렇게나 대단하고 강렬한 존재인가. 지수가 그간 밥 먹고 숨 쉬듯 바람을 피워온 건 알지만, 그저 한순간의 욕구를 배출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그렇다면 애인인 나랑 할 때보다 더 단조로우면 단조로워야지, 더 다채로워선 안 되지 않나? 내 생각이 틀렸나?

도리어 애정과 열정이 넘치는 관계는 그동안 전부 밖에서 해왔고, 나야말로 지수의 생리적 욕구 배설용 자위기구였을까? 그마저도 안 되는 정액 변소나 뒤처리용 휴지, 쓰레기통 신세였나?

내가 난생처음 눈앞에 펼쳐진 막장 드라마 같은 상황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생각에까지 도달한 건가? 아니면 나만 몰랐던 사실을 바보처럼 인제야 알아차리고도 미련하게 아직 부정하는 걸까?

그때였다.

“이쁘다, 우리 자기.”

어린 남자가 지수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개새끼 다루듯 나긋나긋 정답게 쓰다듬었다.

“착하네.”

“응법, 억법……. 윽븝, 븝음, 픕.”

“좆 문 얼굴 보기 좋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벼락같은 충격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꿰뚫었다. 새까맣게 탄 채 연기만 폴폴 날리는 대추나무가 된 기분이었다.

난 8년이나 지수를 만나오면서 저렇게 섬세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지수를 쓰다듬어준 적 있었나.

둔하게 다독이거나 지수가 요구한 순간에야 어색하게 더듬는 것 말고, 저 애처럼 녹아들 듯 자연스럽고 깃털처럼 우아한 데다 다정스럽고 은근하고 섹시한 손길을 건네며 추근대본 적 있느냔 말이다.

지수가 날 저렇게 만져준다면 좋아서 정신 못 차릴 거면서, 왜 지수한테 그렇게 해줄 생각은 못 했을까. 어쩌면 지수가 저 간질거리는 애한테 빠진 건 너무 당연한 이치 아닐까.

“벌써 힘 빼면 안 돼. 아까처럼 세게 빨아봐.”

“억. 컥! 헉읍…….”

“목구멍 열고 더 깊게 삼켜. 좀 더.”

“커헉! 걱. 덥. 욱큭……!”

“그렇지. 아……. 느려도 되니까 계속 템포 맞춰.”

어린 남자의 명령은 따뜻한 듯 단순명료했다. 기꺼이 복종해서 어린 남자를 기쁘게 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새파랗게 어린 나이에 벌써 헤벌쭉 바라진 싸구려같이 경박한 욕과 웃음을 연발 쏴대던 아까와는 딴판이었다. 딴사람처럼 우아해진 태도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목소리가 부드럽고 자상해서 듣기에 조금도 기분 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순순히 따르지 않으면 무언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질 만큼 확실했다.

어린 나이에 어째서 저런 마력이나 카리스마까지 갖춘 거지. 그러니까 지수 맘에 들었겠지만…….

저 앤 대체 못한 게 있기나 할까.

“이렇게 허겁지겁 맛있게 잘 빨아 먹을 거면서 뭐 하러 튕겨. 내숭 떨면 다 자기 손해야. 괜히 싫은 척해봐야 굶기밖에 더 해? 먹을 때 실컷 먹어야지. 그래야 후회 없지.”

“업븍, 춥읏. 앞으로 지겹게 먹을 건데 좀 튕기면 어때. 갑자기 뭔 소리야. 후회는 무슨 후회. 왜 잠깐 볼 사람처럼 말해.”

“왜 뱉었어?”

“턱 빠질 거 같아.”

“벌써? 자기 연습 많이 해야겠다.”

“미안.”

자꾸자꾸 ‘미안’이라니. 지수야, 네가 미안하다니.

어린 남자의 성기를 더 오래 애무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한 게 맞을까? 내가 아는 김지수가?

내 애인이?

“그럼 얌전히 누워서 소리나 내. 나도 내 턱관절 빠트려야겠다. 힛!”

“어떻게 하라고? 읏……!”

“자기 젖꼭지 무슨 색깔이야? 꼭지 보여줘. 유두 주세요. 아. 아앙아알…….”

“잠깐, 야! 넌 무슨 애가……. 하윽?”

“핫핑크네! 하압.”

“하어앗…….”

“하을, 츳. 흠, 읍. 후음. 힛.”

“아응, 학! 민탑기 네가, 핫? 후. 내 꼭지를 다 빠네. 아흐윽!”

“흐응. 냐릇, 츗! 냣.”

“하읏, 흥. 흥아? 윽……. 야. 너 근데 젖꼭지 왜 이렇게 잘 빨아.”

“앙, 알. 존나 많이 빨았으니까. 하릇, 춧! 춥.”

“……뒈질래?”

지수가 열받은 목소리를 깔았다.

저런 목소릴 내면 섹시해서 안 되는데. 저 애가 지수한테 반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한심하게 이런 걱정이나 하고 있다니. 정신 못 차린 척 찍소리 한 번 안 내기도 고역이었다.

강시처럼 벌떡 일어서서 거실 티브이를 뽑아 둘한테 집어 던지고 싶은 마음 반, 이대로 꿋꿋이 버티며 두 사람이 과연 어디까지 갈는지 지켜보고 싶은 마음 반이었다.

“김지수. 읏, 츗. 하응아할……. 뒈질래?”

“하? 하아! 응, 아흣……. 윽훗, 허아! 그거 졸라 좋아.”

“이거 좋아? 응나할, 냐흐룻, 나으랄, 흐룹!”

“어! 아! 와, 너무 좋아. 하어엉! 네가 그렇게만 해도 나 그냥 좆물 질질 쌀 거 같아. 존나 오줌 나오려 해. 젖은 거 봐. 빤쓰 축축해.”

“오줌 싸봐.”

“주둥이 갖다 대. 아가리 벌려.”

“아.”

“…….”

“뭐 해. 갖다 대라며. 빨리. 아아앙알…….”

“장난이야, 인마. 내가 너한테 어떻게 그러겠냐. 나 너 사랑한다는 거 구라 아니다.”

“씨발…….”

“왜?”

“자지 죽었잖아.”

“어?”

“자기 때문이야.”

“나 때문에?”

“사랑한단 소리 좀 하지 마. 진짜 개좆같다니까.”

“사랑하는데 그럼 안 사랑한다고 거짓말하냐?”

“응. 거짓말해.”

“싫어.”

사랑한단 말에 경기를 일으키며 기분이 안 난다고 불평이나 해대는 걸 보니 어린앤 어린애였다.

진정한 사랑이야말로 최고의 최음제나 다름없지 않나. 지수의 관심과 사랑을 넘치게 받으면서 그게 중한지도 정녕 섹시한지도 모르다니.

순수한 애정을 구닥다리 유물 취급하는 태도가 무식하고 젖내났다. 본인은 그편이 세련되고 쿨하다고 착각하겠지만, 오히려 촌스럽고 무지몽매했다.

인간의 인간답고 사사로운 감정 하나하나가 사금처럼 귀해진 이 삭막한 시대 속 그저 스쳐 가는 배경이나 엑스트라처럼 어딘가 좀 많이 뒤떨어진 아이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은 잘난 체해도 조금만 나이 들면 부끄러운 과거로 여기고 파묻어버릴 게 명명백백한 모습이었다.

제가 아무리 까져봤자다. 뭐가 뭔지도 모르는 어린애를 데리고 노는 건 재미가 없다. 지수의 생각도 다르지 않겠지.

조금 안심되기 시작했다.

“하아……! 탑기야? 헉, 컷! 읏, 뭐야?”

“티힛! 좋지?”

“야. 너 뭐 하는 놈이야?”

“나? 난 잘하는 놈이지.”

“진짜, 변대훤은 이런 거 한 번도 안 해줬는데.”

“……씨발 나랑 장난쳐?”

“뭐.”

“저 형이랑 나랑은 다르지. 갑자기 기분 뭣 같게 하네.”

“왜 또.”

“외모 차이, 나이 차이, 급 차이 하늘만치 땅만치 나는데 어떻게 저런 찐따 같은 형이랑 날 비교해. 눈깔 없어? 자기야. 나 민탑기야.”

“알았어. 네가 최고야.”

“알아.”

찌……. 찐, 찢, 찐따?

내가 그렇게 찐따 같나?

“김지수, 너 똑바로 해. 내 기분 잡쳐놓지 말고.”

“민탑기. 너 형한테 적당히 개기고 좋은 말 나갈 때 공손히 다리나 열어. 오냐오냐해주니까 씨―팔 정도를 모르네.”

“왜 내 다릴 열어? 내가 너 자빠트리면 어쩌려고?”

“왜. 네가 박고 싶어?”

“내 후장은 아무한테나 안 대주는데.”

“어어. 걱정하지 마. 대주고 싶게 만들어줄게.”

“헐. 방금 자기 표정 짱 섹시했어.”

“넌 그냥 항상 섹시해.”

“그렇지?”

“그렇지. 우리 아기 인제 바지 좀 벗을까?”

“싫어. 으학! 큭큭. 아아……. 하응, 흥? 으으우응. 간지러워. 야!”

“야? 야? 계속 그럴 거지. 어?”

“흐악? 아악! 큭큭큭…….”

이번엔 싸우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또 화기애애했다. 한숨이 절로 났다.

참 이상했다. 지수가 나한테 저 정도로 험악하게 얘기할 땐 항상 끝에 화를 냈는데. 깔깔깔 웃음은커녕 살얼음판 같은 침묵으로 마무리되기가 예사였다.

근데 저 애랑은 그러지 않았다. 무슨 차이인지 알 수 없었다.

“아. 냄새 환상이야. 취할 거 같아.”

“냄새 환상이어야지. 향수 얼마짜린데.”

“몸 겁나 이쁘다.”

“맞지? 여기서 커팅 좀만 하면 더 이뻐.”

“아니. 난 지금이 좋아. 흠……. 흔, 하아. 피부도 존나 보들보들해.”

“저 형은 몸 없더라.”

“어. 너처럼 안 이래.”

“관리 안 하나 보다.”

“그런 거 안 해.”

“자기 같은 남자 만나면서 아무것도 안 해? 왜 사귀어? 돈 많아?”

“몰라.”

“애인 사인데 그런 것도 몰라?”

“쟨 뭐 없어. 쟤네 엄마 아빤 좀 있을걸.”

“그래? 나 그냥 자기 말고 저 형이랑 사귈까?”

“어.”

“진짜지?”

“어.”

“재미없어…….”

“아니야. 해. 사귀어. 막 살자. 나랑 했다가 쟤랑도 하고 누구 한 명 눈 돌면 서로 배때기 쑤시고 다 같이 징역 살자. 인생 뭐 있냐.”

“자기 사이코야?”

“사이코 아니고 진심이야.”

“큭. 그게 사이코지.”

“뭐가.”

“사이코는 사이콘데 좀 모자란 사이코구나.”

“뒈질래?”

“응. 나 죽여줘……. 빨리, 자기 나 어떻게 죽일 거야?”

“눈깔 툭 튀어나오고 혀 예까지 내려와서 덜렁덜렁하게 해줄게.”

“하아앙? 씨발 개꼴려……! 지금 딱 병신 찐따한테 따먹히는 기분 나. 자기야, 나 고추랑 전립선이 막 두근두근해. 어떡할 거야. 책임져.”

“그리고 쟤 어차피 집에서 받는 거 없어. 다 쟤 형한테 갈걸.”

“응?”

“…….”

“큭! 자기가 그걸, 흐응, 어떻게 알아. 자기한테 일부러 그렇게 얘기하는 거 아니고? 아흥……!”

“왜 이렇게 관심이 많아. 너 쟤 맘에 드냐? 아니면 뭐 돈 필요해?”

“자기 애인이니까, 아흥! 그러지. 저 형 저러고 있다 멀쩡하게 일어나면 앞으로 내 형님 될 텐데 관심 가져야 되지 않겠어?”

“흐웃, 흐윽! 형님?”

“응. 저 형이 첫 번째고 내가 두 번째 아니야?”

“너나 쟤나 둘 다 내 거야.”

“누가 뭐래? 흠, 으응! 근데 원래 저렇게 촌놈같이 생긴 형들이 집에 돈은 좀……. 응훗!”

“관심 꺼라.”

“싫어. 자기 원래 애인이고 앞으로 여기서 같이 살 건데 당연히 내가, 아흐읏! 하앙, 하지 마.”

“하지 마?”

“해.”

“가만 좀 있어, 그럼.”

“아, 씨! 하지 말라고 했지.”

“나 진짜 안 한다.”

“왜 안 해. 해.”

“……너 지금 나랑 장난하냐?”

“큭큭!”

어린 남자가 재밌어 죽겠다는 듯 까르륵댔다.

왜 저러는 거지. 어디가 좀 모자라나. 지수는 저런 게 뭐가 좋다고 저 난리일까.

어린 남자는 지수가 평소에 ‘딱 싫다’고 누누이 말해온 타입이었다.

“인제 그만 좀 해. 내 온몸에서 침 냄새 나잖아. 봐봐, 자기 땜에 목욕하고 나온 사람같이 쪼글쪼글해졌어.”

“괜찮아. 이뻐.”

“언제까지 쭉쭉 빨 건데.”

“이뻐서 그런다. 왜! 내 건데 쭉쭉 좀 빨 수도 있지 씨팔롬이 졸라게 떽떽거리네.”

어린놈은 배가 부른 것 같았다. 그리고 김지수는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지수야.”

“어쭈. 지수야?”

“나도 자기 거 빨아줄까? 흐음, 읍. 벌써 침 나와. 케헤헷!”

“빨아야지 그럼 안 빨려 그랬냐?”

“씨발 맡겨놨어?”

“야, 자. ‘아’ 해. 멍멍이, 물어.”

“치워. 빨 맘 딱……. 커헛? 오오.”

“피식.”

깊고 긴 정적이 내렸다. 어린 남자가 불현듯 외쳤다.

“심봤다.”

“잘해라.”

“그러게. 잘해야겠네. 우리 자기 얼굴만 잘생긴 줄 알았더니 따로 또 믿는 구석이 있었구나?”

“훗.”

“안녕, 자지좆아. 너 이름이 뭐니? 기특하게 잘도 컸네. 촌놈 먹고 쑥쑥 자랐니? 자연산 유기농 촌놈이 다르긴 다른가 봐?”

“뭐 해.”

“흥, 크흥. 자기 좆불알 냄새 맡지. 자기 살짝 긴장했어? 냄새가 좀 진하네. 큼, 흐응음…….”

“흔, 읏, 웃. 이쁜 게, 꼭 강아지, 아! 새끼같이, 하…….”

“어때? 자기 자지 나랑 잘 어울리는지 한번 봐봐. 쪽. 쪽!”

“아가리 열어.”

“가만있어. 사진 찍을래.”

찰칵찰칵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한세월이 지나자 동영상 촬영음까지 띵 울렸다.

내 소중한 애인의 은밀한 부위를 꺼내놓고 뭘 저렇게 찍어대는 거야? 지수는 왜 아무 말이 없지?

“씨팔 주둥이 벌려.”

“에이, 씨! 기다리라고 했지.”

“…….”

“짜증 나게 옆에서……. 하읏? 학!”

“다 찍었어?”

“읏, 흑! 응.”

“계속할까?”

“아잉, 알았어. 내가 터프한 새끼한테 꼼짝 못 하는 건 또 어떻게 알고. 자, 아……. 훔읍. 춥!”

“새끼? 색, 허악? 흐우극……!”

“우흑큽……! 욱. 웁, 붑.”

“하앙, 아응욱……. 좋아. 아, 좋아, 탑기야, 더 빨아줘. 혓바닥 좋아. 나 뜨거워. 앗, 뜨거워! 고추 익을 거 같아.”

“흐흥. 응븝.”

“천하의, 민탑기가, 아가리에……. 허윽! 내 자지까지, 다 물고. 허허허!”

“응법. 흥붑.”

“민탑기. 동네 대표 똥걸레 좆빨이 새끼야. 너 내가 아는 새끼 중에 몇 놈 거 이렇게 물고 빨아젖혔어?”

“칵……. 악, 학, 칵, 컵! 븝.”

“입꼬리 아플 건데. 주둥이 더 열어. 너 그러다 입가 다 찢어져.”

“걱. 법. 것. 응푹. 붑. 픕.”

“나한텐 목구멍 벌리라 그러더니 너 좀 많이 힘들어 보인다. 킥.”

“칵, 갑작, 급. 커학……!”

“어, 계속 처버텨. 한번 해봐.”

“응억, 흥허억! 컷헙. 컵. 프헙……! 흐우응븝…….”

“더 울어. 킥킥! 귀엽네.”

지수가 어린 남자한테 펠라티오를 시키는 중일까. 자신보다 한참 나이 어린 남자 앞에서 수치심 없이 바지를 내리고, 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은 한 속옷 안에 목숨처럼 고이 간직해야 할 신체 부위를 드러내 자랑했을까.

우리가 사이좋은 연인이라면 오직 나만 볼 수 있을 그곳을 어린 남자의 코앞에 들이대고 눈으로 샅샅이 맛보게 했을까. 누구나 탐낼 늠름한 성기를 오롯이 내어주고 연하의 남자 입에 잡아먹히느라 정신이 없나.

어린 남자의 젊고 부드러운 입술과 촉촉한 입 안과 말캉말캉한 혀와 뜨끈한 침 웅덩이와 쪼글쪼글한 입천장과 날 선 어금니와 비비적거리는 목젖과 쫄딱쫄딱 죄는 목구멍의 감촉을 십분 즐기는 동안 애인인 내 생각은 하지 않는 걸까.

나 말고 딴 사람이 해주는 구강성교가 그렇게나 긴요하다면, 차라리 어제처럼 내 얼굴에 원하는 자식의 이름을 적고 그 자식 시늉을 시키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나. 내 상처 나고 곪아 고약한 고름을 흘리는 가슴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갈기갈기 찢길 테지만, 그래도 지수 네가 나한테 그러라고 하면 난 군말 없이 할 텐데.

지난 기억이 내게 손짓했다. 홀로 이곳 거실 소파에 앉아 내 하나뿐인 애인이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렸던 토요일 밤이 무수히 스쳤다.

지수가 없는 베란다 너머로 어둠이 내리면 단지 안은 내 맘속 같은 황무지가 되었다. 잠 못 이루는 마지막 세대로 남은 듯 외롭고 창피해 불을 밝히긴커녕 자리에서 꼼짝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적막 한가운데서 그저 네가 누구랑 있는지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눈앞을 어지럽히던 망상은 지수가 얼굴 모를 누군가와 한 침대에서 서로를 뜨겁게 바라보는 모습뿐.

그 이상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전에 화닥닥 털어버리곤 했다. 겁이 나서였다.

그리고 다시 네가 오길 기다렸다. 네가 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널 타박하거나 잔소리를 늘어놓거나 삐져서 툴툴대거나 네 눈에 딱하고 우중충한 애인으로 보이지 않겠노라고 연거푸 다짐도 했다.

대신 부리나케 불을 밝히고 싶었다. 현관에서 널 맞이하며 생기 넘치는 표정으로 시선을 마주하고 싶었다.

그때가 몇 시 몇 분이든지 상관없이, 네가 무엇 땜에 늦었는지도 관계없이, 네가 이곳 우리 집에 돌아오는 순간에는 무조건 사랑으로 널 반기는 내가 있다는 사실을 꼭 알게 해주고 싶었다.

그럼 네가 기억 속 멀리 묻어두었던 애인의 존재를 새로이 깨닫고 달라진 눈빛으로 날 바라봐주지 않을까. 나란 소중함을 되찾은 너와 해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했으니까.

처음처럼 어려운 손길로 너른 품 안 가득 날 넣고 조심스럽게 어루만져주지 않을까. 잘못한 만큼 웃음 짓게 해주겠다고 마음먹지 않을까.

내 바람을 완성 짓는 건 네 감동 어린 미소였다. 충격받아 넋 나간 표정이나 참회의 눈물도 나쁘진 않지만, 김지수가 내 앞에서 운다면 역시 내 가슴이 더 아플 테니까.

주말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는 내내 그런 상상에 푹 빠진 채 끊임없이 되씹었다. 그조차 하지 않는다면 괴롭고 긴 밤을 맨정신으로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솜사탕처럼 돌고 도는 몽상의 주인공은 그렇게 내가 아니라 지수 너였다. 네가 나타나야만 내 이야기를 끝맺을 수 있었다.

그러니 네 발소리가 우리 현관문에 가까워졌으면. 기적 같은 도어록 기계음이 날 차고 외로운 소파에서 일으켰으면.

넌 그냥 나한테 와주기만 하면 되니까. 네가 네 애인을 위해 해야 할 일은 그것뿐이니까.

늦는대도 괜찮았다. 네가 언젠가는 꼭 네 허우적거리는 애인을 바닷속같이 무시무시한 밤에서 건져내 줄 것으로 믿었으니까. 구명환이나마 던져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아주 사소한 물건이어도 좋으니 날 위한 선물을 등 뒤에 감추고 나타난 네가 내 눈치를 살피다가 장난스럽게 웃는다면. 자투리 새벽이나마 너와 예전처럼 시시콜콜한 농담 몇 마디로 피식거리다 한시에 스르르 잠든다면.

그러나 넌 다음 날 저녁까지 내게 연락하지 않곤 했다.

“헉! 커헉? 허엉억……!”

놀란 듯 탄성을 연발하는 지수 목소리였다. 지수의 붉게 익은 얼굴과 땀을 뻘뻘 흘리는 꼴이 코앞에서 보듯 훤했다.

“민, 흣? 민탑기! 너 입이 무슨……? 하어극!”

“응업, 응헙! 웁. 훕, 츄를븝.”

“야, 잠깐만. 너 몇 살이라 그랬지? 스물하나?”

“응풋! 흐읏, 트흣. 후우. 스무 살이라고. 이때까지 몇 살인지도 모르……. 븝? 컥허업!”

“허. 허허.”

“컥퓻! 긍억. 헉컵……!”

“어리네.”

지수가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벙싯거렸다. 자신의 컬렉션에 어린 나이를 새로 추가하게 되어 더없이 흡족한 모양이었다.

“스무 살짜리가 벌써 아가리를 이따위로 놀려? 물건이네. 야. 너 이 씨팔 뒤로 알바하고 다니냐?”

“읍읏……. 흠! 웬 알바. 질투해?”

“조지게 잘 빠네. 너 우리 집에 오래 있어야겠다?”

“음픗, 음픕. 츗! 춧. 항압, 하알읍. 옴츳!”

“그만 빨아. 첫발은 네 똥구멍 안에 싸게.”

“후우, 후읏. 크흣.”

“우냐? 쯧.”

“좋은데 어떡해. 자기야, 싸는 건 이따 또 싸면 되잖아. 응? 더 먹을래. 앙아알. 자지 더 줘. 하으응.”

“옷부터 좀 그냥 홀딱 벗어라. 꽁꽁 싸매고 있을 거면 뭐 하러 몸 만들었냐?”

“이 몸 만드는 데 얼마가 들어갔는데 아껴야지 그럼 막 보여줘?”

“너 내 집에서 옷 입지 마. 빨가벗고 있어.”

네 집? 입꼬리가 저절로 경련했다.

여기가 왜 네 집이야. 내가 너랑 원룸 자취방이 아니라 좀 더 제대로 된 데서 알콩달콩 지내고 싶어서 전세금 한 푼 두 푼 모아 들어온 여기가 왜 네 집이야.

너랑 내 집이잖아. 우리 두 사람 거잖아.

계약할 적에 너와 내 한 발짝 더 행복한 미래가 펼쳐지기 시작한 것 같아 가슴 터지게 설렜던 기분이 어제처럼 익숙한데.

희망찬 앞날을 위한 우리 사랑의 둥지잖아. 여기뿐 아니라 어디서든 너 아닌 사람과 산다는 건 상상조차 해본 일 없다.

그럴 수밖에. 넌 내 운명이니까.

난 네가 하는 짓은 뭐든지 다 예쁘게만 보이는 눈을 달고 태어나고 말았고, 넌 나와 평생 지지고 볶을 팔자로 세상에 내려오고 말았다. 달리 어찌할 방도 없이 맞아들인 이 불행한 운명 탓에 세상 누구보다 행복했던 우리 두 사람 아닌가.

사랑했잖아. 저 애랑은 비교도 안 될 만큼 한때 많이 많이 좋아했잖아. 그랬잖아.

지수와 난 웃음과 울음은 물론 티끌 같은 침울까지 함께 나눴다. 건들면 숨 막힐 듯 쓰라려서 꽁꽁 감춰두기만 했던 제각각의 비밀 이야기에 더해 이따금 궂은 날씨처럼 까닭 없이 찾아오는 우울감마저 침묵으로 공명할 만큼 샅샅이 사랑했다.

지수와 둘이라면 그치지 않는 빗속을 걷는대도 좋았다. 비창한 장마 한가운데 누워도 좋았다.

무엇도 무섭지 않았다. 우린 천하무적이니까.

어떤 것도 우릴 겁나게 하거나 나약하게 하거나 불행하게 할 수 없었다.

지수와 세상 어느 곳에 떨어져도 행복할 자신 있었다. 우리가 어느 슬픈 오페라의 마지막 장면처럼 무덤 안에 산 채로 갇히게 된다고 해도 숨을 거두기 전까지 지수의 귓가에 사랑의 말을 속삭이고 싶었다.

내 애인과 나의 연애가 그런 연애였다.

흔히 각자의 정신뿐 아니라 상대의 정신까지 이중삼중으로 꽉꽉 잡아채고서 혹 서로 피해를 입거나 끼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언제나 첨단의 이지로써 해나가는 연애 나부랭이가 아니었다. 우리 연애는 순수한 비이성 그 자체였다.

정상인이나 범인 따위가 이해할 자격 없는 광기였다. 그야말로 정신병자 두 사람이었다. 그래서 멋진 거였다.

철근콘크리트 빛깔 도시 위 아무도 올려다보지 않는 하늘에 핀 무지개처럼 두 광인의 눈에만 보이는 선물이었다.

지질함마저 분위기가 되는 사이였다. 불결한 모든 놀이 또한 지수랑 하면 낭만의 한 종류로 변했다. 서로가 아니면 좀처럼 만족할 수 없는 괴짜 둘이었다.

내가 파랗게 그늘질 때 말없이 따라 가라앉아줄 사람이 내 옆에 살아 숨 쉰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게 지수라니 더더욱 꿈만 같았다.

그래서 사랑이었다. 만나서 웃고 떠들고 차 마시고 놀고 자랑하고 밥을 먹고 몸을 섞고 여행하고 술 마시고 농담하고 사진 찍고 다투고 화해하고 다시 즐겁게 지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건강하고 이해득실이 들어맞는 관계를 꾸리려 애쓰다 더는 건강하지 못하거나 관계를 지속할 명분이 모자란다거나 한마디로 수지 타산이 맞지 않으면 작별하는 것으로는 너무도 부족했다.

그건 상대가 누구든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근데 그런 게 진짜 사랑인가. 연애 놀이로 불러야 맞지 않나.

연애 놀이란 바람직하고 세련되고 똑똑하고 정확하고 빈틈없이 철저하고 완벽하고 아주 대단해서 끔찍할 뿐 아닌가.

특별한 지수를 상대로 그게 가당키나 한가. 그런 연애란 사랑하는 상대를 깔보는 처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완벽하다는 건 구제 불가능할 만큼 엉망진창이란 말과 같다. 그러니 완벽한 커플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는 커플인 것이다.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겠다는 미명 아래 자신보다 뭐 하나라도 더 가진 사람과 어울리려고 눈에 불을 켜는 범인을 경멸했다. 그런 생각을 자랑스럽게 늘어놓으며 이래라저래라하는 소리도 듣기 싫었다.

지수랑 난 그런 구실로 사랑을 시작하지 않았으니까.

우리 사랑은 코흘리개도 아는 쉬운 사랑이니까. 코흘리개만 아는 어려운 사랑이니까.

우린 세상에서 제일 치사한 이유로 내일이 없는 것처럼 싸우다가도 너와 나만이 절실한 새벽에 서로의 눈물을 닦았다. 죽어라 미워하다 실제로 죽일 계획을 세워 실행에 착수할 만큼 증오해보고, 평생 지워지지 않을 흉터를 몸에 남겨가며 해쳐도 보고, 볼꼴 못 볼 꼴에 추악한 밑바닥까지 싹 다 까뒤집어 정이란 정은 뚝뚝 떨어뜨리고, 그러고도 그 모든 잘못을 이해하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저 묵묵히 보듬고 안쓰럽게 여기는, 우리 사랑은 팔 년을 이어온 사랑이었다.

애증의 감옥 같은 단칸방에 처박혀서 서로 괴롭히고 못살게 굴다가도 눈 마주치면 어느새 그냥 웃음이 나던, 헤아릴 수 없이 막연한 답답함 가운데서도 우육탕 컵라면에 싸구려 고량주 몇 병이면 밤새 얘깃거릴 쏟아내며 떠들던 너와 내가 우리 안에 살아있다.

우리가 아니면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해 못 해야만 한다.

난 차라리 지수 너와 예전 그 코딱지만 한 원룸 자취방으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을 해. 실은 걸핏하면 그런 기분에 사로잡혀서 헤어나지 못해.

벽이나 방문이 없어서 서로 피하지도 숨지도 못하고 하루 온종일 딱 붙어 부대껴야만 하는 그 방에 너와 날 도로 가두고 싶어. 어딜 봐도 네가 보이는 그곳으로 다시 가고 싶어.

거기서 못 벗어나는 꿈을 꿀 때마다 입가에 미소가 떠올라. 그 당시엔 진짜 너무 힘들었는데, 근데 또 그만큼 행복했던 것 같기도 해.

그래서 그런가 봐. 그래서 그렇게 힘든 데로 다시 가고 싶은가 봐.

어린 남자가 내 이런 바람을 어찌 헤아릴까.

지수 덕에 난 가난마저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행복해서 행복한 것이 아닌, 불행 속 밑바닥에 남은 행복이야말로 알짜 행복 같았다.

사실 그렇게까지 어려워 본 적 없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걸 지수 너한테 들키면 넌 분명 코웃음 치겠지. 그래도 난 너와 가난까지 함께 겪을 수 있게 된 데 진심으로 감사했다.

비참하고, 자존심 상하고, 체면이나 인간으로서의 존엄 따위 있지도 않고, 구질구질하다 못해 독기가 펄펄 끓는 감정까지 너와 나눌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남은 세월 가끔 그때를 떠올리고 너와 절절히 옛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그 격렬의 역사로 우리 사랑을 돈독하게 빚어 다지고 싶었다.

지수랑 난 그렇게 서로의 가장 슬프고 지지리 못난 모습까지 하나 모르는 게 없는데, 그 깊이를 가늠하긴커녕 비슷한 경험조차 해본 적 없을 어린 남자가…….

“넣을래. 어? 씨―팔 똥구멍 좀 쓰자! 내가 네 괄약근 개 좆창내준다니까? 하, 미치겠네. 걸레 같은 새끼가 여기까지 따라와 놓고 왜 감질나게 굴어. 비싼 척하지 마. 너 안 비싸잖아. 싸구련 거 다 알고 데리고 왔어.”

“큭큭. 미친놈.”

지수가 애원했다. 남자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코를 묻어 냄새를 맡았다. 탱탱한 살결에 입 맞추며 알랑거렸다.

사랑하는 애인이 연하의 딴 남자를 애타게 갈구하고 있었다.

“탑기야. 너 내 자기잖아. 어? 아기야. 내 거 네 안에 집어넣게 해줘…….”

“원해?”

“어.”

“진짜?”

“어.”

“그럼……. 흐히힛!”

우당탕 소리에 눈을 확 감았다. 어린 남자가 소파에서 발딱 일어난 모양이었다.

“어디 가. 민탑기. 일로 안 와?”

“나 잡아봐―라!”

“너 잡히면 죽는다.”

“크학학!”

“거기 서. 으학?”

“잡아봐. 김지수, 잡아보라니까? 아학, 우학학!”

두 사람은 한참이나 사랑의 추격전을 벌였다. 미친 듯 시끄럽게 웃고 헐떡거렸다.

“헛.”

“응냐항……!”

“드디어 잡았다. 민탑기 너 딱 걸렸어.”

“하아앙, 어떡하지?”

“잡히면 죽는다 했지.”

“응핫, 응흣? 거긴, 캉! 앗, 안 되는데…….”

“하아……. 민탑기. 내가 널 얼마나 더럽히고 싶었는지 알아?”

“큭.”

“왜 웃어.”

“더럽히고 싶어?”

“어. 원상복구, 절대, 안 될 때까지. 허억…….”

“나 벌써 더러워.”

“네가?”

“난 내가 자기를 더럽히고 싶은데.”

“어디서 까불어. 네까짓 게 스무 살인데 더러워 봤자지.”

“자기! 나 말 태워줘.”

“갑자기?”

“엎드려. 아앙, 빨리.”

“별걸 다……. 웃!”

“큭큭큭.”

“왜 이렇게 무거워. 허리 무릎 나갈뻔했네. 됐냐?”

“되긴 뭐가 돼. 자, 출발.”

“후…….”

“이랴! 응? 왜 소리 안 내?”

“무슨 소리.”

“말 소리.”

“말 소리를 내라고?”

“내야지.”

“히힝……. 악! 왜 때려?”

“왜 때리긴, 자긴 지금 내 말이라니까? 이랴! 달려라, 달려!”

“히히힝!”

지수가 어린 남자를 등에 태우고 거실 바닥을 둔중한 무릎으로 꿍꿍 디뎠다. 미세한 떨림까지 마루를 타고 내 몸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저쪽으로 가자, 마운틴. 이러, 이랴!”

저쪽이 설마 이쪽은 아니겠지.

꿍꿍꿍. 야단스러운 진동이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급.”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지수가 네발로 기어 옆을 와당탕퉁탕 스치다 그만 내 새끼손가락을 찔깃 지르밟았다.

“음.”

아파. 아파! 아아……!

어쩐 일인지 소리가 튀어나오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간담이 써늘한데 낯만 뜨끈뜨끈했다. 눈물이 짤끔 났다.

“큭큭큭……. 아하하하!”

내가 고통스럽거나 말거나 어린 남자는 지수랑 말놀음질을 하느라 재밌어 죽겠는 모양이었다. 괘씸한 자식.

문제는 저 멀리까지 달아난 남자의 웃음소리가 다시 이쪽으로 다가온다는 점이었다. 또다시 날 으깨진 않겠지?

지수야, 인제 제발 좀…….

“서랏!”

“히히히힝!”

“흐에엥……? 하아악!”

꽈당탕꽈당탕!

허욱.

둘은 무릎으로 날 으깨지 않았다. 대신 야단법석을 치며 내 몸뚱이 위로 넘어져서 굴렀다.

억, 윽!

두 사람한테 부딪힌 몸 온갖 곳이 아렸다. 게다가 숨 못 쉬게 무거웠다.

“서라며. 그래 놓고 네가 넘어지면 어떡해?”

“아핫, 아하핫……. 응? 헐! 이 형 안 죽었나 봐. 뜨끈뜨끈한데? 근데 여기 왜 이렇게 뾰족하지. 이 형 자지 선 거 아니야? 아닌가. 이렇게 작진 않겠지?”

“됐어, 나 봐.”

“아으응.”

둘은 날 요때기나 쿠션 삼아 편안하게 기대 눕고 몸을 늘어뜨려 체중을 실었다. 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내 상태를 살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심지어 눈곱만큼도 꺼림칙하다고 여기거나 불편해하는 것 같지 않았다.

난 뭘까. 어린 남자랑 노는 지수한테 난 그저 베개나 카펫인가.

지수는 더는 날 안 사랑하나. 마음이 조금도 남지 않은 걸까.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길 바라나. 그래서 이러나.

두 사람이 어느새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는 까닭이었다.

“자기.”

“어?”

“왜 그렇게 빤히 쳐다봐.”

“내 애인 민탑기가 너무 이뻐서.”

“맨날 이쁘대. 할 말이 그거밖에 없어? 나 좀 지겨워지려 해.”

“어쩌라고. 난 지금도 너 땜에 심장 터질 거 같은데.”

“그렇겠지.”

“만져봐.”

“엇?”

“느껴지지.”

“진짜 쿵쾅거리네.”

“이 안에…….”

“……?”

“네 후장 있다.”

“…….”

“이 안에 네 찌찌랑 고추랑 알도 있다.”

“…….”

“장난이야. 사실 장난 아니야.”

“노친네들끼린 그러고 놀아?”

“야…….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

“푸붑! 흥, 잉. 하응! 왜 이래?”

“민탑기 넌 혼 좀 나야 돼. 쪽, 촉! 쭉.”

두 사람이 내 몸에 기댄 채 한바탕 뽀뽀 실랑이를 벌였다. 내 뼈를 밀고 살을 누르며 짐승처럼 즐겁게 노닐고 서로를 탐했다.

난 아무런 생각도 못 하게 되었다. 지수가 흐느끼는 소리를 듣고서야 서서히 신경을 도사렸다.

“자기, 뭐 해? 갑자기 왜 울어?”

“윽, 꺽. 좋아서.”

“자긴 진짜 내가 그렇게 좋아?”

“끅……. 어.”

“진짜 진심인가 보네.”

“진심인데, 힉. 꺽! 네가 안 믿잖아.”

“뭐야……. 복수해?”

“복수 아니야. 흡.”

“알았어, 믿어. 믿어야지 어떡해. 우리 자기가 아기처럼 우는데.”

“그럼…….”

“응?”

“항……. 려…….”

“뭐라고? 안 들려.”

“항문 벌려.”

“큭.”

“허허. 허허허.”

“김지수! 재밌냐? 우리 할머니가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털 난댔거든.”

“지금도 나있는데.”

“그럼 더 길게 나서 머리카락같이 되겠지.”

“머리카락같이 돼도 돼. 네가 다 빨아 먹어줄 거잖아.”

“내가?”

“어. 너 나랑 평생 같이 있을 거잖아. 내 옆에서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아야지.”

“…….”

“나랑 맨날 밥해 먹고 방귀도 뿡뿡 뀌고 트림도 꺽꺽 하고, 티브이도 보고 저녁엔 산책도 하고, 산책하다 하드도 하나씩 사서 빨고 밤엔 보쌈 족발도 시켜 먹고, 똥 쌀 때 휴지 없으면 서로 갖다주고 똥꼬 막힐 땐 좌약도 넣어주고, 그러고 살면 얼마나 좋아.”

“우웩.”

“가끔가다 부부 싸움도 한 번씩 하고, 나한테 한 대 얻어맞고 퉁퉁 불어 터진 네 재수 없는 세숫대야 보고 더 막 열 뻗치고 눈깔 돌아서 실컷 두드려 패고 나면 고분고분해진 네 허리 붙잡고 한 판때기 거하게 하고.”

“…….”

“화해 겸 아침부터 눈퉁이 밤퉁이 된 너 데리고 나가서 동네 중국집에서 짬뽕이나 한 그릇 때리고, 그러고 나면 주말 내내 만화방이나 피시방에 처박혀서 죽치고 놀다가 내가 꾸벅꾸벅 졸면 네가 사람들 몰래 밑으로 쓱 기어 와서 내 거 빨아주고. 허허.”

“우와……. 자기 진짜 답 없구나.”

“뭐가?”

“자기는 근데 솔직한 거야, 멍청한 거야? 그런 말 하면 내가 좋아할 줄 알고 하는 거야?”

“네가 좋아하든 말든 상관없는데?”

“왜 상관이 없어? 내가 또라이 아니고 만약 정상인이었으면 그 소리 듣자마자 일어나서 자기 면상에 가래침 걸쭉하게 뱉은 다음에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갔을걸?”

“너 도망 못 가. 네가 내 앞에서 그 지랄 하면 너 엎어뜨려 놓고 억지로 할 건데?”

“강간하겠다고?”

“해야지. 네가 만약 나랑 사귀기 싫다고 깠어도 어차피 너 술 취했을 때나 하여튼 간에 기회만 있었으면 바로 옷 벗기고 갖다 따먹었을걸?”

“……?”

“넌 근데 이미 나랑 사귀기로 했으니까 강간은 아니지. 네가 끝까지 튕겼으면 언젠간 진짜 강간했을 텐데 좋게 풀려서 너한텐 다행이겠다?”

“……?”

“아무리 너랑 나랑 사귀는 사이여도 씨팔 건방지게 나한테 가래침 뱉고 도망가려 하면 가만 안 놔두지. 그랬다간 밖에서부터 머리털 잡혀서 질질 끌려오다 비상계단에서 먼저 한 번 애벌 강간 당할 줄 알아.”

“……?”

“민탑기 넌 내 거야. 그니까 인제 나한테 적응해야지. 앞으론 내가 네 업주나 다름없잖아.”

“업주……?”

“업주 아닌가? 아무튼 나 너한텐 신고식 험하게 하기 싫다. 내가 천사가 될지 악마가 될지는 다 너 하는 거에 달려있단 소리야. 내 말 뭔 말인지 알지?”

“…….”

“아니면 너 뭐 그런 취향이냐? 억지로 따이고 뒈지게 얻어터져야 꼴려? 난 그런 취향 아니긴 한데, 네가 내 말 좆같이 안 들으면 척이 아니라 진짜로 패고 쑤셔줄 수는 있어.”

“…….”

“그래도 인마, 아무리 그런 게 좋아도 적당히 내 눈치 봐가면서 개겨라. 난 너무 망가진 앤 싫다.”

“…….”

“왜 말이 없어?”

“아니, 씨발아……. 너 좀 전까지 나 사랑한다고 염불 외면서 질질 짜던 거 아니었어?”

“맞아.”

“뜬금없이 웬 강간? 사랑하는데 왜 갑자기 강간하고 두들겨 패?”

“사랑하니까 두들겨 패지. 안 사랑하면 씨펄 그냥 갖다 버리지 손 아프게 뭣 하러 두들겨 패냐.”

“아아. 그럼 강간도 마찬가지로 사랑해서 하는 거겠네?”

“그렇지. 사랑하니까. 내 걸로 만들고 싶으니까.”

“네 걸로 만들고 싶으면 네 걸로 그냥 만들면 되지 강간해야 네 게 돼? 멀쩡하게 하면 네 게 안 돼?”

“그냥 해도 되긴 되는데, 그냥도 하고 험하게도 한 번 해야 진짜 내 거 같긴 하지. 그냥 하는 건 딴 새끼들이랑도 허구한 날 졸라게 했을 거 아니야, 이미.”

“…….”

“손찌검도 좀 하고, 억지로 똥구멍 열고 쑤시면서 겁도 좀 주고, 엉―엉 울려서 내 새끼 스트레스도 한 번씩 풀어주고.”

“…….”

“그 뭐냐, 남자 새끼 자존심? 가오? 그딴 것도 한 번 팍 뭉개줘야 ‘아, 난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냥 이 형 구멍이구나.’ 이러고 그제야 내 밑으로 기어들어 온 줄 알고 말도 잘 듣지.”

“…….”

“나라는 인간을 대갈빡 안에 문신처럼 딱 박고 난 다음에 인제 나사 느슨하게 풀려서 말 안 듣고 슬슬 기어오르거나 성질부릴 때마다 주기적으로 한 번씩 쬐어야지. 다시 정신 빠짝 차리게.”

“…….”

“내 눈치 열심히 보면서 설설 기고 이쁜 짓 하게. 어디서 누구 앞에서 자빠뜨리건, 뭘 시키건 안 빼고 다 하고 잘 느껴서 미쳐 좋아 죽게.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만 있어도 그렇게 넘어가는 날이면 다행인 줄 알게.”

“…….”

“좀 귀찮긴 한데 한 번 그렇게 길 잘 들여놓으면 너한테도 좋고 나한테도 좋고 서로 이득이잖아. 가끔가다 푸닥거리도 해줘야 내가 아니라 네가 편한 거다.”

“뭔 개소린지…….”

“개소리는 네 소리가 개소리고. 난 뭐 그러는 거 좋아갖고 그러겠냐? 너 두들겨 패면 내 손만 아파. 맘은 더 아파. 이게 근데, 씨. 그렇게 해주는 게 쉬운 줄 아나. 야, 민탑기.”

“…….”

“네가 아직 어려서 모르는 거다. 애인 사이도 비즈니스고 사람 관곈데 아무 관리 안 하고 내버려 둬도 알아서 저절로 그냥 돌아가는 줄 아냐. 형이 다 널 위해서 돈 한 푼 안 받고 해주겠다는 거지. 요새 세상인심도 각박한데 애인 하나하나 누가 이렇게 신경 써주냐?”

“…….”

“너도 네 애인 무서운 줄 알아야 애인이 계속 멋있어 뵈고 좋아 뵈지 애인이란 놈이 너한테 벌벌 기면 그런 놈 좆 빨고 떡 칠 맛이나 나겠냐.”

“…….”

“우리같이 불알을 달고 있는 종자들은 원래 피를 안 보고 몸이 편하면 불만이 많아지거든. 불만이 많아질수록 인생이 존나게 불행해지는 거야.”

“…….”

“연애를 왜 하냐. 존나게 귀찮은 걸 뭐 한다고 해. 좆 빤다고 해? 다 행복하게 잘 살자고 하는 거 아니야.”

“…….”

“그니까 그놈의 행복을 유지하려면 얼마간에 한 번씩 정신머리 재교육 겸! 살풀이 겸! 강간랜드 유원지로 나들이 가는, 뭐 그런 깜짝 이벤트 겸!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거지. 그게 ‘애인 관리’라는 거지.”

“…….”

“그냥 하는 섹스도 좀 처맞으면서 아프고 힘들게 해봐야 좋은 줄 안다니까? 맨날 그냥 해주면 또 지겹다고 바람나.”

“…….”

“하, 네가 여러 놈 만나보면 금방 감 잡을 텐데. 벌써 코 꿰여서 어쩌냐. 평생 나한테 당해만 보겠네.”

“…….”

“근데 탑기야, 너무 겁먹진 마라. 처음에만 좀 서럽고 기분 나쁘지 좀만 지나면 너도 근질―근질해서 언제 또 형이 몽둥이 찜질 해주나 목 빠지게 기다리게 된다.”

“…….”

“형은 다 안다. 싫을 때도 억지로 처박히다 보면 결국 즐기게 될걸? 나중엔 오히려 정상적으로 못 가고 마른 구멍에 무식하게 힘으로 쑤셔 박아야 질질 쌀 수도 있어. 너 사람 일 모르는 거다. 허허.”

“…….”

“형 믿지? 말만 들어도 좋지? 어? 형이 너 하나 행복하게 해줄 자신 없겠냐.”

“…….”

“넌 그냥 내 말만 들어. 딴 거 다 필요 없어. 형 너한테 아무것도 안 바란다. 내 말에 무조건 예, 하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그럼 이쁨받는 거야.”

“자기 말 잘 듣고 자기가 하란 대로 하면 상으로 면상에 죽방 맞고 똥구멍 찢어질 수 있는 거야?”

“뭐, 그렇지?”

조용했다. 실눈을 몰래 뜨고 훔쳐보았다.

어린 남자가 눈부신 이를 드러낸 채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아니, 지수를 금수 보듯 쳐다보며 비웃었다.

지수가 어린 남자를 두 팔 안에 가두고 내려다보는 눈빛이 앞서 말한 내용과 어울리지 않았다. 어딘가 불안한 듯 애처로운 얼굴이 마치 어린 남자가 훌쩍 날아가 버리지 않을까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았다.

“자기 말 안 듣고 자기가 하란 대로 안 하면 벌로 눈퉁이 밤퉁이 되고 똥구멍에서 피떡 쌀 때까지 강간당하는 거고?”

“어.”

“재밌네. 자기랑 만나면 심심하진 않겠다.”

“맞지? 나 안 재미없어.”

“한번 해봐.”

“뭘.”

“어떻게 할 건지 지금 맛보기로 보여줘 봐.”

“갑자기?”

“왜? 그냥은 못 해? 이유 있어야 돼? 이유 내가 만들어줄게. 자.”

“억!”

“야. 나이 허투루 처먹은 지수야. 내가 너한테 이렇게 좆같이 하면 나한테 손 올린단 거잖아. 올려봐.”

“…….”

“빨리. 쳐봐. 억지로 엎어놓고 후장 따봐.”

“엇. 악! 그만해! 민탑기, 너 왜 이래?”

어린 남자가 지수를 계속 손찌검하는 광경을 지켜보다 눈을 감고 말았다. 마음이 아팠다.

마음이 아픈데,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해보라니까.”

“그만하라고 했다.”

“하라고, 김지수. 왜 안 해.”

“…….”

“하지도 못할 거면서 아가리는 왜 털어.”

“오늘 나랑 너랑 첫날밤이잖아. 좀 그냥 좋게 좋게 보내면 안 되냐?”

“사랑해서 팬다며. 큭큭. 지수야, 네가 그랬잖아. 그럼 뭐 첫날밤엔 나 안 사랑한단 소리네?”

“사랑해. 사랑한다고! 몇 번을 말해. 나 너 사랑해.”

“그 얘기가 아닌…….”

“내 눈에 안 보이면 미칠 거 같고 종일 네 생각만 나는데. 잠만 자면 네 꿈을 하도 꾸니까 지금 이렇게 너 내 앞에 데려다 놓고 봐도 그냥 꿈같은데.”

“…….”

“너 없다고 상상만 해도 죽을 거같이 숨 막히고 가슴 아프고, 너 아니면 안 되겠고 그냥 살 수가 없을 거 같은데. 쟤랑 앉아서 밥 먹어도 너한테 밥 먹이고 싶고 난 굶어도 네 입에 밥 들어가는 거만 쳐다보고 있어도 좋을 거 같은데.”

“…….”

“쟤한테 박을 때도 네가 내 거 빨아주는 상상 하면서 박고 쟤가 내 거 빨아줄 때도 네 똥구멍 안에 담갔다고 상상하면서 자지에 힘줘. 뒈지기 전까지 너랑 오래오래 섹스하면서 행복하게 살려면 안 아프고 건강해야 되는데, 그 걱정부터 한다고.”

“…….”

“나중에 다 늙어서 민탑기 너랑 선지해장국 처먹고 노인정 기원 다닐 생각까지 그냥 저절로 나는데 그럼 사랑하는 거지 사랑 안 하는 거냐?”

“나 집에 갈래.”

어린 남자가 내게서 몸을 일으켰다. 감은 내 눈꺼풀이 눈치 없이 파르르 춤췄다.

신난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싶었다. 하지만 꾹 참고 속으로만 쾌재를 불렀다.

“너 못 간다 했지.”

지수가 매서운 목소리를 깔았다. 그리고 어린 남자를 내 위에 넘어뜨렸다.

“드디어 강간할 기분이 나?”

“닥치고 가만있어.”

“강간해봐.”

“민탑기 너 이……. 윽! 어쭈.”

“어쭈?”

“하억! 욱. 앗……!”

“에계?”

“읏, 흥욱! 커헉엇.”

“자기야. 힘 좀 써봐.”

“흐아어걱……!”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김지수는 소싯적부터 힘쓰는 거 하난 알아줬는데.

김지수가 어린 남자한테 붙잡힌 채 진땀을 빼며 옴짝달싹 못 하는 모습이 가는 시야에 들어왔다. 심지어 괴롭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어린 남자 힘이 얼마나 세길래 천하의 김지수가 쪽도 못 쓸까.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자기 뭐 해?”

“야! 너 힘 왜 이렇게 세! 운동했냐?”

“억지로 엎어놓고 강간한대서 기대했더니 이게 뭐야.”

“그건, 네가 이렇게 힘 센지 몰랐지!”

“실망이야.”

어린 남자가 김지수를 거칠게 팽개치고 일어났다. 그 바람에 뻥 차여서 한 바퀴 구르고 밀려난 지수의 자세가 초라했다.

“하, 씨!”

지수가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길게 뿜고도 분이 가시지 않는지 주먹을 아무렇게나 휘둘렀다.

윽! 흑!

지수의 주먹이 내 명치에 꽂혔다. 그리고 가슴과 옆구리로 이어졌다.

픕컥!

급기야 뺨을 타격했다. 고개가 홱 떨어졌다.

근데 왜 나한테…….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셈이었다. 그래도 이깟 것쯤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어린 남자만 이대로 사라져준다면 보고 들은 모든 걸 깨끗이 지울 자신 있었다.

그런데 어린 남자의 발소리가 뚝 멎었다.

“자기 지금 뭐 하는 거야……?”

“뭐가. 너 간다며.”

“아니, 나 가는 건 가는 거고, 애꿎은 자기 원래 애인은 왜 때려?”

“널 때릴 순 없잖아.”

고요가 거실 안을 먹먹히 메웠다. 그러나 난 거실에 있지 않았다.

어린 남자 대신 날 때리는 지수가 아닌, 끝내 내게 손찌검은 못 하고 와락 껴안던 일 년째의 지수와 함께였다. 기억 속 지수를 불러와서 지금 내 앞의 지수와 겹쳐보지 않는다면 사랑하는 애인을 원망하고 말 것 같았다.

8년의 사랑을 후회할 것 같았다.

언제쯤이 좋을까. 우리가 점점 안정된 연인이 되어갈 무렵의 겨울날이면 더할 나위 없을 듯했다.

괴로운 추위와 무거운 옷과 따분한 연말연시는 연인인 너와 날 위해 스리슬쩍 이름을 바꿨다. 상쾌한 겨울 공기와 더욱더 포근해지는 네 품과 반짝이는 크리스마스가 어느새 싫지 않았다.

널 만난 난 사계절마저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 골목길에 서서 날 기다리는 네가 좋았다. 가끔은 내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근사하게 차려입고 나타나는 네가 좋았다.

주인공처럼 씩씩하게 날 이끄는 네 뒷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어디서 난 돈인지 몰라도 멋들어진 곳에 기어이 날 데려다 놓고야 마는 네가 좋았다.

네 의기양양한 표정이 자칫 웃음을 터뜨릴 만큼 귀여워서, 그리고 가슴 떨려 차마 말 못 붙일 만큼 폼 나서, 영원히 못 잊을 너와의 값비싼 데이트가 좋았다. 그러나 제일 좋은 건 새벽녘 너랑 추리닝 위에 잠바를 걸치고 향하는 오천 원짜리 동네 목욕탕이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서로 등을 밀어주고 나오던 길의 찬바람 냄새가 끼치는 듯하다. 바나나우유에 꽂은 빨대를 물고 하얀 입김을 뿜던 겨울날의 널 본다.

어쩌다 동성애자가 돼서 가장 좋은 점은 목욕탕에 같이 갈 수 있다는 거다. 모르는 사람에겐 초라하게 들릴법한 목욕탕 나들이는 너무너무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버리는 까닭에 되레 맘이 시릴 때가 있다.

내가 막 때 빼고 광내놓아 빤딱빤딱 뽀유스름한 네 살결. 네가 개운하다는 듯 눈이 부실 만큼 예쁘게 함박웃음 지을 때 솟는 양 뺨.

언제 다 마신 건지 빈 단지를 금세 구겨버리고 날씬한 배를 문지르던 너. 뜨끈한 떡만둣국 아니면 매콤 칼칼한 제육볶음에 짭짤한 미역국이나 한 사발 먹자며 목욕탕을 나서자마자 배고프다고 보채던 네 모습을 흐릴 수가 없다.

장난스러운 눈빛, 그 미소를 되새겼다. 난 그런 널 잃을 수 없다.

“나한텐 힘으로 안 되니까 지금 그 형한테 화풀이하는 거야?”

“…….”

“말해, 김지수.”

“어.”

“나 나가면 그 형 아주 잡아 족치겠네?”

“어.”

“풋, 파하하! 아하하…….”

어린 남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지수가 화다닥 일어나 어린 남자를 향해 성큼성큼 내걸었다.

지수는 어린 남자를 애타는 팔 안 가득 끌어안았을 것이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8년을 만난 내 애인이 새 남자의 웃음소리에 드디어 용기를 얻어 한 걸음 내디뎠다는 것쯤 내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오랜 연인이 되고부터 가끔은 이렇듯 지수를 너무 잘 알아서 아픈 시점이 생겼다.

서둘러 기억의 서랍 속 다른 순간을 꺼냈다. 그러지 않고선 이 기나긴 잠깐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어느 카페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의 기억이 진짜인지 아리송했다. 프랜차이즈 카페가 난무하는 세상이 아닌, 어둡고 조금은 신비스러운 분위기의 개인 카페가 대다수였던 여름날을 떠올렸다.

사장인 여자는 보통 이국적이고 히피 같은 차림에 세련된 분위기를 풍기고, 이파리가 커다란 식물과 침대처럼 푹신하고 너른 소파가 있고, 카페 안 손님은 핸드폰 속 SNS 따윈 들여다보지 않는 곳이었다.

청춘을 십분 즐기는 성인이라면 평일 저녁 외식 후에 모여 촛불 너머로 각자의 실생활을 조곤조곤 얘기하고 서로 동감하곤 했다. 짐짓 진중하고 어른스러운 척하는 태도가 유행이었던 그 여름밤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특이하고 예쁜 옷을 신경 써서 골라 입고 액세서리를 단 젊은 남녀가 어른답게 섞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카페 테이블 위 예술 소품 같은 유리 재떨이에 담뱃재를 번갈아 털던, 인간다웠던 시절을 그렸다. 그런 카페 안에는 으레 차분하고, 촉촉하고, 조금은 섹시하고, 따분하지 않은 아르앤드비나 솔뮤직이 흘렀다.

요즘은 그런 곳을 찾는 게 쉽지 않다. 있다손 치더라도 그 안은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할 터였다.

비흡연자인 내가 독한 담배 연기를 기꺼이 감수할 만큼의 낭만이 살아 숨 쉬던, 사람 냄새 나는 그런 시대가 다시 왔으면 했다. 따듯하고, 측은지심이 있고, 묵직한 진국일 뿐 아니라 사랑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된 사람으로 비치려고 애쓰던 그때의 정서에 다시 한번 폭 안기고 싶었다.

그 가운데 오직 너와 나만 철부지길 바랐다.

“가지 마.”

지수의 가련한 목소리가 어린 남자를 붙잡았다. 어린 남자가 지수를 고문할 양 지독한 말투로 물었다.

“나 가고 나면 저 형한테 어떻게 할 건데?”

“아아. 집 가지 마. 나랑 있어. 제발.”

“나 가면 자기가 아까 말했던 거처럼 저 형 눈퉁이 밤퉁이 만들고 짐승같이 쑤실 거야?”

“상관없잖아.”

“아앙, 얘기해봐. 자기 대답에 따라서 나 생각 바꿀 수도 있어.”

지수가 뜸 들이다 말했다.

“키스할 거야.”

“저 형한테?”

“어.”

키스라니. 어린 남자의 심기를 건들려는 지수의 어설픈 수작인 줄 알면서도 심장이 뛰었다.

“그리고?”

“사랑해줄 거야.”

“어떻게?”

“미친 듯이 느껴서 울다 실신할 때까지 쟤 똥꼬에 내 자지 박아줄 거야.”

“하아……. 흣, 거칠게?”

“아니. 부드럽게.”

“왜?”

“그냥.”

지수의 말이 어린 남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킨 듯했다. 지수에겐 다행이겠지만 내게는 불행한 결과였다.

“해봐.”

“뭘.”

“저 형이랑 어떻게 키스하고 좆 박을 건지 보여줘.”

지수가 태연한 척 긴장한 음성으로 물었다.

“보여주면.”

“자기야. 빨리. 날 위해서 해줘.”

“뭐 어떻게 하라고?”

“…….”

“아! 할게. 표정 좀 풀어라.”

지수의 발걸음이 마룻바닥에 불안정한 파장을 일으켰다. 그리고 두방망이질하는 내 심장 근처에 섰다.

꼭 닫은 눈꺼풀 너머가 그늘진 듯 어두워졌다. 지수가 내 양옆을 딛고 자세를 낮춰 엎드리는 것을 느꼈다.

“춥.”

촉촉하고 뜨끈한 입술이 내 입을 이불처럼 푹 덮었다. 간질간질한 콧숨과 함께 부딪고 문질러 비볐다.

“쭙. 쫍. 흠웃.”

열의 없는 입술 운동이었다. 그런데도 항문이 찌릿찌릿했다.

지수가 나한테 입 맞춰준 게 얼마 만이더라. 어젯밤 이전 마지막으로 내 항문살에 자짓살을 붙여줬던 때보다 입술에 입술을 붙여줬던 때가 훨씬 더 오래됐다는 거 하난 확실했다.

과장을 보태자면 어린 남자한테 고마워해야 할 지경이었다. 감격스러운 순간을 어린 남자 앞에 선보여야 한다는 점이 무참하긴 했다.

“하하, 하…….”

어린 남자가 힘을 빼고 웃는 소리가 머리 위를 어지럽혔다. 지수가 기다렸다는 듯 입술을 홱 떼고 어린 남자에게 물었다.

“이렇게 하라고?”

“그다음엔 어떻게 할 건데?”

“그다음?”

“사랑해줄 거라며.”

“어.”

“사랑해줘 봐.”

윽.

지수가 내 몸을 뒤집어엎었다. 안 돼.

입맞춤까진 그렇다 쳐도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지수한테 안기고 싶진 않았다. 동물원 원숭이나 다름없이 딱한 볼거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애인의 새 남자를 즐겁게 할 교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다뤄지고 싶지 않았다.

턱.

그러나 지수가 엎드린 내 바지춤을 낚아챘다.

지금 그만하라고 외치면 내가 깨어있었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막 깬 줄 알까?

고민하는데 우악스러운 손길이 바지춤을 함부로 잡아당겼다. 바지춤만이 아니었다. 속옷마저 반쯤 딸려 내려갔다.

애인의 볼깃살을 까서 딴 남자한테 구경거리로 내줄 수 있는 건가. 지수를 막으려고 몸을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어린 남자가 한발 빨랐다.

“그만.”

어린 남자가 지수에게 명령했다.

같은 남자 앞에서 이런 꼴이라니. 그것도 나보다 어리고 키 크고 잘생긴 애가 보는 데라니. 너무 가혹한 거 아닌가.

어린 남자에 비하면 탄력이 한참 떨어질, 쉰 백설기처럼 허옇고 창백한 볼깃살을 남자는 무슨 표정으로 구경하고 있을까. 뭐라고 비웃을까.

“하지 마?”

지수가 물었다.

자기 애인을 만지면서 외간 남자의 허락을 구하나. 그게 이상하단 생각은 안 드나.

이쯤 되면 나 혼자 미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때 어린 남자가 거침없이 닥쳐왔다.

“윽! 학?”

지수가 아파도 좋다는 듯 할딱였다. 어린 남자가 범처럼 달려들어 내 뒤에 올라탄 지수를 덮쳤다.

익. 무거워……!

“안 돼.”

어린 남자가 으르렁대듯 을렀다.

“안 해! 안 할게.”

“자기는 인제 두 번 다시 자기 원래 애인이랑은 못 할 줄 알아.”

“어? 어…….”

“김지수 넌 앞으로 나랑만 할 수 있어.”

“흑, 커헉!”

김지수가 흥분한 듯 꺽꺽거렸다.

“알아들어?”

“어. 알았어. 그니까 가지 마. 나랑 하자. 어? 하자…….”

“넌 내 거야.”

“나 네 거 맞아.”

“김지수 네 여기, 이거 내 거라고.”

“악, 웃! 어, 너 해.”

“응. 이 자지 누구 거?”

“탓, 흥! 탑기 거. 김지수 자지좆, 불알좆, 꼭지좆 전부 다 민탑기 거야…….”

내 애인더러 나랑 하지 말라고 할 권리는 저 애한테 없다. 내 애인의 성기는 저 애 게 아니다.

근데 왜 자연스러울까. 왜 아니라고 외치는 내 맘만 외로울까.

난 틀리지 않았는데. 지수 애인은 난데.

왜 당당하게 나서지 못하고 쥐새끼처럼 둘을 훔쳐보고 엿듣기만 할까. 지수 핑계를 대고 싶진 않은데, 지수를 정말 탓하고 싶지 않은데, 지수가 애인인 내 편이 아니라 저 애 편을 들까 봐 나서지 못하는 건 아닐까.

어린 남자가 한결같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내 애인을 다그쳤다.

“한 번만 더 내 앞에서 이상한 소리 해.”

“뭐가.”

“아저씨. 알아들었으면서 못 알아들은 척하지 마시고. 난 변태를 원하는 거지 꼰대를 원하는 게 아니야.”

“…….”

“……두 개가 사실 뭐 크게 다를 건 없긴 해. 근데 어쨌거나 기분이 좆같았단 말이야.”

“아! 미안해…….”

“그렇게 군기가 잡고 싶으면 형한테나 해. 나한테 어쭙잖게 엉기다 개박살 나는 수가 있어.”

“…….”

“번지수가 틀렸다고. 나도 자기처럼 불알 달고 있어서 무슨 얘기 하고 싶은 건지는 알겠는데 있잖아, 자기 그 쭈글쭈글한 불알로 들이받으면 내 싱싱 불알에 쥐여 터져.”

“뭐?”

“그 나이에 불알 쥐여 터지면 회복도 안 되잖아.”

“너 아까부터 자꾸 나이 얘기하는데 너랑 나랑 몇 살 차이 난다고 그러냐? 그리고, 야.”

“…….”

“원래 귀여우면 깨물어 죽여버리고 싶다 하냐, 안 하냐. 나도 너 사랑하니까 그만큼 폭행하고 성폭행하고 싶은 건데 그게 뭐가 잘못됐냐. 너무 사랑하는 게 죄야?”

“자기 말도 맞아. 틀린 거 없긴 해. 근데 내 기분이 좆같으면 씨발 그건 죽을죄야. 알겠어?”

“…….”

“나도 자기 너무 사랑해서 이러는 거야. 그니까 자기가 먼저 나 이해해. 그럼 나도 생각해볼게. 알았지, 지수 형?”

“허.”

“얼른 잘못했다고 해.”

“또 뭐.”

“잘못했다고 하라고, 김지수.”

“……잘못했어.”

“잘못했지? 너보다 나이도 어린 새끼 앞에서 불알 주름 좀 잡아보려다 쪽만 팔았지?”

“넌 말을 해도 꼭…….”

“따라 해. ‘전 늙어서 불알 주름만 많은 김지수입니다’.”

“장난치냐?”

“해, 안 해? ‘전 늙어서 못생긴 불알에 주름만 자글자글한 김지수입니다’.”

“왜 점점 늘어나는데.”

“실시.”

“전 늙고 못생겨서 불알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김지숩니다.”

“‘제 냄새나는 똥자지 하나 믿고 우월한 수컷 민탑기 님께 까불어서 죄송합니다’.”

“냄새나는 똥좆……. 똥자지 믿고 우월하신 민탑기 님한테 까불어서 죄송합니다.”

“‘찌질한 돌대가리에 독기만 남은 유통기한 초과 밑바닥 수컷으로서 앞으론 우월하신 민탑기 님의 충실한 하인이자 장난감이자 영원한 노예가 될 것을 맹세합니다’.”

“뭐라고? 너무 길어.”

“맹세합니까?”

“네.”

“진짜?”

“어. 진짜 넌, 내가 네 후장만 땄다면 봐라.”

“자, 마지막으로 전방에 애교 발사.”

“뭐가.”

“발사.”

“어떻게 하라고.”

“귀엽고 깜찍하게.”

“변태냐?”

“인제 알았어?”

“내가 애교 부리는 게 보고 싶냐?”

“응.”

“그게 왜 보고 싶은데. 더럽게.”

“자기가 애교 부리면서 수치스러워할 거 같으니까.”

“아.”

“시작.”

지수가 기분 좋을 때나 날 구워삶을 때 애교 섞은 말투와 행동을 한 적은 종종 있었다. 대부분 가벼운 스킨십을 동반한 눈빛 공격이나 사랑스러운 투정이었다.

하지만 어린 남자가 지수에게 바라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지수는 어린 남자의 주문처럼 대놓고 체통 없이 추태를 부린 적은 없었다. 그럴 성격이 못 됐다.

“나빴어, 나빴어. 이만―큼 나빴어. 지수 삐졌어. 여기 호 해줘. 고추 아야 해.”

“프픕. 그대로 이어서 댄스 타임 큐!”

“댄스 타임, 엉덩이 댄스, 씰룩씰룩. 트워킹. 헉헉. 섹시 댄스. 겨드랑이 냄새 뿡뿡. 좆 털기 댄스, 불알 떨렁떨렁. 예! 학, 하악…….”

“큭큭. 악, 칵칵!”

“후욱, 후웃. 됐냐?”

“하란다고 진짜 하네.”

“하라며!”

지수가 창피한 듯 씩씩거렸다. 어린 남자가 지수를 따라 하며 놀려먹었다.

“나빴어, 나빴어?”

“…….”

“그거 하면서 무슨 생각 했어?”

“그거 하면서 뭔 생각을 해.”

“왜 이렇게 잘해, 근데. 자괴감 안 들어?”

“…….”

“자기 너무 귀엽다.”

가볍게 입 맞추는 소리가 연달아 쪽쪽 울렸다. 어린 남자가 지수를 붙잡고 뽀뽀를 상으로 내리는 듯했다.

“얼굴 시뻘게진 거 봐. 그렇게 수치스러워?”

“수치스러워.”

“그럼 성공이네.”

“죽을래?”

“괜히 그러지, 또. 태어나서 한 번도 애교 안 부려본 사람처럼.”

“안 해봤어. 이걸 왜 해?”

“거짓말할래? 오래 만난 애인도 있으면서 안 해봤다는 게 말이 돼? 내 앞에서 내숭 안 떨기로 했지. 기억 안 나? 자기 혼난다.”

“아! 진짜 안 해봤다고. 나 남자야.”

“남잔데 어쩌라고. 이 형한테 그런 거 안 해줬어?”

“당연하지.”

“왜?”

“그걸 왜 하냐고. 네 친구들은 그러고 노냐?”

“자기 친구들은 그러고 안 놀아? 그럼 뭔 재미로 사귀어? 왜 사귀어? 떡이나 그냥 존나 쳐?”

그렇게 가식적인 추태 같은 거 안 부려도 우리한텐 우리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어린 남자가 지수의 대답 따위 필요 없다는 듯 덧붙였다.

“내 앞에서 첨 해본 거면 나 평생 못 잊겠네.”

“너, 씨…….”

“그렇게 억울하면 자기도 시키든가. 난 자신 있는데?”

“해봐.”

“뀨? 뀨웅? 귀엽지. 사랑스럽지? 꾸웅, 끼유웅? 탑기는 귀여운 척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귀엽게 태어난 건데. 냐냥, 항냐옹. 내 매력에 쓰러질 거 같지? 죽어라, 얍! 응아앙.”

“……미쳤구나?”

“응? 근데 왜 귀까지 빨개져?”

“무, 뭐가.”

“고개 왜 돌려. 봐봐. 일로 와봐. 어허.”

“절로 가.”

“와. 큭큭! 뀨웃? 이게 좋아? 냥, 냐옹. 면상 익었네, 익었어.”

“왜 까불지.”

“악!”

“까불지 말라 했지.”

“아파……. 히잉…….”

“우리 탑기 많이 아파?”

“응. 자기 땜에 나 지금 여기 아야 해.”

“넌 좀 아파도 돼.”

“큭큭큭!”

“난 너 땜에 심장병 걸리겠어.”

“그래도 좋지?”

“…….”

“그래도 나 좋잖아. 맞아, 아니야.”

“7년 만난 얘보다 훨씬 좋아.”

“헐, 이 형 알면 상처받겠다……. 불쌍해.”

“그니까 인제 네 안에 내 흔적 좀이라도 남기게 해줘.”

“똥구멍 안쪽에다 고추 껍질 비비게 해달란 말을 되게 멋있게 한다.”

“킥. 이쁜아. 아무리 생각해도 나랑 너랑은 완벽한 커플 같다. 어이구, 민탑기 이쁜 놈. 진짜 확! 깨물어 죽일까.”

“민탑기로 삼행시 해봐. 웃기면 넣게 해줄게.”

“갑자기?”

“민.”

“……민탑기.”

“탑.”

“탑인 척하지 마.”

“기.”

“기갈텀아.”

“풉! 크극극, 그핫핫핫!”

둘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따가운 눈꺼풀 틈에 뜨겁고 짠 물이 뱄다.

“너 웃었다. 웃은 거다.”

“인정. 자, 어디 내 단추 한번 풀어봐.”

“네, 네 다, 단추……?”

“응.”

“…….”

“벗으라고 아까부터 개지랄 발광 떨더니 단추 풀라니까 갑자기 얼고 그래.”

“이렇게……?”

김지수가 침을 넘기는 소리가 너무 컸다. 매번 듣지 못하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자기야, 잘해봐. 혹시 알아? 내가 자기 좆맛에 미쳐서 쭈그렁바가지 될 때까지 여기서 자기 좆빨이 노릇할지?”

“허. 허허. 탑기야.”

“응, 자기야.”

“넣을게.”

지수가 부드러운 얼굴 가득 서글서글한 미소를 잔뜩 묻힌 채 어린 남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때 내 가슴에 사랑의 꿈을 싹틔운 바로 그 모습이었다.

지수가 순박하게 말했다.

“형이 처박기 좋게 다리 활짝 벌려서 잡고 똥구멍 각도 딱 맞춰.”

“응, 자기야. 이렇게? 이럼 돼?”

“하아! 탑기야? 네 밑에, 진짜, 너무…….”

“너무?”

“구찌다. 이건 뭐 오션뷰도 아니고 리버뷰도 아니고 너만을 알러뷰다.”

“나 구멍이 너무 춥고 허전해. 빨리 들어와서 덥혀줘. 밤새도록 내 엉덩이 때리고 나 기절할 때까지 박아줄 거지?”

“패 죽여줄게.”

그만.

놀이시간은 끝났다.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난 애인이 내 눈앞에서 딴 자식 엉덩이 깊숙이 꽂고 흔드는 꼴까지 참아줄 성인군자가 아니었다. 몸을 일으켰다.

“끕.”

아니, 일으키려고 했다. 그런데 손가락 하나조차 까딱하지 않았다.

왜?

“븍. 읍?”

몸이 말을 안 들었다. 가위눌린 듯 끔찍한 기분이었다.

“겍. 욱.”

하지 마! 넣지 마! 안 돼! 김지수!

야―!

소리를 몇 번 낸 것 같은데 왜 둘은 듣지 못할까. 나 혼자만의 착각인가?

마비된 곤충같이 움직일 수 없었다. 뒷덜미가 얼음처럼 차게 얼 뿐이었다.

난 정말 죽었나. 아니면 불구가 된 건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 애인인 지수를 딴 남자한테 빼앗길 순 없었다.

지수의 ‘전 애인’이 되기 싫었다. 비참하게 버림받고 싶지 않았다.

“그윽.”

소리 내. 손을 뻗어. 제발, 내 애인이 날 볼 수 있게.

지수야, 날 봐. 그 애 말고 여기 네 애인을 한 번만 봐. 내가 네 진짜 애인이잖아.

김지수……!

그때였다.

“하강그앗악……! 자기야?”

어린 남자가 원숭이처럼 흉하게 다리를 연 채 지수를 받아들였다. 극대 좆뿌리를 어리고 연한 항문으로 꿀떡꿀떡 삼켰다. 빨간 얼굴을 찌푸렸다.

그 광경을 본 순간 뱃속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온몸에서 진이 빠졌다.

줄곧 동아줄 잡듯 처절하게 붙잡고 있던 지수를 향한 믿음이 흩어져 주워 담을 수 없었다. 내 애인의 사랑으로 그간 군데군데 바르고 빚어 소중해진 나 자신이 깨져 죽었다.

무언가가 손가락 사이 모래처럼 빠르게 달아났다. 물거품같이 꺼져서 온데간데없었다.

“하아, 흣윽……. 아기 안 아프지?”

“흣, 흥. 응. 아니, 아파. 쪼끔……?”

“이러고 가만있을게. 이쁜아, 인제 괜찮지? 나 봐봐.”

“으응……. 아어앙…….”

김지수.

널 용서하려고 했다. 날 맘 상하게 한 네 잘못쯤 몇 번이고 덮어주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보는 앞에서 다른 사람을 안지 않았으면, 최소한 이곳이 아니라 옆 방에 기어들어 가서 불장난을 저질렀으면, 난 나쁜 네가 끝내 날 안아주기를 바랐을 거다.

그런데 인제 자신이 없다. 오늘이 세상의 종말인 것처럼 널 사랑할 기력이 없다. 너한테 상처받은 적 없는 사람처럼 널 제대로 맞대할 용기가 없다.

네가 미울 때가 나았다. 네가 아닌 내가 밉다.

나 혼자 억울한 게 나았다. 탓할 대상을 찾지 못하겠다.

처음부터 난 너한테 맞지 않는 사람이었나.

그럼 왜 내 손을 잡았어. 왜 함께하자고 했어.

왜 내 전부를 네게 바치게 했어. 그러고 나면 몽땅 버려버릴 작정이어서?

“천천히 움직일게. 아프면 얘기해. 흣…….”

“응……. 아앙, 자기가 젠틀하게 해주니까 긴장 풀렸나 봐. 인제 하나도 안 아파. 고마워, 자기야. 흐핫? 투흥……!”

“탑기 넌, 누구랑 다르게, 말 한마디를 해도……. 그렇게 예쁘게 하냐. 허윽, 허읏. 지금 어때. 싫어?”

“하앙, 아응! 좋아, 너무 커! 흐응. 자기가 나 소중하게 대해주고, 부드럽게 박아주니까, 나 진짜 사랑받는 자기 애인 된 기분이야. 우흥.”

“너 내가 사랑하는 내 진짜 애인 맞아. 너 나한테 소중해. 하으욱! 탑기야. 내가 어떻게 해주면 돼. 내가 어떻게 하면 내 진심 알 것 같은데. 어?”

“아앙! 내 거, 손에 잡아줘. 잡고 주무르면서 키스해줘. 아알, 여기 혀 넣어줘. 응? 하읍! 하를, 아랄…….”

“츱, 춥! 후르륵. 할랄랄…….”

“응, 웃. 자기 혓바닥 너무 맛있어. 자기 침 더 줘.”

“어? 어떻게…….”

“아, 이 안에 길게 떨어뜨려 줘.”

“질질 흘리면 돼? 흣, 헙.”

“앙아알……. 하알츗.”

“흐우, 흐웃. 어버……. 쩝, 쯧.”

“흐응, 하으응! 읍, 급읏. 읍걱. 하앙, 맛있다. 나 목말랐는데. 으흥!”

“하아, 아! 넌 진짜 최고야. 윽! 허엉, 허아앙……!”

“나 이뻐? 항! 앙!”

“하나도 안 이뻐.”

“……뭐?”

“넌 이쁘면 안 돼. 절대. 크헉! 크훗.”

“뭔 소리야. 씨발 짜증 나게, 지금.”

“나만 좋아해야 되니까. 학, 카학……!”

“……큭.”

“그니까 다신 이쁘지 마.”

“촌스러워. 흐앙, 느하앙……!”

“훗, 틋. 그래서 싫어?”

“응나항? 흥긋, 나쁘지 않아. 응흣, 긍. 재밌어. 끙! 거기 더 해줘. 방금처럼 꾹꾹……. 눌러줘.”

“긍아, 하앙……. 따듯해. 네 안쪽은 왜 이렇게 오동통하고 폭신폭신하냐? 변대훤 쟨 복근도 없어서, 넣으면 넣는 대로 배때기 똥뱃살 불룩불룩 튀어나오는데. 넌, 읏! 복근이 빨래판처럼, 좆대가리 북북 비벼줘서 느낌 개 좋아. 아……. 크헝? 여기 이거지? 툿, 흐읍!”

“맞아! 흥냐앙? 킁후응……. 좀 더 왼쪽, 응가항! 탑기 응가할 거 같아. 하아앙!”

“해. 하윽! 푸지게 쏟아줘.”

어디다 푸지게 쏟으란 소린데. 우리 집에? 너랑 내 거실 바닥에?

“짓, 응! 진짜 그래도 돼……?”

“당근 밧데리지. 네 똥 나한텐 하나도 안 더러워.”

“자기 멋있어. 멋있고, 앗! 맛있어. 흥. 흣, 자기 거 보자마자 갖고 싶었어. 만지고, 입에 넣고 빨고, 내 엉덩이 사이에 깊숙이 박고 쑤시고 싶었어.”

“큿, 후? 후윽, 진짜야?”

“좆이 얼마나 크면 배 안이 이렇게 꽉 차? 응? 아하앙, 이만큼, 흣우! 만족스러운 크기, 잘 없는데. 하앙, 하?”

“네 히프가 더, 극. 흐으……. 만족스러워. 네 둔부 본 떠다 실리콘으로 뽑아서 박물관에 전시해놓고 싶어. 헉, 허어…….”

“응, 하앗! 자기……. 박물관 가본 적은 있어?”

“어?”

“자기 더, 더 빨리. 하윽? 그렇게, 깊게 넣어줘. 아악! 하잉, 멈추지 마……!”

“후, 훗. 틋. 긱, 힉. 흥업……!”

“덜덜, 흐악? 떨어. 덜덜 떨어!”

“이렇게? 헉, 켁, 극, 흣, 응! 이럼 돼? 히야아압!”

“능아하응앗!”

어린 남자한테서 수줍음이나 괜한 내숭, 지수가 알아서 해주기만 기대하는 태도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응가할 것 같다느니 덜덜 떨라느니 하는 건 좀 심하지 않나.

저질스러운 태도에 내가 다 민망했다. 하지만 지수는 어린 남자의 깜찍 발칙한 면모에 정신을 못 차리는 듯했다.

아니, 그냥 완전히 뻑이 갔다고 표현하는 편이 정확했다.

화가 났다. 이를 부득부득 갈아 이뿌리가 흔들릴 정도였다.

두 사람이 무미건조하고 정상적인 ‘보통 섹스’를 하는 중이었다면 이 정도로 화가 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더럽고 죄받을 말만 골라 섞었다. 그러다 달콤한 애정의 말을 서로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런가 하면 얼굴색을 바꾸고 상스러운 욕지거리를 서로에게 가차 없이 퍼부었다. 기어이 깔깔대며 실성한 듯 웃어젖혔다.

그래서 더 역정이 났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내가 아닌가. 그런데 그 자리를 저 애가 나타나 꿰찬 것 같았다.

아니, 태초부터 저 애를 위해 마련된 자리를 내가 그동안 임시로 맡아온 듯 처참한 기분이었다. 저 애한테 넘겨주고 이만 퇴장하라는 것 같았다.

“아읏, 하앗……. 탑기야, 장난 그만 쳐. 아! 너무 쪼여. 좀만 풀어주라. 어? 형 좀 봐줘. 앙! 하아……!”

지수는 내게 너무 조이니 풀어달라고 요구한 적 없었다. 오히려 불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내 아랫배에 주먹질하며 함부로 장을 짓이기곤 했다.

잘생긴 저 애의 분홍빛 항문은 아름다운 데다 비좁기까지 한 모양이었다.

이치에 맞지 않았다. 난 평생 내 부끄러운 곳을 지수 단 한 명한테만 허락했는데, 아무리 어린들 몸을 얼마나 굴려댔는지 가늠조차 안 될 만큼 되바라진 사내애의 그곳보다 헐겁다는 게 말이나 되나.

“오어, 화아윽! 너 존나 좁다. 허아……. 전 애인 똥구멍에 좆질할 땐 존나게 헐렁헐렁해서 동영상 틀고 해도 싸기 힘들었는데. 네 거에 넣으니깐 바로 신호 온다.”

“큭. 진짜? 저 형?”

“어. 이 쫄깃한 고깃구멍이 인제 내 거란 거 아냐. 너한테 질리기 전에 확 다 찢어 따먹고 버려야 되는데. 아, 꼴리네…….”

“풉! 안 질리기만 해라. 흥하앗……?”

“민탑기. 네 다리 사이, 여기 싱크홀 뻥 뚫려서 평소에도 똥 질질 새기 전엔 나랑 못 헤어지는 줄 알아라.”

“병신. 왜 지랄이야? 아앙! 앙……!”

“언놈 좋으라고 이런 구멍을 그냥 보내.”

나랑 할 때보다 어린 남자랑 할 때 훨씬 좋은 걸까. 지수가 거짓말하는 거라면, 어린 남자를 추어올리고 날 깎아내려서 환심을 사려는 걸까.

그보다, 전 애인? 지수가 말실수한 거겠지?

“아, 씨! 벌써 쌀 거 같아. 안에다 눈다?”

“장난? 싸기만 해.”

“그러면 쬐지 말고 똥꼬에 힘 빼. 확 다 벌려서 잡아 뜯어버리기 전에.”

“김지수, 넌……. 힝! 듯, 진짜 싸면 뒤질 줄 알아라.”

“탑기야. 형이야…….”

“형.”

“왜.”

“형 맘대로 싸면 오늘 형 제삿날이에요. 싸도 된다고 할 때까지 참아요.”

“아니, 하! 어떻게 참아. 으흥, 으항앗……! 크흑. 탑기야. 존―나 좋은데 그냥 싼다? 싸도 되지?”

“아니. 안 돼. 흐응……! 그항, 거기!”

“……여기?”

“아앙, 자기야! 나 죽어……!”

“너 말고 내가 죽을 거 같아. 흐웃! 넌 뭔 괄약근이 배 속에까지 연결돼있냐?”

“그 새끼들이, 나랑 헤어지고 나서도, 심심하면 연락하는 이유를 좀 알겠지? 아응? 나흥!”

“아! 싫어. 민탑기 내 거야. 네 안에 나만 쌀 거야. 이 구멍에, 나만 박을 거야. 뚱뚱한 엉덩이 이거 나만 쓸 수 있어. 허읏…….”

“하응, 나 안 뚱뚱하거든? 앙!”

“근데 너 그 새끼들이랑 연락하냐? 어? 야. 나 봐. 연락받아주지 마. 씨팔 걸리기만 해라.”

“그럼, 읏흥……! 싸지 말고 좆구멍 처막아. 못 참고 질질 흘리면 나 그 새끼들 만나러 간다? 응히앙!”

“상놈이……. 익, 긋, 힉, 억. 극!”

“하악? 아파. 아파! 찢어져……!”

“남자 새끼가 엄살은. 다시 짖어봐. 어딜 간다고?”

“흥, 핫, 학! 긍, 잦, 자기가, 좆, 조루처럼 찍 싸면……. 그 새끼들 일로 다 불러서, 출장 뷔페 차릴 거야. 자기 보는 앞에서, 한꺼번에 다 따먹을 거야.”

“씨팔놈아, 만족시켜줄게. 어? 허! 만족시켜주면 될 거 아니야. 하, 허억? 컥!”

“항, 헝! 자기야, 전립선 터져. 좀만 살살, 좀만 천천, 앙! 더 해줘, 더……!”

“허억, 허윽, 핫? 타흑……! 아앙, 탓? 탑기야……!”

나랑 할 땐 저렇게 정신 놓고 소리 지른 적 없으면서. 돼지처럼 숨넘어갈 듯 컥컥대고 내 이름을 간절하게 부르짖은 적 없으면서.

내가 아닌 저 애라서 지수를 저만큼 흥분하게 한 거겠지. 나 같은 거보다 저 애가 훨씬 어리고 몸 좋고 잘생기고 무엇보다 그곳이 좁으니 당연한가.

왜 난 저 애처럼 매력적이지 못할까. 왜 내 항문은 저 애 것보다 헐거울까. 내 나이가 더 많아서일까?

내가 저 애보다 어리고 싱싱했다면 지수는 저 애보다 날 더 사랑해줬을까? 저 애랑 바람피울 시간에 더 자주 날 안아줬을까?

어쩌면 지수가 원하는 여러 가지를 미리미리 눈치채고 채워주지 못한 내 잘못 아닐까? 지수가 동해서 날 안아줄 때까지 마냥 기다릴 게 아니라 필사적으로 지수를 붙잡고 욕망을 주고받아야 했나?

연상의 애인으로서 한 발짝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고 어떻게 하면 지수의 관심을 끌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당사자에게 구걸해서 알아내야만 했나?

지수가 바라는 게 잘생긴 얼굴이나 큰 키라면 수술 상담쯤은 받아보았을 것이다. 저 애처럼 귀엽고 섹시하게 교태부리길 주문했다면 틈날 때마다 맹연습을 했을 것이다.

완벽한 몸매를 원한다면 죽어라 웨이트 트레이닝에 전념할 준비가 돼있다. 그렇지 않아도 헬스클럽에 재등록하려는 참이었으니까. 괄약근 단련은 왜 제때제때 해놓지 않았을까.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돌이켜보니 일이 이렇게 된 건 다 내 탓 같았다.

내가 잘했더라면.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쓸데없는 수치심은 내려놓고 사랑하는 애인보다 앞서서 용기를 냈더라면.

지수를 적극적으로 붙들고 매달렸더라면.

……김지수, 개만도 못한 놈. 사람 같지도 않은 새끼.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내가 이때까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너 하나를 위해서 그동안 얼마나 참고 견디고 노력해왔는데.

내 마음이나 기분 따윈 제쳐두고 오직 네가 행복하고 편안한 길만 궁리하면서 그렇게 해주려고 매번 매 순간 애쓰고 살았는데. 평생 너한테 해주고 또 해주는 게 내 삶의 목표고 하나뿐인 꿈이었는데.

네 행복을 위해 존재하고 싶었는데. 그냥 이대로 내 곁에 우뚝 서서 내가 모아다 주는 사랑과 희생을 받아 멋있고 행복하기만 하면 되는 넌데.

그런데도 다른 누가 더 필요하니. 내 면전에서 날 이렇게 산산조각 낼 만큼 저 애가 너한테 그렇게 크고 대단하니.

네가 나한테 뜨겁게 타는 애정을 부어주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런 건 아주 예전에 짧은 시절이나마 받아봤으니까 더 욕심내지 않았다.

그저 어제처럼 그제처럼 변함없이 나랑 살아주는 것으로 족한데. 그런데도 날 자근자근 밟아 으깨야 속이 시원하니.

지수야. 김지수.

나 자는 거 아니야. 멀쩡하게 다 보이고 다 들린단 말이다. 그니까, 제발 그만…….

“……?”

그때였다. 어린 남자가 눈을 키웠다.

“……!”

숨이 멎었다. 어린 남자가 나와 시선을 마주친 순간 거짓말처럼 낯빛을 바꿨다.

내가 의식이 있다는 것을 인제야 알아차린 듯했다.

오냐. 일어났다. 어쩔래, 이 자식아.

지수한테 알리고 비로소 추잡한 짓을 그만두겠지. 네가 아무리 어려도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부끄러운 줄은 알 테니.

그런데 어린 남자가 씩 웃었다. 날 향해 두 눈을 회까닥 까뒤집고 혓바닥을 쭉 내민 채 헥헥거렸다. 몸뚱이를 정신 사납게 양옆으로 흔들어대기까지 했다.

뭐 하는 거지? 사람 놀리나?

악마인가?

어린 남자는 기괴한 짓을 하고 나서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도리어 경박한 신음을 더욱 높였다. 내 시선을 끈질기게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눈싸움이라도 하자는 본새였다. 어린 남자의 낯이 살굿빛으로 익었다.

남자의 더운 연주황 피부와 뚜렷한 이목구비가 남자를 한층 스스럼없고 음란해 보이게 했다. 나보다 한참 어린 남자앤 내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지어본 적 없는 표정을 양껏 지어젖히고 있었다.

보는 이가 더 민망하고 불편할 만큼 느슨하게 풀어헤친 표정이었다. 너무하리만치 숨김없어서 보는 이에게 두통과 어지럼증을 불러일으키는 얼굴이었다.

이 순간만큼은 누구에게나 너그러워서 결코 ‘싫다’는 말 따위 하지 않을 아이처럼 보였다. 세상천지 제일가게 헤픈 사내애 같았다. 익다 못해 물크러진 열대과일처럼 마냥 달기만 할 듯 보였다.

“흥, 응……. 읏, 윽!”

어린 남자가 오줌을 참듯 눈을 살짝살짝 찌푸릴 때마다 시선을 되받아치기가 더 힘들었다.

그만 봐.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내가 지수한테 안길 때도 저런 표정일까. 분명 저 애보다 훨씬 어색하고 못생겼겠지.

어린 남자가 날 보고 자꾸만 실실 웃었다. 남자가 조금이라도 미소를 지을 때마다 남자의 눈이 어김없이 화려한 반달로 휘었다. 눈 아래 와잠이 보기 좋게 도톰했다.

저 눈웃음에 지수가 홀딱 반했을까. 누구든 호의로 응하지 않을 길 없는, 예쁘고 야한 눈웃음이었다.

어린 남자가 섹시하게 인상을 쓰고 아랫입술을 깨물 때마다 다시 눈웃음쳐주기만을 학수고대하리만치 사람 후리는 눈망울이었다. 마법의 우물 속처럼 새까맣고 촉촉했다.

“형, 나……. 앗, 흥. 정자, 윽. 나올 거 같아요.”

어린 남자가 나와 눈을 마주 본 채 말했다.

‘형’이란 지수를 부르는 말일까, 아니면 날 일컫는 말일까.

“형이 보는 앞에서……. 흑, 훗! 씨랑 국물, 쏟을 거 같아요. 아흐읏, 형네 집 바닥, 하앙? 바닥에다 싸도 돼요? 형이 내 자짓물 닦아줄 거죠? 형 걸레질 잘한다면서요. 큭.”

지수가 어린 남자에게 답하듯 고통스러운 신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허릿짓에 박차를 가했다.

어린 남자가 한없이 기쁜 얼굴로 턱을 쩍 벌리고 날 눈으로 집어삼켰다.

“형……? 나 좆변태 새끼같이 형 쪽으로 자짓물 쏘면서 가도 되죠? 쳐, 응! 쳐다봐 줘야 돼요. 하읏! 나 높이, 멀리까지 되게 잘 쏴요. 흐훗, 허하앙. 절대 실망 안 할걸요. 아흥, 아하흣……!”

도대체 왜.

“형? 흐윽? 하엉엇!”

눈을 감았다.

“아흥, 흥아흥? 나 봐줘요, 왜……! 흥하앙갓!”

“어? 헛, 헉. 허억!”

“자기, 흥! 말고. 항, 킁하앙흣……!”

“뭐? 억! 하으그욱.”

어린 남자와의 눈싸움은 내 패배로 막을 내렸다.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

눈싸움조차 지다니. 꼬리를 만 개새끼라도 된 것처럼 비참한 심정이었다.

이보다 초라한 남자가 있을까. 상상 속 나 자신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못생기고 꾀죄죄했다.

어린 남자는 날 비웃는 중일까. 두 사람의 정사를 여태껏 훔쳐보고 훔쳐 들은 내가 음침스럽고 징글맞을까.

이런 볼썽사나운 모습을 들키고 나서도 지수의 애인이나 되는 주제에 찍소리 한 번 못 내고 가만 누워있는 내가 얼마나 한심스러울까. 나 같은 놈이 지수 애인이란 사실을 알고 지수한테까지 실망했는지도 모른다.

나한테 애인 자격이 있을까. 지수 아닌 그 누구의 애인도 될 자격 없는 것은 아닐까.

가장 부끄러운 건, 이 순간에마저 차라리 어린 남자가 우릴 가엾게 여겨 이 모든 상황을 끝내주길 기대하는 내 못난 속마음이었다.

죽고 싶었다.

“하읏, 하앙, 하앗, 드핫…….”

“허흑, 허윽! 탑기야. 사랑해. 하아욱, 걱! 씨파알……. 허응흑! 나 진짜 너 사랑해.”

“좀…….”

“어? 허아!”

“절로 가. 나 갔어.”

“난 아직인데?”

“내 담배 어딨어? 내 거 갖고 와.”

“탑기야, 내 자지 봐봐. 형 거 봐줘. 헉, 크훗……! 존나 딴딴해. 하앙, 커흑! 형 허리에 다리 감아줘. 어?”

“빼.”

“…….”

“아! 더워. 씨…….”

“……그럼 난 언제 가?”

“표정 봐. 큭큭. 담배!”

“여기. 주려 하잖아.”

“저 형은 담배 뭐 피워? 나 그냥 저 형 거 피울래.”

“쟤 담배 안 피워.”

“왜?”

“쟨 담배 피우고 술 마시면 병 걸려 뒈지는 줄 알아.”

“진짜? 착하네. 불.”

“……자.”

“자기야. 시간 많아. 뭐가 그렇게 급해.”

“네 안에 싸고 싶으니까 그러지.”

실눈을 뜨고 두 사람을 흘겨보았다. 어린 남자가 인어처럼 음탕한 자세를 취한 채 지수를 유혹하듯 스스로 만지고 쓰다듬는 중이었다.

지수가 괴뢰같이 넋을 놓고 서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감탄 섞은 헛웃음을 내뱉고 얼굴을 몇 번이나 쓸어내렸다.

가슴이 아릿했다. 명치가 아프게 죄었다. 어째서인지 두 사람이 너무 가깝고 친해 보였다.

내게는 끔찍한 오늘이 두 사람에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았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다 피웠어?”

“응.”

“일로 와. 키스하자.”

“나 물.”

“……후.”

내 옆을 거칠게 지나치는 지수의 발소리에 눈을 흠칫 감았다. 정수기 물 받는 소리가 났다.

처음 우리 집을 꾸밀 적에 마련한 정수기였다. 물을 담은 컵 또한 내가 내 애인을 향한 연심으로 고른 이 집의 모든 살림살이 중 하나일 터였다.

어린 남자가 물 마시는 소리는 예상외로 요란치 않았다. 점잖고 조용했다.

“그만 마셔.”

“뭐?”

“나랑 키스해.”

“아, 왜……. 읍, 웃.”

“츳, 하. 입 벌려. 어? 탑기야, 제발……. 새끼야, 말 좀 들어. 너 너무 맛있단 말이야.”

“하응을……. 응웁, 츳.”

“헉업, 흐룻. 하앙알, 흥업……. 맛있어. 더 줘. 혀 내밀어. 하아, 하읍. 읍걱.”

“냐아할르흥……. 냘훗, 틋툽.”

이 모든 게 다 내가 원해서 일어난 일은 아닐까. 이를테면 엘리베이터 고장 같은 불시의 사건ㆍ사고를 내심 기다려온 게 사실이니까.

언제부터였지. 아마 우리가 함께 있는 시간을 차츰 침묵에 빼앗기고부터였다.

생기 있는 네 모습을 되찾고 싶었다.

난 오죽하면 너랑 생사의 갈림길에 서길 기도하곤 했다. 아주 험한 데 등산하러 가서 조난한다거나 우리 아파트가 폭삭 무너져내려 딱 죽기 직전까지만 너와 시멘트 틈에 갇히길 바랐다.

비행기 추락 사고의 생존자나 무인도 표류기의 두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너와 고무배에 타고 태평양 한가운델 헤매고 싶었다.

현실성이 너무 없다면 아쉬운 대로 무전여행이나 국토대장정에 도전해서 우리 발에 난 왕물집을 터뜨리고 서로 약을 발라준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상상했다.

적적해진 너와 나 사이에 무시무시한 벼락이 떨어지기를 원했다. 죽음을 코앞에 둔 극한의 상황에 드디어 처음처럼 서로한테 온전히 의지한 채 우리 깊은 사랑의 힘을 만끽하고 싶었다.

시리게 서먹한 일분일초가 쌓아 올린 팔 년의 빙벽을 허물고, 언젠가 한때 소중하다는 듯 날 내려다보던 네 별 같은 눈빛을 다시 한번 보고 싶었다. 세상 모든 언론이 앞다투어 실으려고 할 만큼 대단한 얘깃거릴 공유한 채 같이 나이 들고 싶었다.

그렇게 엄청난 새 추억이 생기면 더욱더 서로를 등지고 싶지 않아질 테니까.

그간 모아둔 8년분의 추억 또한 하나하나 꺼내서 얘기하자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만큼 많지만, 다 너무 오래된 것뿐이라서 더는 널 재밌게 하지 못하니까. 조금은 어른이 돼버린 우릴 어린아이처럼 들뜨게 할 신상 추억, 그것도 리미티드 에디션을 갖고 싶었다.

‘사랑의 힘으로 천재지변 극복하기’에 도전해 당당히 성공을 거머쥐는 커플이 되고 싶었다. 황금 우승컵같이 뻔쩍거리는 새 추억을 너와 내 가슴 한가운데 보란 듯 장식하게 되길 기대했다.

다만 내가 바란 사건ㆍ사고는 이런 게 아니었다. 제삼자는 필요 없었다.

“형, 나 지수 형 거야? 응? 하응, 응아핫……!”

“어. 넌 내 거야. 네 몸뚱어리도 인제 내 거니까 튕기면 죽어. 앞으론 싫다고 하면 처패서 기절시키고 박는다.”

“그러든가……. 근데 자기야.”

“어. 하아, 허!”

“그럼……. 흣! 저기 저 형은 누구 거야? 흥핫, 응훗……!”

“쟤도 내 거라니까. 쟨 원래 내 거잖아.”

“나도 형 거고, 저 형도 형 거야?”

“어. 당연하지. 너희들 둘 다 내 거야.”

“아깐 나 사랑한다며.”

“사랑해. 구라 같아? 이래도? 이래도?”

“아항, 하응앗! 좋앙, 아흐앙……!”

“좋지. 네가 좋아해야지 안 좋아하면 어쩔 건데. 앞으로 여기서 내 좆이나 맨날 받아야 되는데. 좋아 죽어야지.”

“자기야, 그럼, 앙! 더…….”

“어? 헛, 헉! 더 뭐. 학!”

“하아앙? 더 빨리 처박아, 병신 같은 새끼야. 응아, 응앙! 다 늙어빠져서 좆질 하나 제대로 못 해?”

“뭐가, 뭐……?”

“큭큭. 뭐 이 병신새끼야.”

“민탑기 너……. 미쳤어? 허억, 허어!”

“나 미친 거 인제 알았어? 알았으면 얼타지 말고 허리나 빨랑빨랑 처흔들어 재껴, 할아버지 새끼야.”

“그만, 하아윽! 그런 말 하지 마. 네가 그러니까……. 나, 싸, 쌀 거 같아! 힉?”

“끙앗……! 자기야, 나도. 응훗, 응헉. 나 또 쌀 거 같아!”

“벌써? 헛, 훅. 네가 젊긴 젊네. 좋았어! 잇, 힉! 긱. 에라잇! 에루화―!”

“자기야, 나 죽어……!”

“같이 죽자!”

“죽어도 좋아―!”

눈을 다시 뜰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수는 어린 남자의 둔부 가운데 성기를 끼우고 절정에 이를 때 무슨 표정을 지을까.

차라리 오늘 집에 오지 말걸. 본가에라도 하루 다녀올걸. 도어록 비밀번호를 바꾸고 문도 열어주지 말걸.

나한테 오늘을 바꿀 힘이 있었나. 오만인가.

내가 더 겸손해야 했나. 그러지 못해서 벌 받는 건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했을까. 앞으론 어떻게 살지.

“나 인제 어떡하냐? 어? 허, 하, 이 씨퍼얼……!”

“왜, 자기야……? 흥으훅! 응겍.”

“이대로 너한테, 후앙! 홀딱 빠져서, 못 헤어나면 어떡하지?”

“그럼, 후응! 그냥 인생 조지면 되지. 후아앙……!”

“허아, 그럴까? 그럼 돼?”

“응. 왜 안 돼? 힛, 후윽! 어차피 별 볼 일 없는 병신 같은 인생, 그냥 나한테 바쳐. 앙, 아항? 나 가! 또 가……!”

“하아, 그악!”

“응냐, 흥냐아! 훙으윽? 긍하아앙앗……!”

“나도 간……. 응힉? 야. 놔. 놔줘, 탑기야. 제발! 그힉? 끽……!”

“흐읏, 으후. 후읏, 드흥…….”

“놓으라고! 놓으라니……. 크후읏? 흐우응? 허윽, 허우?”

“흥. 흐흥.”

“나한테 왜 이러는데! 왜 또 못 가게 해! 난 언제 싸라고? 왜 싸지도 못하게 하는데!”

“하앙, 하아앙. 후……. 큭. 큭큭!”

“웃어? 넌 이게 재밌어? 사람이 괴로워하는데 좋아? 하아, 씨……!”

“자긴 싫어? 헤엣, 흐응? 싫어하는 거 같지 않은데? 겉으론 싫은 척해도 사실 좋지?”

“좋긴 뭐가 좋아!”

“내가 이렇게 자기 좆구멍 막아줘서 싸고 싶어도 못 싸고 변태같이 국물만 찔끔찔끔 흘리면서 지금 속으로 무지 짜릿해하는 거 다 알아.”

“아, 싸게 해줘……. 싸고 싶어. 어? 안에 들어갈래. 민탑기, 다리 열어. 잠깐만 집어넣자. 네 배 속에 내 씨 뿌릴래.”

“밭도 없는 데 씨는 뿌려서 뭐 해. 나 갔다니까? 안 꼴려. 식었어.”

“탑기야. 네가 형 좀 싸게 도와주라. 야, 너 내 애인이잖아! 대줘야지! 씨팔!”

“그럼 내 좆이랑 알이랑 후장 빨아줘. 자기가 존나게 박던 구멍 혀로 청소해줘.”

“또? 진짜 그렇게까지 해야 되냐? 왜 괴롭혀, 왜. 흐아악? 아파, 아파……! 알았어, 살려줫!”

“괴롭힌다니. 말이 좀 이상하네. 난 자기 행복하게 해주려고 그러는 건데. 첫발인데 그냥 쉽게 싸면 재미없잖아.”

“흣, 하아앙……. 만지지 마.”

“싫어? 안 싫잖아. 이렇게 해주면 기분 좋잖아.”

“항, 핫, 아흑. 빨아주면, 다시 넣게 해줄 거야?”

“응. 맛있게 잘 빨면 내 배 속에 자기 좆물 시원하게 싸게 해줄게.”

“못 빨면 못 넣어?”

“못 빨면 못 넣지. 잘 빨아야 넣게 해주지. 자기 잘 빨잖아.”

“나 잘 빨아?”

“준수해.”

“그게 뭔데.”

“괜찮게 빨아.”

“…….”

“우리 자기 못 싸서 힘들어? 눈퉁이가 맛대가리가 갔네. 한 발 뺄 생각밖에 없어 보이는 게 거의 뭐 가축 새끼가 따로 없는데? 나 자기 좋아지려 해.”

“좆부터 빨면 돼?”

“빨아. 뭘 물어봐.”

둘의 정사 장면은 참담했다. 어린 남자는 지수에게 자신의 성기를 목까지 삼키고 음낭을 싹싹 핥게 했다.

지수의 음경이 드나드는 동안 뒤숭숭하고 어지러워진 뒷구멍을 혀로 깨끗이 닦고 쏙쏙 파내어 청소하게 했다. 숫자 69 모양처럼 몸뚱어리를 겹친 채 한참이나 서로 항문을 파먹고 냄새를 맡고 코끝을 집어넣어 쑤셨다.

만족할 때까지 요구했다. 만족하면 추할 만큼 과격한 반응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그러고 나면 다시 맨 처음부터 되풀이하기를 원했다. 유탄 기관총처럼 지치는 법이 없었다.

절정에 도달하고 싶은 만큼 몇 번이고 마음껏 다녀오되 의무처럼 반드시 사정하진 않았다. 강약과 장단을 제멋대로 정하고 변주하고 조절하고 조정했다.

어린 남자는 내내 지수를 성 노리갯감 부리듯 착취하면서도 정작 지수의 정액은 배출하지 못하게 막았다. 지수는 초반에만 반항하고 성질을 냈을 뿐, 시간이 지나자 금세 익숙해진 듯 어린 남자의 명령에 재깍재깍 따랐다.

마치 기약 없는 약속을 철석같이 믿는 징역수 같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처음 목적마저 잊은 듯했다.

어린 남자의 무한한 성욕을 처리하는 가축 16호처럼 복종을 위한 복종에 열중했다. 16호라는 건 나만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럴듯했다. 어린 남자는 지수 앞에 열댓 명쯤은 우습게 데리고 있을 게 뻔했다.

남자는 마법사 같았으니까.

지수가 어떤 말과 동작으로 으르건 당황하거나 화내지 않았다. 심지어 패악을 부려도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마음에 없는 말을 던져서 지수를 하늘 높이 띄웠다. 그러다 진심이 우러난 한마디로 한 방 먹였다.

가장 천한 남자처럼 혀를 바삐 굴려 공손하게 아첨했다. 가장 귀한 남자처럼 게으른 눈으로 싫은 것은 거들떠보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칭찬하며 지수를 비웃고 욕하며 친밀을 다졌다. 지수의 뜻대로 다 할 것처럼 기만하고 뭐든 제 뜻대로 했다.

지수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지 않으면 울다가 웃다가 굽실거리고 아양을 떨었다. 깡패처럼 협박하고 폭력마저 서슴지 않았다.

지수를 쥐 잡듯 잡았다. 미치광이 짓을 벌였다.

잔뜩 겁먹은 지수의 품에 느닷없이 안겼다. 한순간 어린 소년처럼 변해서 지수의 심장 가까이 파고든 다음 아무것도 모르는 척 바보 멍청이같이 굴었다. 어눌하게 헛소리했다.

그러면 지수는 마법에 걸린 꼭두각시처럼 어린 남자의 뜻대로 하고 있었다. 어린 남자가 시시각각 기분과 모습을 갈아입는 통에 정신이 팔린 지수는 그저 정액을 싸고 싶단 욕구뿐인 것 같았다.

그리고 행복해 보였다. 지수는 어린 남자와 장난치고 놀고 어린 남자에게 놀림당하는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것이 틀림없었다.

어린 남자는 내가 거치적거린다는 듯 날 발로 차서 밀었다. 그 때문에 몸이 기우뚱 뒤집혔다. 둘의 모습을 보지 않으려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허학? 허하하구각……!”

어린 남자가 지수 위에 올라타서 오랑캐처럼 허리를 거칠게 흔들고 무거운 근육질 궁둥이를 퍽퍽 내리찍어 떡방아를 찧을 때야 비로소 지수는 사정을 허락받았다.

문제는 지수가 이제껏 몇 번이나 사정 금지당한 정액을 어린 남자 안에 울걱울걱 거하게 짜내고 나서도 어린 남자는 지수를 놓아줄 생각이 없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굵다랗고 튼튼한 구릿빛 허벅지로 지수의 허리를 콱콱 졸랐다. 꿈의 신소재 같은 항문으로 지수의 좆을 강력하게 붙잡고 쪽쪽 빨아들였다.

덩덕쿵덕 쿵덕쿵덕 철떡철떡 덩더꿍덩더꿍 찔꺽찔꺽 처덕처덕 잘깃잘깃 철퍽철퍽 휘뚜루마뚜루 볶아치며 이미 좆물을 토한 음경을 빼주지 않았다. 지수가 자신의 음경을 제발 꺼내게 해달라고 사정사정하는 소리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자비심 한 점 없이 고문했다.

“아깐 제발 넣게 해달라 그래 놓고 인제 와서 꺼내게 해달라고?”

“어! 꺼내줘. 꺼내! 흐아악? 히긱.”

“큭. 자기야. 나한테 한번 꽂으면 내가 배 채우기 전까진 못 꺼내.”

“악, 하악? 그허악! 탓, 탑기야, 살려, 살려줘! 제발……. 그이하악!”

“내 방둥이 안에 들어있는 이상 자기 좆 자기 거 아니거든. 내 거거든.”

“나 옥, 오옥? 오줌 싸, 오줌! 오고곡. 흐허앙악.”

“어허, 김지수. 칠칠찮게 사랑하는 동생 배 속에다 더러운 배설물이나 흘려댈 건 아니지? 응? 하아, 하아앙……!”

“그훅. 극, 그르럭…….”

어린 남자의 다리는 살상 무기나 다름없었다. 돌처럼 딱딱한 허벅지 탓에 지수의 옆구리에 붉으락푸르락한 멍 자국이 즐비했다.

“자기는 오줌싸개네. 그 나이에 오줌 하나 못 참으면 안 창피해?”

“허엉, 헝, 흐엉억……. 금, 아! 그만 쌀래. 힘들어. 허으욱.”

“그래도 안 봐줘. 자긴 오늘 내 거야. 내 남자야. 그니까 내 맘대로 할 거야. 크큭. 응냐, 응냐항……!”

“밥, 보. 나, 바보, 밥보 돼…….”

어린 남자가 별안간 표정을 뻐덕뻐덕 구겼다. 미남을 겁탈하는 괴수처럼 무시무시한 얼굴로 지수를 겁줬다.

지수가 어린 남자를 보자마자 가사 상태의 곤충처럼 꽁꽁 얼었다. 그러나 이내 경기를 일으키며 어린 남자에게서 벗어나려 하듯 퍼덕거렸다.

“흣? 힉? 표, 표정……. 뭐야. 놔. 아아! 그거 하지 마, 너 안 같아……!”

“크흣, 크큭. 으헤에엑! 무섭지? 크아아아아.”

“아아악!”

“나 사실 잘생긴 남자가 아니라 괴물이거든. 자긴 지금 괴물한테 속아서 따먹히는 거야. 흐힛, 괴물 똥꼬 맛 좀 봐라! 아흥, 아히잉! 으게에에헬―!”

“앙, 앙! 하읏. 야, 난 이쁜 민탑기가 좋아. 왜 그래. 아, 좀! 그러지 마……. 후으응!”

“안 돼. 히에엑! 으끼힉? 자기 나 사랑한다며. 내가 이렇게 변해도 계속 사랑할 거지? 히힉!”

“아니. 흐응! 싫어! 긍하앗……!”

“싫다면서 자지는 왜 더 커져? 왜 더 딱딱해지고 벌떡거려? 아하핫!”

“아앙! 아아앙! 긍붓, 푸부븟…….”

어린 남자는 뜨끈한 오줌을 윤활제 삼아 항문 깊숙이 품은 지수 좆을 빨래 짜듯 쉬지 않고 항문괄약근으로 주물럭주물럭 쥐어짰다. 그 바람에 어린 남자의 엉덩이와 지수의 좆뿌리가 맞붙은 곳에서 노리끼리한 오줌이 쫄쫄 흘러 어린 남자가 잘파닥잘파닥 맷돌질할 때마다 내 눈꺼풀과 입술까지 튀었다.

흡. 윽.

역겹고 뜨뜻미지근했다. 어린 남자가 몸 안에서 내보낸 액체를 낯짝에 뒤집어쓰고 싶지 않았다. 근데 얼굴이 안 움직였다.

난 어린 남자가 내 애인을 신나게 타재끼는 동안 발생한 부산물을 꼼짝없이 맞고 묻히고 칠갑해야 하는 신세였다. 옷 밑 살이 젖어 미끄덩거리고 엉덩판 아래가 축축했다.

그리고 요의가 일었다. 지수의 소변 냄새가 진동하는 통에 더 참기 어려웠다.

따듯하게 퍼지는 보리차 향기에 방광이 찌릿하고 미간이 어찔하게 더웠다. 오줌을 싸고 싶었다.

둘이서 떡을 열나게 치거나 말거나 두 인간을 내 앞에서 치워버리고 화장실로 내닫고 싶어질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은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예상은 적중했다. 둘은 새벽을 다 불사르고 박명에 이르러서도 사랑 나누기를 멈추지 않았다.

정확히는 어린 남자가 지수를 조금도 봐주지 않았다. 잠시 잠깐의 쉴 틈도 주지 않고 가차 없이 몰아붙였다.

체위부터 장소까지 다채롭기도 했다. 둘은 내 몸 위뿐 아니라 거실 마룻바닥과 소파, 부엌 싱크대와 식탁, 화장실과 현관, 베란다에 지수와 내 침실마저 빼놓지 않고 번갈아 즐겼다.

어린 남자가 지수를 둘러업고 침실로 사라졌을 땐 혹시 장롱 안에 숨겨둔 귀중품을 건드리지 않을까 하는 별걱정이 들기도 했다. 둘은 그러다 시장기가 도는지 거실에 나와서 식탁에 남은 음식을 알몸인 채로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김지수가 사정을 허락받은 횟수만 쳐서 대충 여덟 탕은 뛴 것 같았다. 어린 남자가 지수의 사정 이후 억지로 뽑아낸 오줌은 포함하지 않은 횟수였다.

어린 남자는 줄곧 지수가 절정에 도달하지 못하게 막고 혼자서만 자유로운 사정의 기쁨을 만끽했다. 말인즉슨 어린 남자는 지수보다 더 자주, 왕창, 기차게 사정했다.

너무 많이 하면 죽기도 한다던데. 힐긋 본 지수의 얼굴은 그새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와 있었다.

반면 어린 남자는 지치지도 않는지 말짱했다. 지수랑 내가 한창일 때도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정력이 대단한 애긴 한 모양이었다.

차라리 둘이 동시에 꿱 복상사해서 천국으로 가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 지옥으로 가려나. 아무리 그래도 김지수를 지옥에 보낼 수는…….

이딴 걱정이나 하고 있다니. 그보다 두 사람이 저세상에 도착해서 서로를 발견하고 함께라서 잘됐다며 손 붙잡고 방방 뛸 모습을 상상하면 그것도 그거대로 배알이 뒤틀렸다. 그나저나 난 왜 아직도 움직일 수 없는 걸까.

어린 남자와 김지수는 온 집 안을 한 바퀴 돌고 나서 다시 거실 마룻바닥에서 짐승같이 흘레붙는 중이었다. 이번엔 내 얼굴 옆에서 질퍽질퍽 떡떡 엉덩방아를 찧었다.

어린 남자가 거대한 방둥이를 들썩들썩할 때마다 바람이 옆얼굴에 훅훅 닿았다. 니글니글하고 살짝 고릿하며 야릇한 악취를 풍기는 바람이었다.

어린 남자의 부담스럽게 육덕진 데다 근육이 울퉁불퉁한 계핏빛 둔육 아래, 시퍼렇게 검고 무거운 불알주머니가 웽그렁뎅그렁 미쳐 날뛰었다.

김지수가 형편없는 발레리노처럼 허벅지부터 발가락 끝까지 쭉 뻗은 채 부들부들 떨어댔다.

아.

그러나 이 순간 그보다 더 날 괴롭게 하는 건 생리 현상이었다. 오줌이 마려웠다. 죽을 맛이었다.

그때였다. 어린 남자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며 좆을 엉덩이에서 쑥 뽑았다.

“히아아앙……!”

김지수가 자지러질 듯 비명을 지르고 모가지를 꺾었다. 어린 남자의 연구릿빛 장딴지가 내 얼굴 옆을 밟고 우뚝 섰다.

기둥처럼 굵고 튼튼한 주황빛 허벅다리 사이 약간 벌어진 듯한 애널이 보였다. 그런데 그곳이 푸부북 소리와 함께 무언가를 뱉기 시작했다.

아니, 진탕만탕 내보냈다.

흐읍……!

어린 남자의 젊은 항문이 스프링클러처럼 노랑 피와 흰 피를 뿌렸다. 장 속 가득 담아둔 김지수의 체액을 해바라기 샤워기 같은 항문에서 아래로 뿜었다.

쏴아.

“하읏, 허앙…….”

김지수는 제가 어린 남자의 똥창 안에 내갈긴 분비물 전부를 그대로 다시 뒤집어쓰면서도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린 남자가 흡족하다는 듯 낮은 웃음을 흘렸다.

“큭큭…….”

어린 남자는 나긋나긋한 허리를 상하좌우로 현란하게 떨어가며 김지수의 몸뚱어리 전체에 오물을 고루고루 끼얹었다. 늙은 정액과 폐수를 시원하게 항문으로 눴다.

어린 남자가 허공에 좆질하는 양 부드러운 등허리를 흔들어 털 때마다 거대한 불알주머니가 주인을 돕듯 덜렁대며 배설물을 여기저기 튀기고 흩뿌렸다.

푸드득푸드득. 뿌지직뿌지직. 쫄쫄쫄.

음. 읍.

배설물이 소낙비같이 사방팔방 내렸다. 김지수의 몸뚱이에 후드득후드득 부딪고 나서 내 낯짝과 가슴까지 확실하게 적셨다.

왕자의 옐로 레인이었다.

찍. 찌익. 쪼르륵.

“허으응…….”

“우리 자기 정신 안 차리지? 이거 갖고 벌써 힘들어하면 어떡해.”

“어응, 엉아앙…….”

“안 돼. 그래도 못 놔줘.”

어린 남자가 탈진한 김지수의 머리채를 거머쥐고 화장실로 질질 끌고 갔다. 거기서 한 판 더 할 요량 같았다.

아, 한 판이 아니겠군. 겨우 한 번 가지고 어린 남자를 만족시킬 순 없을 터였다.

하아앙, 자기야! 눈 떠!

어린 남자가 짐승처럼 울부짖는 소리가 거실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젖은 눈꺼풀을 조촘조촘 들었다.

두 사람의 노폐물이 눈망울에 흘러들자 따가웠다. 콧구멍을 막고 입술 위를 구르는 노폐물 방울을 깡그리 떨어내고 싶었다.

토악질 나는 고린내와 지린내가 진동을 했다. 그러나 진짜 토악질 나는 건 내 처지였다.

흐앙, 하어앙! 구허아하앙!

어린 남자가 아파트를 무너뜨릴 것처럼 포효했다. 공포에 질린 듯 고통스러운 비명만 내쏟던 김지수도 어느새 체념한 양 사랑한단 말과 함께 어린 남자의 이름을 외쳤다.

“…….”

난, 어쩌면, 김지수가 어린 남자와 손잡고 참가한 환상 게임에 갇힌 그저 NPC였다. 둘만의 극락을 낳고 남은 찌꺼기를 유기하는 나락이었다.

아마도 두 사람을 한층 더 짜릿함에 맥 못 추게 하는, 난 두 사람 몫의 죄의식 그 자체였다.

무엇도 절대로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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