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화 〉 갬블러와 바니걸 (4)
* * *
넬라넬라는 자신의 신체 사이즈에 맞춤 제작된 정장을 착용하고 있었다.
대량으로 제작해 납품하는 기성품이 아니었고, 오히려 고급스러운 원단을 사용하여 전문가가 직접 맞춤 제작한 품격이 높은 의상이었다.
그러나 멋을 내기 위한 기교는 일절 가미되지 않았고, 색상 역시 평범한 검은색과 하얀색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이 정도만 본다면 마왕군의 간부씩이나 되는 존재가 너무도 평범한 의상을 고른 것이 아닌가 염려할 수도 있으나, 넬라넬라의 주변을 지나치는 이들은 누구나 한 번씩 혹은 재차 넬라넬라에게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빛을 발할 정도로 새하얀 드레스 셔츠와 은근히 빛을 반사하는 광택이 일품인 검은빛의 정장.
그것은 진정 검소하면서도 단정한 기품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 우아한 인품이란 어떤 모습인지를 확인 시켜주는 명확한 매개가 되는 것이었다.
거기다 정장의 소매에서 작게 반짝이는 순백색의 다이아몬드 커프스 버튼은 최소한의 유일한 액세서리임에도 과하지 않으나 너무나도 명확한 고결함을 선사하고 있었다.
검소하지만 긍지와 기품을 잃지 않는 블랙 로즈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녀의 사이즈에 완벽하게 맞춰 제작된 의상은 다소 타이트한 부분들이 있어, 철저히 단련된 군인으로서의 신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탄탄하게 벌어진 어깨와 약간의 움직임만으로도 존재감을 확연히 드러내며 부풀어 오르는 이두근.
군살 하나 없이 완벽하게 깎인 잘록한 허리와 크게 발달하여 탐스러움을 뽐내는 둔부.
고급스러운 원단 너머로 비치는 신체의 곡선은 그야말로 어두운 장막에 숨겨진 야성이었다.
위태로운 철창에 갇혀 시커먼 어둠 속에서 눈을 빛내며 으르렁거리는 맹수였다.
고결한 기품과 강렬한 야성이 공존하는 여체는 본능을 자극하는 순수한 경외의 대상이었다.
문제는 그 주요 대상이 여성들이라는 것이었지만.
“어머… 넬라넬라님… 너무 멋있으셔…….”
“하응… 한 번 만 안겨 봤으면…….”
“어쩌지… 대장님은 여성이신데…!”
넬라넬라의 주변에는 꽤 많은 수의 여성들이 모여든 상황이었다.
물론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 눈을 떼지 못하는 남성들도 존재했으나, 그중 절반 정도는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 눈을 돌린 상황이었다.
여성보다도 단련이 미흡한 신체를 가졌다는 것을 자각하고서 남성으로서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자들이 속출하는 것이었다.
넬라넬라의 현재 모습은 여심을 정확하게 꿰뚫는 로맨스 소설 속의 왕자나 다름이 없었다.
“흠흠.”
주변의 여성들은 넬라넬라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서로 조용하게 속삭일 뿐이었으나, 격앙되어 탄성처럼 터뜨리는 황홀한 감상이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건 솔직히 무리였다.
넬라넬라는 여성들이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한 주변의 고평가에 부끄러워 괜히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자신의 의상은 오늘 아침, 오빠인 베리베리가 자리에 맞는 격식을 갖추라며 억지로 쥐여 준 불편한 의상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어쨌든 오빠가 열변을 토하며 건네준 것이기에 착용하기는 했는데 이 정도까지 이목을 끌을 줄은 몰랐던 터라 넬라넬라는 무척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솔직히 자신은 그저 친한 이들과 조용히 합류하여 함께 레저 시설을 체험할 생각이었으나,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해 자꾸만 주변의 평가가 귀에 들려오는 것이었다.
이를 무시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디도 녹아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그저 주변 여성들의 부담스러운 탄성이 닫으려는 청각을 비집고 밀려 들어오는 것이었다.
솔직히 친한 이들은 의외로 상당히 많았다.
넬라넬라의 예상을 깨고 마왕군의 간부 대부분이 카지노에 들어서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넬라넬라는 그 어떤 무리에도 끼어들지 못하고 있었다.
“동작 그만. 밑장 빼셨습니까?”
“뭐야!?”
도대체 그동안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음산한 모습을 보이던 크로포드.
다크 서클이 짙게 깔린 퀭한 눈을 하고서 무시무시한 살기를 품은 채, 크로포드는 카드를 뽑던 카디스텔라의 손목을 순식간에 낚아챘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자신의 손목을 붙잡은 소드 마스터의 손길에 당황한 카디스텔라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앙칼진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제 패하고 베리베리님 패를 밑에서 빼셨죠. 제가 눈뜬 장님처럼 보이십니까?”
“대본을 쓰고 있네, 기사 나부랭이 주제에!”
도박을 하더니 다들 이상해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내가… 스페이드에 걸었던가… 클로버에 걸었던가…”
“클로버! 클로버였다네! 이거 참 안됐구먼!”
머리를 긁적이며 아둔한 모습을 보이는 오운과 이를 무척이나 달갑게 지켜보며 손뼉을 치는 아티스.
오운은 분명 스페이드에 걸었었다.
그러나 딜러가 카드를 뒤집자, 드러난 문양은 명백한 클로버였다.
“이, 이게 어째서!! 난 클로버를 뽑은 적이 없어!! 말도 안 돼!!”
자신이 내어 놓은 카드가 뒤바뀐 것을 알게된 아티스가 자신의 수염을 모조리 뽑아버릴 듯 잡아당기며 경악했다.
그때 오운은 게슴츠레한 눈의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나직하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자네가 날 속이고 내 코인을 가져간 건 말이 되고?”
도박을 하더니 다들 이상해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히이이이익!!!”
오우거 부족의 단순무식한 돌격대장 휴고는 자신의 카드들을 흩뿌리며 경악했다.
항상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던 코를 멍청하다고 여겼던 휴고가 확정된 패배를 맞이한 것이었다.
코가 만든 패는 풀하우스.
자신의 스트레이트로는 결코 이길 수 없는 상위의 조합이었다.
“너, 너…!! 이거 어떻게 만든 거냐!!”
휴고의 다급한 질문에도 코는 그저 의기양양한 표정을 하고서 고개만 열심히 끄덕일 뿐이었다.
코는 모든 이야기의 반응을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밖에 하지 않으니 휴고가 답을 찾지 못하는 건 예정된 수순이었다.
휴고는 자신의 카지노 코인을 내려다 보았다.
덩치큰 오우거의 손아귀라서가 아니라 정말로 한 줌 정도밖에 남지 않은 티끌만큼의 전재산.
휴고는 이대로 콜을 외치게 되면 빈털터리가 되어 카지노를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우, 우리… 무승부로 하지 않을래…?”
코는 처음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척이나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도박을 하더니 다들 이상해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넬라넬라님!”
여러 테이블을 둘러 보며 도박의 광기에 점차 두려움을 느끼던 넬라넬라.
그런 그녀에게 한 데모니안 소녀 하나가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넬라넬라님!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하고 술 한잔 같이 어울려 주실 수 있나요!?”
아직 순수하고 풋풋한 매력이 느껴지는 데모니안 소녀는 발그레하게 상기된 모습으로 수줍게 합석을 요청해왔다.
이는 분명 넬라넬라에 대한 견디기 힘든 호감에 떠밀려 나온 행동임이 틀림없었다.
주변의 여성들은 넬라넬라에게 처음 말을 건 소녀에게 다소의 질투를 느끼면서도 그녀의 강한 용기를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넬라넬라는 최대한 정중한 모습으로 소녀의 요청을 거절했다.
“아름다운 레이디께 죄송할 따름입니다. 저는 해야 할 일이 있어서 함께 어울려 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레이디께서는 아름다우시니 분명 저 말고도 함께 하고 싶어 할 분들이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아, 아니에요! 갑자기 곤란하게 해 드려서 제가 죄송해요!”
넬라넬라의 예법에 충실한 거절은 분명 단호한 것이었으나, 무척이나 예스러운 모습이었기에 소녀는 오히려 더욱 애정이 타오르는 모습만을 보일 뿐 다행히 실망하거나 슬퍼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하으… 넬라넬라님께서… 내가 아름답다고… 하아아아앙…!”
소녀는 벅차오르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풀썩 쓰러져 버렸다.
다행히 소녀의 일행 몇 명이 제때 그녀를 붙잡아 바닥에 널브러지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소녀는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한 채, 몽롱한 정신 속에서 황홀함만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넬라넬라는 거짓을 입에 담지 않았다.
분명 넬라넬라는 네로멜티아를 떠올리며 자신에게는 이미 연인이 있기에 다른 이에게 여지를 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소녀의 요청을 거절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말 자체가 명백한 진실인 것이었다.
넬라넬라는 어떤 테이블에서 벌어지고 있는 열띤 도박의 승부를 지켜봐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현재의 미쳐버린 카지노 가운데에서도 가장 큰 광기를 보이고 있는 테이블.
목적이나 목표 없이 맹렬하게 휘몰아치는 혼돈으로 이루어진 광기의 무대.
그저 판돈을 올리는 사인인 베트와 레이즈를 반복할 뿐인 네로멜티아의 테이블이었다.
“레이즈!”
“으, 으와! 또 판돈을 올리셨어!!”
시작부터 마력을 사용하지 않은 맨손으로 마술 같은 재주를 보여주며 주변의 이목을 사로잡았던 갬블러 제프리.
그는 분명 그가 지닌 손기술에 비견되는 도박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불리한 판이라 판단되면 아무런 미련 없이 포기를 뜻하는 ‘폴드’를 외쳤고, 자신이 유리한 판이라 판단되면 네로멜티아와 함께 판돈을 올리는 과감함까지 보이고 있었다.
수비는 깔끔하게, 공격은 과격하게.
물론 완벽하게 판도를 읽을 수 없는 게임이 포커다 보니 제프리가 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럴 때면 거의 최대치까지 올라간 판돈에 의해 상당히 큰 피해를 입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제프리는 자신이 완벽하게 이길 수 있는 판에서도 결코 모든 것을 걸지는 않았고, 착실하게 승리를 쌓아가고 있었기에 카지노 코인을 착실히 늘리고 있는 추세였다.
“이거 마왕 폐하께서는 완벽한 분이신 줄 알았더니, 영 꽝인 부분도 갖고 계셨는걸?”
“이봐! 너무 완벽하기만 하면 오히려 정이 없다고!”
“아니, 그래도 너무 못하시잖아!”
“그건 그렇네. 으허허허허!!”
주변에서는 점차 마왕에게 무례한 평가가 오가고 있었다.
어쩌다 기가 막힌 조합이 나와서 제프리의 예상을 깨고 크게 이긴 판이 몇 있었기에 현재까지 게임이 유지되었을 뿐, 네로멜티아는 진작에 모든 코인을 잃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을 향해 승기가 기울고 있는 상황에서 제프리는 점차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가 중절모를 쓰고 있지 않았더라면 머리에서부터 잔뜩 배어 나오는 식은땀이 흘러 모든 이들이 제프리의 불안감을 눈치챘을 것이었다.
‘뭐지…? 이건 뭐지…? 왜 베트하고 레이즈밖에 안 하는 거지!? 콜이나 폴드는 단 한 번도 외치지 않았어! 단 한 번도!! 헤모니겐트의 여신인 마왕 폐하께서 생각이 모자라 이런 바보 같은 짓거리를 벌일 리가 없잖아!! 이건 분명 명백한 고의라고!!! 의도하는 바가 있는 거라고!!! 상식적으로!!!!!’
상대에게 그 어떠한 정보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한 무표정.
모든 감정과 의지를 철저히 차단하는 완벽한 포커페이스.
그 너머에는 점차 이성을 좀먹고 집어삼키기 시작하는 기분 나쁜 불안감이 자라나고 있었다.
‘저렇게 헤픈 웃음이나 실실 흘리면서 여자 몸이나 더듬고 있는다고…? 생각해라, 제프리!! 그럴 리가 없지 않나!! 마왕 폐하의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넌 한낱 먹잇감이 될 뿐이다!!!’
네로멜티아는 자신이 임하고 있는 게임에 대해 베트와 레이즈를 외치는 일에만 일관하고 있었다.
다른 시간에는 그저 러스테리아의 탐스러운 가슴이나 엉덩이를 슬쩍 주무르거나 베아트리스의 잘록한 허리와 매끈한 허벅지를 어루만질 뿐이었다.
마왕의 위엄은커녕 눈부신 아름다움을 지닌 미색만 아니었다면 동네의 껄렁한 한량이라 봐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정도의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제프리는 자신의 의심을 확신하게 되는 것이었다.
몇 수의 미래를 내다보며 희박한 확률의 협소한 틈을 뚫고 펼친 모략으로 휴미안과 드래곤을 농락한 전설적인 책략가가 고작 트럼프 카드를 가지고 노는 게임에서 이런 바보 같은 모습을 보일 리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었다.
제프리가 확신하고 있었다.
이 허술한 모습의 마왕은 실실대는 한심한 표정의 너머에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소름 끼치는 계략을 펼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확신은 상식선에서 보자면 무척이나 타당하고 합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네로멜티아의 머릿속은 무척 단순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러스 가슴 부드러워!! 베아트리스 허벅지 말랑말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