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화 〉 갬블러와 바니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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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종류의 게임들이 마련된 테이블들이 즐비한 가운데, 단 하나의 테이블이 카지노 전체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었다.
하얀 드레스 셔츠에 검은 정장을 착용한 데모니안 여성.
남성적인 분위기가 극히 다분한 의상을 착용했으나, 착용자 본연의 아름다움이 너무나 우월한 탓에 미의 여신이라 칭한다 하더라도 이견이 있을 리가 없을 정도의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하는 인물.
단순하게만 놓고 보자면 호감을 넘어 경애의 마음까지 일게 만드는 경국의 미녀가 우아한 이브닝 드레스나 고풍스러운 프릴 스커트를 착용하지 않고 남성적인 성향이 짙은 정장과 바지를 착용했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는 광경일 것이었다.
다른 이들은 공감할 수 없는 독특한 취향을 가지고 있거나 어쩔 수 없는 이유에 의해서 남장을 해야만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정도로 받아들여지기에 쉬운 모습인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이 아름다운 데모니안 여성을 바라보고 있는 주변의 모든 구경꾼들은 각자의 종족과 성별을 막론하고 아무런 이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도 잘 어울려서 일말의 이질감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의상이 당사자에게 잘 어울린다거나 너무도 아름다워서 아무래도 상관 없어졌다거나 하는 이유뿐만은 아니었다.
물론 그런 이유들 또한 사실이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정장 차림의 데모니안 여성이 헤모니겐트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한 지배자라는 점이었다.
루이나의 여신이자 마(?)의 현신.
홀로 군림하여 12신들조차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파괴의 근원.
헤모니겐트 사상 역대 최강의 마왕, 네로멜티아 디 이시스.
감히 가늠할 수조차 없을 전능(??)과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전지(??)를 가지고서 지고의 권능을 휘둘러 세계의 의지에 정당히 맞서는 신격(??) 앞에서 자신의 가치관이나 취향 따위를 언급할 배짱 좋은 이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후후. 재미있구나.”
“… 즈, 즐거우시다니… 영광입니다…!”
“너무 긴장하지 말거라. 짐은 그저 평범한 손님으로서 게임을 즐기러 왔을 뿐. 그리 안색이 어두워서야 너의 아름다운 미모가 아깝지 않겠느냐?”
“…!! 일개 딜러에게 그런 과분한 칭찬을 내려 주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몇 번이나 재차 강조하더라도 전혀 모자람이 없을 확고한 이유.
네로멜티아는 어느 누구 하나 부정하지 못할 만큼 아름다웠다.
그렇기에 현재 트럼프 카드를 돌리고 있는 딜러는 네로멜티아와 같은 여성임에도 마왕의 지고한 아름다움에 압도당해 네로멜티아가 그 어떤 일을 벌이건 자신도 모르게 경의를 느끼며 지극한 예의를 갖추는 것이었다.
여성으로서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감추기 쉬운 남성용 정장을 착용하고도 그 미색은 전혀 가려지지 않았으며, 심지어 문제가 되는 의상 그 자체도 여체의 아름다움을 어필할 요소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당한 크기를 자랑하는 젖가슴을 채 가두지 못한 드레스 셔츠는 단추가 가장 위에서부터 복부까지 절반 이상이 잠기지 않은 상태였고, 심지어 풀어 헤쳐진 드레스 셔츠의 틈을 의도적으로 활짝 펼쳐 놓아서 거대한 젖가슴의 깊은 계곡이 전부 드러나고 있는 모습이었다.
더 나아가 한껏 노출된 젖가슴의 중심부와 그 풍요로운 젖의 사이에는 속옷이라는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오로지 보드라운 살결이 돋보이는 피부뿐이었다.
아예 브래지어 자체를 착용하지 않은 맨가슴인 것이었고, 원단이 두껍지 않았다면 드레스 셔츠의 위로 도톰한 젖꼭지의 형상이 고개를 내밀어 존재를 드러낼 뻔했던 것이었다.
심지어 검은색의 정장 상의는 애초부터 젖가슴을 덮어 가릴 생각 자체가 없었는지 젖가슴 아래의 복부부터 단추가 달려 있었고 칼라 위로 젖가슴이 내어질 수 있도록 칼라 자체가 밑가슴을 감싸며 받쳐주듯 둥글고 크게 벌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거기다 바지 또한 스트레이트 핏의 늘씬한 정장 바지였기에 그 어떤 노출조차 허용하지 않으면서 원단 위로 드러나는 윤곽만으로도 네로멜티아의 길게 뻗은 다리의 각선미와 탄력적인 허벅지의 라인이 잘 드러나고 있었다.
네로멜티아가 의도한 중성적인 스타일은 그저 고유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게 될 뿐, 그녀의 미색이 퇴색될 일은 결코 없는 것이었다.
단지 평소와는 다르게 거칠게 느껴지는 부분은 있었다.
정장 특유의 단정함과 동시에 한껏 펼쳐진 드레스 셔츠의 와일드한 분위기가 공존하게 되면서, 격식을 차리려고는 했으나 과격한 내면을 감추지 못하는 무법자와 같은 모습으로 비쳐지는 것이었다.
심지어 드레스 셔츠의 우측 가슴 위로 큼직한 카디널 로즈가 꽂혀 있어 암흑가의 두목 같은 감성이 더욱 강조되고, 심지어 의기양양한 웃음을 띤 채 무심히 베팅하는 모습은 야성적인 위압감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이었다.
평소의 네로멜티아는 고풍스러운 미모를 지닌 군주로서의 모습을 보였었다면, 현재의 모습은 천 년 전에 존재했었던 서부 황야의 마적단이나 중부 상업 도시의 갱단 같은 암흑가의 대두령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베트.”
웅성웅성
“드, 들었어!? 또 판돈을 키우셨어!!”
“세상에… 작정하고 다 잃으실 셈인가…!?”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 과시되는 위압감과는 다르게 네로멜티아의 행동은 한없이 한량에 가까운 것이었다.
네로멜티아가 현재 즐기고 있는 게임은 포커(Poker).
유래를 알지 못할 정도로 오랜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온 유서 깊은 트럼프 게임.
포커는 규정상 매 턴마다 판돈을 올릴지 유지할지 정해야 하고, 베팅은 마지막으로 지급된 카드를 공개할 때까지 계속된다.
누군가 판돈을 키우겠다고 선언하면 다른 참가자들은 그에 응하던지 게임을 포기하던지 결정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네로멜티아는 베팅 순서가 올 때마다 무조건 판돈을 키우고 있었다.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무조건 ‘베트(Bet)’ 아니면 ‘레이즈(Raise)’만 반복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차례에서 무조건 판돈을 올리고, 다른 이가 올려놓은 판돈도 더 올린다.
그저 공격적인 베팅 전략으로 상대의 전의를 상실시킨다거나, 상대의 페이스를 흐트러뜨린다는 전략이라면 한량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을 것이었다.
정말 경악스러운 일은 네로멜티아가 계속 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장 낮은 최악의 조합인 ‘하이 카드(High Card)’를 가지고도 무작정 판돈을 키워 밀어붙인다.
정말이지 카지노 코인을 다 쏟아버릴 셈으로 하는 게임이 아니고서야 이럴 수는 없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마왕이 내리는 자비로운 용돈이나 벌어볼 요량으로 달려들었던 이들이 많았다.
실제로 그 덕에 크게 따낸 이들도 몇 있었다.
자신의 패가 조금이라도 가망이 없다 싶으면 빨리 포기하고, 한 명 만을 남겨 마왕의 판돈을 빨아댄 것이었다.
그러다 마왕이 한 번 이겼다.
정말로 어쩌다가 좋은 패가 나온 것이었다.
그 때문에 마왕에게 진 최초의 패배자가 나타났다.
그 역시 상당히 좋은 패였기에 당연히 이길 거라고 생각해서 끝까지 베팅했는데 네로멜티아가 더 좋은 패가 나와서 져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모든 것을 잃어버려 힘없이 카지노를 빠져나가야만 했다.
긴장감이 감도는 묘한 기류는 그때부터 발생했다.
모든 코인을 잃게 된 불쌍한 희생자가 발생하자, 모두가 겁을 집어먹고서 더는 게임을 하길 꺼려 하는 것이었다.
운이 나빠 한 번이라도 지면 빈털터리가 되는 게임은 아무래도 임하기가 두려운 법이었다.
“더 없는 거야? 실망인걸. 어디 배짱 좋은 녀석 없어!?”
“… 하응!”
“아아… 러스 너무 부드럽다아…….”
심지어 네로멜티아는 게임에 신경을 곤두세우기보다는 자신의 양옆에 바니걸 미녀를 끼고서 탐스러운 여체를 희롱하기 바빴다.
포커페이스와 블러핑도 없었고, 일말의 심리전조차 없었다.
때로는 자신의 비서 토끼의 품에 안겨 안면을 파묻고, 때로는 자신의 하녀 토끼를 끌어당겨 뺨과 뺨을 비벼댈 뿐이었다.
주변의 모든 이들은 느꼈다.
가늠할 수 없는 혼돈이자 순수한 확률의 현신 그 자체인 갬블러가 나타났노라고.
어떤 반응이 있어야 심리를 읽어볼 것이고, 어떤 변화가 있어야 흐름을 읽어볼 것이다.
하다못해 물이라도 한 잔 마시던가, 카드를 들여다보는 시늉이라도 해야 생각해 볼 여지라도 생길 것이 아닌가.
그러나 네로멜티아에게는 그런 것이 일절 없었다.
그저 한 번 카드를 슥 보고는 건성으로 판돈만 올리고서 바니걸을 더듬기 바쁜 것이었다.
그 어떤 패가 나오던 무조건 판돈을 키워 들이받는 무작위의 방식은 그 누구도 결과를 읽어낼 수 없는 칠흑의 야경 그 자체인 것이었다.
심지어 네로멜티아는 자금까지 방대하니 이보다도 더러운 게임은 거의 없을 것이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은 두려움을 낳기 마련이었다.
네로멜티아의 테이블에는 결국 단 한 명의 상대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뭐야! 벌써 끝이야!? 아직 몇 판 하지도 못했는데? 나 계속 잃기만 한 거 같은데, 내가 그렇게 무섭냐!?”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주변에 거친 입담을 보이기 시작한 네로멜티아.
무척이나 고결하고 고풍스러운 모습으로 딜러를 대했었던 것과는 전혀 딴판인 무법자의 모습.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딜러는 러스테리아가 엄선한 미녀였고 주변에 있는 갬블러들은 모두 칙칙한 남자들뿐이었으니 여성을 좋아하는 네로멜티아로서는 대하는 태도가 판이하게 달라지는 것이었다.
그때 고풍스러운 중절모에 격식이 느껴지는 갈색 코트를 입은 데모니안 신사 하나가 자신의 멋들어진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나타났다.
“아무도 나서질 않는 것 같으니, 제가 좀 끼어도 괜찮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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