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화 〉 갬블러와 바니걸 (1)
* * *
휘황찬란(????).
흔하게 쓰이지 않는 이 단어가 실체를 얻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 같은 거대한 홀.
화려한 조명들이 모여 이룬 오색빛의 색채 미술과 커다란 5층 샹들리에가 선사하는 황금빛 물결.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의 인파가 모인 것은 아니어서 그다지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여겨지기는 쉽지 않아 보였으나, 현재 이 장소에 모인 이들은 경제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마왕성의 내에서도 자신들만의 수단을 이용해 나름대로의 부유함을 쌓아온 이들이었다.
아브노아 워터 파크에서 물을 이용하지 않고 운영하는 몇 안 되는 구역 중 하나.
다른 구역보다 현저히 적은 손님만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가장 뜨거운 열기를 지닌 성인들의 유희를 위한 홀.
미믹스 골드(Mimic's Gold) 카지노였다.
“그거 봐!! 홀수에 걸었어야지!! 홀이 나올 때가 왔다고 느낌이 팍 꽂혔다니까!!!”
“… 배팅 성공 했으면 조용히 코인 들고 사라져!! 몽땅 잃어서 열불이 나는데 기름 끼얹지 말고!!!”
“제발 떠라!! 떠라!! 떠라!!!”
“으하하하학!! 코인 상자가 하나 더 필요하겠구만!!!”
마왕성에는 아직 화폐라는 것이 사용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카지노를 방문한 이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식량이나 생필품 등을 걸고 게임을 하는 중이었다.
자신들이 들고 온 가치가 있는 물품들을 가상의 화폐인 카지노 코인으로 교환해서 배팅을 하고, 카지노를 나설 때 자신이 모은 카지노 코인을 가지고 그 양에 해당하는 가치의 물품을 교환해 가는 것이었다.
“와아아아아… 이건 정말 대단한걸?”
“그렇죠!? 정말 대단하죠!?”
“응. 솔직히 놀랐어. 우리 러스 정말 대단해!”
“헤헤헤헤…”
네로멜티아는 카지노의 한가운데에 서서 진심 어린 감탄을 터뜨리고 있었다.
앞서 체험한 인공 해변과 수영장도 상당한 규모와 완성도를 지니고 있었으나 현재의 카지노는 다른 의미에서 경이롭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앞선 구역들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웅장하다’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카지노는 말 그대로 ‘예술’이었다.
도박이라는 울타리에 포함된 갖가지 게임들은 제외하더라도, 미믹스 골드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예술을 위한 공간이었다.
하나하나가 명작이라 칭할 수 있는 온갖 그림과 석상이 곳곳에 장식되어 있었고, 벽면과 바닥 전체를 감싸고 있는 진홍의 태피스트리나 고풍스러운 패턴이 양각된 테이블 등 모든 것이 가치가 높은 예술품들로 채워져 있었다.
하다못해 술과 음료를 위한 바(Bar)에서 건네는 작은 술잔조차도 크리스털로 제조된 최고급품인 것이었다.
“지난 한 달 동안 마왕성으로 이주해 오신 많은 드워프 분들께서 제공해 주신 것들이에요! 애지중지 보관만 해서야 작품이 썩는다나요?”
“아아… 그래… 드베르그릭에서 그간 꽤 많은 녀석들이 넘어왔었지…….”
“정말이지 주인님은 미래를 어디까지 내다보고 계신 건지 모르겠어요! 대단해요!”
네로멜티아는 자신이 펼친 계략이 제대로 먹혀들고 있다는 증거에 내심 감격하는 중이었다.
물론 러스테리아가 건네는 과도한 칭송은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면이 다분해 부담스러웠으나, 분명 현재로서는 자신이 상당한 업적을 세운 것이 맞으니 최대한 현실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후후. 주인님께서 펼치신 모략은 늘 그랬듯 적에게 재앙 그 자체가 되겠지요. 이번에는 드베르그릭의 멍청한 황금벌레 왕이 희생되겠군요.”
‘늘 그런 건 아닌데 말이야…….’
“맞아요! 지난번 케르디하크를 이용한 정보전에 대해서는 정말 경악스러웠어요! 크로포드님께 에스테로난을 향한 에고 돌 투입을 논했던 것이 훗날 케르디하크를 이용하기 위한 초석이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는 정말이지 전율이 흘렀다니까요!?”
‘미안해, 러스! 그거 내가 없는 동안 얘기가 그렇게까지 흘러가 있길래 진짜 그랬던 것처럼 슬쩍 묻어간 거뿐이야!!’
갑자기 날뛰기 시작한 찬사의 난무.
걷잡을 수 없이 빗발치는 칭송의 세례.
네로멜티아는 무력했다.
너무도 무력해서 온갖 왜곡된 믿음과 잘못된 추측들로 인한 마왕 미화의 흐름을 막지 못했다.
그저 속으로만 진실을 고하며 사과를 하고 아우성칠 뿐이었다.
전지전능한 마왕이 진실을 말하고 신하들을 실망시킬 자신이 없어 무력하게 묻어가고 있었다.
“흠흠! 그래! 어쨌든 러스가 이런 의상을 입으라고 한 이유를 이제 알 거 같아! 카지노에 왔으면 카지노에 맞는 옷을 입어야지!”
“맞아요!! 주인님 너무너무 멋있어요!!”
현재 네로멜티아는 다시 한번 의상을 갈아입은 상황이었다.
나이트 일루전을 착용한 평소의 모습에서 체인이 달린 트라이앵글 탑에 Gstring이 인상적인 야릇한 수영복으로.
그리고 그 수영복에서 현재의 의상으로 연달아 의상을 교체한 것이었다.
하얀 드레스 셔츠에 검은 정장을 착용한 네로멜티아.
심지어 하의도 스커트나 드레스 종류가 아닌 바지였기에 의상 전체가 상당히 남성적인 모습을 강조하고 있었다.
남성적인 성향이 짙은 의상을 착용하고도 우월한 여체는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여체의 매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의도된 부분들이 존재하고는 있었으나, 남성적인 의상으로도 네로멜티아가 지닌 여성으로서의 매력은 감출 수 없는 것이었다.
“고마워. 그런데에…”
순간 네로멜티아의 안면에 떠오른 은근한 흑심.
정욕의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눈빛으로 자신을 따르는 미녀들을 이리저리 훑어보는 끈적한 시선.
네로멜티아는 게슴츠레한 눈의 미소를 지으며 실실 웃고 있었다.
“러스하고 베아트리스도 너무 예쁜걸?”
러스테리아와 베아트리스 역시 카지노에 맞는 의상을 골라 환복(??)한 상황이었다.
문제는 그것이 조금 전까지 착용하고 있었던 야한 수영복과 그다지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러스테리아가 베아트리스에게 뭔가를 속삭이더니 둘이서 잠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었고, 현재의 모습을 하고서 네로멜티아의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귀여운 서큐버스 비서와 무미건조한 에고 돌 메이드가 입고 온 것은 다름 아닌 바니걸 의상이었다.
“으응… 정말 예뻐요? 헤헤… 다행이다…….”
사랑하는 주인의 칭찬이 너무나 행복했던 러스테리아는 안면이 발그레하게 상기되는 모습을 보였다.
거기다 다소 과감한 의상에 대해 다소 부끄러웠던 모양인지 몸을 배배 꼬며 시선을 바닥에 꽂는 쑥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전에 착용한 수영복도 현재의 바니걸 의상만큼 원단도 적고 야한 것이었으나, 그때는 그다지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았었으니 여러모로 모순된 반응이 아닐 수 없었다.
똑같은 형태라 하더라도 비키니 수영복은 부끄럽지 않으나 브래지어와 팬티 차림은 부끄럽다는 정도의 가치관이 아닌가 여겨지는 것이었다.
“그럼 주인님. 예쁜 토끼 두 마리를 양옆에 끼고서 게임을 즐기시는 건 어떠신지요.”
“… 베아트리스 너 아까부터 자꾸 왜 그래……. 무섭게…….”
“지금 토끼 두 마리는 주인님의 온기가 그리워서 가여이 떨고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까, 러스테리아 토끼님?”
“네! 맞아요! 깡충! 깡충!”
감정이라고는 티끌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을 하고서, 말은 성적인 대화에 익숙한 서큐버스 못지않은 베아트리스.
네로멜티아는 오늘따라 너무도 이상한 베아트리스의 변화된 모습에 오한이 드는 느낌이었다.
당황한 네로멜티아가 베아트리스의 노골적인 유혹을 제때 제지하지 못하자, 수완이 좋은 하녀 토끼는 즉시 기세를 타서 비서 토끼를 아군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귀여운 비서 토끼는 하녀 토끼가 가볍게 한 번 밀어줬을 뿐이었음에도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폴짝폴짝 뛰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후후후후…….”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고서 은근한 성적인 대화로 마왕을 자극하는 버릇없는 하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웃음을 지으며 귀엽게 토끼 흉내를 내는 비서.
네로멜티아는 입을 길게 찢어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베아트리스. 너 내가 진심으로 방탕하게 놀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모르지?”
베아트리스는 순식간에 변모한 네로멜티아의 분위기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한 것인지는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무미건조한 표정 때문에 알 수 없었으나, 기세를 타고 주인을 향해 노골적인 도발을 감행하던 하녀의 흐름이 잠시의 침묵으로 단숨에 끊겨버린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네로멜티아는 기세를 몰아 베아트리스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를 잡아 자신의 품으로 잡아당기는 것이었다.
날카롭게 빛나는 선홍빛의 눈동자.
네로멜티아는 베아트리스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네가 기대한 대로 놀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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