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화 〉 수영복과 놀이기구와 스토커들 (2)
* * *
“주인님!! 여기에요!!”
잔뜩 신이 나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러스테리아는 동그랗고 좁은 통로 여럿 중 하나를 고른 뒤 환하게 웃으며 네로멜티아를 부르고 있었다.
네로멜티아는 러스테리아가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 달라고 말하는 건가 싶었으나, 러스테리아는 네로멜티아를 잡아당겨 자신의 앞에 세우는 것이었다.
“여긴 우리 귀여운 비서님 자리인데? 내가 먼저 타줬으면 좋겠어?”
“우응… 그게 아니구요오…….”
네로멜티아는 러스테리아가 이끄는 대로 해당 통로의 입구에 앉게 되었다.
길고 좁은 통로의 동그란 입구는 아래를 향해 뻗어 있는 가파른 경사로에 빠른 유속의 물을 흘려보내고 있었고, 네로멜티아는 그 통로의 입구에 걸터앉아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근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러스테리아는 다리를 뻗고 앉아 있었던 네로멜티아의 허벅지 위에 앉았다.
부드러운 살집이 두툼한 러스테리아의 엉덩이와 매끄럽고 튼실한 네로멜티아의 허벅지가 서로 맞닿았다.
수영복이 엉덩이를 다 가리지 못해 새어 나온 도톰한 엉덩이살이 티없이 매끄러운 허벅지와 맨살을 맞대고 서로의 포근한 감촉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아응… 주인님 품 속… 너무 포근하고 따뜻해서 좋아요…….”
“으으으음…”
네로멜티아는 애써 시선을 돌릴 뿐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정말 보고 싶지만 현재로써는 봐선 안 될 것만 같은 광경.
네로멜티아의 허벅지와 맞닿은 러스테리아의 엉덩이가 체중이 실리며 압박을 받아 눌리기 시작하니 탱탱하게 탄력이 넘치던 엉덩이의 튼실한 살이 네로멜티아의 허벅지 표면을 타고 도톰하게 밀려 올라오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진심으로 눈에 담고 싶은 광경이었고,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전혀 질리지 않을 여체의 탐스러운 신비였다.
그러나 보고 있으면 만지고 싶고, 만지다 보면 맛보고 싶어질 게 너무도 뻔한 것이었기에 네로멜티아는 애초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오늘은 러스테리아가 준비한 노력의 결실을 체험하고 진심으로 칭찬해 주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사랑스러운 비서를 예뻐해 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으나, 러스테리아 본인이 의도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저절로 발생한 유혹에 넘어가서야 본말전도인 셈이었다.
“그럼 제 자리는 여기겠군요.”
“베아트리스…?”
“주인님, 무슨 문제라도?”
주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절제를 떠올리던 마왕의 뒤로 하나뿐인 전속 메이드의 차분한 음성이 들려왔다.
지배자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욕망을 억제하던 마왕의 뒤로 사랑스러운 메이드의 따스한 체온이 느껴졌다.
러스테리아가 네로멜티아의 품에 안겨 앞자리를 선점하자, 베아트리스는 자연스럽게 뒷자리를 택한 것이었다.
순서의 차이가 있었을 뿐, 마음 깊이 경애하는 주인의 곁에 몸을 붙이며 안기고 싶다는 욕망은 동일했었던 둘이기에 각자가 택할 수 있는 위치를 골라 잡았을 뿐이었다.
“이거 한 번에 한 명씩이었지? 얘들아?”
“그건 권장 사항이지 이용 규정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혹시라도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한다면, 전력을 다해 신속히 처리하겠습니다. 주인님께서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로멜티아는 현재의 정원 초과 사태에 대해 넌지시 거절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러스테리아와 베아트리스는 마치 서로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모아 현재 상황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한 명씩 탑승하라는 강제 규정도 없고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든 대처하겠다.
이로써 네로멜티아는 현재 상황을 회피할 명분을 잃어버렸다.
물론 그녀들이 내어놓은 빈약한 원리의 주장을 논파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으나, 주변의 시선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자신을 좋아해서 스스로 안겨오는 기특한 여성들을 쳐낼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았기에 네로멜티아는 못이기는 척 넘어가기로 했다.
“그럼 사이좋게 타 보기로 할까?”
“와아아! 주인님 최고!!!”
허술하나마 나름대로의 논리로 무장하고서 주장해 본 희망 사항이었으나, 러스테리아는 행여 주인이 정론을 펼치며 거절할까 싶어 다소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그러나 불안했던 걱정과 달리 주인은 그 허술한 주장을 받아들여 주었고, 주인의 공식적인 허가가 떨어지자 러스테리아는 뛸 듯이 기뻐하며 환호를 터뜨렸다.
그리고 너무나도 기뻤던 러스테리아는 상체를 뒤로 젖혀 네로멜티아의 품 속에 등을 대고 힘껏 안겨오는 것이었다.
“앗…!”
“꺄아!”
러스테리아가 네로멜티아의 품 속에 자신을 힘껏 파묻자, 그 충격으로 모두가 미끄러지며 채 준비를 마치기도 전에 통로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가파른 경사도를 지닌 일직선의 통로 내부에는 약간의 물이 흐르고 있었고, 흐르는 물이 마찰력을 최소한으로 낮춰 가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촤아아아악!!
잠시 후 사방이 막혀 있던 원통형의 통로 구간이 끝을 고했으나, 이후에도 가파른 경사를 가지고 물을 흘리는 수로는 계속 이어졌다.
측면과 상단을 막는 천장이 사라졌을 뿐, 탑승자를 물과 함께 흘려보내는 경사로는 끝나지 않은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의 거대한 미끄럼틀이었으며, 단지 물을 흘려보내 마찰력을 줄여 가속도를 높인다는 차이만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러스테리아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 시설 워터 슬라이드(Water Slide)였다.
“꺄아아아아아!!!”
원통형의 통로가 끝나자 사방이 탁 트인 구간이 나타났고, 그와 동시에 러스테리아의 비명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상당한 높이에서 시작한 미끄럼틀이기에 주변 일대의 아름다운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고, 이는 빠른 속도로 인해 느낄 수 있는 스릴 외에도 주변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관광 요소까지 확보한 복합적인 이점의 놀이 시설이었다.
현재 러스테리아는 귀가 따가울 정도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으나, 양손은 위를 향해 힘껏 펼쳐져 있었고 나아가 눈부실 정도로 환한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그저 탑승하고 있는 놀이 시설의 즐거움 때문에 기뻐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주인이 지닌 커다란 젖가슴의 따뜻하고 포근한 계곡 사이에 파묻힌 자신의 머리.
자신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아주는 주인의 부드러운 손길.
협소한 면적을 지닌 수영복으로 인해 그 어떤 방해물 없이 밀착되어 문질러지는 자신의 피부와 주인의 보드라운 살결.
그 모든 것들이 러스테리아에게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큰 기쁨이었다.
현재 네로멜티아가 아무런 말 없이 고요한 눈빛을 가지고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그녀가 느끼기에 현재의 속도가 그저 미지근한 정도이기 때문이었다.
네로멜티아가 비행 마법을 사용해 조금만 출력을 높이더라도 현재의 속도는 우습게 상회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점을 떠올려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네로멜티아보다 능력은 모자라지만 마법 능력으로 손꼽히는 마왕군 간부 러스테리아가 현재의 속도에서 스릴을 느껴 환호를 할 리는 결코 없는 것이었다.
러스테리아는 그저 자신이 사랑하는 주인과 몸을 맞대고 노는 일에 한없이 기뻐하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꾸욱
“읏…!”
자신의 품에 안겨 생일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기뻐하는 러스테리아를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던 네로멜티아는 자신의 젖가슴을 노골적으로 주물러 오는 음란한 손길에 화들짝 놀라버렸다.
가파른 경사의 워터 슬라이드가 네로멜티아의 눈빛조차 바꾸지 못한 상황에서 그녀를 놀라게 해 작은 신음마저 흘리게 만든 것은 베아트리스의 짓궂은 손길이었다.
언제나 감정의 표현을 절제하며 무미건조한 표정이 상징과도 같이 굳어진 자신의 메이드가 이런 음란한 장난을 시도했다는 게 네로멜티아로서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손가락들이 파묻힐 정도로 젖가슴을 힘껏 움켜쥔 베아트리스의 나쁜 손이 그녀의 고의가 다분한 행동이었음을 증명하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네로멜티아는 베아트리스의 고의를 믿지 않았다.
전투에 돌입하면 가볍게 음속을 돌파해 질주하는 베아트리스가 조금 빠른 정도의 미끄럼틀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정황 증거가 명확한 현재의 상황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네로멜티아의 믿음은 산산이 부서졌다.
근거도 없이 맹목적이었던, 믿음이라는 이름의 착각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것이었다.
“하윽…! 너…!!”
베아트리스는 주인의 젖가슴을 힘껏 움켜쥔 것으로도 모자라 수영복 원단 너머의 젖꼭지를 강하게 꼬집어 오는 것이었다.
정확하게 젖꼭지를 노려 꼬집어 오는 두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여 젖꼭지를 비벼대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베아트리스의 의지로 벌어진 고의적 희롱이라는 사실이 명확하게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쏴아아아아아!!!
상당한 높이를 지닌 놀이 시설이었으나, 빠른 속도 만큼 끝도 빠르게 찾아왔다.
경사로의 끝은 평범한 수영장과 이어져 있었고, 네로멜티아 일행은 관성(??)의 힘에 의해 수영장에 빠지고 나서도 어느 정도 물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아.”
베아트리스는 물결이 잔잔한 수영장의 한복판에 멈춰 서고 나서야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너무나도 짧은 데다 너무나도 무미건조해 성의라고는 티끌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탄성.
네로멜티아는 질책하는 눈을 하고서 고개를 돌려 베아트리스를 흘겨 보았다.
그러나 베아트리스는 일말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고 너무나도 무감정한 변명을 한마디 늘어놓았을 뿐이었다.
“너무 무서워서 주인님께 실례를 끼쳐드린 것 같습니다.”
“에에! 베아트리스님 무서우셨나요!? 그럼 큰일인데… 다른 분들은 아예 못 타실 거 같아요!”
누가 봐도 성의 없는 변명에 지나지 않았으나, 정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러스테리아는 순진하게 그 한 줌의 진심도 없는 거짓말을 믿기 시작했다.
“그게 아니야, 러스. 베아트리스는 그냥 농담하고 있는 거야. 걱정하지 마.”
“그런 건가요? 헤에, 다행이다.”
네로멜티아는 현재의 베아트리스가 너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평소에는 생각도 하지 않을 장난을 서슴없이 벌이는 점.
이후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너스레를 떨며 상황을 모면하려는 점.
전혀 베아트리스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바꾸어 놓은 것인지 짚이는 부분은 없었으나, 현재 네로멜티아에게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기에 현재의 의문은 미뤄두기로 했다.
“그래서 내 소중한 유두는 언제까지 비벼대고 있을 참이야?”
“아, 전혀 몰랐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그만.”
다소 엄하게 지적하는 마왕의 한마디에도 베아트리스는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게 꾸며진 설정을 이어가고 있었다.
모든 것은 워터 슬라이드가 너무 무서워서.
너무나 편리한 변명의 수단이 되어버린 놀이 시설.
그리고 베아트리스의 이러한 태도는 주변에 불건전한 유행을 전파시키기 시작했다.
“자, 자기… 우리 저거 타 볼까…?”
“델리나, 저거… 같이 타지 않을래…?”
누가 봐도 흑심이 다분한 수작질이 주변의 연인들 사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다.
베아트리스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으나 아브노아 워터 파크의 놀이 시설에 또 다른 이용 문화가 생겨난 것이었다.
“으으… 러스… 정말 미안한데… 우리 나머지는 다음에 타기로 하고… 다른 구역으로 넘어가자…….”
“에에!! 왜요!?”
“아니… 이유는 묻지 말고…”
“왜요!! 왜요!? 왜요오 주인니이임!! 왜요오오!!”
러스테리아의 격렬한 의문에도 네로멜티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베아트리스가 자신의 가슴을 주무르고 젖꼭지를 비벼대서 흥분한 나머지 젖꼭지가 발기했기 때문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영복의 원단 위로도 훤히 보이는 발기한 유두의 모양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솟아있어 네로멜티아는 자신의 가슴을 두 팔로 감싼 채 탈의실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네로멜티아 일행이 서둘러 탈의실로 들어섰을 무렵.
그녀들의 뒤를 은밀히 따라다니고 있었던 스토커 카디스텔라는 이제 당혹감만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가슴을 농담거리로 삼은 네로멜티아의 괘씸한 언행에 분노를 터뜨리고 있었던 모습은 전부 사라졌고, 그저 누군가가 걱정이 되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만이 남은 것이었다.
초조함이 가득한 카디스텔라의 진홍빛 눈동자에는 비통함에 몸부림치는 남자 하나가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백성들 앞에서…!!! 저런 저속한!!! 저런!! 저런!! 주군!!!!!”
크로포드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쏟아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