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화 〉 마왕님의 짜릿한 마력 교습 (1)
* * *
온 세상에 어둠이 깔린 야심한 시각.
넬라넬라는 자신의 방에서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하루의 업무를 급히 마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넬라넬라는 리겐하르트에게서 받은 무구를 착용한 채 마냥 서 있는 것이었다.
은빛으로 빛나는 미스트릴제 풀 플레이트 아머와 바스타드 소드 그리고 카이트 실드.
모두 진홍빛의 마력석이 장착되어 있었고, 그 주변으로 마력을 흘리기 위한 마력 회로가 아름답게 양각되어 있었다.
“끄으으으으…”
넬라넬라는 미간을 좁힌 채 인상을 쓰고서 안간힘을 써 보았다.
전신의 근육에 잔뜩 힘을 가한 채로 부들대기를 벌써 십여 번.
넬라넬라는 어떻게 하면 마력석에 깃들어 있는 마력을 사용할 수 있을까 고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마력석의 마력은 넬라넬라의 갖은 노력에도 전혀 움직여 주질 않았다.
마력석이 은은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마력이 담겨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저 사용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아…….”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자신을 위해 제작되었다는 무구.
리겐하르트의 말을 들은 넬라넬라는 착용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건 명백한 오산이었고, 그저 착용하기만 해서는 마력을 전혀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자신이 읽었었던 소설들에서는 주인공이 거센 기합과 함께 힘을 끌어올리는 것으로 마력을 활성화하는 장면들이 여럿 등장했었다.
소설을 읽기 좋아하는 넬라넬라였기에 가장 먼저 참고한 것은 소설의 내용이 될 수밖에 없었고, 당연하게도 그것을 수차례 따라 하게 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는 필사적으로 근육을 부풀리기만 해서 땀이 났을 뿐이지 전혀 달라질 게 없었다.
“… 결국엔 나 자신이 중요했던 거야…….”
넬라넬라는 가슴 중앙에 박힌 마력석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마력이 가득 담긴 마력석을 손으로 만지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 깃든 힘은 전혀 쓰지 못하고 있는 현실.
자신의 손에 들어온 마력석은 오롯이 자신의 것이었으나, 그 안에 깃든 마력은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었다.
결국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마력도 다루는 법을 익혀야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씹어 삼키는 법을 모른다면 성대한 만찬도 아무짝에 쓸모가 없을 뿐이었다.
“후후. 해결사가 등장했답니다!”
“…!!”
분명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을 방안에서 들린 타인의 음성.
넬라넬라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활짝 열린 창문에 걸터앉아 미소짓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
하늘이 오염되어 달빛조차 허락하지 않는 칠흑의 밤이었으나, 성벽 위에 타오르는 횃불들의 작은 빛들이 별빛을 흉내 내고 있는 광경.
그 은은한 빛을 뒤로 한 채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성은 자신의 권속들에게 여신이라 찬양받는 존재였다.
“폐, 폐하…!”
“내가 방해한 거 아니지?”
“그런 일은 없습니다!”
넬라넬라 역시 그녀의 권속들 중 하나였다.
루이나의 여신이라 불리는 12신들의 대적자(??者).
헤모니겐트 백성들의 신앙과 충성을 한 몸에 받는 전지전능한 지배자.
마왕 네로멜티아 디 이시스는 그런 고결한 지위에 앉아 있으면서도 권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장난기가 다분하게 느껴지는 조용한 미소에 따뜻한 애정이 뚝뚝 묻어나고 있었다.
탁자 위의 촛불이 퍼뜨리는 은은한 빛이 네로멜티아를 비춰 그녀의 미소가 더욱 따스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혼자서 애쓸 필요 없었는데. 치수도 재본 적이 없는 리겐하르트가 너에게 꼭 맞는 갑옷을 제작해 줬다는 것에서 눈치 채지 못했던 걸까?”
“… 저…”
“검도 흔한 롱 소드가 아니라 바스타드 소드고 말이야.”
창틀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고 있었던 네로멜티아는 조용히 일어나 넬라넬라에게 다가섰다.
넬라넬라는 네로멜티아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으나, 질문은커녕 입을 떼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자신의 방.
수십 년을 지내오며 일상의 당연한 배경처럼 여겨졌던 이 장소가 네로멜티아라는 존재 하나의 등장으로 인해 전혀 다르게 보이고 있었다.
자신의 방에 얽힌 기억이라면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의 방대한 수가 있었으나, 그중 단 하나만이 집요하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마왕과 함께 나눈 뜨겁고 짜릿한 순간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숨이 막혀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는 것은 그리 의아할 일이 아니었다.
“넬라넬라의 신체 사이즈나 애용하는 무기… 전부 내가 알려준 거라구.”
네로멜티아라고 해서 넬라넬라의 치수를 재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치수를 재기는커녕 줄자를 들이민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넬라넬라의 갑옷은 정밀하게 측정해 제작한 것처럼 그녀의 신체에 꼭 맞았고, 검과 방패는 그녀가 애용하던 크기 그대로였다.
“제 신체… 사이즈는…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검과 방패의 크기는 한 번 보면 의외로 알기 쉬운 것이었고, 네로멜티아는 실제로 넬라넬라의 전투를 위한 무장이나 훈련을 위한 무장을 몇 번이나 본 경험이 있었기에 그녀가 사이즈를 맞춘다고 해서 그리 놀라울 일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갑옷은 이야기가 다른 것이었다.
신체라는 것은 열이면 열이요 백이면 백 천차만별로 형태가 다른 것이었다.
그것을 측정해 보지도 않고 이토록 정밀하게 맞출 수 있다는 것은 경이롭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대단한 일인 것이었다.
그러나 네로멜티아는 더욱 짙은 미소를 보이며 아무렇지도 않게 속삭일 뿐이었다.
“많이 만져 봤잖아.”
“읏…!”
작고 나지막한 음성이 뜨거운 호흡과 함께 귓가를 파고드는 짜릿함.
넬라넬라는 가늘게 몸을 떨며 심장의 고동이 거세지는 것을 느꼈다.
“애초에 만들어달라고 요청한 것도 나였고……. 그러니 내가 끝까지 책임져 주는 건 당연한 거잖아? 혼자서 애쓸 필요 없이 나를 기다렸으면 됐을 텐데.”
“… 죄송… 합니다…….”
“후후. 우리 넬라는 늘 깍듯하단 말이야. 조금은 풀어져도 좋을 텐데. 이렇게 둘만 있을 때는 더…….”
“흐읏…!!”
넬라넬라는 리겐하르트가 전해준 모든 무구를 착용한 상황이었으나, 단 하나 착용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레이트 헬름이었고, 마력의 운용법을 연구하기 위해 갑옷을 착용한 것일 뿐이니 답답한 투구까지 완벽하게 갖출 필요는 없다 생각되어 그것 하나만은 벗어둔 상황인 것이었다.
그리고 네로멜티아의 손가락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훤히 노출되어 있었던 넬라넬라의 뒷목을 가볍게 쓸어댄 것이었다.
바람에 나부끼는 커튼이 부드럽게 피부를 스치듯, 네로멜티아의 손끝은 목선을 타고 피부를 가볍게 쓸어대며 올라갔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새로운 자극이 가해지자 넬라넬라는 움찔 몸을 떨며 솔직한 반응을 보여왔다.
“후후후. 넬라는 늘 솔직해서 좋다니까. 귀여워.”
“… 면목없습니다…….”
“장난은 여기까지 하고! 슬슬 마력 운용법을 알려 주도록 할까?”
무척이나 농염하고 끈적했던 분위기.
네로멜티아가 언제 넬라넬라를 밀어 넘어뜨려 몸을 섞으려 들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분위기.
그 상황에서 네로멜티아는 너무도 간단하게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그러자 넬라넬라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깊은 한숨을 짓고서 스스로에게 놀라 버렸다.
넬라넬라 본인에게는 무척이나 달갑고 소중한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으나, 한편으로는 무언가를 아쉬워하며 애틋한 안타까움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해 내심 스스로에게 놀라움을 느낀 것이었다.
“자, 지금부터 넬라에게 마력을 흘려 넣을 거야. 우선 마력의 감각을 느끼는 것부터 시작하자.”
“알겠습니다!”
넬라넬라는 마력의 감각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몰랐다.
그러나 감각을 느끼는 일이 우선이기에 무작정 오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는 분명 현명한 선택이었다.
“눈은 감는 편이 더 좋을 거야. 필요 없는 감각을 차단하는 편이 더 민감해져서 좋거든.”
넬라넬라는 네로멜티아의 조언에 따라 즉시 눈을 감았다.
애초에 마력을 눈으로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조금도 하지 않았었기에 넬라넬라는 아무런 미련도 가지지 않았다.
웅웅웅웅웅
넬라넬라는 순간 자신의 신체에 진동하는 무언가가 흘러들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실제로 진동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촉각으로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방식으로 감각을 느끼는 지는 전혀 모르는 채, 그 낯선 울림을 막연히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이게 마력이야. 정확히는 마나. 더욱 정확히는 루이나.”
“… 따뜻한… 느낌입니다… 포근하고…….”
눈을 감은 넬라넬라는 볼 수 없었으나 네로멜티아는 넬라넬라의 대답에 기쁨을 감추지 않고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자애로운 미소를 띤 채 넬라넬라를 바라보던 네로멜티아는 그녀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고마워.”
넬라넬라는 무엇이 고마운 것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나, 현재로써는 마력을 느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기에 의문을 애써 뒤로 하고 잊기로 마음먹었다.
흘러든 마력은 호수의 물안개가 번지듯 서서히 그러나 짙고 무겁게 세를 넓히며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등을 타고서 흘러든 마력은 어느새 심장에 모여들어 있었고, 심장의 고동이 더욱 활기차게 변화하는 느낌이 들며 다소의 고양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 마력은 이제 네 거야. 한 번 움직여 볼래?”
갑작스러운 네로멜티아의 요구에 넬라넬라는 당혹감을 느꼈다.
마력의 감각을 인지한 것은 좋았으나, 그 다음 걸음을 내딛을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저 느끼는 일에 성공했을 뿐, 움직일 방법은 전혀 모르는 그대로였다.
그러나 네로멜티아는 단호하게 재차 명령할 뿐이었다.
“의심하지 마. 의지가 가장 중요하니까, 할 수 있다고 믿어.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감각을 이용하는 거니까 익숙하지 않을 뿐이지, 충분히 할 수 있어.”
넬라넬라는 잠시 주저했다.
믿음이 중요하다는 말은 제대로 인지했으나 그녀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움직일 수 있을 방법을 전혀 모르는데 가능하기나 할까.
전혀 감도 잡히지 않는데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이대로 아둔하게 훈련에 지지부진해서 주군을 거듭 귀찮게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넬라넬라는 곧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을 믿을 수 없더라도 네로멜티아만큼은 그 무엇보다도 확실하게 믿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신앙하는 종교이자 여신.
자신이 충성을 다하여 섬기는 주군.
그리고 자신이 온 마음을 다 바쳐 사랑하는 존재.
그런 네로멜티아가 자신은 해낼 수 있노라고 말해 주었다.
그녀를 믿지 못하면 누구를 믿을 수 있을까.
넬라넬라는 모든 정신력을 필사적으로 짜내어 자신의 의지를 견고하게 만들었다.
마왕에게서 전해져 자신의 것이 된 마력에게 최대한 확고하고 정밀한 명령을 내렸다.
너무도 깊이 집중한 까닭에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는 것.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네로멜티아는 단 한 번의 미동도 없이 자신의 등에 손을 대고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더없이 지고한 존재가 자신을 믿고 한없는 기다림을 선뜻 감당하며 지켜봐 주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의심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미지에 대한 의심과 실패의 두려움을 딛고서 비로소 완벽한 의지를 찾았을 때.
아주 조금이지만 심장에 깃든 강대한 힘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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