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화 〉 코드 네임 192B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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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Chimera).
자연 그대로라면 본래 존재할 턱이 없을 인위적 창조 생명체.
주로 기존에 존재하는 복수의 생명체들을 마도 공학이나 연금술 혹은 마법 술식을 통해 합성하여 새로운 개체를 창조한 것이다.
이 경이로운 생명 탄생의 과정은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 속의 이야기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구 속의 흥미로운 이야기 취급을 할 뿐이었다.
키메라라는 존재 자체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지식과 실력을 지녀야만 창조할 수 있는 것이고, 평범한 이들은 합성 공식의 구상은커녕 그 원리조차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복잡하고 난해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종족들도 키메라를 실제로 목견한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거기다 키메라라는 존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방대한 지식과 자본으로 하여금 제작이 가능한 이들조차 그런 노력을 거쳐가며 제작할 필요성을 못 느끼게 만들어 제작 과정의 문턱을 더욱 높이는 것이었다.
애초에 키메라를 제작할 수 있을 정도의 인물이라면 더욱 강력한 골렘을 만들 수도 있고 상시 가동할 수 있을 무자비한 매직 트랩을 설치할 수도 있으며, 본인의 무력은 그것을 압도적으로 상회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숨겨진 던전이나 은신처의 가디언으로써 활용되는 키메라는 이렇듯 제작 조건이 무척 까다롭고 드높은 경지의 희귀한 기술을 요구하기에 대부분의 인류는 키메라의 존재를 목격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는 셈이었다.
이는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마왕군의 회의장에서도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베리베리와 아티스는 키메라가 실존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극히 놀랐고, 넬라넬라는 헤스티니아가 키메라를 만들고 있었다는 걸 사전에 미리 알고 있었기에 놀라움이 덜 했지만 다른 방면으로 경이를 느끼고 있었다.
일생을 통틀어 이와 비슷하게 생긴 생물조차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괴상하게 생긴 생명체.
그것이 몇 번의 격한 흡입만으로 오염 물질을 깨끗이 빨아들이는 모습에 대해 감탄하고 있는 것이었다.
키메라라는 것은 대개 전투용으로 제작된다고 알고 있었던 상식을 모조리 깨부수는 참신한 업적이었다.
미노타우로스의 근육에 사이클롭스의 골격을 섞어 만든 단단한 근육덩어리의 거인.
거대한 평원 사자의 몸에 늪지 물뱀과 와이번의 날개를 달아 만든 독을 품은 비행 야수.
와처 아이의 눈에 슬라임의 점액 신체를 합쳐 만든 저주와 마법의 슬라임.
책에서 본 키메라는 언제나 각 개체의 무서운 부분만을 골라내어 만든 섬뜩한 전투 병기였었다.
사실상 키메라의 제작에 들이는 수많은 노력과 시간에 충분한 보상을 받기 위해선 그 활용도가 강대한 무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헤스티니아는 얼마 되지도 않는 시간에 완성된 키메라를 창조해냈다.
심지어 전투용도 아니었고 자연 환경의 정화를 목적으로 하는 무해한 키메라였다.
이것은 여러모로 예상을 뒤집는 참신한 발상인 것이었다.
“오염 물질을 먹고 사는 키메라라니…! 제작의 가능 유무는커녕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역시 영생의 마녀님은 대단하십니다!!”
“어머, 니콜라스 경. 과찬이시네요. 후후, 그래도 기분이 좋은 걸요?”
자줏빛 안광을 폭발시키듯 불태우며 위대한 업적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 니콜라스.
그의 거대한 건틀릿이 불끈 쥐어져 요동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니콜라스는 훌쩍 가까워진 헤모니겐트 재건의 희망에 몹시 격앙된 듯 보였다.
“야!! 나도 같이 만든 거라고!!!”
“후후, 그래요. 우리 여제님께서 합성 장치를 구현해 주셨기에 성공할 수 있었답니다?”
헤스티니아만을 언급한 니콜라스의 찬사에 소외감을 느껴 불쾌해진 카디스텔라는 발끈해 소리를 질렀다.
분명 유전 정보 조사부터 오염 물질 조사 그리고 유전 조합 연구까지 설계의 대부분을 헤스티니아가 완성한 상황이었으나 제작 과정에 쓰인 마도 합성 장치는 분명 자신이 만든 것이었기에 카디스텔라 자신의 노력이 조명 받지 못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이를 단번에 읽어낸 헤스티니아는 자연스럽게 카디스텔라를 추켜세워주며 그녀의 공로가 주목받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음! 카디스텔라님께서도 분명 훌륭한 업적을 세우셨습니다! 이는 반론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사실!”
“역시 마왕님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는 선혈의 여제님! 그 끝을 모를 지혜와 능력에 이 늙은 고블린은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끌끌끌!”
분위기를 빠르게 읽어낸 베리베리와 아티스 또한 다소 과장된 어조를 보여가며 카디스텔라의 공에 찬사를 보냈다.
이후 눈치가 비상한 마녀와 오크 영주 그리고 재무 대신의 찬사를 필두로 회의장의 전원이 분위기를 읽어 카디스텔라의 기분을 맞춰 주었다.
“카디스! 훌륭해!! 대단해!! 자랑스러워!!”
“대, 대단하십니다!”
네로멜티아와 넬라넬라가 추가로 찬사를 더했고, 나머지 참석 인원들도 갈채를 보내어 회의장은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한 번 기분이 상하고 토라지면 제멋대로 날뛰기 일쑤인 카디스텔라의 기분을 잘 달래 주어야 순탄한 회의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차갑고 단호하기로 유명한 베아트리스조차 눈을 질끈 감고서 마지못해 갈채를 보내고 있었으니 더는 설명이 불필요할 정도였다.
그렇게 회의장의 모두가 자신의 업적을 인정하며 칭찬을 하는 모습을 보이자 카디스텔라는 흐뭇하고 우쭐하여 신이 난 모습을 보였다.
“흐흥! 그렇지!? 난 대단해!!”
네로멜티아는 속으로 한숨을 지었다.
천진난만하고 마음이 여린 러스테리아를 떠올리며 제멋대로에 성격이 나쁜 카디스텔라를 바라보았다.
두 존재는 서로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나 그녀들을 대하는 주변의 태도는 무척 일관된 것이었다.
‘우리 마왕성에는 애가 둘이나 딸려 있네…….’
네로멜티아의 속마음은 주변의 모든 간부들 역시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바였다.
“한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아, 베아트리스님. 말씀하시지요.”
순간 베아트리스의 갑작스러운 질문이 계속 이어지던 찬사 세례를 단번에 끊어냈다.
특유의 나긋한 미소를 띠고서 손을 마주치던 헤스티니아 또한 즉각적으로 질문에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회의장의 어수선한 분위기는 단숨에 환기된 것이었다.
자신을 향하던 찬사의 세례가 끊어지자 카디스텔라는 베아트리스를 못마땅하게 바라보았으나 현재는 마왕군의 중요한 회의를 진행하는 자리였기에 뭐라 불평할 수 없어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오염 물질을 먹고 번식하는 키메라. 분명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어보입니다만, 오염 물질을 소화시킬 수 있는 겁니까?”
“아주 좋은 지적이네요!”
헤스티니아는 베아트리스의 질문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어느 정도 의문을 가지고 던진 질문이었으나 헤스티니아는 오히려 그녀의 질문이 무척 달가운 눈치였다.
따악!
“자, 이게 키메라 192B의 배설물입니다. 보시다시피 역한 냄새도 나지 않고 수수하죠?”
헤스티니아가 손가락을 튕기자 탁자 위에 흑갈색의 무른 덩어리 하나가 나타났다.
그것은 숲의 낙엽 더미를 들추면 볼 수 있는 부엽토 덩어리와 몹시 흡사한 것이었다.
“신체에 유해한 미세 중금속은 뭉쳐서 하나의 금속 덩어리로 만들고 독성 물질이나 병원체 따위의 독소는 분해하여 무해한 유기물로 소화해 배출합니다. 오히려 192B의 배설물을 모아 불특정 다수의 금속을 모을 수도 있고 안전하고 질 좋은 거름으로도 활용이 가능하죠. 단언컨대 완벽히 안전하면서도 유용한 물질로 변환할 수 있다는 거예요.”
“오오오오!!”
“정화 뿐 아니라 그런 활용 방안까지!!”
헤스티니아의 답변은 그야말로 명쾌한 것이었다.
그저 오염 물질을 해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여러모로 활용이 가능한 자원으로 바꾼다는 발상은 정말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기적과도 같은 것이었다.
니콜라스와 베리베리가 감탄을 금치 못해 목소리를 높인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럼 한 가지 더. 이것들은 오염 물질이 존재하는 만큼 번식을 거듭하여 무한정 개체 수를 늘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정화 작업이 모두 끝나고 난 뒤에 이것들의 처분은 어떻게 진행하실 계획입니까? 인위적으로 창조한 생명체가 정화를 마친 이후에도 대지를 뒤덮고 끝없이 살아가는 모습은 그리 달갑지 않습니다만.”
“이들은 오염 물질을 감지할 수 있는 극도로 발달된 감각이 존재합니다. 주변이 완벽하게 정화되면 오염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겠지요.”
“그런 미래가 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만, 테라리스의 모든 오염이 정화되는 날에는 이동할 장소도 없을 텐데 마무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들이 늘어난 개체 수 그대로 남는다면 생태계 교란종이 되어버릴 테니 말입니다.”
“더없이 날카로운 지적! 훌륭하세요, 베아트리스님!”
헤스티니아는 베아트리스의 집요한 지적에 오히려 찬사를 보냈다.
손뼉을 치기까지 하며 감탄하는 모습을 보인 헤스티니아는 정곡을 찌르는 베아트리스의 지적에 오히려 더욱 여유로운 모습마저 보이고 있었다.
“설명이 길어질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베아트리스님께서 요점만 콕콕 짚어 주셔서 무척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네요. 감사합니다.”
“그럼 대책이 완벽하게 마련되어 있는 겁니까?”
“물론 준비되어 있지요! 후후후!”
헤스티니아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품에서 잎사귀 하나를 꺼냈다.
손바닥 두 개 정도의 면적을 지닌 커다란 잎사귀였는데, 문제는 그것이 헤스티니아의 젖가슴 사이에서 꺼내어졌다는 것이었다.
이토록 큰 물체가 여성의 젖가슴 사이에 감춰져 있었다니 상상도 할 수 없을 광경이었다.
가뜩이나 단추를 네 개나 풀어 두어 첨단의 중요한 부분을 겨우 가린 정도로 훤히 노출되어 있었던 커다란 젖가슴이 흔들흔들 물결치며 잎사귀 하나를 뽑아내는 장면은 자리의 모든 남성들이 당황하며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여성들이라고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고, 한숨을 짓거나 낯을 붉히거나 오히려 집중해서 보는 등 제각각의 모습들을 보이고 있었다.
회의장의 분위기를 무척 야릇하고 당혹스럽게 만들었으나 그 장본인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잎사귀의 위에 키메라 192B를 올려둔 헤스티니아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띤 채 보란 듯이 손가락으로 그것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키메라 192B는 그저 끈적한 점액으로 이루어진 길을 만들었을 뿐, 잎사귀를 건드리지 않고 지나갔다.
“키메라 192B는 오염 물질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아요. 소화를 못 시키는 건 아니지만 신체를 구성하고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물질은 규정된 192종의 오염 물질뿐이에요. 그러니 주변이 다 정화되고 나면 어떻게 될까요?”
“굶어 죽는다…”
“네. 아사(?死)입니다. 주변이 깨끗해지면 전부 죽고 말아요. 그러니 생존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오염 지역을 찾아다닐 테죠.”
헤스티니아는 이지적인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손가락 하나를 세워 자신의 안경을 고쳐 쓰는 모습을 보였다.
말 그대로 유능한 지식인으로서의 위엄을 과시하는 것이었다.
이후의 회의는 각자의 업무 상황을 간략하게 보고하는 정기 보고회의 색을 띠게 되었고, 오운에게 발언권이 주어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회의가 종결되었다.
오운에게 달리 보고할 만한 업무 경과가 있을 턱이 없으니 오운에게 주어지는 발언권은 회의의 마무리를 알리는 일종의 신호탄인 셈이었다.
회의가 마쳐지고 나서 일부는 자신의 업무에 신속히 복귀할 수 있도록 바로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그나마 여유가 있어 자리에 남은 이들은 현재의 회의장이 본래는 스토니 포트리스의 연회장인 만큼 곧바로 요리가 준비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식사라는 이름의 사석(??)을 진행하게 되었다.
가벼운 담소를 나누며 편히 즐길 수 있게 마련된 간소한 식사는 참석한 이들에게 바쁜 일정 속의 안락한 휴식을 선사했다.
현재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의 여유는 사적인 자리였기에 만들어진 것만은 아니었다.
헤모니겐트의 재건에 큰 전진을 이룬 키메라의 제작.
찬란한 희망이 조금 더 가까워진 순간이었기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었다.
네로멜티아 역시 기쁜 마음을 감출 생각은 없었으나, 그녀는 다른 생각으로 심경이 복잡해진 상황이었다.
모두를 이끄는 중요한 위치인 마왕의 좌에 군림하고 있는 지배자로서의 의무.
네로멜티아는 완성된 키메라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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