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화 〉 돌연변이 망자의 식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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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황무지.
그 드넓은 폐허의 상공에 두 명의 여성이 떠올라 있었다.
“어떠신가요? 지원만 조금 해 주면 나름대로 쓸만하답니다.”
“지원이란 건 네가 성벽을 부순 걸 말하는 거겠지?”
“그럼요. 아무래도 저들에게 공성전은 무리니까요. 다만 일단 근접하기만 하면 높은 살상력과 생존력을 자랑한답니다.”
연구원의 하얀 가운과 안경을 착용한 헤스티니아와 보랏빛의 고급스러운 망토를 두른 네로멜티아.
헤스티니아의 연구원 복장은 그녀가 마왕성의 마도 공학 연구소 소장에 취임하고부터 자주 애용하는 복장이었고, 네로멜티아의 망토는 후드가 달려 있어 모습을 감추는 데 용이한 것이었다.
현재 네로멜티아는 헤스티니아가 만든 변종 좀비의 위력을 시험할 겸, 정리했어야 할 인근의 휴미안 기지를 습격한 것이었다.
얼마 전 태고의 숲과 맥켄지 광산을 습격하기 위해 병력을 보냈었던 북부 전초 기지.
이들이 자신들이 파견한 병력 전부가 몰살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아 대처하기 전에 마저 정리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이들이 살아남아 있으면 에스테로난에 연락을 취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마왕성의 정보가 불특정 다수의 적들에게 흘러들어 곤란해질 수 있는 것이었다.
정보를 차단하기 위해 죽음으로써 정보를 떠벌릴 모든 입을 없애는 것.
“자신의 이지(理?)조차 되찾지 못한 저급 좀비들인데도 저런 위력이라니… 무척 흥미롭군.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턴 언데드에 저항력이 있다는 점이려나.”
대개 모든 언데드들이 그러하지만 좀비 역시 급에 따라 능력과 외모에 차이가 확연한 존재들이었다.
영력(?力)이 쌓이며 존재 자체가 성장하는 언데드의 특성상 좀비는 점차 자신의 생전 외모를 되찾고 신체의 탁월한 장악력과 마력을 가지게 된다.
압도적인 힘과 재생력, 지혜의 상승을 이루고 영력을 바탕으로 한 마법이나 저주를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휴미안의 전초 기지를 공격하고 있는 좀비들의 경우 엉망진창으로 뒤틀린 시체의 모습을 그대로 가졌으며, 이지나 자아 없이 본능만으로 움직이고 있는 존재들이었다.
주인인 헤스티니아의 명령이라면 무엇이든 따르면서도, 단순한 명령만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이었다.
결코 상위의 좀비라고는 부를 수 없는 저급한 존재.
그러나 그들의 힘은 하급 뱀파이어에 필적해 있었다.
하급이라고는 하나 언데드의 귀족이라 불리는 존재들인 만큼 그들 하나하나의 힘은 강대한 것이었고, 본래라면 저급의 좀비가 행사할 수 없을 드높은 격차의 힘인 것이었다.
“후후후. 턴 언데드에 저항력이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그저 효과가 있을 수 없을 뿐이지요.”
“그게 무슨 말이야?”
“후후. 저들은 죽었으면서도 살아있는 셈이니까요.”
죽어있으면서도 살아있다.
말장난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헤스티니아의 대답은 사실임을 입증하듯 명확했다.
오로지 언데드에게만 효과가 있는 턴 언데드의 특성이 헤스티니아의 대답에 신빙성을 실어 주는 증거가 되기도 했다.
“플레쉬 골렘(Flesh Golem)? 강령술 말고 코어로 움직이는 기계식으로?”
“조금 더 비슷하긴 하지만 역시 아니에요.”
나름대로 추측을 해 본 네로멜티아였으나 정확한 답에 근접하기는 힘들었다.
애초에 저렇게 뒤틀린 변종의 좀비는 본 적이 없었으니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근거 자체가 부족한 탓이었다.
“시체의 세포 자체를 재생시킨 거랍니다. 죽은 세포에서 유전 정보를 추출해 새로운 세포를 만들면서 강한 재생 능력을 추가해 시체에 주입하면 같은 유전 정보를 가진 세포만 골라서 집어 삼키며 새로운 세포를 생산하고… 설명하면 복잡하고 길어지지만, 간단히 얘기하면 생물학적으로 되살린 상태라는 거죠. 물론 근본적으로는 어떤 규정을 내리냐에 따라 기존의 생명을 부활시킨 것인지 새로운 생명을 창조한 것인지 해석에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확실한 건 저건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거예요.”
“… 음. 알겠어! 살아있는 거라는 말이지?”
“후후. 식량이 부족한 세계이니만큼 대부분의 사물에 대해서 양분을 흡수할 수 있는 기능도 설계해 뒀어요. 오염된 흙이나 빗물, 썩은 나무토막 등등 심지어는 모래를 삼키고도 그 안에서 양분을 흡수할 수 있죠! 정말이지 산성을 띤 용해액같은 독물이 아니고서야 웬만한 건 전부 소화할 수 있어요! 대단하죠!?”
“어! 대단하네!”
네로멜티아는 헤스티니아가 설명한 개발 과정이나 기능 원리 따위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결과만 받아들이고 이해한 셈 쳐버렸다.
결국 중요한 건 저들이 살아있는 존재들이며 뭐든지 먹을 수 있기에 유지시 자원이 들지 않는다는 것.
헤스티니아는 눈을 빛내며 활기가 넘치게 설명을 이어갔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진풍경이었고 그만큼 헤스티니아의 진실한 열정이 보이는 순간이었기에 네로멜티아는 차마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저 헤스티니아가 원하는 대로 칭찬을 해주며 그녀의 업적을 인정해 줄 뿐이었다.
“오, 사수 대열 전멸이네. 사령관이라는 놈이 지형을 이용할 줄 모르는 걸? 차라리 성벽 위로 올라가서 방어했으면 좁은 공간 여건의 덕을 좀 봤을 텐데… 병영 한복판에서 스크럼을 짜니 당연히 대열이 무너지지.”
“스크럼을 짜더라도 차라리 방패 대형을 만들어서 버티는 데 주력하고 후열에서 불을 가져왔으면 더 나았을 걸요. 쟤들은 불에 약하거든요.”
“아, 그래서 집중 포화는 피한 거야?”
“네. 경화된 외피를 가져서 물리적인 타격에는 잘 버티지만… 아무래도 살아있는 존재라 열에는 취약하거든요. 물론 힘이 센 만큼 땅도 순식간에 파헤칠 수 있으니, 땅 속으로 숨으면 해결되는 문제지만요.”
네로멜티아는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도록 비행의 고도를 낮추고 전쟁터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휴미안들에게 들킬 확률이 늘어날 것이었으나, 네로멜티아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현재 네로멜티아와 헤스티니아는 여러 가지 이유로 투명화 마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헤스티니아가 개발한 변종 좀비의 실효성을 입증하기 위한 실험이니만큼 자신들의 등장이 변수로 작용될 수 있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혹시 모를 케르디하크의 감시 때문이었다.
휴미안과 동맹을 맺은 상황이니만큼 케르디하크가 휴미안의 전초 기지를 감시하고 있을 확률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분명 케르디하크정도 되는 거대한 마력을 지닌 드래곤이 접근하면 단숨에 눈치챌 수 있긴 하겠지만, 케르디하크가 미지의 수단을 이용해 상황을 감시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네로멜티아는 투명화 마법으로도 모자라 후드가 달린 망토까지 착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네로멜티아의 존재 자체는 외부에 결코 알려져서는 안되는 일급 기밀이었다.
현재로써는 네로멜티아가 부활하지 않았다 여겨지기 때문에 마왕성이 전화(戰?)를 피해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현재의 마왕성에는 마왕이 존재하지 않으니 그리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지기에 케르디하크와 휴미안의 대처가 소극적인 것이기 때문이었다.
마왕이 부활했다는 소식이 케르디하크나 에스테로난에 들어가게 되면, 그들은 하루라도 빨리 마왕을 제거하기 위해 대대적인 동맹군을 편성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기에 네로멜티아는 외부 활동에 대해 극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끄하아아아악!!!”
“케흑!!”
휴미안군에 더는 희망이 없었다.
대열은 무너졌고 별다른 대처 수단도 없었다.
그저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며 무의미한 저항을 할 뿐이었다.
그나마 휘두를 검을 찾을 시간도 없었던 사수들은 휴대용 단검을 꺼낸 채 부들부들 떨어댈 뿐이었다.
변종 좀비의 거대한 손아귀에 잡혀 으스러진다.
날이 휘어진 곡도(曲?) 시미터를 연상케 하는 긴 손톱이 갈기갈기 찢어 버린다.
무수하게 자란 날카로운 이빨들에 한번이라도 씹히면 신체는 여지없이 뜯겨 나간다.
사방에서 공포에 젖은 휴미안의 비명이 울려 퍼지고, 금속의 비린내가 역겨운 혈향이 자욱하게 번져 나가고 있었다.
“아아… 컥… 으큭… 꺽…!”
고통에 이를 악문 병사의 치아 사이사이에서 핏물이 끊임없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지면에 등을 대고 드러누운 병사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자신의 신체를 내려다 보고 있을 뿐이었다.
세 마리의 변종 좀비가 자신의 신체를 산채로 뜯어먹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의 양팔을 뜯어낸 변종 좀비가 양손에 그것을 하나씩 쥐고서 번갈아가며 뜯어먹고 있었다.
자신의 다리 사이에 고개를 처박은 변종 좀비는 두툼한 허벅지살을 뜯다가 대동맥에서 세차게 뿜어져 나오는 피를 쪽쪽 빨아 마시고 있었다.
자신의 뱃가죽을 찢어 그 안에 담긴 내장을 꺼내 먹던 변종 좀비가 자신의 위장을 뜯어내는 도중, 소화가 되다 만 위액 섞인 스튜가 찢어진 위장의 틈새에서 흘러 나오고 있었다.
산채로 자신의 몸이 뜯어 먹혀 사라지고 있는 처참한 모습에 병사는 어느덧 죽음을 바라게 되었다.
그토록 바라던 생존이 아닌 일초라도 더 빨리 맞이할 빠른 죽음을 간절히 염원하게 된 것이었다.
내장을 뜯어먹던 변종 좀비가 아예 찢어진 뱃가죽의 구멍에 자신의 대가리를 쑤셔 넣고 흉곽의 안을 뜯어먹기 시작했을 때.
휴미안 병사는 심장이 뜯겨져 나가며 단단한 대동맥이 끊어지는 반동으로 머리가 후방을 향해 힘껏 젖혀지게 되었다.
혈액의 공급이 중단되며 급속도로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하는 와중 휴미안 병사는 누군가의 비겁한 모습을 목격했다.
오랜 시간 비가 오지 않아 말라붙은 하수도로 은밀히 몸을 던지는 사령관의 모습이었다.
지휘의 의무를 포기한 채, 죽어가는 병사들을 내팽개치고서 제 한 몸 건사하려는 비열함.
하수도에 쌓인 온갖 오물들은 바싹 말라 건조되어 있었고, 그 오물들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자신의 몸을 숨기는 것이었다.
사령관의 고급스러운 가죽 부츠가 오물들의 위에 거꾸로 세워진 것이 병사가 살아서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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