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화 〉 돌연변이 망자의 식탁 (1)
* * *
“마, 막아라!! 병영에 있는 놈들도 모조리 튀어나와!!! 적습이란 말이다!!! 좀비다!!! 좀비가 몰려왔다고!!!”
휴미안 사령관의 다급한 외침이 전초기지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핏대를 잔뜩 세운 채 악을 써가며 필사적으로 지휘권을 행사하는 사령관.
그에게서 아스타리스 대륙의 패자인 휴미안으로서의 위광은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전력을 다할 뿐이었고 명예나 위엄은 내팽개친 지 오래였다.
그의 눈은 공포로 물들어 있었다.
“흐이이익… 저, 저게 뭐야아아…!”
“정신 똑바로 차려!! 발포 준비!!! 대열을 갖춰라!!! 무기를 들란 말이다!! 이 멍청한 자식들아!!!”
성벽의 너머 황무지에서부터 달려오는 망자의 무리에 기겁해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병사들.
사령관은 멍하니 서서 덜덜 떨고만 있는 병사들을 힘껏 흔들고 뺨을 쳐가며 정신을 차리게 만들고 있었다.
당장 대처하지 못하면 전멸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망자들이 무너진 성벽을 통해 기지 내부로 들어서게 되면 펼쳐질 미래라곤 일방적인 학살밖에 없는 것이었다.
원거리 전투에서는 압도적인 전력을 자랑하는 휴미안군이지만, 다른 종족들에 비해 비교적 나약한 신체를 가진 만큼 근접을 허용하는 순간 아비규환이 펼쳐질 것이었다.
특히 현재 몰려들고 있는 좀비들은 평범한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잔뜩 뒤틀린 신체와 함께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근육과 골격을 지닌 돌연변이 좀비.
그나마 평범한 좀비였다면 검을 들고서라도 싸울 법 하지만 현재 마주하고 있는 끔찍한 변종 시체들에게는 절대 무리였다.
흉측하게 진화한 좀비들이 비정상적으로 거대해진 손아귀를 펼쳐, 살짝 움켜 쥐기만 해도 연약한 휴미안의 몸은 바스러지고 뭉개질 것이었다.
그들은 카보니 숲과 태고의 숲 인근의 황무지를 떠돌던 망자의 무리였다.
그들을 섬멸하지 못했기에 휴미안들은 막대한 인력과 자원을 들여 거대한 격리 장벽을 쌓은 것이었다.
“턴 언데드!!!”
뒤늦게 도착한 마법사 하나가 대 언데드 공격 마법인 턴 언데드(Turn Undead)를 사용했다.
언데드를 상대하는 일에 있어 가장 흔하면서도 효과적인 마법.
망자의 영혼을 강제로 승천시키는 대응 마법이 펼쳐진 것이었다.
그러나 마법의 효과는 전무했다.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망자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망자의 무리는 일말의 주저 없이 무너진 성벽을 향해 질주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멍청한 놈!!! 저것들은 턴 언데드는커녕 사제의 기도도 통하지 않는단 말이다!!! 수백 년 전부터 밝혀진 사실이고!! 그래서 우리가 장벽을 쌓은 걸 모르나!!!”
“호, 혹시나 해서…”
“그런 의미 없는 일에 낭비할 마나가 있으면 공격 마법을 하나라도 더 퍼부으란 말이야!!! 하다 못해 사수(?手)들 총기에 마력석이라도 채워 주라고!!!”
실수한 마법사의 멍청함에 치를 떨며 악을 쓰던 사령관의 낯은 어느새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가뜩이나 전방에 펼쳐진 짙은 죽음의 향기에 겁을 집어 먹고 있었던 병사들은 사령관의 그런 엉망진창인 모습에 절망을 느끼기 시작했다.
“적 세력, 사정 거리에 진입했습니다!!”
당혹감을 주체하지 못해 병사들을 닦달하고 있었던 사령관의 귀에 비로소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전해졌다.
사령관은 지체하지 않고 전투를 개시하는 명령을 내렸다.
“발포!!! 발포하라!!!”
쭈우우우웅!!! 쭈우우웅!! 쭈우우우우웅!!!
공격하는 순간만을 기다린 것은 사령관 뿐만이 아니었다.
망자들의 접근을 허용하는 순간 죽음은 확정되는 것이었기에, 병사들 역시 필사의 공세를 펼쳐 망자들의 접근을 막고자 혈안이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대열을 구축한 채 떨려오는 손을 애써 붙들고 화기를 조준하고 있었던 병사들은 사령관의 발포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방아쇠를 당겼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앙!!!!
포병대 역시 발포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자신들의 모든 화포를 발포했다.
앞선 태고의 숲 정복 작전에 대부분의 포명대가 차출되었었기에, 남은 포병대원은 얼마 되지 않았으나 그들의 진보된 마도 공학으로 이룬 폭격은 막강한 화력을 내는 것이었다.
폭발하는 마력탄이 퍼부어지고 곡사포의 화약탄이 비처럼 쏟아졌다.
“멈추지 마라!!! 마력이 바닥나면 곧바로 후열의 사수와 교대!! 사격을 멈추지 마라!!!”
맹렬하게 솟구치는 화염과 시커먼 연기로 인해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상황이었으나 사령관은 발포 명령을 거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망자의 무리가 진작에 소멸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발포를 중단하는 일은 결코 생각지 않는 것이었다.
시야를 확보하여 정황을 살피기 위해 발포를 중단한다면, 만에 하나 남아있을 수도 있는 망자들의 접근을 허용하게 되는 셈이었다.
병사들이 소지한 모든 마력석이 바닥날 때까지 사령관은 폭격을 그만 둘 생각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고, 재정적 피해가 막심한 일이 될 수도 있었으나 적어도 목숨보다 귀한 것은 없기에 손해를 보더라도 적을 확실하게 멸절하는 것을 택한 것이었다.
딸깍! 딸깍! 딸깍!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휴미안군의 모든 화기는 마력의 부족으로 인해 정지되었다.
마법사들은 자신들이 직접 마법을 사용하는 것 보다 마력석에 마력을 채워 사수들의 집중 포화 시간을 더 늘리는 것이 이득이라 판단하여 필사적으로 마력석에 마력을 불어 넣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병사들이 소지한 모든 마력석은 고갈되었고 더 이상 공세를 쏟아 내기 불가능한 지경에 이른 것이었다.
사령관은 식은땀을 흘리며 매캐한 연기가 가득 피어오르고 있는 전방의 황무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사령관으로서는 솔직히 과하다 싶을 정도로 공세를 퍼부은 입장이었다.
그러나 만에 하나 망자들의 무리가 현재의 압도적인 공세에 버텨내고 살아남았다면 남는 것은 처절한 난전과 죽음 뿐이었기에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돼, 됐다…!!!”
“사, 살았다!!!”
“맛이 어떠냐 빌어먹을 망자놈들아!!!”
머지않아 집중 포화의 시커먼 연기가 걷혔다.
그리고 드러난 것은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황량한 대지.
시커멓게 그슬린 대지와 깊게 패인 크레이터, 그리고 일부의 녹아내린 지면의 모습.
병사들은 자신들의 공세가 성공했다는 생각에 환호하며 기뻐했다.
개중에는 눈물을 보이는 자들도 있었고, 서로를 끌어안고 생존의 기쁨을 자축하기 바빴다.
깊은 안도감에 기뻐하는 것은 계급과 전혀 상관 없는 일이었기에, 사령관 역시 그 안면에 달가운 화색이 도는 것이었다.
극도의 긴장감이 사라지며 찾아든 탈력감과 감추지 못할 환희에 범벅이 된 복잡한 표정이었으나 적어도 그는 웃고 있었다.
그러나 사령관의 그 웃는 낯이 경악으로 물드는 과정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 것이었다.
“아아…”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았던 그슬린 대지의 곳곳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대지의 곳곳이 점차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퍼석! 퍼석! 퍼석!
“으, 으아아아악…!!! 재장전하라!!! 빨리!!! 빨리이이이이!!!!”
모든 것이 사라진 깨끗한 대지를 보고서 망자들이 가루가 되어 사라진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오만한 휴미안의 보잘것없는 착각에 불과했다.
망자들은 폭격이 감행되는 시점에서 땅을 파고 지하 깊숙한 곳에 숨어든 것이었다.
평범한 휴미안의 상체 전체를 움켜쥘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손아귀.
그것으로 땅을 파내어 지하로 몸을 숨긴 것이 틀림없었다.
다급해진 사령관은 자축하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병사들에게 발작적으로 고함을 쳤다.
이내 분위기를 읽은 병사들이 하나둘 전방을 다시 살피기 시작했고, 그들의 기뻐하는 낯짝 역시 경악과 절망으로 물들어 갔다.
쿠오오오오오오오!!!
지면에서 솟아난 망자의 무리들은 찢어질 듯한 괴성을 일제히 내질렀다.
마치 직접적으로 고막을 긁어 대는 것 같이 소름 끼치는 느낌.
망자들의 수는 어림 잡아도 수천이었다.
근접전을 했다간 휴미안 병사 열이 달려 들어도 하나를 잡지 못할 정도로 강대한 변종 좀비가 무려 수천이었다.
심지어 숫자로 밀어붙인다는 주먹구구식 방법조차 통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변종 좀비들은 현재 전초 기지 내에 존재하는 잔존 병력의 스무 배가 족히 넘을 압도적인 수를 자랑하고 있었다.
질로도 양으로도 모든 면이 열세인 최악의 상황.
병사들은 서로가 앞다투어 자신들의 고갈된 마력석을 마법사들에게 들이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초 기지의 마법사들은 기지에 거주하는 병력들이 사용하는 정화 마도구의 마력을 유지하기 위해 파견된 존재들일 뿐이었다.
이런 대규모 작전에 운용되기에는 애초에 수가 너무도 적은 것이 현실이었다.
망자들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평범한 휴미안의 전력 질주에 열 배는 족히 될 법한 속도.
그 강력한 각력과 맹렬한 질주 속도에 또다시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대, 대체…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장벽 쪽에서는 무얼 한 거야…!! 아무런 연락도 없었지 않나!! 대체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냐!!!”
사령관의 머릿속은 풍랑을 만난 조각배처럼 어지럽고 위태로웠다.
저 변종 망자들이 드높은 장벽을 넘을 수 있을 리가 없을 텐데.
망자들은 출몰한 이래로 수백 년 동안 자신들이 머무르는 위치를 벗어난 적이 없었는데.
성벽을 부순 건 분명 인위적인 공격.
그렇다면 저들을 이끄는 배후가 있는 것인가.
지나간 상황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며 상황을 추론하던 사령관은 그럴싸한 예상 하나를 도출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칼 한 자루 겨우 휘두를 정도밖에 안 되는 맨몸의 휴미안들에게 추측이란 건 아무짝에 쓸모없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몰려든 망자들이 무너진 성벽의 잔해를 넘어 첫 희생자를 냈을 때.
그나마 합리적으로 굴러가던 사령관의 이성은 압도적인 절망으로 인해 처참히 끊겨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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