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화 〉 휴미안 북부 전초기지
* * *
“에에익!! 이것들은 한 달이 지나도록 왜 연락이 없는 거야!!!”
황무지 한가운데에 존재하는 드높은 성벽.
에스테로난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휴미안군 전초기지의 성벽 위에 두툼한 콧수염을 지닌 남성 하나가 연신 발을 굴러대며 성을 내고 있었다.
전초기지 내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머무르며 지휘권을 휘두르는 사령관.
그 최고 권력의 위치에 앉은 남성은 부하들을 닦달하며 연신 고함을 치는 것이었다.
“아직도 연락이 없나!!?”
“답신은커녕 여전히 연결조차 되질 않습니다!”
“이 멍청한 놈들이… 거나하게 회포를 푼답시고 내 명령을 개무시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잔뜩 성이나 씩씩대던 사령관은 부들부들 떨리던 주먹으로 성벽을 내리쳤다.
연약한 휴미안의 주먹으로 암석 덩어리를 내리쳐 봤자 자신의 손만 아플 것이었으나 사령관은 극도의 분노로 인해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빨갛게 부어오르기 시작한 자신의 주먹을 다시 한번 성벽에 휘두른 사령관은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담고 있었던 예상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콰앙!
“역시 그런 거야! 태고의 숲에 식량이 지천이고 이종족 암컷도 수십은 족히 있었던 거지! 그래서 먹고 즐기는데 정신이 팔려서 복귀도 하지 않는 거라고!!”
더욱 높아져만 가는 사령관의 역정에 난색을 표하던 부하는 통신 마도구를 내려두고서 노기에 이성을 잃기 시작한 사령관을 조심스럽게 말리기 시작했다.
“서, 설마 그러겠습니까……. 지휘권자만 해도 다섯이나 참여한 작전이었는데… 그런 총살 확정의 무식한 짓을 할 리가…”
“그럼 왜 복귀를 안 한다는 거냐!! 오냐!! 그래, 네가 한번 말해 봐라!! 이게 무슨 일인지!!! 설마 하등한 이종족 가축들에게 우리 군이 전멸을 했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겠지!!?”
“… 실언이었습니다……. 용서를…….”
이성을 잃고 날뛰기 직전인 사령관의 말이었으나 분명 그의 말은 합리적이었다.
아스타리스 대륙의 패권을 쥐고 있는 막강한 휴미안군이 고작 대륙을 떠돌며 숨어 지내는 이종족 생존자 무리에게 패배할 리는 결단코 없다 여겨지는 것이었다.
작전에 투입된 지휘 계층은 지휘관과 마도 거병 조종대장 그리고 보병대장과 백인장 둘.
사령관을 말리려던 부하는 그들이 그런 총살이 확실할 정도의 멍청한 명령 불복종을 행하진 않을 거라 확신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나, 그럼에도 달리 예상되는 바가 전혀 없었기에 그저 입을 다물고 용서를 구할 뿐이었다.
“우리 군 병력의 대부분을 보냈어!! 포병대는 댈 것도 없고 마도 거병만 무려 이십 기를 투입했다!!! 그런데 어디서 굴러먹었는지 모를 가축들에게 우리 군이 당했을 리가 있겠나!!! 그 정도면 가축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오줌이나 질질 지리면서 목숨을 구걸할 것이다!!!”
“사, 사령관님 말씀이 백번 맞습니다…!”
“혹여 가축들을 놓쳐 추격하느라 시간이 들 수도 있다 생각도 해 봤다만! 스캐빈저도 투입하고 포위진을 위한 보병대도 라이노에 태워 투입했다! 기껏해야 두 다리로 뜀박질이나 해댈 가축들을 놓칠 리가 있겠나!!”
“지,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그럼 달리 뭐가 있단 말이야!!! 이 개종자들이 암컷 가축들을 끼고 노느라 복귀를 하지 않고 있다는 말밖에 더 나오겠냐는 말이다!!! 성노예 보급이 중단된 지 오래인 것에 불만을 품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즐기고 있는 것이 뻔하단 말이다!!!!!”
더 이상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 부하의 모습에 사령관은 그를 납득시켰다고 판단했다.
부하가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이자 사령관은 자신의 예상이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고, 아직 정황이 판명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명령 불복종을 규정하게 되었다.
“크으으… 나도 암컷 살 맛을 못 본 지 까마득하거늘… 제 놈들이 감히…!! 노예는 처녀인 상태로! 처녀가 아니더라도 되도록 깨끗한 상태로! 에스테로난에 보내야 한다고 그리 강조했건만!!! 감히!!! 감히!!!!”
콰앙!! 쾅!!
분에 못 이겨 몇 번이고 발을 구르며 분개하는 사령관.
상급자의 분노에 혹여 불똥이라도 튈까 싶었던 부하는 고개를 푹 숙인 저자세의 모습으로 그저 이 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때 망루 위에서 경계를 서고 있었던 병사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전방에 미확인 물체 접근 확인!!”
“그게 무슨 말이야!!!”
기분이 최악이었던 사령관은 말이 곱게 나오지 않았고, 짜증이 가득 섞인 음성으로 악을 쓰다시피 소리를 질렀다.
평소 같았으면 그 험악한 기세에 주눅이 들 법한 일이었으나 경계를 서고 있던 병사는 전혀 아랑곳않고 전방만을 주시한 채 잔뜩 긴장한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흐, 흙먼지 입니다!! 대량의 흙먼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난데없는 의미 모를 이야기에 사령관은 냅다 망루 위로 뛰어 올라갔다.
대체 병사가 무엇을 보고 이토록 기겁하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전초 기지의 최고 계급인 사령관이 자신의 옆까지 달려왔음에도 병사는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리 내!!!”
사령관은 신경질적으로 망원경을 빼앗아 병사가 바라보던 방향을 살폈다.
병사의 말은 진실이었다.
사막에 휘몰아치는 모래 폭풍같이 거대한 흙먼지가 점차 거리를 좁혀 오고 있는 것이 목격된 것이었다.
사령관은 처음엔 출진했던 병력이 한달만에 드디어 귀환하는가 싶었었다.
그러나 스캐빈저와 라이노라는 수송용 마도 기계들은 빠른 속도로 주행하는 것이었기에 흙먼지가 피어오르더라도 흙먼지가 멀찍이 뒤에서부터 따라붙는 모습을 보이지 흙먼지에 휩싸여 본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걸어 다니는 강철의 성채’라고 불릴 정도로 거대한 마도 거병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사령관의 이마에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두쿠우우우우우웅!!!!!
“끄아아아악!!!”
순간 사령관은 귀청을 찢는 것 같은 폭음과 함께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강력한 진동이 성벽 전체를 뒤흔든 것이었다.
딛고 있는 바닥이 거세게 흔들리자 다리가 휘청대며 바닥에 누울 수밖에 없게 된 것이었다.
쿠르르르르르
후두두두둑
정체를 알 수 없는 폭발의 충격이 워낙 막강했던 탓에 성벽은 폭발이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가늘게 진동했다.
뿐만 아니라 공중으로 높게 솟구친 돌조각들이 뒤늦게 떨어지는 소리가 사방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천재지변 이외에는 달리 떠오르는 게 없을 정도의 압도적인 재난에 사령관은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 애를 쓰며 부하들을 찾았다.
“무, 무슨 일이냐!!! 거기 누구 없나!!! 무슨 일이야!!!”
“적습!!! 적습이다!!!!”
뎅! 뎅! 뎅! 뎅! 뎅! 뎅! 뎅!
사령관이 다급하게 주변을 살피며 외쳤으나, 그의 질문에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그저 멀리서 누군가가 외쳤을 경보의 외침과 함께 경종이 마구 울리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사령관은 망루의 난간을 잡고서 비틀대는 몸을 겨우 추스르고 몸을 일으켰다.
“저, 저, 저…!!”
사령관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혹은 자신의 정신이 온전한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수백년의 긴 시간을 단 한 번의 적습도 허용하지 아니하고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던 전초 기지의 성벽이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사령관 역시 같은 성벽 위에 머무르던 상황이었으나, 같은 방향의 성벽일지언정 사령관이 서 있었던 장소와는 멀리 떨어진 위치의 부분이 무너져 내린 것이었기에 사령관은 무사할 수 있었다.
처참히 무너져 내린 성벽은 사령관에게 말 그대로 운이 좋아 살아남았을 뿐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알려 주고 있었다.
“저… 저게 뭐냐!!! 대체 뭐야!!!”
성벽이 무너져 내리며 해당 성벽의 위에서 근무를 서고 있었던 병사들은 시신의 작은 조각조차 찾을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그렇기에 희생자들의 비명이 들리지 않은 것이었다.
성벽이 폭발하는 순간 그 범위에 존재하던 병사들은 형체를 잃고 모조리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성벽은 말 그대로 분쇄되어 있었다.
철저히 분쇄되어 미세한 돌가루가 매캐한 연기와 함께 자욱히 흩날릴 뿐이었다.
저런 압도적인 재해에 노출되어 버틸 수 있는 휴미안은 적어도 이 전초기지 안에선 존재하지 않을 것이었다.
당황한 사령관의 머리가 새하얗게 물들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는 와중, 그의 옆에 머무르고 있었던 병사가 다급히 그를 찾았다.
“사, 사령관님!! 저기 보십시오!!!”
사령관이 고개를 돌려 보았을 때, 병사는 전방의 황무지를 가리키며 소리치고 있었다.
다급한 병사의 뒤로 더욱 거대해진 흙먼지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흙먼지 자체가 거대해진 것이 아니었고, 그저 더욱 가까이 다가왔을 뿐이었다.
급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한 그것을 사령관은 망원경을 들어 조심스럽게 살폈다.
극도의 긴장으로 떨려 오는 손을 어떻게든 부여잡고 흙먼지의 전방을 살핀 것이었다.
“히, 히익…!!!”
삽시간에 가까워진 거리로 인해 흙먼지의 정체는 너무도 쉽게 파악되었다.
그것은 방대한 양의 군체가 이동하며 생성된 것이었다.
두 다리가 달리며 만들어낸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박력.
자욱한 흙먼지의 앞에 보이는 존재들은 인간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분명 그것은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이었다.
휴미안들은 오로지 휴미안만을 인간으로 치부하지만 테라리스의 종합적인 상식으로 보더라도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아니마도 아니었고 데모니안도 아니었으며 휴미안은 더더욱 아니었다.
엘프도 아니었으며 드워프도 아니었고 오크나 트롤, 오우거, 고블린, 페어리, 레프리컨, 드라이어드, 켄타우로스, 하피 등등 그 어떤 이종족을 대더라도 전부 아니었다.
너덜너덜한 피부.
살점 역시 너덜너덜하여 드물게 뼈가 보이기도 했다.
상당히 거대한 손아귀의 끝에는 시미터(Scimitar)를 연상케 할 정도의 크고 휘어진 손톱이 섬뜩하게 박혀 있었다.
귀 밑까지 찢어진 아가리가 벌어질 때마다 그 내부에 날카로운 이빨들이 번뜩이고 있었다.
인간의 형태를 지니고 있으나 결코 인간으로 규정할 수 없는 존재들.
그들은 망자들이었다.
거대한 망자들의 무리가 전초기지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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