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화 〉 음유시인과 인자한 노인의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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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사들의 합류를 축하하는 만남의 장.
마왕의 지시 아래에 마련된 만찬은 베아트리스의 지휘 아래에서 성대하고 품격있게 흘러갔다.
갓 구워낸 부드러운 빵과 고소한 맛이 인상적이었던 야채 수프.
상큼하면서도 달콤한 블랙 베리 파이와 빅 보어의 고기가 큼직하게 들어간 미트 파이.
그리고 드베르그릭에서 가져온 블랙 캐틀의 훈제 구이가 나왔을 때, 만찬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절정을 찍었다.
그 과정 속에서 니콜라스와 리겐하르트 그리고 동행한 드워프 장인들은 자신들의 소개를 마친 뒤, 기존의 마왕성 간부들과 잘 녹아들었다.
“크하하하하!! 역시 제법이란 말이야!! 드래곤과 싸우면서 자원을 캐낼 생각을 하다니!!”
“우후후후. 그런 날개 달린 도마뱀 따위 사냥감에 지나지 않지. 도망갈 게 뻔한데 귀한 재료라도 많이 뜯어내야 하지 않겠어? 비늘이라던가 가죽이라던가 뼈라던가 피라던가… 답지 않게 귀하신 몸이란 말이야 드래곤이란 것들은.”
“어떤가! 아직 남아있는 재료가 있다면 내게 맡겨 보는 게! 드래곤이라는 재료는 너무 희귀하단 말이지!”
의외로 리겐하르트와 카디스텔라는 죽이 잘 맞았다.
얼마 전 카디스텔라가 드래곤 케르디하크를 죽기 직전까지 몰고 갔었던 이야기.
그에 리겐하르트는 호탕하게 웃으며 카디스텔라를 치켜세웠고, 이에 카디스텔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즐겁게 들으며 자신의 위신을 세워 주는 리겐하르트가 퍽 마음에 들어 웃음이 떠나질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으하하핫!!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이어지는 다음 곡은 무려 헤모니겐트의 수호룡 바르커스님과 전능하신 마왕! 우리들의 주군! 네로멜티아 디 이시스님의 ‘비스테리스 숲(Beasteress Woods) 원정기’ 입니다!”
디리리링!
니콜라스는 그 거대한 체격에 맞지 않게 섬세한 손길을 지닌 예술가였다.
무언가를 먹고 마실 수 없는 갑옷의 몸이었기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던 니콜라스.
그는 어디선가 류트 하나를 꺼내 들고서, 만찬이 진행되는 동안 끊임없이 노래하며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음유시인이 되어 있었다.
오백 멘톨의 거대한 풀 플레이트 아머에 어울리지 않는 고운 미성을 지닌 리빙 아머.
그가 경쾌한 노래를 들려줄 때면 모두가 미소를 지으며 그 흥겨운 분위기를 즐겼고, 몇몇은 어깨를 들썩이며 쾌활하게 웃기까지 했다.
그가 긴장감이 넘치는 옛 전쟁과 모험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일부는 나누던 대화마저 중단하고서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스릴을 즐겼다.
그가 구슬픈 노래를 들려줄 때면 만찬장의 봉사를 위해 대기하고 있던 메이드나 안내인들마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눈물을 글썽이게 되었다.
“하하하핫!! 너 꽤 하잖아!!”
“그러는 주군이시야말로 분위기를 제대로 타실 줄 아십니다!! 이렇게 유쾌한 술자리가 얼마만인지!!”
“크으!! 풍류를 아는 분을 만나게 되어 저희의 앞날이 무척이나 기대됩니다!!”
그리고 의외의 조합이 만찬장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었다.
마왕 네로멜티아와 오운 그리고 드워프 장인들이었다.
의외로 네로멜티아와 오운은 함께 제대로 술을 마셔본 적이 없었다.
그 전에 있었던 환영 연회에서도 네로멜티아는 따로 자리에서 빠져나가 베아트리스와 러스테리아를 끼고 침실에서 밤놀이를 즐겼었기에 오늘이야말로 마왕과 오우거 치프의 제대로 된 첫 대작(??)인 것이었다.
그런데 네로멜티아는 아름답고 고결한 외모와 달리 쾌활하게 노는 것을 즐겼기에 호탕함의 결정이라 할 수 있는 마초 오운와 나름 성격이 잘 맞았던 것이었다.
거기다 호방함에 둘째 가라면 서럽다는 드워프들이 분위기를 타고 합류, 니콜라스의 공연을 감상하는 조용한 부류와는 전혀 상반된 시끌벅적한 자리가 탄생한 것이었다.
“주인님. 지배자의 위엄은 곧 통치력이고 국가의 힘입니다. 체통을 지키시지요.”
“에에…”
보다 못한 베아트리스가 주방에서 나와 네로멜티아를 제지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베아트리스는 오늘 만찬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주방에서 자신의 할 일만을 충실히 할 생각이었기에, 베아트리스의 등장은 그녀 자신이 큰 결단을 내리고 행동한 것이라는 의미였다.
갑작스러운 베아트리스의 등장과 달갑지 않은 그녀의 제지.
네로멜티아는 무척 실망스러운 눈치로 베아트리스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네로멜티아는 어떤 수가 생각난 모양인지 장난스럽게 싱긋 웃어 보이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만찬장의 탁자 위로 한 발을 올리고서 잔을 든 뒤에 소리를 높인 네로멜티아.
“여기 베아트리스가 있다! 짐의 전속 메이드이자 오늘의 만찬을 준비한 장본인! 베아트리스를 위하여 건배!!”
만찬장 전체에 울려 퍼진 네로멜티아의 외침.
순식간에 만찬장 전원의 시선을 사로잡은 네로멜티아는 베아트리스가 말릴 새도 없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건배를 제의한 것이었다.
“주인님… 속옷이 보이겠습니다… 다리부터 내리시고…”
“건배!!!”
“베아트리스님을 위하여!!!”
네로멜티아가 탁자 위에 다리 한 짝을 올리자 그녀의 하얗고 탄력적인 허벅지가 선명히 드러났고, 양 측면이 상당히 트인 드레스 ‘나이트 일루전’의 특성상 다리 사이의 아슬아슬한 위치까지 노출이 생겨버린 상황이었다.
그에 베아트리스는 네로멜티아의 조심성 없는 행동을 제지하려고 입을 떼었으나, 만찬장에 모인 대부분의 이들은 네로멜티아의 의도치 않은 노출에는 관심이 없었고 제의에 따라 건배를 하는 일에만 열성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무르익은 만찬장의 분위기에 취해 시야가 좁아진 듯 보였고, 그나마 크로포드나 헤스티니아 같은 눈치 빠른 이들 몇몇이 목격한 것 같긴 했으나 다들 그것을 언급할 정도로 생각이 없진 않았기에 별다른 문제가 생기진 않았다.
그러나 베아트리스는 자신이 우려했던 상황과는 전혀 별개의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야아! 이것도 베아트리스님께서 만드신 것인지요!? 맥켄지 시티에서도 전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맛입니다!!”
“오오! 오늘 마왕성에 방문해 조금 들은 바가 있습니다만! 휴미안의 마도 거병 이십 기를 모두 박살내셨다는 말이 진실이신지요! 정말이지 경이롭습니다!!”
드워프 장인들 모두가 베아트리스에게 몰려들어 인사와 질문 공세를 퍼붓기 시작한 것이었다.
한 번 받은 주목은 좀처럼 떨쳐 내기 힘든 것이었고, 메이드로서 만찬에 참석한 손님께 무례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베아트리스는 어쩔 수 없이 그들 하나하나를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
네로멜티아는 계획대로 되었다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또다시 오운과 기분 좋은 대작을 이어 나갔다.
주방에서 모든 진행을 총괄해야 할 자신이 만찬장에 묶여 있는 상황에 대해 베아트리스는 다소 걱정을 하는 듯 보였으나, 베아트리스의 철저한 교육을 받은 인원들은 무엇 하나 실수를 하는 법이 없었고 마지막 디저트까지 제시간에 완벽히 제공하는 것으로 만찬을 위해 준비된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마쳐질 수 있었다.
그렇다고 만찬이 끝난 것은 아니었지만.
마련된 모든 요리가 식탁에 오른 상황이었으나, 만찬은 끝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모든 공연을 마친 니콜라스는 마왕성의 간부 하나하나를 모두 만나고 다니며 재회의 환희와 첫 만남의 기쁨을 만끽했다.
같은 기사된 자로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던 크로포드와 천 년 만의 전우애를 과시했고, 뭔가 부담스러워 하는 카디스텔라에게 들이대 그간의 안부를 경쾌하게 물어댔다.
아티스와 베리베리가 예술에 일가견이 있는 인물들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급속도로 친해지는 모습을 보였고, 허물없는 술자리를 좋아하는 오운과 취향이 일치해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뒤 니콜라스는 러스테리아에게 오해를 풀기 위해 다가갔으나 헤스티니아의 뒤로 휙 숨어 버리는 러스테리아 때문에 상처만 입고 돌아와서 풀이 죽었다.
풀이 죽은 니콜라스를 넬라넬라가 자상하게 다독여 주니 순식간에 쾌활해져서는 넬라넬라를 칭송하는 노래를 불러대기 시작했고, 넬라넬라 본인은 부끄러워서 안면을 가릴 정도였으나 베리베리가 적극적으로 열정을 불태워 호응했던 까닭에 즉흥적으로 제작되고 있었던 넬라넬라 칭송곡은 4악장까지 넘어갈 정도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모든 인물들을 두루 만나고 다니며 압도적인 사교성을 자랑하던 니콜라스와 달리 리겐하르트는 네로멜티아의 옆자리에 진득하게 앉아 있었다.
“멜키스 놈이 합류할 때에도 이렇게 만찬을 마련해 줄 생각인가?”
“당연하지! 작업장 정리하고 오는데 좀 걸린다고 했었지?”
“아서라. 그놈은 이런 시끄러운 술자리를 좋아하긴 해도 자기가 주목 받는 건 꺼린단 말이야.”
“그럼 이렇게 큰 술자리나 마련해야겠네? 좋아 좋아!”
“내 말 듣긴 한 거지? 응? 네로멜티아?”
어느새 자리를 옮긴 오운에 의하여 리겐하르트는 샌드위치가 된 상황이었다.
한쪽으로는 상석에 앉은 네로멜티아.
반대편으로는 자리를 옮겨온 오운.
양측에서 시끌벅적 떠들며 술을 들이붓고 있으니 정신이 산만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리겐하르트는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자신이 늘 원했던 분위기.
이런 경쾌한 분위기가 언제까지고 계속된다면, 앞으로 마왕성에 문을 열 노움의 눈물정이 진심으로 기대가 되는 것이었다.
“으… 시끄러워…….”
뭔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혼자 와인을 홀짝이고 있었던 카디스텔라.
리겐하르트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비어 있는 그녀의 옆자리에 가서 앉았다.
“뭐야, 할 말 있어?”
리겐하르트는 카디스텔라가 건네온 인사치레의 질문에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시끄럽게 떠들고 노는 네로멜티아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눌 뿐이었다.
“불만스러운가 보구만. 맞지?”
그 사소한 한마디에 카디스텔라는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불만을 쏟아냈다.
평소라면 생각하기 힘들 카디스텔라의 여린 면이었다.
“나도 있는데 자꾸 저 오우거하고 너희 드워프들만 끼고 얘기하잖아! 왜 나는 신경 안 써줘!”
실상 카디스텔라의 오만하고 권위적인 성격 때문에 그녀의 곁으로 다가오는 이는 평소에도 좀처럼 없는 상황이었고, 만찬이 진행되기 전 카디스텔라의 가시 돋친 힐난 세례 때문에 오늘은 더더욱 그러했다.
오늘의 자리 배정 역시 네로멜티아의 배려가 녹아 있는 상황이었다.
만찬의 시간을 홀로 보낼까 염려되는 까닭에 카디스텔라를 굳이 자신의 옆자리로 배치한 것이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만찬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네로멜티아는 죽이 잘 맞는 이들과 마시는 일에 몰입해 카디스텔라에게 미처 신경을 써주지 못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나마 케르디하크에 대해 이야기했었던 리겐하르트와의 대화가 그녀가 즐겼던 유일한 대화였었고, 리겐하르트가 다시 네로멜티아에게 집중하기 시작하자 그녀는 말 그대로 외톨이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것이 카디스텔라가 지닌 불만의 정체였다.
리겐하르트는 나직하게 한마디를 건넸다.
“그럼 카디스텔라 자네가 먼저 다가가면 될 일 아닌가.”
단지 한마디의 조언일 뿐임에도 카디스텔라는 경악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자신을 걱정하여 다가와 준 리겐하르트에게 오히려 신경을 곤두세우기 시작했다.
“그 말 진심이야?”
“한 치의 거짓 없는 진심일세.”
“선혈의 여제라 불리는 내가 자존심을 굽히고 먼저 다가가라고!?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야!?”
극도로 오만하고 무례한 발언.
평범한 이들은 카디스텔라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손사래 치며 자리를 박차고 떠나갔을 것이었다.
그러나 리겐하르트는 오히려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카디스텔라의 눈을 바라보았다.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인상적인 진홍빛의 눈.
테라리스의 망자들을 지배하는 핏빛 폭군의 섬뜩한 눈동자.
리겐하르트는 그 내면에서 두려움을 목격했다.
선혈의 여제보다 더 긴 세월을 살아온 노인의 현명함은 피할 길이 없었다.
카디스텔라는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저 다가가서 끼면 될 일이네. 자네가 다가온다 하여 배척할 이들도 없거니와, 지금은 허물없이 즐기는 술자리가 아닌가.”
“시, 싫어! 자존심이 있지!”
“그럼 네로멜티아는 자존심이 없는 게 되는 건가?”
“윽…”
카디스텔라는 정곡을 찔렸다는 듯, 움찔 몸을 떨었다.
그리고 말을 잇지 못한 채 고개를 떨구고 침묵할 뿐이었다.
오연한 평상시의 모습과 다르게 무척이나 난처해하는 카디스텔라.
리겐하르트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다 피식 웃었고, 그녀의 어깨에 조용히 손을 얹었다.
드워프 특유의 큼직하고 두툼한 손이 어깨를 감싸오자 카디스텔라는 조금 놀랐는지 고개를 슬쩍 들었다.
“내가 일러주는 대로 하게. 네로멜티아에게 다가가서 뿔을 잡고 흔들어.”
“뭐…?”
“그리고 외치게. ‘감히 이 선혈의 여제를 내버려 두다니 배짱 한 번 좋구나!’ 하고 말일세.”
“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 그렇게만 해 보게나. 그럼 모든 게 해결될 걸세. 껄껄껄껄.”
카디스텔라는 이 늙은 드워프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싶어 황당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그 인자한 미소에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잔뜩 주름진 눈가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마음이 의미 모를 신뢰를 주는 것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카디스텔라는 힘껏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고 여전히 오운과 드워프 장인들 사이에서 떠들고 있던 네로멜티아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앗…!”
갑작스럽게 자신의 뿔을 잡힌 네로멜티아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뿔을 잡은 장본인은 더 나아가 그 뿔을 힘차게 흔들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네로멜티아의 고개가 그 힘찬 손길을 따라 세차게 흔들렸다.
“감히 이 선혈의 여제를 내버려 두다니! 배짱 한 번 좋구나!”
순간 만찬장의 분위기는 적막에 휩싸였다.
감히 전능한 루이나의 여신에게 무례를 저지른 자.
카디스텔라를 향한 눈빛들은 경악 혹은 싸늘함.
카디스텔라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른 건가 싶어서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크로포드는 기필코 한소리 늘어놓겠다는 의지가 가득 느껴질 정도로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베리베리는 결코 있을 수 없을 무례에 놀라 잔을 떨어뜨렸다.
주방으로 돌아가 있었던 베아트리스는 고개를 내밀고서 진득한 살기까지 방출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거칠 게 없는 퍼스트 블러드라 할지라도 이 순간은 아찔한 당혹감을 느끼고 있었다.
“제가 무례했습니다, 여제님.”
“…?”
“용서하시죠, 레이디 카디스텔라. 크림슨 캐슬에 고결히 피어난 카디널 로즈!”
순간 네로멜티아는 카디스텔라의 무례에 오히려 자신이 사과를 건네기 시작했다.
그에 더해 니콜라스 특유의 시적이고 부담스러운 말투까지 흉내내며 카디스텔라를 힘껏 끌어안았다.
카디스텔라는 무척 당혹스러워 아무 말도 잇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네로멜티아는 물이 흐르는 듯 자연스럽게 카디스텔라를 에스코트하기 시작했다.
“여기 앉으시죠, 레이디.”
“어, 어…?”
“니콜라스! 뭐 하고 있어! 이럴 때는 고상한 음악 하나 들려줘야지!”
“오오오!! 기다렸습니다, 주군이시여!!!”
네로멜티아는 니콜라스를 부추겨 연주까지 시켰고, 그녀 본인도 카디스텔라의 글라스를 가져와 손수 와인을 따라주기 시작했다.
자신이 저지른 무례함에 싫은 소리는커녕 오히려 장난스러운 언행으로 토라진 기분을 달래주기까지 하는 네로멜티아의 모습에 카디스텔라는 무척 당혹스러웠다.
그러다 문득 카디스텔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 싸늘해졌었던 분위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화기애애하게 풀어져 있었다.
자신을 노려보던 크로포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인상을 풀고는 자신의 와인에 집중했다.
잔을 떨어뜨릴 정도로 놀랐었던 베리베리는 껄껄 웃으며 유쾌해하고 있었다.
아예 살기를 방출하고 있었던 베아트리스는 못마땅하지만 넘어가겠다는 듯 평소의 무미건조한 표정을 하고서 주방으로 돌아갔다.
모든 것이 기적처럼 잘 풀려 있었다.
마지막으로 카디스텔라는 리겐하르트를 바라보았다.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껄껄 웃으며 길고 두꺼운 수염을 쓰다듬는 리겐하르트.
리겐하르트의 조언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지 카디스텔라는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카디스텔라는 슬며시 손짓을 했고, 리겐하르트는 맥주가 담긴 자신의 나무잔을 허공에 치켜세우는 것으로 답을 해 주었다.
카디스텔라의 부드러운 미소와 리겐하르트의 인자한 미소는 서로에게 따스함을 전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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