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화 〉 굶주림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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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이 새가 지저귀는 카보니 숲.
그 가운데에 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굴뚝 몇 개가 보이는 마을이 하나 있었다.
신장이 수백 멘톨에 달하는 거대한 체구를 가진 오우거들의 마을이었고, 하얀 증기가 피어오르는 굴뚝을 가진 건물들은 모두 그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조리장이었다.
본래 각자가 소유한 집에서 각자가 식사를 준비하거나 소수가 모여 자신들이 소비할 식사를 마련하는 것이 전부였던 오우거 부족이었으나, 베아트리스의 교육을 받은 조리 전문 인력들이 식재료 관리와 모든 식사 배급을 총괄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모든 오우거들은 현재 마련된 조리장에서 식사를 배급받고 있었으며 그 외에는 개인이 사냥하거나 채집한 자연의 식재를 먹는 일이 전부였다.
본래 자유로운 성격과 굳건한 자긍심으로 똘똘 뭉친 오우거들이기에 누군가의 관리를 받는 삶은 반발을 사기 쉬운 것이었으나, 베아트리스에게 엄격한 조리 교육을 받은 인력들은 그들이 받은 살벌한 교육만큼 실력이 출중한 편이었기에 요리의 맛으로 오우거들의 혀를 단숨에 사로잡았고 반발은커녕 오히려 오우거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오우거 요리사들은 베아트리스의 교육을 받았다 하더라도 만들어 내는 요리가 마왕성의 식당과는 사뭇 달랐다.
식재료로 벌레를 사용하더라도 단백질의 함량을 늘리는 일에 주력했다.
채소를 이용하는 샐러드에는 콩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무척이나 괴상하고 때로는 징그러워 보일 수 있는 식단.
그러나 오우거들은 오히려 마음껏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다는 이유로 환호했다.
오히려 맛까지 훌륭하니 식사의 질이 개선되었다며 식사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모든 것은 근육을 위해서였다.
“마왕께서 다스리는 대지에 머무는 종족들 중에서 아직까지도 벌레를 먹는 건 오우거들 밖에 없을 겁니다.”
“으응? 뭐야. 그림쟁이 노인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
내장을 제거하고 장시간 훈연하여 구워낸 오팔 스캐럽(Opal Scarab)을 그릇째 들고 입 안에 털어 넣던 오운은 자신의 옆에서 들려온 작은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 장소에 있는 것은 오우거인 자신에 비하면 한 줌 정도도 안 될 것 같은 노쇠한 고블린.
오운은 다소 미온한 태도로 아티스에게 말 한마디를 건넨 뒤, 자신이 먹던 오팔 스캐럽의 훈제 구이를 입 안에 마저 털어 넣었다.
“오호호호! 재무 대신이라는 명백한 직함이 있건만 그림쟁이라니요! 물론 저의 본질은 언제나 예술가였으니 그 이름도 싫지는 않습니다만.”
“그래! 재무 대신 노인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
귀찮다는 듯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다음 요리가 담긴 그릇을 집어 들며 건성으로 대답하는 오운.
그러나 아티스는 다소 무례한 오운의 대응에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고블린의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대범하고 호방한 모습이었으나, 아티스가 그대로 넘기지 못하는 모습은 따로 있었다.
“오우거 치프께 요청할 사안이 있어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만……. … 그 풍뎅이는 먹을 만 한가요?”
“오우거들은 원래 먹을 수 있는 건 다 먹고 살았어! 독충이어도 탈이 날 정도만 아니면 다 먹었었는데 고작 풍뎅이 정도에 무슨 호들갑이야? 이건 오히려 맛있는 식재료라고!”
“카보니 숲의 식량 사정은 언더 바르커스와 스토니 포트리스의 연대로 더 좋아졌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사정이 더 좋아졌다고 원래 먹던 걸 기피할 생각은 없어! 이거 봐. 오팔 스캐럽은 풍뎅이 특유의 역겨운 내장을 가지고 있지만 살은 고소한 민물 새우 맛이 난다고!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에 절여 훈제 구이를 만들면 맛 좋은 식사가 되지. 단백질도 풍부한 데다 심지어는 술안주로도 그만이란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렇…”
“단백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오늘의 육식이 내일의 근육으로 이어진다! 마왕군의 힘이 늘어나는 일인데 그렇게 간단히 편견을 가질 셈인가!!!”
“아니, 편견이 아니라…”
“너희 고블린들도 마왕성에 합류하기 전까지는 하수도에 숨어 살며 온갖 것을 다 먹었다며!! 버섯과 쥐고기는 나은 편이고 벽에 붙은 이끼와 벌레가 주식이었다고 했잖아!! 그런데 요새는 갓 구워낸 따끈한 빵에 고소한 옥수수 수프를 그렇게 좋아한다면서? 이제 와서 벌레는 입에 대지도 않는다니! 그 힘든 시절은 다 잊은 것인가 이 말이야!!!”
오운의 열변은 아티스의 말을 가차없이 끊으며 계속 이어졌다.
점점 격해지며 언성을 높이기 시작한 오운은 끝에 가서는 고함을 치는 모습까지 보였다.
아무래도 벌레 요리에 대해 언급한 아티스가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심지어 지난번 그림 사건으로 인한 아티스의 재판에 가뜩이나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게 된 상황에서 이 순간에 그동안 쌓였던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 같았다.
그러나 아티스는 맞서서 화를 내는 일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조적인 눈빛으로 씁쓸히 웃으며 오운의 분노에 담담히 마주하는 것이었다.
“압니다. 잘 알지요. 왜 모르겠습니까. 죽음이 만연한 이 어려운 시기에 식량이란 맛과 형태를 막론하고 모두가 귀한 것을…….”
“그렇다면 왜…!!”
“그러나 싫습니다. 더는 안될 일이지요. 오우거 치프가 드시고 계신 오팔 스캐럽. 저도 지난 번에 먹어본 적 있습니다. 충분히 맛이 있더군요.”
오운은 오늘 처음으로 아티스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노쇠한 고블린 특유의 흐릿한 눈동자의 너머에 올곧은 신념이 타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그거 아십니까? 오염되었었던 마왕성의 하수구 일대에는 최악의 식재료 뿐이었다는 것 말입니다. 불을 피울 장작도 없어 썩는 내가 나는 쥐고기를 날것으로 먹었습니다. 벽에서 자라는 이끼는 오염된 물의 역겨운 비린내를 농축한 것 같았습니다. 벌레들은 외부의 오염에 물든 변종들 뿐이었고, 작은 것들은 그나마 먹을 수는 있었지만 오염이 가득 축적되어 있어 수명을 단축시키기 일쑤였습니다.”
“…….”
“그리고 버섯은… 대부분 독이 있는 것들이어서 허락 없이는 먹지 말라고 엄격히 금지했습니다만……. 굶주림을 참지 못한 이들은 결국 그 형형색색의 버섯들을 한가득 집어 삼켜 버리더군요. 죽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배불러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그렇게 충동적으로 버섯을 먹어 치운 이들이 생존한 것은 제 오십 평생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열이면 열이요 백이면 백, 몰래 버섯을 먹은 모두가 입에 거품을 물고 발광을 하다가 피를 토해내고 경련하며…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아티스는 그의 작은 손을 떨고 있었다.
너무도 작아서 눈에 띠지도 않는 고블린의 주먹이 이토록 가슴에 사무치는 건 오운이 아티스의 숨겨진 그림자를 목견했기 때문이었다.
헤스티니아의 비호 아래에 깨끗한 자연 환경을 유지했던 카보니 숲.
때때로 굶주릴지언정, 마음껏 포식하지 못할지언정.
오우거들은 안전한 삶을 영위하며 살아왔다.
그렇기에 오운은 고블린들이 살아갔던 그 처절하고 비참한 나날들을 조금도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싫습니다. 제 동족들은 맛있고 건강한 음식만을 먹일 것입니다.”
오운은 불같은 열변을 토하며 고함을 치던 순간과 달리 숙연한 모습으로 아티스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이미 오운에게 할 말 같은 것은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낸 자신의 말들이 이토록 무거운 사슬이 되어 자신을 속박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었다.
졸지에 어둡기 그지없는 이야기를 꺼내게 만든 장본인이 되어 가시가 잔뜩 박힌 의자에 앉은 것처럼 자리가 몹시 불편한 것이었다.
그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자세로 과거를 이야기하던 아티스가 싱긋 웃으며 분위기를 가볍게 풀기 시작했다.
“어차피 맛있는 음식들이 많지 않습니까? 오호호호호! 전능하신 마왕이시라면 보잘것없는 고블린들의 작은 식사 따위 가볍게 해결해 줄 수 있으시지요! 정말이지 마왕님을 만나 다행이지 뭡니까!!”
갑작스럽게 가볍고 경망스러운 모습으로 너스레를 떠는 아티스.
그 모습에 오운은 긴장이 턱 풀리는 느낌을 받아 다소의 탈력감을 느꼈고, 절로 한숨이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다 이내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며 잠시 앓는 소리를 내더니 아티스를 은근히 흘겨 보며 투덜대는 것이었다.
“끄으응… 치사한 노인네 같으니… 풍뎅이 먹는다고 지적하길래 기분이 나빴던 건데, 거기서 과거 얘기를 꺼내면 나만 나쁜 자식 되는 거잖아…….”
“오호호호호! 저는 그저 맛없는 것을 애써서 먹지는 말라고 말씀드리려던 것뿐이었답니다! 그런데 맛이 좋으시다니 제가 괜한 걱정을 한 모양이군요!”
풀이 죽어 투덜대는 오운에게 언제 그랬냐는 듯 쾌활한 모습을 보이며 오해를 풀어 주는 아티스.
아티스는 그의 작은 손을 활짝 펼쳐 웬만한 통나무보다 두꺼운 오운의 다리를 힘차게 두들겼다.
“자! 자! 은혜로운 양식이 식기 전에 어서 드시고! 저와 같이 마왕성에 좀 갑시다! 귀한 손님이 오셔서 만찬장이 준비되고 있는데, 오운님께서 저와 함께 베아트리스님의 만찬 준비 시식단 역할 좀 하셔야겠습니다!”
“거 알았으니까 좀 떨어져 봐! 어쩌다 다칠까봐 겁나니까!! 나도 모르게 다리라도 떨다가 잘못 부딪치면 위험하다고!!”
어림잡아 삼백 년을 살아온 오운에게 있어서 아티스는 자신보다 어린 존재였으나, 오운은 아티스를 늙은이 취급하고 있었다.
오운은 아티스가 정신적으로 보나 경험으로 보나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보다 성숙한 존재라고 생각하기에 나름대로의 존대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오운은 속이 시커먼 노인네라고 불편하게 생각했던 아티스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음이 누그러지고 있었다.
이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내정 감독관 모카는 조용히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할아버지하고 손자 같구만…….”
오운에게 카보니 숲의 수렵 상황을 보고하러 왔었던 모카는 오운과 아티스 사이에 흐르는 훈훈한 기류를 깨고 싶지 않아 멀리서 지켜 보기만 했다.
어차피 대부분의 보고는 형식적인 것이었고 모카가 무엇을 주장하든 오운은 모든 것을 긍정하며 알아서 하라는 지시를 내릴 것이 뻔했기에 하루 정도는 보고를 생략해도 무방한 것이었다.
모카는 잠시 상황을 지켜보다 고개를 돌려 사라졌고, 그의 뒤에서 고개를 끄덕이던 코 역시 모카를 따라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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