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화 〉 러스테리아는 엄청난 것을 숨겨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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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성에 복귀한 네로멜티아는 그간 맥켄지 광산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전하고 이에 이뤄낸 것들에 대해 논하는 자리를 갖기 위해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있었다.
우선 주변의 간부들에게 저녁 만찬이 예정되어 있다는 소식을 넣었고, 베아트리스에게 최대한 잘 갖춰진 만찬을 준비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 과정에서 공사다망한 베리베리나 아티스 같은 경우에는 하인을 시켜 초대장만을 전달했으나 웬만한 이들과는 한 번씩 만남을 가지며 직접 소식을 전했다.
그 과정에서 네로멜티아는 러스테리아를 찾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써야만 했다.
맥켄지 광산으로 출발하던 날, 본래 네로멜티아는 넬라넬라 말고도 한 명의 수행원을 더 데려갈 생각이었다.
그것이 러스테리아였고, 오직 네로멜티아만을 위해 테라리스에 남은 러스테리아의 애정을 생각한다면 네로멜티아의 요청은 결코 거절되지 않을 것이었다.
테라리스가 멸망의 길에 접어들고 온전한 생활을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황에서도 자신의 고향인 지옥에 돌아가지 않고 어떻게든 천 년이라는 긴 시간을 버티며 주인을 기다린 러스테리아의 깊은 애정.
그러나 애초에 러스테리아의 위치를 알 수 없는 까닭에 네로멜티아는 자신의 동행 요청을 전달하는 것조차 하지 못했었다.
동행을 직접 권유받았다면 분명 기쁜 마음으로 따라나섰을 러스테리아였으나, 애초에 네로멜티아가 출발한다는 소식조차 듣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남겨진 것이었다.
그 일이 못내 신경 쓰인 네로멜티아는 어떻게든 러스테리아를 만나기 위해 정보를 모았다.
“여기 내 비서가 있단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인가?”
불특정 다수에게 러스테리아의 행방을 묻고 다니던 네로멜티아는 새로 얻은 가축들의 농장 운영에 있어 마왕성 내부의 경제적인 유통 가치를 논하기 위해 만났던 아티스에게서 러스테리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장소는 언더 바르커스의 온천.
네로멜티아는 온천에 도착하자마자 심상치 않은 기세로 온천의 입구를 지키고 있었던 데모니안 하나에게 러스테리아의 행방을 물었다.
“폐, 폐하…!! 윽…!! 저기…!!”
갑작스러운 마왕의 등장에 당황한 데모니안은 말을 잇지 못하고 더듬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네로멜티아는 질문의 답을 듣지 못했으나, 데모니안의 반응으로 볼 때 자신이 얻은 정보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가 봐도 뻔한 상황이었으나 데모니안에게 중요한 것은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었고, 데모니안은 황급히 소리치며 온천 내부로 사라져 버렸다.
“비서관님!! 비서관니이임!!!”
네로멜티아는 온천 내부에 숨겨진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러나 일단 경비를 서고 있었던 데모니안이 러스테리아를 부르러 달려갔기에 네로멜티아는 내부에 몸을 들이기보다는 우선 러스테리아를 기다리기로 했다.
자신의 방문 소식을 듣고도 모습을 보이지 않을 러스테리아가 아니었기에, 러스테리아가 무슨 일을 하고 있던 그녀의 말을 먼저 들어보기로 한 것이었다.
네로멜티아는 자신의 소중한 연인이 무엇을 하든 예의를 지키고 그녀를 배려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러스테리아가 온천의 내부에서 황급히 달려 나왔다.
“주, 주인님!! 주인님 오셨나요!!”
“응. 러스 오랜만이네. … 그런데 그게 무슨 꼴이야!?”
온천의 내부에서 달려 나온 러스테리아는 평소의 검은 정장 대신 넬라넬라의 지휘를 받으며 토지 공사를 하는 노동자들이 입는 것과 동일한 작업복을 착용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 작업복은 하얀 먼지가 가득 묻어 있었는데, 석재에서 나온 가루인 것이 확실해 보였다.
누가 봐도 몸가짐을 단정히 하지 못할 정도의 대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명백한 증거였다.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온통 먼지투성이가 돼서!”
“헤… 헤헤헤…”
뭔가 감출 셈이긴 했는데 자신의 몸가짐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던 러스테리아.
명백한 단서가 자신의 전신에 뒤덮인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서 어색한 웃음으로 슬쩍 답변을 회피하는 것이었다.
“예쁜 얼굴이 더러워졌잖아… 속상해라…….”
“응우으으…”
네로멜티아는 깨끗한 손수건을 꺼내 러스테리아의 안면을 닦아 주기 시작했다.
작은 히아신스가 수놓아진 손수건이 눈가부터 시작해서 아기 피부같이 보드라운 볼과 매끄러운 입술을 문지르기에 이르렀을 때, 러스테리아는 눈을 꼬옥 감고서 손수건의 움직임에 모든 것을 맡기는 모습을 보였다.
“자, 흥~ 하자.”
“흐으응~”
완벽히 어린애를 대하는 모습으로 러스테리아를 대하는 네로멜티아.
심지어 러스테리아 역시 이 상황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코를 풀라며 손수건을 들이댔을 때 순순히 코를 풀 수 있는 건 마왕군 간부 중에서는 러스테리아밖에 없을 것이었다.
“러스가 뭘 하고 있는지 좀 봐야겠는데?”
“아앗! 안돼요!”
네로멜티아는 러스테리아를 떠보기 위해 온천으로 슬쩍 들어가는 척을 했다.
그러자 러스테리아는 다급히 네로멜티아를 끌어안고서 온몸으로 주인의 진입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으응? 우리 러스가 뭘 감추려고 하는 걸까아? 너무 궁금한데 알려 주지 않을래?”
“안돼요! 온천은 출입 금지예요!”
“아아~ 너무 궁금해서 나 죽어버릴 지도…….”
“응으으으… 안돼요!!”
너무나도 단호한 기세의 러스테리아.
네로멜티아가 죽는 시늉까지 해 가며 러스테리아를 달래 보았지만, 그녀는 조금도 결심을 꺾지 않았다.
자신의 사역마이자 자신을 무엇보다 사랑하는 연인인 러스테리아는 네로멜티아 자신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기꺼이 받아들였었다.
그랬던 그녀가 이토록 완강하게 거부를 하고 있다면 분명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 틀림없는 것이었다.
결국 네로멜티아는 온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내는 것을 포기했다.
“알겠어. 러스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 죄송해요……. 일주일이면 되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네로멜티아는 자신의 사랑하는 비서가 무슨 일을 하고 있건, 적어도 그 일은 자신과 마왕성에 도움이 되는 일일 것이라 확신했다.
상대의 성격이나 행동 패턴을 읽어 계산한 추측같이 이성적인 근거를 지닌 확신은 아니었고, 러스테리아에 대한 신뢰가 내어 놓은 확답인 것이었다.
네로멜티아는 슬쩍 웃으며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본래의 방문 목적을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 저녁은 마왕성의 식당에서 만찬이 있을 거야. 중요한 자리니까 꼭 참석해야 돼? 우리 러스, 그건 할 수 있지?”
“네! 꼭 늦지 않게 갈게요!”
“그래, 깨끗이 씻고 예쁜 옷 입고 와야 해. 마왕의 비서관답게!”
“네에! 저는 주인님의 비서니까 멋진 모습을 보여줄 거예요!”
네로멜티아는 러스테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보랏빛 머리 또한 석재의 먼지가 소복히 쌓여 하얀 빛을 보이고 있었고, 그 먼지가 네로멜티아의 이브닝 글러브에 묻기 시작했으나 네로멜티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인자한 시선으로 러스테리아를 내려다 보는 것이었다.
러스테리아는 시선을 올려 네로멜티아의 눈치를 슬쩍 보았고 신앙이나 다름 없는 주인에게 감히 비밀을 가진 자신의 무례에 혼날 것을 걱정하였으나, 오히려 깊은 애정으로 답해 주는 주인의 눈빛을 보고 충만한 행복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를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그러는 거지? 후후. 러스가 뭘 준비하고 있는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
“정말 주인님은 뭐든지 다 아시네요……. 알아 주셔서 기뻐요…….”
러스테리아의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이 그녀의 행복한 감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트 모양의 첨단이 도드라지며 눈길을 사로잡을 정도로 힘차게 물결치던 꼬리는 마치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의 것인 양 견디기 힘들 정도의 귀여움을 선사하는 것이었다.
“그럼 힘내, 러스. 혹시라도 내가 도와줄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 하고.”
“네! 어려운 일이 있으면 꼭 그럴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러스테리아는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야 결코 네로멜티아에게 손을 벌리지 않을 것이었다.
쉽게 손을 벌릴 상황이었다면 이토록 완강하게 사건의 내막을 감추려 들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네로멜티아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어떻게든 러스테리아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서 도움의 권유를 꺼내지 않을 수는 없었다.
곧 네로멜티아는 공간 이동 마법을 사용해 언더 바르커스에서 모습을 감췄다.
러스테리아는 뒤늦게 긴 한숨을 내쉬며 한시름 놓았다는 듯, 온천 입구에 놓인 바위 하나에 걸터 앉았다.
어떻게든 그 완강한 자세로 네로멜티아의 진입은 저지했으나, 자신의 소중한 주인이 화를 내진 않을까 걱정이 된 만큼 긴장이 풀어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데모니안이 둘 있었다.
온천의 내부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어 마왕과 비서관의 대화를 엿보고 있었던 데모니안 기술자가 둘.
두 데모니안은 안면이 발그레하게 상기되어 서로 호들갑을 속삭이고 있었다.
“아티스님의 작품에서 보던 대로야!! 아름다움의 정점을 찍은 최상위급 미녀 두 분의 로맨스라니… 크으으으!!”
“아아… 자애로운 마왕 폐하와 순진무구한 비서관님……. 너무 달달해서 당뇨가 올 거 같아…….”
티 없이 순수한 러스테리아는 자신을 바라보는 끈적한 시선이 둘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고, 그저 자신의 사랑해 마지않는 주인이 전해준 애정에만 들떠 키득키득 웃고 있을 뿐이었다.
타인을 몰래 엿보는 어둠 속의 시선들은 욕망을 해소한다는 느낌보다는 아름다운 로맨스 하나에 기뻐하며 연인 두 사람을 응원하는 모양새였으나, 어차피 음침한 시선이라는 개념은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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