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번 부활 끝에 마왕님은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186화 (186/216)

〈 186화 〉 The Kitchen of Anger

* * *

상당한 인파가 북적거리는 마왕성의 식당.

한창 주방의 관리에 여념이 없던 베아트리스의 뒤로 낯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무척이나 익숙하면서도 친근한 목소리.

친애가 가득 묻어나는 편안한 음성.

“베아트리스. 잘 지내고 있어?”

“돌아오셨군요. 드워프의 왕국에서는 무탈하셨는지요.”

베아트리스의 등 뒤로 나타난 이는 네로멜티아였고, 주방의 뒷문으로 몰래 들어온 것이었기에 주방에서 일하는 인원들은 갑작스러운 마왕의 등장에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베아트리스는 이미 네로멜티아가 입을 열기 전부터 그녀의 방문을 미리 눈치챘었던 모양이었고, 태연히 돌아서며 네로멜티아의 안부를 물어오는 것이었다.

“질문에 질문으로 답을 하는 건 좋지 않은걸?”

“… 저의 안부보다는 주인님의 안부가 훨씬 중대사이니 우선 순위를 확실하게 정리했을 뿐입니다.”

순간 네로멜티아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고심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이내 아니다 싶었는지 슬쩍 웃어 넘기고는 대화의 본론으로 들어갔다.

“맥켄지 광산은 여전했어. 딱히 문제될 것도 없어 보이고, 나름대로 잘 살아가고 있었던 것 같아.”

“드워프의 그 폐쇄적인 습성이 도움이 되는 날도 있었나 보군요.”

“… 뭔가 말에 가시가 돋친 것처럼 들리긴 하지만… 네 생각대로이긴 해. 휴미안들에게 단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었던 모양이야.”

다른 부연 설명이 없어도 대략적인 정황을 파악해낸 베아트리스.

그러나 기본적으로 드워프에 대해 그다지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던 베아트리스였기에 희소식이라 할 수 있는 정보에도 약간의 냉소에 가까운 무관심을 보일 뿐이었다.

“조금 더 기뻐해 줘도 좋았을 텐데 말이야.”

“현재 헤모니겐트로써는 그들의 기술력을 얻을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는 소식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기적인 습성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호의를 가지긴 쉽지 않군요. 특히 헤모니겐트를 멸망으로 이끈 배신자 게르딘 로먼도 드워프였으니 드워프들에게는 오히려 환멸을 느끼고 있습니다.”

베아트리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냈다.

이에 대해 네로멜티아는 그녀의 인식을 바꿔 주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으나, 이해하지 못할 이유도 아니었고 오히려 베아트리스의 입장과 성격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지경이었기에 여러모로 말을 아껴야만 했다.

대신 네로멜티아는 베아트리스가 선호할 만한 소식을 들려주는 것으로 분위기를 바꿔 보고자 했다.

“리겐하르트는 생존해 있었어.”

“… 그건 정말 좋은 소식이군요. 나이도 많으신 분께서 아직까지 살아 계셨다니 다행입니다.”

네로멜티아의 예상은 적중했고, 베아트리스는 드워프라 할지라도 안면을 트고 호의적인 관계를 쌓아온 이에게는 호감을 보이는 것이었다.

리겐하르트는 과거 헤모니겐트에 많은 도움을 준 인물이었고 성격도 굉장히 우호적이었으며, 나아가 마왕군 간부들 사이에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던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대체적으로 타인을 대하는 잣대가 엄격하고 대인 관계에 형식적인 모습을 주로 보이는 베아트리스 역시 리겐하르트와 나름대로 좋은 유대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여튼, 너에게 맡기고 싶은 일이 있는데. 혹시 많이 바쁠까?”

“당치 않은 말씀이십니다. 주인님의 명이라면 그 어떤 일도 수단을 가리지 않고 실현해야 하는 것이 저의 의무입니다. 원하시는 일이 있으시면 그저 하명하시지요.”

“… 그 정도까지 비장한 일은 아니지만 말이야…….”

넌지시 운을 떼기 시작한 네로멜티아의 조심스러운 이야기에 베아트리스는 임무 수행의 단호한 자세를 보이며 필사의 각오를 드러냈다.

맡길 일이 중책인 것은 사실이었으나, 서슴없이 목숨을 걸고 행할 정도의 일은 아니었기에 네로멜티아는 베아트리스의 엄숙한 각오 선언 앞에 떨떠름한 반응이 절로 나오는 것이었다.

“이번에 맥켄지 시티에 가서 가축을 좀 구해 왔거든. 블랙 캐틀 40마리에 빅 보어 50마리. 식량 확보를 위한 농경 관리는 크로포드의 업무이긴 하지만, 식재료 관리는 베아트리스의 영역이기도 하지? 특히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귀한 식재료니까 베아트리스가 특별 관리를 해 줬으면 좋겠어.”

“블랙… 캐틀입니까…? 상당히 좋은 가축이 들어왔군요. 혹시 드로겐하임 왕이 보낸 겁니까? 블랙 캐틀의 수가 40마리라면 당분간 도축은 무리고 번식을 통한 개체수 확보에 주력해야 할 정도의 수인데… 맥켄지 시티의 여력이 그렇게 충분한 건 아니었나 보군요.”

“… 드로겐하임은 죽었어. 그 뒤를 그 녀석 아들이 이었더라구. 드베릭 록 하이젠버그 말이야.”

“… 그건 분명 슬픈 소식입니다…….”

베아트리스는 분명 선왕 드로겐하임과는 그다지 관계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드로겐하임이 네로멜티아의 절친한 벗이었다는 사실도 알고 백성들을 위하여 헌신하던 성군이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기에 베아트리스는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럼 현재 입수된 가축들은 그의 아들이 바친 것이겠군요.”

네로멜티아는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모를 난감한 화제에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기를 주저했다.

갑자기 난색을 표하는 주인의 모습에 베아트리스는 뭔가 잘못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으나, 정확한 내막을 듣기 전까지는 섣불리 나서지 않는 분별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폭탄의 도화선에는 이미 불이 당겨져 있었고, 네로멜티아가 밝힐 진실은 기폭제가 될 뿐 폭발이라는 결말은 예정된 수순인 것이었다.

“… 사 온 거야…….”

“… 지금 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까?”

“… 응…….”

살벌한 침묵의 순간이 찾아왔다.

아찔할 정도의 섬뜩한 기운이 주변을 장악하기 시작했고, 주방에서 일하던 평범한 인원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주방 밖으로 슬그머니 도망 나갔다.

주방에 남은 건 마왕과 그녀의 메이드.

전신의 피부를 마구 찌르는 것 같은 살기에 평범한 이들은 모두 줄행랑을 쳐버렸으나 마왕만은 건재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현실.

그러나 마왕이라고 해서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 무엇을 건네고 받아 오셨습니까…….”

“… 한 마리에 300금화…….”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추후 벌어질 사태가 아무리 걱정되더라도 거짓을 입에 담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상황은 결국 예정된 노선을 밟는 것이었다.

“이 오만방자한 쓰레기가 감히…!!!!!”

“으아아아아!! 베아트리스 참아!!! 참아!!!”

결국 폭발해 버린 베아트리스는 평소라면 결코 입에 담는 일이 없었을 욕설을 맹렬히 퍼붓기 시작했다.

네로멜티아는 베아트리스가 당장에라도 맥켄지 광산을 향해 날아가 버릴까 염려되어 다급히 그녀를 끌어 안고 주방을 벗어나지 못하게 막았다.

그리고 네로멜티아는 식겁했다.

우선 베아트리스를 끌어 안고 속박하긴 했는데, 발버둥 치는 그녀의 완력에 진심이 녹아 있었던 것이었다.

행여 발이라도 구르면 주방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릴 정도였기에 네로멜티아는 아예 베아트리스를 허공에 들어 올려야만 했다.

“썩은 생선에 핀 곰팡이 같은 게…!!! 감히 은혜를 모르고…!!!!!”

“난 괜찮아!!!! 정말이야!!!! 진정해!!! 베아트리스 진정!!! 진정!!!!”

욕설도 디테일하게 하는 베아트리스.

평소의 차분하고 냉정한 분위기는 사라져 있었고 가능하기만 하다면 맥켄지 광산을 아예 허물어 매몰시킬 기세로 화를 내고 있었다.

청력을 키워 주변 상황을 살핀 네로멜티아는 터져 버린 폭탄의 진화 작업을 서둘러야겠다는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다.

주방의 너머 식당에서는 단 한 번도 들어본 경험이 없었던 베아트리스의 고함과 함께 피부를 뚫고 뼈를 쑤시는 듯한 살기가 넘실거리며 넘어오고 있었으니 그에 겁을 집어 먹은 백성들이 당장에라도 도망쳐야 하는 것이 아닌가 기겁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결국 네로멜티아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마음 먹었다.

“…!!!”

크게 분노를 표출하던 베아트리스의 입은 강제로 틀어막혀졌다.

네로멜티아가 대뜸 입을 맞춘 것이었다.

갑작스럽게 행해진 키스에 베아트리스는 상당한 당혹감을 느껴 굳어 버리는 모습을 보였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방법이었고 상상도 하지 못할 대처였으나, 적어도 베아트리스는 그 순간 자신의 내면에서 맹렬히 타오르던 분노를 모조리 잊고 말았다.

오히려 주인의 애정 깊은 입맞춤에 혀가 얽히고 뒤섞이니 황홀감마저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헤읍… 으음… 흐응…”

연인의 키스가 전하는 달콤함에 사로잡힌 베아트리스는 서서히 그 농밀한 입맞춤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네로멜티아 역시 베아트리스를 진정시키기 위해 과감히 진행한 대처일 뿐이었으나, 곧 애정의 끈적한 뒤섞임에 사로잡혀 본격적인 열중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허공에 떠 있었던 베아트리스의 신체는 네로멜티아가 힘을 풀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지면을 향해 내려왔고, 지면에 살포시 발을 디디게 되었다.

그럼에도 베아트리스는 전혀 발버둥 치지 않았고 공격적인 성향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네로멜티아가 베아트리스를 끌어안아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감싸자, 베아트리스 역시 네로멜티아의 어깨나 등을 쓸어내리며 연인의 부드러운 피부 감촉과 따스한 체온을 느끼는 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키스는 베아트리스가 제대로 진정해 그 깊은 감미와 안락을 느낄 수 있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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