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번 부활 끝에 마왕님은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178화 (178/216)

〈 178화 〉 넬라넬라의 첫 쇼핑

* * *

맥켄지 시티의 인공 태양이 저물어가며 밤의 시간이 도래했음을 알리고 있었다.

휘황찬란한 도시의 밤.

오색 빛이 무리를 이루는 화려한 거리.

온갖 물건을 사들인 넬라넬라는 양손에 가방을 잔뜩 들고서 전날 투숙했던 여관의 앞에 서 있었다.

“으으으… 너무 많이 샀어…….”

일생 단 한 번도 쇼핑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었던 넬라넬라.

대부분의 물품은 필요에 따라 배급되고, 기껏 거래라고 해봐야 물물교환이 전부였던 카보니 숲에서 살아온 넬라넬라이기에 화폐를 주고 원하는 물건을 받아낸다는 거래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절제가 많이 부족했다.

맥켄지 시티의 거리에는 온갖 물건들이 가득했고, 네로멜티아가 건네준 금화 또한 상당히 많았다.

가격이 얼마가 되었든 거스름돈은 받지 않고 오로지 금화를 건네던 네로멜티아와 달리 넬라넬라는 소중한 금화를 아껴서 쓰겠다 다짐하며 거스름돈도 잘 챙기고 가격도 유심히 따져가며 물건들을 구매했다.

그럼에도 넬라넬라는 상당한 지출을 이루고 만 것이었다.

타고난 체격만큼 식욕이 왕성한 오크 출신인데다 군인으로서 단련된 신체를 이루다 보니 오크치고도 식사량이 많았던 넬라넬라.

거리에서 파는 가벼운 음식부터 식당에서 자신있게 내어놓는 간판 요리까지 하나하나 맛보다 보니 평범한 데모니안의 세 배에 달하는 식사를 해버렸고, 그중에는 값비싼 음식도 있었기에 상당한 지출이 요구되었다.

그 다음으로는 드워프제의 전투 장비들을 구매했다.

공병대장이라는 자리는 공병으로서의 임무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었고, 스토니 포트리스의 모든 공방 업무 또한 담당하는 자리였기에 대장간에서의 잔뼈가 굵은 넬라넬라였다.

스토니 포트리스의 대장간에서 제작할 수 있는 대부분의 물품은 전부 넬라넬라 역시 제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넬라넬라는 드워프가 만든 무기와 방어구의 품질을 정확하게 알 수 있었고, 군인으로서 더욱 잘 싸우고 싶다는 바람까지 있었기에 드워프제의 장비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애초에 제련 기술부터 확연한 차이가 날 지경이었으니 넬라넬라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 무기를 제작하더라도 품질에서는 결코 따라갈 수가 없을 지경이었던 것이다.

거리에 널리고 널린 평범한 취급의 장비들조차 넬라넬라가 지닌 장비보다 뛰어난 상황이었으니 넬라넬라는 그나마 현실과 타협하여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질 좋은 장비들을 사는데 주력했다.

그렇다 할지라도 온갖 상황의 온갖 작전을 능히 해내야 할 군인으로서 요구되는 장비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에 이 또한 상당한 지출이 요구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는 주변 인물들에 대한 선물에 금화를 소비했다.

오빠 베리베리가 사용할 펜이라던가 베아트리스가 사용할 식칼 같은 실용적인 측면의 선물들도 많았으나, 넬라넬라가 주로 눈여겨 본 것은 의상이 많았다.

군인으로서의 엄격한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꾸미는 일조차 그리 많지 않았던 넬라넬라였으나 그녀 역시도 하나의 여성이었고, 그녀가 숨기고 있었던 여성으로서의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나 의상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이었다.

특히 여성복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쇼핑을 진행했는데, 넬라넬라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순수하게 우러나온 희망 때문이었다.

마왕도 그렇고 마왕군의 여성 간부들 또한 하나같이 아름답지 않은 이가 없었다.

하나하나가 미의 여신이라 일컬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미모를 지니고 있는 가운데 그녀들의 평소 의복은 전혀 변할 기색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네로멜티아는 귀찮다는 이유로 자동 수복 마법이 부여된 그녀의 의상 나이트 일루전을 항상 착용하고 다녔고, 러스테리아는 비서관으로서의 위엄있는 자세라며 검은색 정장만을 선호했다.

베아트리스는 메이드가 본연의 자세를 망각해 다른 의상을 입을 수는 없다며 항상 하녀복을 고집했고, 그나마 헤스티니아가 자신의 기분에 따라 의상에 변화를 주는 경우는 있었으나 나름대로 변화가 있다 생각되는 그녀마저도 평소의 오픈 숄더 드레스를 착용하는 날이 더욱 많았다.

넬라넬라는 아름다운 그녀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어울릴 것 같은 의상을 고르고 골라 사들인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 의상들 중에는 넬라넬라 본인의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으으… 사치스러운 여자라고 생각하시면 어쩌지…….”

이미 저질러버린 쇼핑이었다.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마다 하나둘 사들이다보니 기세를 타버렸고, 네로멜티아가 금화 주머니를 건네줄 때 함께 주었던 가죽 배낭은 가득 차버렸다.

그에 모자라 새로운 가방을 네 개나 더 구입하여 그 가방들조차 가득 채워버린 것이었다.

넬라넬라는 자신이 읽던 수많은 소설들 가운데에서 곧잘 등장하던 허영심 많은 귀족 여성들이 작중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를 떠올리며 더욱 걱정하고 있었다.

소설을 읽던 넬라넬라 자신조차 이렇게 사치스러운 여자가 있느냐며 눈살을 찌푸렸던 기억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랬던 자신이 이렇게나 물건을 많이 사들고 복귀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네로멜티아가 건네준 금화 주머니는 절반 가량이 비어버린 상태였기에, 그 가벼워진 무게만큼 넬라넬라의 마음은 도리어 무거워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누구게?”

“히끅…!!!”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스치며 누군가 등 뒤에서 눈을 가렸다.

넬라넬라는 화들짝 놀라 몸을 움찔 떨었고, 마치 딸꾹질과도 같은 경악의 소리를 내었다.

누구인지 몰라서 놀란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누구인지가 확실했기 때문에 놀란 것이었다.

아직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만나야 할 당사자를 급작스럽게 마주하니 덜컥 당황한 것이었다.

“폐, 폐하…!!”

“왜 그렇게 놀라고 그래? 후후후후. 귀엽다 진짜.”

무척 당황스러워하는 넬라넬라의 모습에 네로멜티아는 그녀의 눈을 가렸던 자신의 손을 스르르 풀어 주었다.

그리고 넬라넬라의 보드라운 뺨을 살짝 꼬집으며 싱긋 웃음을 짓는 것이었다.

“이것저것 많이 샀구나. 즐거운 하루 보낸 모양이라 다행이네.”

“아아… 그… 저기…”

넬라넬라는 아직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네로멜티아가 먼저 넬라넬라의 양손에 가득한 짐들을 언급했고, 넬라넬라는 갑작스럽게 마주한 결말에 말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당혹스러워했다.

“너, 너무… 너무 많이 사서… 죄송합니다… 그, 저기…”

“아아! 뭐야! 금화 다 안 썼잖아!”

말을 더듬어가며 겨우겨우 반성의 이야기를 꺼내려던 넬라넬라의 말을 툭 끊고서 갑작스럽게 정반대의 이야기를 꺼낸 네로멜티아.

네로멜티아가 손가락을 까닥이자 넬라넬라의 허리에 묶여 있었던 금화 주머니가 스르르 풀리며 떠올라 네로멜티아의 손에 들어갔고, 금화 주머니를 펼쳐본 네로멜티아는 넬라넬라의 걱정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소리를 높이는 것이었다.

네로멜티아는 오히려 넬라넬라가 금화를 다 쓰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금화가 반이나 남아있네!?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오도록.’ 이거 분명 내가 한 말 같은데, 마왕으로서의 명령이라고 하면서. 넬라 혹시 금화 아껴서 쓴 거 아니지?”

오히려 금화를 다 쓰고 오기를 바랐던 것처럼 나오는 네로멜티아.

넬라넬라는 말문이 막힐 정도로 놀라 정신의 흐름마저 끊기는 느낌이 들었으나, 한편으로는 자신이 보인 많은 소비에 그다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놓이는 느낌을 함께 받았다.

그에 따라 긴장이 슬슬 풀어지기 시작한 넬라넬라는 문득 네로멜티아의 눈빛이 눈에 들어왔다.

애정이 가득 묻어나는 따스한 눈빛.

넬라넬라는 비로소 모든 것을 깨달았다.

네로멜티아는 넬라넬라가 난처해하는 이유를 눈치채고 일부러 과장된 모습을 보여준 것이었다.

오히려 왜 금화를 다 쓰지 않았냐고 질책 아닌 질책을 한 것 역시, 한편으로는 진심이기도 했으나 넬라넬라를 안심시키기 위해 굳이 꺼내는 이야기였던 것이었다.

넬라넬라는 자신이 섬기는 주군의 자애로움에 다시금 깊은 감명을 받았고, 한층 편안해진 모습으로 미소를 지으며 힘껏 대답했다.

“정말 즐거웠습니다, 폐하! 감사합니다!”

전날 묵었던 여관에는 무려 금화를 건네주었었기 때문에 하루 더 묵는 것쯤이야 몹시 당연한 일이었다.

네로멜티아가 투숙을 종료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기에 닷새는 머물러도 좋은 액수를 건네준 상황이니 당연하게도 전날 묵었던 방은 그대로 온전히 네로멜티아 일행의 것으로 남아 있었다.

넬라넬라는 네로멜티아와 함께 배정된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자신이 구입한 물품들을 방 한편에 내려 두었다.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라면 자신이 구입한 물건들을 어느 정도 꺼내어 봐도 좋을만 한데, 넬라넬라는 오히려 그것들을 구석에 놓는 것으로도 모자라 가방을 열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뭔가 숨기려고 하는 듯 넬라넬라의 태도는 수상쩍기 그지없었으나 네로멜티아는 아무래도 좋다 생각하며 별 생각 없이 넘어갈 뿐이었다.

그렇게 깊은 뜻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네로멜티아가 바라는 것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넬라. 같이 씻을까?”

전날 밤에는 아쉽고 안타깝고 애가 타게도 아무런 일 없이 그냥 지나갔었지만 오늘 밤은 다를 것이라 다짐하며 벌써부터 야릇한 분위기를 잡으려 드는 것이었다.

그저 순수하게 목욕을 권하는 모습이 아니었고, 은근한 색기에 젖은 눈빛으로 넬라넬라를 바라보는 것이 명백한 유혹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넬라넬라는 전날 밤처럼 네로멜티아의 권유를 거절했다.

“폐, 폐하 먼저 씻으시면… 그 다음에 씻겠습니다…….”

사랑해 마지않는 연인의 명확한 거절에 네로멜티아는 풀이 죽은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서 홀로 욕실로 향했다.

사실 함께 할 것이 아니라면 마법으로 씻는 편이 빠르고 간편해서 좋았으나, 분위기가 순서대로 씻는 분위기였으니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것도 기분이 좋겠구나 싶어 별다른 고민 없이 욕실로 향한 것이었다.

머지않아 네로멜티아가 목욕을 시작한 듯, 물이 찰랑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욕조에서 물이 넘치는 소리나 적은 물이 수면으로 쏟아지는 소리 따위가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네로멜티아는 분명 목욕을 시작한 상황인 것이었다.

귀를 기울여 욕실의 상황을 몰래 염탐하던 넬라넬라는 이윽고 무언가 결심한 듯, 자신의 가방에서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꺼내어 침대 위에 올려 놓았다.

넬라넬라는 그것을 내려다보며 낯을 붉혔고, 너무도 긴장한 나머지 침을 삼키는 모습도 보였다.

발그레하게 상기된 넬라넬라의 뺨은 점차 열기를 더하며 달아오르고 있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