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번 부활 끝에 마왕님은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175화 (175/216)

〈 175화 〉 러스테리아의 실종 (1)

* * *

마왕성의 백성들이 노동의 땀을 달래는 장소.

한정된 식재료만으로도 언제나 맛있는 식사를 즐길 수 있는 행복이 가득한 식당.

그 장소를 주관하는 베아트리스는 분주한 점심시간이 끝나고 나서야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곧 저녁 식사에 쓰일 식재료를 다듬고 조리에 들어가야 했으나, 베아트리스가 교육시킨 식당의 인원들이 일을 곧잘 했기 때문에 단순한 작업에 관해서는 그녀가 손을 쓰지 않아도 좋았다.

“하아아… 지금 혹시 식사를 할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인원이 식사를 마치고 자신의 일터로 복귀한 시각, 한산해진 식당에 뒤늦게 들어선 이는 헤스티니아였다.

무척 기력이 떨어진 듯한 모습으로 흐느적거리며 들어선 헤스티니아는 마왕성의 중요인사들을 위한 전용석에 털썩 앉았다.

의자의 등받이에 눕다시피 몸을 기대고 고개는 뒤로 젖혀 천장을 바라보는 모습.

누가 봐도 업무에 지쳐 기력이 없는 모습이었고, 당장에라도 침대에 쓰러져 자고 싶어 하는 이의 자세였다.

“많이 피곤하신가 봅니다. 연구소의 일이 많이 고된 모양이군요.”

“후후후후. 저 혼자서 연구를 하는 것뿐이라면 그다지 피로할 일도 없겠지요. 마왕성의 마도학을 위한 연구원 육성이 가장 힘들답니다. 몇 번이나 설명을 해 줘도… 당장은 이해하는 듯하면서도 얼마 가지 않아 주의를 망각하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니…….”

“후후… 알 것 같습니다.”

“그래요? 아, 베아트리스님께서도 요리사 육성을 맡고 계셨지요?”

공통된 난제에 대하여 공감대가 형성된 베아트리스와 헤스티니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지닌 지식과 능력을 바탕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지닌 바 능력이 낮은 타인을 전문가로 육성하는 일은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였기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소모되는 난해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난해한 작업이 성공만 한다면 마왕성을 이끌어갈 근본적인 저력이 되는 것이었기에, 마왕성의 간부들은 정성을 쏟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곧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라 다소 미흡하겠지만, 식사를 준비하겠습니다. 속히 식사를 마치시고 연구소로 돌아가셔야겠지요?”

“하아… 차를 마실 시간도 없답니다……. 차와 함께 우아하게 즐기던 쿠키나 스콘 같은 과자들도 당분을 보충하는 감각으로 먹는 느낌이고… 앞으로 한동안은 계속 이런 식일 것 같아서 막막하네요…….”

태고의 숲에서 홀로 은둔해 있었던 과거에는 한 시간씩 느긋하게 차를 음미하고 고요한 여유를 만끽했었는데, 이제는 책과 잉크에 파묻혀 맛이나 향기를 느끼지도 못한 채 음식을 섭취하는 느낌.

기본적으로 마력을 사용하여 신체를 구동하는 베아트리스의 경우 인공 세포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데에만 영양분을 소모하면 되는 상황이기에 거의 식사가 필요하지 않은 존재이지만, 헤스티니아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피로를 느낄 리가 없는 에고 돌임에도… 저 역시 한가한 휴식이 그리워지는 느낌이라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는 알 것 같습니다.”

“어머, 정말요? 베아트리스님이 지치실 정도라구요?”

“… 느낌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게 그거잖아요! 무려 에고 돌이신 분께서 휴식을 취하고 싶다 생각할 정도라니 이쪽도 업무량이 보통이 아닌 모양이네요!”

베아트리스는 그저 감각적인 면이 그러한 것이라고 못을 박았지만, 헤스티니아는 베아트리스의 부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애초에 영양의 보급과 수면 활동에서 자유로운 존재인데다, 신체를 구성하는 공학적 장치들만 멀쩡하다면 한계 없이 움직일 수 있는 에고 돌이 휴식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인 것이었다.

헤스티니아는 베아트리스의 말 몇마디에서 진실을 읽어낼 수 있었다.

다른 에고 돌들과 베아트리스가 다른 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차이점은 감정의 존재였다.

베아트리스는 감정이라는 것이 구현되지 않은 마도학적 인공 인격을 소유한 여타의 에고 돌과 시작은 전혀 다르지 않았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자아와 감정을 손에 넣은 특별한 에고 돌이었다.

그러니 베아트리스가 느끼고 있는 감각은 정신적인 피로라 볼 수 있었고, 이는 곧 베아트리스 역시 지칠 수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에고 돌 자체가 마력만 충분하다면 한도 없이 움직일 수 있는 신체를 지니고 있다는 걸 생각해 본다면, 아무리 감정을 지닌 에고 돌일 지라도 쉽게 지칠 리가 없는 것.

이는 베아트리스가 맡고 있는 업무가 얼마나 과중한 것인지를 증명하는 명확한 증거가 되는 것이었다.

“휴미안 군대와 케르디하크의 침공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다들 너무나 바쁜 것 같네요.”

“그런 위태로운 상황이니 오히려 바쁜 게 맞는 겁니다. 주인님조차 마왕성을 위해 잠을 줄여 가시면서 업무를 소화하시고, 이제는 제대로 된 수행단도 없이 드워프들을 찾아가셨을 정도이니 충성을 바쳐야 할 저희들은 더욱 바빠야 할 것입니다.”

“역시 베아트리스님은 엄청 단호하고 엄격하시네요.”

“당연한 겁니다. 우리가 섬기고 있는 지고한 분의 존함은 결코 가볍지 않으니까요.”

자신의 고충을 십분 이해하는 모습을 보인 베아트리스이기에 헤스티니아는 자신의 한탄 역시 받아들여질 줄 알았으나, 베아트리스는 오히려 이 분주한 상황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었으니 한편으로는 예상대로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고개가 절로 저어지는 것이었다.

“크로포드님은 아예 갑옷까지 벗고 서류의 산에 파묻혀 계시고… 넬라넬라님은 마왕성의 재건에 바쁘신 와중에 마왕님의 수행원까지 자처하시고… 아티스님은 마왕성의 자원을 총괄하시면서 향후 구축할 경제 체제를 설계 중이시고…”

그저 모두가 이토록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하나하나 그들의 업무를 나열하는 것이 단호한 베아트리스에게 헤스티니아가 언급할 수 있는 전부였다.

고작 이 조차도 하지 못한다면 베아트리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당연히 열심히 해야죠!’라고 긍정을 표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전혀 없는 것이었다.

“베리베리님은 카보니 숲의 운영을 총괄함과 동시에 휴미안 포로들의 심문으로 밤마저 지새우시고… 카디스텔라님은 저를 도와서 연구소의 개발부 일정을 맡아 보시다가 마왕님의 지시에 갑자기 불려 가신 것 같고… 에… 또…”

또 누가 남았나 잠시 머리를 굴리던 헤스티니아는 순간 오운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으나 굳이 입 밖에 꺼내진 않았다.

불끈대는 근육을 잔뜩 부풀리며 의기양양해 하는 오우거의 모습은 머릿속에서 깨끗이 지워내고 떠올린 것이 갑작스럽게 모습을 감춘 서큐버스.

“아, 그러고 보니 러스테리아님은 오늘 한 번도 못 뵈었네요? 듣자하니 마왕님께서 수행원으로 러스테리아님까지 데려갈 생각이셨다는데, 마왕님도 러스테리아님이 부재중이라 못 데려가셨다고…….”

“… 식당에도 모습을 비추지 않고 계십니다만… 헤스티니아님께서도 만나지 못하신 겁니까?”

“네! 케르디하크와의 전투에서 마력을 많이 소모하셔서 어딘가 아프신가 싶기도 했는데, 거처에도 안 계시는 걸 보니 쉬고 계시는 것도 아닌 듯하고…….”

갑작스럽게 종적을 감춘 러스테리아에게 깊은 의문이 든 베아트리스는 잠시의 시간 동안 유심히 생각에 잠기는 모습을 보여왔다.

하루 이틀 정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해서 그리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문제는 거처까지 찾아가 찾는 이가 있었음에도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에 마왕성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마왕 본인이 직접 러스테리아를 찾아 나섰음에도 그녀의 모습을 찾지 못해 단 한 명의 수행원 넬라넬라만을 데리고 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마왕군의 간부된 입장에서 보통 일이 아닌 것이었다.

러스테리아 본인도 평소 그녀 자신의 주인에게 보이는 충성과 친애의 감정을 생각하면 주인의 부름을 달갑게 받아들였을 것이었으나, 애초에 서로 만나지 못했으니 마왕의 외출 소식을 아직까지도 모르고 있을 확률이 높은 것이었다.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기에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는 주인의 부름조차 알지 못하고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이렇게 고민해 봐야 결과가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베아트리스는 자신의 의미 없는 상념을 지우고서 당장 해야 할 일에 임하기 시작했다.

“대화는 이쯤 하기로 하고, 헤스티니아님의 식사를 내어 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길.”

“후후, 고마워요.”

시간도 별로 없고 식사마저 늦은 헤스티니아를 위해 베아트리스는 속히 주방으로 들어서려 했다.

그때 베아트리스의 뒤에서 헤스티니아의 나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비서관님은 하면 하는 아이니까요.”

무척이나 따스하고 정겨운 음성.

나긋나긋하고 친절한 귀부인의 모습을 한 헤스티니아는 그 이면에 냉소적이고 배타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는 이중적인 존재였다.

웃으며 타인의 등에 칼을 꽂을 수 있고, 웃으며 식사에 독을 탈 수 있는 존재.

겉으로 드러나는 자애로운 미소와 내면에 도사린 냉소가 공존하는 마녀.

가면의 너머에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할 공허의 존재.

그것이 영생의 마녀 헤스티니아 위즈위치인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헤스티니아의 음성에는 그녀답지 않은 따스한 애정이 녹아 있었다.

귀여운 딸아이에 대해 언급하는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처럼, 러스테리아에 대해 이야기하는 헤스티니아의 목소리에는 깊은 애정이 녹아 있었다.

이전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헤스티니아의 낯선 모습에 베아트리스는 하마터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볼 뻔했으나,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주방으로 들어가는 데에 성공했다.

도대체 헤스티니아가 보인 이 낯선 모습은 무엇인가.

그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않고, 필요에 따라서는 언제든지 등을 돌리고 사라질 준비가 되어 있는 마녀에게 이토록 살가운 모습이라니.

베아트리스는 식사를 준비하는 손이 분주하면서도 헤스티니아가 무언가 좋지 않은 계획을 꾸미고 있는 것인가 싶어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