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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 부활 끝에 마왕님은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174화 (174/216)

〈 174화 〉 황금의 거래 (3)

* * *

골든 팰러스의 정문에 드워프 병사들이 두 줄로 길게 정렬해 있었다.

드워프 병사들의 사이를 유유히 걸어 나오는 것은 네로멜티아와 넬라넬라.

그녀들은 골든 팰러스에 발을 들였을 때와 달리 지극한 예의를 받으며 왕궁을 나서고 있는 것이었다.

드베릭 왕과의 거래는 모두 끝이 났고, 네로멜티아가 제시한 조건에 대해 수정된 사항은 없었다.

총 2700금화로 블랙 캐틀 40마리와 빅 보어 50마리를 교환한다는 거래는 즉시 이행될 것이었다.

드베릭 왕이 보는 앞에서 알현실의 한가운데에 금화 2700닢을 쏟아 주고 나니, 네로멜티아에 대한 대우는 환영 의식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불청객에서 성대한 환대를 받는 국빈으로 바뀌어 있었다.

“폐하,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골든 팰러스를 나서며 맥켄지 시티의 거리로 이어지는 긴 계단을 내려가던 중, 넬라넬라는 주변에 듣는 귀가 없다는 것을 자각하자마자 조심스럽게 의문을 던져왔다.

그러나 네로멜티아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넬라넬라의 질문을 대신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가축에 왜 그런 공을 들였는가. 묻고 싶은 게 이거지?”

“그렇습니다. 솔직히 폐하께서는 금화를 많이 가지고 계셨던 것 같고, 현재의 마왕성에 대해서도 지금 당장 그렇게 많은 금화가 필요하지는 않으니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넬라넬라는 말을 흐리며 잠시 대화를 끊어 갔다.

무언가 논하고자 하는 바를 입에 담기 부담스러운 모양이었고, 자신의 이야기를 주저하며 과연 이 상황에 대해 거론하는 것이 합당한 말인지를 고민하는 것 같았다.

“폐하께서 굳이 자존심을 굽히시면서까지 얻어야 할 물자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식과 경험이 미천한 저로서는 드워프의 왕국이 테라리스에 있어 얼마나 대단한 위세를 지니고 있는지 잘은 모릅니다. 그러나 일개 한 종족의 국왕 따위가 감히 마왕 폐하께 보인 그 무례함을 거래를 위해 가벼이 넘어가 주시는 모습은… 심히 보기 불편했습니다…….”

넬라넬라의 불편함은 온전히 네로멜티아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드베릭 왕이 네로멜티아에게 배타적인 까닭에 만남의 장을 가지지 않으려 홀대한 것은 그나마 공식적인 외교의 한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었으나, 이미 성사된 회담에 임하고 있는 와중에도 네로멜티아를 떠보려 한다거나 교묘한 단어 선택으로 우위를 점하려 기 싸움을 걸어온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건방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용건을 이야기하면 이득과 손실 사이에서 저울질을 해 본 뒤에 ‘윤허’하겠노라는 듯 짐짓 무관심한 모습으로 고압적인 태도를 보일 때는 몇 번이고 검을 뽑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무례를 네로멜티아는 가볍게 웃어넘기며 거래를 성사시킨 것이었다.

“백성들의 윤택한 삶을 위해 애써 주신 것은 알겠습니다. 그러나… 마왕성의 모두에게 충성을 받고 계신 폐하께서 자존심을 굽혀가시면서까지 얻어온 식량은… 차라리 굶주리는 한이 있더라도 달갑게 여길 이가 없을 것입니다!”

넬라넬라는 주먹을 꾹 쥐고 고개를 숙였다.

오늘 벌어진 모든 사건이 마치 자신의 실책인 것처럼 여겨지자 죄책감마저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조금만 더 유능했더라면.

그래서 마왕성의 식량 창고가 다른 세력의 도움이 필요 없을 정도로 부유했더라면.

넬라넬라는 드베릭 왕의 무례를 담담하게 받아넘기며 헤모니겐트의 백성들을 위한 가축을 사들인 네로멜티아의 모습을 보며 자책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네로멜티아는 조금도 씁쓸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진지하게 스스로를 책망하는 넬라넬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마왕성의 식량을 위해서라… 넬라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네로멜티아는 그저 넬라넬라의 심경을 물어오고 있을 뿐이었으나, 그 말의 의미는 넬라넬라가 현재의 상황을 크게 잘못 해석하고 있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았다.

넬라넬라는 자신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확신에 침묵으로 답했다.

드베릭 왕과의 사이에서 논의되었던 거래 내용을 되짚어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 넬라넬라의 모습은 의미를 모르는 상황에서 꺼낼 수 있는 불확실한 대답보다 더욱 명확한 답변이 되고 있었다.

넬라넬라는 적어도 네로멜티아의 행동에 대해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세한 건 결과가 나타날 때까지 지켜보도록 해. 그게 훨씬 재미있을 거야. … 단지, 하나 장담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네로멜티아는 넬라넬라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부드럽게 내려 넬라넬라의 뺨을 살포시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피부가 흠뻑 느껴지는 손등으로 부끄러움에 물들어 열기를 띠기 시작한 상대의 뺨을 쓸어내리는 가벼운 스킨십.

그러나 아무리 가벼운 접촉이라 해도 이 정도의 스킨십을 용인할 수 있는 경우는 친분의 관계를 떠나 그리 많지 않았다.

명백히 연인끼리 주고받는 애정표현인 것이었다.

넬라넬라는 자신의 뺨을 쓸어내리는 네로멜티아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며 상기된 표정을 띠기 시작했고, 네로멜티아는 자신의 애정을 받는 연인의 귀여운 모습을 바라보며 이야기의 끝을 맺었다.

“드베릭 녀석은 머지않아 허수아비가 되어버릴 거라는… 예정된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지.”

애정을 가지고 자신을 어루만져오는 주군의 손길을 느끼며 야릇한 쾌감을 가볍게 느끼던 넬라넬라는 자신을 바라보는 선홍빛 눈동자를 보았다.

한 치의 이견이 없을 완벽한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눈빛.

일말의 불안 없이 결과를 손꼽아 기다리는 의기양양한 미소.

본인이 이야기한 대로 네로멜티아는 결과를 말로써 미리 전해 듣기보다 직접 목견하길 원하고 있었으니 넬라넬라가 지금 당장 마왕의 책략을 알 방도는 전혀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신앙해 마지않는 마왕이 장담을 하며 확신하고 있다면, 어떠한 근거나 원리를 모른다 할지라도 마음 깊이 신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신하된 자로서의 의무 이전에 넬라넬라가 네로멜티아에게 가지고 있는 순수한 신뢰에서 비롯된 믿음이었다.

“드베릭 왕 그자가 저지른 무례를 어쩔 방도가 없어 헤모니겐트를 위해 용납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자를 공략하고 무릎 꿇리기 위해 택한 기만책이다……. 라는 말씀이십니까?”

“정확히 이해했어. 역시 넬라는 명석해! 내가 아끼는 유능한 대장님. 후후.”

“…!!”

정확한 내막에 결코 다가서지 않은 표면적인 이야기를 에둘러 말했을 뿐이지만 넬라넬라는 현재 벌어진 책략에 대해서 원리를 모를지언정 의미에 관해서는 핵심에 다가서고 있었다.

네로멜티아는 자신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한 넬라넬라가 너무도 예쁜 나머지 그녀를 꼬옥 끌어안았다.

무척이나 충동적이고 갑작스러운 접촉이었으나 네로멜티아는 조금도 자제하지 않고, 넬라넬라의 강한 힘으로도 결코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그녀를 꽉 끌어안기 시작했다.

마왕의 품에 갑작스럽게 안기게 된 넬라넬라는 다소 놀라는 모습을 보였으나, 이내 자신의 안면을 부드럽게 감싸오는 말랑한 젖가슴의 감촉과 포근한 느낌을 선사하는 따스한 체온에 긴장이 급속도로 풀어지기 시작했다.

향기롭고 달콤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황홀한 체향이 이성을 마비시키는 느낌이 들었고, 실제로 넬라넬라는 정신이 기분 좋게 몽롱해지는 상황이었다.

“자, 나는 슬슬 내가 사들인 귀여운 가축들을 챙기러 가봐야겠어. 넬라는 좀 쉬다가 올래?”

“… 네? 그게 무슨… 저도 따르겠습니다.”

자신을 힘껏 끌어안았던 팔을 풀고서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일을 말하는 네로멜티아에게 놀란 넬라넬라는 호위로서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 어느 호위가 낯선 타국에서 주군이 중요한 업무를 보고 있을 때, 자리를 비우고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네로멜티아는 넬라넬라가 뭐라 당연한 논리들을 열거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치고 달콤한 음성으로 설득을 하기 시작했다.

“넬라는 지금까지로도 충분히 잘 해줬어. 가축을 챙기는 일이야 혼자 해도 충분할 단순한 일이고, 무엇보다 넬라도 어느 정도는 쉬어야 하지 않을까?”

“하, 하지만 폐하…!”

“넬라는 이곳 맥켄지 시티의 지리와 드베르그릭의 문화가 처음이잖아? 나를 따라서 가축을 옮기는 단순한 업무를 지켜봐 줘도 좋지만, 마왕성의 공병대장님으로서 여러 가지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며 식견을 넓히는 것도 큰 이득이라고 생각하는데. 시찰이야 전날 어느 정도는 했지만, 넬라가 모든 것을 이해할 만큼 깊고 자세하게 살핀 것은 아니잖아? 무엇보다 상업 구역의 번화한 거리라던가…….”

네로멜티아는 넬라넬라를 보내기 위해 그저 얕은 수를 쓰는 것이 아니었다.

반박의 여지가 전혀 없는 정론(??)이 펼쳐졌고, 이는 넬라넬라 역시 마음 깊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넬라넬라는 마왕성의 재건과 발전에 가장 큰 역할을 부여받은 중요한 자리에 임하고 있었다.

그런 이가 경험이 부족하여 계획에 모자람이 있다면 그보다 안타까운 일이 또 있을까 싶었던 것이었다.

마왕성이라는 사회의 기반을 건설하는데 있어서, 완성된 풍요로운 사회가 구축되어 있는 이 맥켄지 시티를 견학하며 지식을 배우는 건 더할나위 없이 소중한 발전의 기회인 셈이었다.

절그럭!

“자, 이 정도면 뭘 하든 모자라진 않을 거야.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사고, 맛보고 싶은 게 있으면 맛보고. 힘껏 즐기다가 와.”

“하지만…”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오도록. 이건 마왕으로서의 명령이야.”

네로멜티아는 디멘셔널 스토리지에서 묵직한 금화 한 자루와 빈 가죽 배낭을 꺼내어 넬라넬라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로써 넬라넬라가 거리를 구경하며 금전적으로 모자랄 걱정은 없는 셈이었고, 무언가를 구입하더라도 손이 모자라 못 사는 일은 웬만해선 없을 것이었다.

그렇게 넬라넬라는 네로멜티아의 완강한 손길에 떠밀리듯 맥켄지 시티의 번화가로 나서게 되었고, 네로멜티아는 골든 팰러스의 정문으로 이어진 계단에 홀로 남게 되었다.

왕궁에 볼일이 있지 않은 이상 그 누구도 오를 일이 없는 통행로.

그다지 왕성한 국정 활동이 벌어지는 때는 아니었기에 길고 긴 계단으로 이루어진 이 통행로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이 한산할 뿐이었고, 나아가 왕궁에 들어서야 할 신하들은 이미 전부 입장했을 시간이니 웬만해서는 이 계단을 오를 이가 없었기에 주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재차 확인한 네로멜티아는 나직이 한 이름을 호명했다.

“카디스, 이제 나와도 좋아.”

슈르르륵

“하아. 이건 너무 답답하단 말이야. 나 정도면 국빈 대우를 받으면서 카펫 위를 당당히 걸어야 하는 건데.”

“후후. 마왕도 먹다 남긴 수프 신세였는데, 여제님이라고 다를까?”

네로멜티아가 언급한 것은 카디스텔라의 애칭이었다.

오로지 마왕만이 입에 담을 수 있는 그것은 선혈의 여제이자 퍼스트 블러드라 불리는 위대한 불사의 지배자에게는 좀처럼 연상되지 않을 귀여운 애칭인 것이었다.

카디스텔라는 네로멜티아의 그림자 속에서 스멀스멀 형태를 이루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이에서 마왕을 보필하고 따랐던 넬라넬라조차도 전혀 파악하지 못했을 정도로 은밀하게 그림자 속에 녹아들어 있었던 카디스텔라.

사실상 골든 팰러스에 출입한 헤모니겐트의 인물은 카디스텔라까지 포함해서 셋이었던 것이다.

시커먼 그림자의 형태에서 우아한 빛을 발하는 은발이 나타나 반짝이는 순간.

카디스텔라는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네로멜티아의 앞에 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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